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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순정의 가치 2

섹스피스톨즈 AU










리에프는 씩씩거리는 야쿠를 피해 고개를 숙였다. 어린 애 취급을 받는 건 질색이다. 더군다나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고작 어리다는 이유로 점수를 깎아먹어야 한다니 여간 억울한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지? 욱해서 화나게 만들어 버렸네. 야쿠는 어느새 메뉴로 얼굴을 가린 채다. 그를 몰래 힐끔거리며 리에프는 웃음을 삼켰다. 고양이 혼현 때문이다. 혼현은 반류의 감정이나 몸 상태 등에 따라서 보이고 안 보이고를 조절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의 변화를 말한다. 보통은 감추는 게 예의인데 화가 나서 조절이 안 되는 건지 시위를 하는 건지 머리카락 틈으로 삐죽 나온 귀가 세게 팔랑거렸다. 귀여워서 웃음 참기가 힘들다. 저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왜 그렇게 귀여운 건데요? 물으려다가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까 봐 그만 두었다.




“저기…… 제가 이런 데를 처음 와봐서 그러는데 골라주시면 안 될까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메뉴가 천천히 내려간다. 동그란 눈이 리에프를 응시한다. 의심하듯 말없이 눈만 깜빡이는 야쿠와 마주하고 있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난리법석이다. 저한테는 감추라고 하더니 그는 한껏 유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야쿠 모리스케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리에프는 열다섯의 소년으로 되돌아가 마음껏 가슴 떨려 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눈만 도르륵 굴리고 있는 사람,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아파. 혼자였다면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을 굴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와봤다고…… 요?”


“네, 봐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말 놓으셔도 돼요.”


“정말?”




고개를 끄덕거리자 드디어 야쿠가 얼굴을 온전히 내보인다. 기분이 나아졌는지 쫑긋거리던 귀가 사라져서 아쉬웠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테니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고양이의 기분이 훨씬 중요하다.




“음, 샐러드가 좋아, 수프가 좋아?”


“수프요.”


“그럼 전채 요리는 단호박 수프, 나는 연어 샐러드!”




조금 단순한 편인가? 언제 화가 났었나 싶게 쪼르르 의자를 옆으로 붙여 앉는다. 메뉴를 짚으면서 잔뜩 신이 난 기색이다. 리에프는 몇 번이나 입가를 가린 채 소리 죽여 웃었다. 반짝거리는 눈망울이 어떠냐고 묻는다. 좋아요! 야쿠상이 결정한 거라면 다 좋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혹시 나눠먹는 거 싫어해?”


“전 상관없어요.”


“다행이다, 우리 메뉴 다 다르게 주문했거든. 수프랑 샐러드랑 고기랑 생선이랑 푸딩이랑…… 아무튼 다 먹고 싶어서.”




식성마저 사랑옵다. 리에프는 이게 꿈인가 싶어 테이블 아래로 제 허벅다리를 꼬집어보았다. 아얏! 꿈이 아니다. 어린 시절, 어쩌면 닳을까 마음속에 숨겨둔 이가 눈앞에 포크를 쥔 채 싱그럽게 웃고 있다. 야쿠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상했던 것도 잊고 다시 리에프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너 눈이……”


“눈이요?”


“눈동자 말이야, 녹안綠眼이네.”


“혼혈이에요, 아버지가 러시안.”


“오, 혹시 머리카락도?”




역시 기억 못하는 건가? 리에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공에 얽힌 눈길이 마주한 이를 살핀다. 그들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서로의 눈을 놓지 않았다. 야쿠는 녹색 눈동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실례였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사과했다. 미안, 신기해서, 앗, 나쁜 뜻은 아니고!




“머리카락은 겨울 같고, 눈동자는 여름 같아.”




그는 마치 오늘 날씨가 참 좋다고 하는 것처럼,




“예쁘다.”




라고 말했다.

리에프는 살짝 고개를 숙여 얼굴을 숨겼다. 귀가 새빨개져 있었다. 야쿠상, 이건 반칙이라고요! 항의하는 대신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을 뿐이다. 당신도 여전히 눈부시다고.




“그나저나 너, 키가 몇이야?”




마치 선전포고하듯 도전적인 억양에 이번엔 참지 않고 소리 내어 웃었다. 킬킬거리자 야쿠는 분한 표정으로 웃지 마! 소리친다. 앞으로 나온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마지막으로 쟀을 때가 194m 정도였어요.”


“와, 정말 크네.”


“야쿠상은 정말 작네요.”


“죽을래?”


“하하, 저는 좋아요. 작고, 귀여우니까!”


“뭐, 뭐래? 우리 둘이 서 있으면 진짜 웃길 거야, 쳇……”




야쿠가 투덜거리면서 입 안 가득 고기를 욱여넣는다. 귀엽다는 말을 듣는 게 부끄러운가 보다. 음식물 때문에 팽팽해진 두 볼이 발그레했다. 아아, 귀여워.




“이거 먹어봐, 진짜 맛있어.”




리에프는 제 접시 위로 몇 번이나 음식을 나르는 손에서 눈을 떼지 못 한다. 머리도 작고 손도 작고 몸도 작고. 그는 한 번 더 사랑에 빠졌다. 소년 하이바 리에프가 그랬던 것처럼. 야쿠는 어렸을 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게 틀림없다. 꾸밈없고 밝다. 이 사람 주변만 따뜻한 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그에 닿아 함께 물들고 싶다.




“잘 먹었습니다.”




이런 만남의 수순이란 으레 식사 후 룸으로 향해 관계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의 호텔 룸은 3일 동안의 예약이 되어있었다. 회충으로 인공 자궁을 만들고, 임신을 위한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한 약을 먹어 발정 기간을 잘 맞춘 뒤라고 해도 반류의 임신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동안 교미를 반복해 확률을 높이는 게 최선이다. 이런 단편적인 관계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는 반류는 드물어서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이 과정에 가문 사이의 금전적인 거래가 개입된다는 건 두 말 하면 잔소리고. 하지만, 리에프가 원하는 건 앞으로 오래도록 야쿠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게 식사든, 섹스든 상관없이 그저 고양이가 웃고 즐거워하면 그만이다.

후식이 나왔을 때부터 눈에 띄게 야쿠의 몸이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안 그런 척 하고 있지만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이 얼굴에 가득 서려 있다. 얼마나 싫을까? 날 좋아하지 않으니까. 입맛이 써서 리에프는 시무룩해졌다. 레스토랑을 나와 코트의 팔 부분을 찾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한 잔 하실래요?”




시선을 내린 채 옷 입는 걸 돕는 리에프의 제안에 야쿠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곧 고개를 주억거린다. 안도의 한숨이 뻗어진 손등에 닿는다. 뭐든 해주고 싶어 단추에까지 손을 뻗쳤는데 싫지 않은지 야쿠는 코트의 단추가 전부 채워질 때까지 푸딩 맛이 어땠는지 의미 없이 늘어놓으며 가만했다.




“다 됐어요.”


“고, 고마워.”




복잡한 호텔 라운지 바에서, 운 좋게도 복층에 위치한 아늑한 좌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타이밍이 좋잖아! 두 사람은 신이 나서 손바닥을 마주쳤다. 마주 앉자 도로 어색해졌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리에프가 배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간단하게 네코마 고교의 주전이었던 야쿠의 흥미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바로 옆 중학교에 다닐 때 몇 번이나 연습하는 모습을 훔쳐봤다고 털어놓으려다 거부감을 일으킬지도 몰라 입을 다물었다. 모처럼 분위기가 좋아졌는데 섣부른 고백으로 그르치고 싶지 않다. 어느새 와인이 두 병이나 비워졌다. 취기가 오르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테이블 아래로 맞닿은 다리는 떨어질 줄 모른다. 희미하게 상대를 묶고 있는 서로의 페로몬을 알아채지 못한 채 여러 번 스치는 손을 겹쳤다.




“어쩌다 이런 자리에 나온 거야? 리에프는 너무 어리잖아.”


“제가 선조귀환인 걸 알고 아버지한테 권면이 많이 들어왔나 봐요, 강요하신 건 아닌데 사진을 발견해서……”




부드러이 리에프라고 이름을 불러주어서 감격이다. 대꾸하면서 팔을 뻗어 야쿠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아까부터 어지러운지 자꾸 이마를 문지르기에 그런 것인데 차가운 손이 좋은지 눈을 반달처럼 휘어 웃었다. 불끈. 다른 생각을 하자. 포크, 고기, 샐러드, 야채, 야쿠, 야쿠, 야쿠상이랑 야한 거 하게 되는 걸까?




“사진? 아아, 맞선 상대들?”


“네, 야쿠상 사진보고 하겠다고 한 거예요.”


“하하, 나한테 첫눈에 반했구나?”


“그런 것 같아요.”




푸른 눈동자가 무겁게 마주앉은 상대를 짓눌렀다. 갑작스런 고백에 당황한 야쿠는 부러 크게 웃어넘기며 어물쩍 화제를 돌려버렸다.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잘생긴 연하의 다정한 눈길 탓에 정신이 흐트러지고 있는데다 술이 들어가 심장에서 머리까지 쿵쿵 울리는 것 같다.




“대학생이랬지? 지금은 방학?”


“다음 달까지 방학이니까 언제든지 연락해요! 전 시간 많으니까, 쉬는 시간이나 퇴근할 때나……”


“왜?”


“네?”


“아니, 이건 진짜 궁금해서 다시 묻는 건데, 우리 오늘 왜 만난 건지…… 알지?”


“네, 그래서 말인데 연애는 1년만 하고 같이 사는 거 어때요? 아기가 생기면 서둘러야겠지만, 확실하진 않으니까, 2년은 좀 길고……”


“풉!”




와인이 왈칵 목에 잠겼다. 리에프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에 놀란 탓이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랬다. 괜찮아요? 물으면서 콜록거리는 등을 쓸어주는 양을 보니 저 때문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다른 손으로는 야쿠의 입가와 셔츠 깃을 닦고 있다. 세모꼴이 된 눈썹이 걱정스러운 손길을 밀어냈다.




“연애? 살아? 누가? 너랑 내가?”


“네.”


“어, 어째서?”


“그야 아기를 만들 거잖아요, 우리.”




사자가 천진하게 대답했다. 야쿠는 인상을 찌푸리며 앞 머리칼을 흐트러뜨린다. 제 모습과 그가 겹쳐 보여 괴로워진다. 상처받았던 적이 없는 어린 야쿠 모리스케 말이다. 마치 순진한 양을 꼬여낸 기분이었다. 평범하게 만난 사이도 아닌데 연애를 하자고? 바보 같아. 사실, 저가 바라는 것도 그런 것이면서 그는 리에프 앞에서 속물 어른인 척 하기에 바빴다.




“그래, 우린 아기만 만들 거야.”




아기만 만든다고? 충격으로 굳어진 사자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한다. 그도 오늘의 만남이 불순한 돈 거래로 시작된 데에는 불만이었다. 이왕이면 우연히 알게 되어 친해졌다거나 같은 버스를 연속적으로 탔다던가 하는 시작이 좋았겠지. 하지만, 계기야 어떻든 꿈에 그리던 첫사랑과 만나고 아기까지 만들게 되었으니 당연히 연애가 시작될 거라 여겼다.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로서는 리에프를 처음 본 거나 다름없으니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창백해졌다. 지금 야쿠상의 목적은 내 몸뿐이구나. 정장 안쪽에 있는 룸 키를 떠올리며 그의 마음은 삽시간에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야쿠상은…… 그렇게 생각했군요.”


“당연하지! 이렇게 만났는데 무슨 연애야? 같이 살아? 그런 건 특별한 사람이랑 하는 거야.”


“그렇지만……”


“리에프,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헛된 기대는 하지 마.”


“…….”


“그럼 상처 받을 거야.”




슬프게 덧붙인 야쿠는 머릿속을 비집고 나오려는 옛 기억에 진저리를 쳤다. 상처받고 버려졌었다.




‘불쌍한 모리짱, 지금까지 내가 사랑했던 건 네가 가진 것들이야. 중종인 내가 이유 없이 너를 좋아할 거라고 믿었어?’




속삭이던 영악한 목소리를 떠올리자 마음이 얼어붙어 냉철해질 수 있었다. 우리에게 사랑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허망하게 앉아있는 리에프를 두고 먼저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만 방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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