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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첸] 어리석은 연애 보고서 제 10장 完

찬열X종대





























꿈틀꿈틀. 귀를 울리는 알람 소리에 이불 속으로 더 말려들어간다. 30분 전부터 5분 단위로 알람이 찬열을 깨웠고 이제는 진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다. 덥고 습한 열대야. 잠을 설친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쥐어뜯듯이 헤집으며 이불을 박찼다. 회사 가기 싫어! 꾸물대봤자 손해는 제 몫이다.

집을 나서자마자 더운 공기가 숨통을 조인다. 매미 울음 사나운 여름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번 봄에 찬열은 혼자였다. 그래서 계절이 가는 것도 모르고 여름을 맞이했다. 연일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꽃도 제대로 못 보고. 흩날리는 벚꽃에는 원래 관심이 없었지만, 종대와 함께일 땐 아름다운 분홍 길 가로지르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에 엉겨 붙는 꽃잎이 좋고 나무 아래서 소리 내어 웃는 그가 좋았으니까. 꽃이 구둣발에 짓이겨질 때 즈음에야 봄인 것을 알아챈 찬열은 올해는 그 아래를 지나보지 못한 것이 퍽 아쉽다. 그리고 궁금하다. 내가 없는 너의 봄은 어땠는지.




“덥다.”




전철역도 덥긴 마찬가지지만 볕이 없어 그나마 나았다. 회식 날에 버젓이 차를 끌고 갔다간 팀장님 눈칫밥에 괴롭겠지. 멀끔한 낯에 짜증이 베였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저와 같은 표정으로 목을 빼고 있는 이 뒤에 섰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멍하니 앞만 보는데, 새삼스럽게 눈에 띄는 게 있다. 유리 위에 나란한 글자.




『 왜 하필 당신은 – 유미성


보내고 쉽게 잊혀지는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당신은 보내고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일까요?

보내고 죽도록 미워지는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당신은 보내고 더욱 사랑하게 되는 사람일까요

보내고 아무 미련 남지 않는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당신은 보내고 더욱 눈물 나게 하는 사람인가요 』




왜 하필 이 시詩 앞에 섰을까? 찬열은 그리워지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하얀 글을 눈에 담는다. 보고 싶다. 몇 주 전에 한 번 보고 지금까지 우연이라도 마주친 적이 없다. 이렇게 부재의 시간이 길어지면 참을성이 없어진다. 3주 전에도 그랬다. 로비를 가로지르는 뒷모습과 들고 있는 가방이 영락없이 종대였다. 그마저도 오랜만에 본 거여서 눈에 띠자마자 2층이나 위에서 이름부터 외치고 말았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마 5층이었어도 목이 터져라 불렀을 거라고 장담한다.




‘김종대!’




이목이 집중되었다. 군중 속에 돌아본 종대는 어리둥절하게 두리번거린다. 불러놓고도 아차! 싶었다. 싫어하면 어쩌나 옆머리를 긁적거리던 찬열이 멋쩍게 손을 흔들었다. 다 보았다. 그제야 저를 발견한 종대가 반갑게 손을 들었다가 슬며시 내리는 걸 말이다. 귀엽긴.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말없이 잠시간 서로를 바라보는 게 다였다. 예나 지금이나 웃는 걸로는 당해낼 이가 없다. 위를 올려다보던 종대는 입매를 늘려 예쁘게 미소 짓고는 곧 가던 길을 걸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갈라진다. 그의 잔영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있었다. 온 감정의 끝은 항상 그리움이다.

비품 창고 한 구석에 틀어박힌 찬열이 한 쪽 눈매를 일그러뜨린다. 셔츠 단추 두어 개를 빠르게 풀어헤치고 소매도 대충 끌어올리니 그나마 낫다. 뒤늦게 켠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이 스민 땀 위로 지난다. 제비뽑기 한 번 잘못했다가 엉망진창인 비품 창고 정리를 도맡게 되었다. 밖에 두면 날계란도 익을 날씨에 하늘이 나를 버리나 보다고 난리법석을 떨다가 쫓겨났다. 다들 웃으면서 수고하라는 말 뿐,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하나 없다. 해마다 정기점검이니 뭐니 사람을 귀찮게 한다니까.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면서 먼지 쌓인 온풍기들을 한 쪽으로 밀어낸다. 겨울이 돌아오는 날까지 당분간 찾을 사람이 없을 거다.




“이런 것도 있네.”




작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선반을 치우다가 앨범 하나를 발견했다. 으악! 검은 먼지 덩어리가 붙어 있던 것에 기겁을 하며 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누가 봤다면 덩치 값 못 한다고 한참 놀려댔을 꼴이다. 먼지 피어오르는 침묵이 머쓱해서 헛기침을 하며 내려왔다. 행사 사진을 모아놓은 앨범이다. 보고용인가? 반을 넘겨 입사한 해부터 찾았다. 군데군데에서 아는 얼굴을 집어내다가 워크샵 단체사진에서 손을 멈추었다. 사진 속 박찬열의 앳된 얼굴이 반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 옆에는 당연히 종대가 있다. 사귀기 전에는 제 옆에 은근슬쩍 붙어 있는 모양새고 그 후에는 둘이 장난치듯 끌어안거나 서로의 머리에 손가락 뿔을 만들며 웃고 있다. 헤벌쭉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비닐 위를 문질러 보았다. 행복해 보여. 여기서 다시 한 번 읊어야겠군. 박찬열, 이 개만도 못한 새끼. 눈가에 진 그늘이 슬픔을 감춘다. 앨범을 덮어 제자리로 올렸다.

기약 없는 기다림. 나쁜 것은 딱히 없다. 평일엔 넌덜머리가 나는 회사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주말엔 하고 싶은 걸 한다. 운동을 할 때도 있고 친구를 만날 때도 있고. 어쩌다 술을 마시게 되면 휴대폰 전원은 끄게 되었다. 김종대한테 전화할 게 뻔하니까. 그것만으론 스스로가 못 미더워서 웬만하면 만취할 때까지 마시지도 않는다. 그러면 좀 나은 인간이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하지 않는 성숙한 어른 말이다.

떠나야만 했던 너를 이해해 보려 한다. 마음이 희미해질 때까지 견디려 한다. 놓아질 때까지만 서서히 사랑하려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그 애가 아른거리는 거 말고는, 정말 괜찮다.




“담당님, 벌써 다 하셨어요?”


“와, 너무해! 나만 빼고 뭐 먹는 거예요?”


“막 부르려고 했어, 얼른 와.”




비질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지워내며 들어온 찬열이 볼멘소리를 했다. 사무실 한편에서 달큼한 냄새가 난다. 하나 둘 책상을 벗어나 그 주변으로 모여드는 데에 끼여서 훌쩍 넘어보니 한 눈에 보기에도 윤기 흐르는 제과가 한 아름이다. 웬 빵이에요?




“앞에 새로 생긴 데 있잖아, 종류도 다양하고, 케이크도 맛있더라.”




작은 타르트 하나를 집었다. 이거나 저거나 다 종대가 좋아하는 거잖아. 이렇게 불쑥 찾아지는 조각이 무수해서 그는 빈자리에도 가득하다. 물끄러미 보고만 있던 걸 한입에 넣고 우악스럽게 씹었다.

그래, 사실은 괜찮지 않다. 내려갔다 올까? 얼굴만 보고 오는 건 괜찮지 않나? 몰래.

참 몰래다. 종대는 책상에 떡하니 놓여 있는 주홍 상자와 옥수수 식빵 앞에 섰다.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절 기다리는 게 있었다. 새초롬한 눈이 주변을 돌아본다. 짐작 가는 데가 없는 건 아니다. 이런 걸 두고 갈 사람, 제겐 한 명뿐이다. 슬쩍 상자를 열어 들여다보니 에그 타르트 몇 개랑 단팥빵 두 개가 들어있다. 고른 걸 보니 확신이 든다. 저절로 알아진다. 그냥. 너구나. 종종 있는 일이다. 바닐라 라떼를 두고 갈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케이크, 하다못해 봉지 과자를 놓고 간 적도 있다. 처음에는 얘가 날 놀리나? 싶었다. 막무가내로 두고 간 마음을 가지고 또 달달 볶으려는 속셈인 줄 알고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잠잠했다. 쪽지는커녕 연락도 오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제 입맛을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박찬열 말고 또 있을 리가.

회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찬열은 입술을 옴짝달싹하다가 손 한번 흔들고는 고개를 돌린다. 저번에는 코앞에서 우물쭈물하기에 먼저 말을 걸었다. 잘 지내? 하고. 천연덕스럽게 그렇다고 하더라. 다행이네.




‘마감이라 바쁘지? 뭐라도 마실래?’


‘아냐, 방금 마셨어.’


‘아…… 그래, 무리하지 말고.’


‘너도.’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게 떠올라 엷게 웃은 종대가 식빵을 옆으로 밀어둔다.

나는 고여 있고 그는 흘러가는 중이다.




“먹을래요?”


“어, 여기 회사 앞에 거긴가? 사온 거예요?”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어깨를 들먹였다. 옆자리 동료들에게 타르트를 나눠주고 제 입에도 하나를 숨겼다. 달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 몇 해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쉬워지고,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데 그와 팔다리를 얽은 채 잘만 자고, 생전 남에게 화내고 소리친 적이 없었는데 그에겐 별 거 아닌 걸로 차가워지곤 했다. 평범하지 않은 관계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깼어?’




베란다 문을 밀고 나오는 저에 얼른 담뱃불을 꺼뜨린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렇게 맨 가슴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나 모른다. 파란 줄무늬가 있는 헐렁한 잠옷 바지춤에 팔을 둘러 껴안았다. 뺨으로 그의 등을 누르면서 핀잔했다. 베란다 나올 땐 옷 입으라니까.




‘이 시간에 누가 본다고.’




그러면서 팔을 당겨 딸려오는 이마에 쪽쪽 입을 맞춰주었다. 그래. 너와 함께라면 괜찮을지도. 그랬던 적도 있었다. 겨울 끝자락에 그의 손을 놓았다. 이제 와 우스운 건, 내가 아니었던 그 때가 가장 나다운 나날이었다는 점이다. 때때로, 할 것 없이 소파에 벌러덩 누워있는 주말에는 자주 생각한다. 그에게 솔직했으면 어땠을까?




‘부모님께 말씀 드릴 거야, 만나는 사람 있다고.’


‘난 분명 말했어, 안 돼.’


‘또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하게?’




답 없는 실랑이에 약하다. 밉게 억지 부리긴 싫어서 도망치듯 돌아섰더니 욕을 읊조리면서 따라와 말꼬리를 붙들었다.




‘말해야 돼, 늦기 전에. 뵐 때마다 답답하고 죄 짓는 기분이야.’


‘너만 보고 사시는 분들이야.’


‘그러니까 더 아셔야 된다고! 뭐가 그렇게 죄송해? 네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너 아님 안 된다잖아.’




기뻤다고 말했으면. 너를 위하는 척 두려움을 감추고 알량한 자존심 내세워 달아나지 않았다면.

살며시 머리를 기대면서 어머니에 대해 물었을 때에 열일곱 김종대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어땠을지 말이다.

향기도, 살결도, 마음도 온통 네가 나이고 내가 너여서 떨림이 멎었을 때,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사랑스럽지 않은 조각까지도 당신임을 인정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얼마 전 소파 아래에서 찾아낸 반지처럼 빛바랜 추억을 후회로 되새겼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무더운 여름을 몰아내는 비가 내려 새벽이 조금 쌀쌀했다. 옷장에 넣어둔 카디건을 꺼내 입길 잘했다. 유난스럽게 팔을 문질렀다. 덥지 않아 좋다. 거래처 직원과 따로 점심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길이다. 회계팀장은 이런 자리에 꼭 서글서글한 종대를 내보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무슨 일이래? 막 회사에 들어선 종대가 고개를 갸웃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회사 로비가 북새통이다. 기분 탓인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는데 김 대리! 하고 익숙한 부름이 들려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을 틀었다. 조 대리님이랑 영희 씨네. 카페 앞 두 사람에게로 쪼르르 달려간 그는 방긋 웃으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왜 이렇게 소란이에요?”


“아아, 아직 못 봤구나. 인사발령 떴거든.”


“갑자기요? 우리도 있어요?”


“아니, 이번엔 그거잖아, 지원한 사람들.”




금세 흥미를 잃어 빨대를 물었다. 비정기적인 발령에 제 관심을 끌만한 지인은 없다. 하지만,




“해외로 가는 사람도 있더라, 스위스? 거기에도 지사가 있나 봐.”


“와, 그건 부럽다!”


“박찬열인가? 그 왜 있잖아, 해외사업……”


“네?”


“어머! 대리님, 괜찮으세요?”




손에 힘이 빠져 놓친 게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추락한다. 누구라고요? 축축하다. 쏟아진 커피가 셔츠 안쪽을 적시는데 종대는 가만히 얼룩을 응시했다. 바닥에서 부서진 얼음이랑 컵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눈앞이 컴컴해졌다.

지원팀 사무실 앞에 서기까지 어떻게 걸었는지, 뛰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별안간 쾅! 하고 세게 열린 문에 사람들이 전부 같은 표정으로 종대를 쳐다본다. 찬열도 그 중 한 명이다. 사색이 된 낯빛이며 들썩이는 어깨, 엉망이 된 옷까지 훑어본 뒤에야 그는 하던 것을 내려놓고 다리를 움직였다. 저까지 난리법석이면 안 될 것 같아 차분하려고 애썼지만 심장이 거세게 뛴다. ‘김 대리님, 나가요.’라고 말하는 침착한 목소리에 종대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렁그렁 매달렸던 눈물이 아무데나 떨어졌을 거다.




“찬열아……”




이름을 발음하는 끝이 떨린다. 비상계단 아래에서 종대는 땅만 보고 찬열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였다. 어떻게 달래야 되더라? 함부로 만지면 안 될 것 같아 안착하지 못한 손이 허공에서 허둥지둥한다.




“무슨 일이야, 옷은 왜 그래?”


“그, 그게…… 안 가면 안 돼? 진짜 네가 지원한 거야? 아니지?”


“김종대, 진정해. 무슨 얘기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해외는 한 번 나가면 최소 3년인데, 갑자기, 아니, 내 말은………”




옷은 엉망이지, 울먹울먹하며 의미 모를 소리만 하니까 애가 탄다. 찬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기 어린 옷을 손으로 털어냈다. 작게 울지 말라고 속삭이니까 단칼에 안 운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찬열은 씨익 웃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이유야 어찌 됐든, 옆에 그가 있으니 좋았다.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으로 손을 뻗고 싶은데 꾹 참았다. 느긋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저를 나무라듯 밀폐된 공간의 물기 어린 내음 위로 뜻밖의 언어가 입혀졌다.




“가지마.”




종대는 언젠가 이 순간까지도 후회할지 모른다. 옷깃에 닿아있는 큰 손을 세게 붙잡았다. 온 마음이 되는대로 그에게 향한다.




“기다린다고 했잖아, 다시 오라며! 근데, 근데 스위스로 가버리면 나는 어떡해!”




화가 난 게 분명했다. 버럭 소리치는 얼굴이 모나게 찌푸려졌다. 얼떨떨하게 종대를 응시하던 찬열이 멍청하게 어어? 되묻는다. 가지마. 다른 어떤 것도 셈할 수가 없이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가슴에 숨을 묻으니까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목을 감싸는 무게에 더 세게 그를 껴안았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찬열에 불안했지만 안 간다고 할 때까지 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고 키득키득 웃는 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안 보내줄 거야. 오로지 그 생각뿐이다.




“김종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몰라, 가지마.”


“안 가.”




진짜? 품에서 떨어지는 종대의 머리를 고쳐 안아 다시 제 가슴에 묻게 했다. 감동이다. 천하의 김종대가 누가 보든 말든 회사에서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고 가지 말라고 안아주고 지금은 눈썹 끝에 입술을 대고 있는데도 가만하다. 진짜 안 갈 거지?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면서 웅얼웅얼한다.

찬열은 눈을 감았다. 계속 기다려왔다. 코끝이 찡하더니 눈물이 찔끔 났고 쓸쓸했던 계절을 지워낸다. 저가 훌쩍거리니까 움칠 놀란 종대가 이내 천천히 등을 쓰다듬는다.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고, 멜로도 아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는 두 남자는 그저 권태로운 하루 속에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사무실로 돌아와서야 종대는 현실로 떨어졌다. 발령지 어디에도 ‘박찬열’이라는 이름은 없고, 해외사업지원 부서의 ‘박찬영’만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한 동안 넋을 잃었다가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 없이 발악했다. 종일 붉으락푸르락하다가 도망을 결심했지만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던 멀대에게 꼼짝없이 붙들렸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얽는 팔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내년 휴가에 스위스 갈까? 스위스에 뭐가 있더라, 알프스랑 퐁듀, 초콜릿……”


“그만해.”


“저녁으로 피자 먹을까? 스위스산 치즈 퐁듀 피자.”


“안 먹어.”




로맨틱 빼고, 코미디다. 아니, 지루한 다큐멘터리다. 종대 뒤를 졸졸 따라가는 걸음이 가볍다. 누차 콧노래 소리가 들렸고, 헌칠한 전 애인의 손이 자꾸 팔을 스친다. 종대는 집 앞에 우뚝 섰다. 찬열도 그 뒤에 멈췄다. 하얀 목덜미. 망설이는 뒷모습을 빤히 보다가 남색 카디건을 느릿하게 잡아당겼다.




“후회하는 거야? 더 기다려?”




아니. 그는 변함없는 비밀번호를 손가락으로 꾹꾹 짚으면서 퉁명스레 말한다.




“집에 먹을 거 없어. 라면 사와, 칫솔이랑.”


“이따가 사올게.”




문이 무겁게 닫히기도 전에 현관에 뒤엉켜 입을 맞추었다. 다급하게 엇갈린 구두에서 마찰음이 새고 불빛이 어지럽게 꺼졌다 켜진다. 성기게 맞물리는 입술을 따라가면서 종대는 선반 위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들을 넘겨보았다.

몇 년 후에, 아니 당장이라도 우린 또 헤어질지 모른다.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입술이 상처를 남기는 무기로 돌변하고 상대를 향해 들끓던 욕망이 한 순간에 사그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끝이 나면 마치 그랬던 적이 없던 것처럼 애정은 부정당하고 이름을 잃는다. 연애란 원래 그런 것이다. 이름이야 누구에게든 불러주고, 불리면 그만인 것을 모른다. 어리석은 두 사람이 만나서 더욱 어리석어지는 일이다.

허나 지금은, 너를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단지 그뿐이다.





어리석은 연애 보고서.  끝.






































드디어 마지막 장입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ㅠㅠ

앞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마무리를 지었네요.

기다려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마치 어연보의 찬열이처럼 저를 기다려주셨네요!!

조금 더 극적이고 격정적인 엔딩

(공항에서 엇갈리고 비행기 사고나고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죽이네 살리네 하는ㅋㅋㅋㅋ농담)을 썼다가 왠지 어연보답지 않다고 결론지어서 담담하게 끝을 내게 되었네요.

똑부러지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지나가는 답답한 현실에 약간의 환상만 더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편에서는 이별을 성숙하게 받아들인 모습의 찬열이 좋았어요ㅎㅎ

어연보는 쓰는 편마다 감정선이 진해 힘들었던 만큼 애착이 큽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봐주셨을지 모르겠어요, 걱정도 되고 후련하기도 합니다.

잠시나마 이 글로 즐거우셨다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상 남겨주시고 마음 찍어주신 분들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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