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 다이치 님, D-day 입니다! 당신만의 스가와라 코우시 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귀하의 담당자 우카이 케이신 (으)로부터 직접 안내 받는 것이 법규이자 사칙이므로 번거로우시더라도 내방해주셔야 하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문의 사항은 대표 번호 1111-3210으로 전화 주시면 성심 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저희 あい A.I.사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럴듯한 걸.  눈 앞으로 떠오른 메시지를 읽으며 벽면을 따라 걷던 남자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기약에 맞추어 자동으로 전송되었을 메시지에 고객과 상품, 담당자의 이름이 직접 들어가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신뢰가 생긴다.  당신만의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도 너무 낯간지럽지 않고 적당히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아서 더할 나위 없다.  보고서에 이 점을 꼭 언급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다시 한번 빠르게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짙은 눈썹과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말쑥한 정장 차림에 어우러져 든직한 인상을 돋보이게 한다.  자칫 완강해 보일 수 있는 선이 강한 외모임에도 왠지 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둥근 눈매 때문이다.  윤이 나는 구두가 똑같이 생긴 문을 몇 개나 지나쳤다.  이상하게 마음이 급하다.  걸음이 빨라져 대리석과 맞닿은 구두바닥에서 마찰음이 뻗쳐 나왔지만 소음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다.  그의 정신은 온통 ‘상품’에 쏠려 있었다.  이런.  시야의 우측 상단에 고정되어 있는 심장박동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자 남자는 얼굴을 붉혔다.  내피에 이식된 칩을 속일 순 없다.  서둘러 허공에 손을 저어 헬스 케어 어플리케이션을 종료시켰다.  누가 볼 수도 없는 화면인데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지나치는 사람을 힐끔거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설렘이라는 이름의 감정은 퍽 낯설어서 입술 끝에 힘을 주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었다.  손꼽아 기다린 것도 아닌데.  눈썹 끄트머리를 문질렀다.  막상 D-day가 되니 기분이 묘하다.  상품을 받기로 한 날이 오늘인 걸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거짓 같았다.  금속 문자가 박힌 흰색 문 앞에 멈춰선 그는 흐릿하게 반사된 제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첫인상이 나쁜 것 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아차! 싶어서 콧등을 긁적거린다.  로봇과의 첫인상을 신경 쓰다니, 제 정신이 아니군.  어이가 없어 픽픽 웃으면서도 반대 쪽으로 뻗은 머리카락 몇 가닥을 제자리로 돌려놓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버렸다.  벽에 붙은 센서에 검지를 얹자 문이 자동으로 열림과 동시에 익숙한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사와무라 다이치, 아이 A.I.사 마케팅 V팀 소속, 출입 허가. 연구실 내부는 24시간 촬영 및 녹취됩니다. 개인 기록 장치의 전원은 꺼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껐답니다.  회사에 있는 동안은 수십 번도 더 듣는 음성이라 다이치는 안내가 끝나기도 전에 내부로 발을 디디며 들어주는 이 없는 대꾸를 했다.  사방이 막힌 X-ray 촬영 구간에 서서 잠시 기다려야 한다.  이 곳에서 심층적인 신원 조회와 소지품 검사 등이 이루어진다.  회사의 전 층이 보안이 삼엄한 편이지만 110층의 연구실들은 특히 정도가 심하다.  신기술이나 출시를 앞둔 신제품 전담 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익숙한 듯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팔짱을 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  앞으로 두 달 간은 혼자 밥 먹을 일은 없겠지.  아니, 그래 봤자 기계일 텐데 누군가와 함께라는 기분을 들게 하긴 어려울지도.  잠시 후 다시 시간을 확인한다.  5분이 지나 있었다.




“키요코, 친구한테 너무한 거 아냐?”




수천 개의 CCTV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출입 통제 및 개인 정보 관리의 책임자 격인 친구의 이름을 들먹이자 미동 없던 카메라가 진동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천장에 달린 카메라는 정확히 다이치를 응시한다.  그녀가 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느긋하게 손을 흔들었다.  확인 완료.  주인이 부재중인지 내부는 캄캄하고 조용하다.




“와……”




안으로 들어선 지 단 몇 초 만에 그는 저녁 메뉴 따위의 잡념과 최대로 멀어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스가와라 코우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그것만이 빛을 내뿜는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밝은 잿빛 머리카락.  주문서를 쓸 당시에 선택했던 머리카락 색 그대로다.  단순히 거실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남색 페브릭 소파와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으로 고른 것이었다.  피부는 상아색으로 부탁했는데, 지금은 조금 창백해 보인다.  물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던 걸까?  말도 안 되는 상념이라는 걸 깨닫지도 못 했다.  부유하는 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였으므로.  그 만큼 코우시는 완벽한 인체로 구현되어 있었다.  연구실 한 가운데 세워진 거대한 수조.  입을 다물지 못 한 채로 무언가에 끌려가듯이 발길을 옮겼다.  두꺼운 강화 유리에 천천히 손을 올리자 그 주변으로 뿌옇게 김이 서린다.  다이치는 넋을 잃고 수중에 떠 있는 새하얀 나신을 올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처럼 생기가 어려 있다.  구해줘야 돼.  그래서, 이런 바보 같은 생각마저 들었나 보다.  갇힌 인영의 등 뒤로 이질적으로 연결된 기계들의 모습이 겨우 그의 이성을 붙들었다.  이건 인간이 아니야.  소름이 끼친다.  일순 뒤로 물러났다.  구둣발에서 또 삑삑 소리가 난다.




“아!”




곧 뒤로 물러선 그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유리 벽에서 손이 떨어지자 마치 한기를 느끼는 것처럼 수조 속 코우시가 어깨를 움츠렸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 경직된 목으로 급격한 피로가 몰려온다.  정적에 짓눌리는 기분.  작게 한숨을 뱉은 다이치는 수조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실험해보고 싶다.  진하게 남은 손바닥 자국 위로 다시 손을 댔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 끝에 유리의 냉기가 고스란히 전이된다.  우연이었나?  움직임이 없다.  머쓱해져 손길을 거두려다가 멈추었다.  지금 웃은 거야?  살며시 올라가는 입 꼬리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웃는다.  다이치의 검은 눈동자에 반색이 어린다.  한 손을 마저 유리 위에 얹은 그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새나온 입김이 유리를 덥힌다.




“스가…… 스가와라 코우시?”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유 모를 조바심에 쫓겨 그는 수조에 거의 입술을 붙인 채 다시 이름을 불렀다.




“스가와라 코우시.”




다이치는 숨을 집어삼켰다.  잔뜩 힘이 실린 손등으로 핏줄이 불거진다.  서서히 드러나는 고동색 눈동자.  아아.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코우시는 가만히 저를 내려다 본다.  그 표정이 마치 날 부른 게 너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판단력이 흐려진 다이치는 어느새 물 속에 잠겨있는 기계를 거의 인간으로 인식한 채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봐, 약속 시간은 15시였잖아.”


“아, 오셨어요!”




놀란 다이치가 죄지은 사람마냥 펄떡 뛰어오른다.  인기척을 내며 들어온 이는 메시지에 언급되었던 우카이 케이신, 이 연구실의 주인이자 다이치의 담당이다.  아이 A.I.사의 자랑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  막 늦은 식사를 하고 왔는지 다가온 그의 옷에 라면 냄새가 베여 있었다.  벌써 인사는 나눈 모양이네, 우카이가 연구실의 조명 밝기를 조절하며 말했다.  가운 입고 나가면 안 된다고 핀잔하면서 수조에 닿아있던 손을 다급하게 뒤로 숨겼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백색 조명이 눈부셔 깊이 눈을 감았다 떴다.  갑자기 현실로 내쳐진 그는 잠깐 사이에 기계에 홀린 자신에게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코우시를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이름을 부른 적이 없던 것처럼 외면해버렸지만 축축하게 젖은 손이 방금 전의 조우가 꿈이 아님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어려운 업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앞으로 두꺼운 종이 꾸러미가 내밀어졌다.  이거부터 읽어.  건네 받은 다이치가 인상을 찌푸리자 우카이가 킬킬거리면서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덧붙였다.  그러게요.  쉽게 수긍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인간 같은 모습이어서 그를 실험체로 여기며 냉철하게 일에 몰두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와무라 다이치는 보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누자면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한 편에 속했다.  우카이도 그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던진 말이었을 거다.




“소감은?”




막 목차를 넘기던 다이치가 고개를 들었다.  질문을 던진 우카이는 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재차 수조와 기계로 연결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뭘 묻고 그래요? 천재라는 말은 지겨울 때도 되셨잖아요, 우카이 선배.”


“그건 이미 알고.”


“뭐, 직접 보니까 다르긴 다르네요.”


“뭐가?”


“진짜 사람 같잖아요! 저런 데 들어있지 않았으면 선배는 어디 가셨냐고 물어봤을 걸요, 하하. 역시 대단해요.”




자식, 느물거리기는.  사람 좋게 웃으며 저를 추켜세우는 게 싫지 않은 눈치였지만 우카이의 눈빛은 공허하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별난 사람이란 건 진작부터 알고 있어서 다이치는 개의치 않고 다시 매뉴얼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부터 줄기차게 봐왔던 내용이다.  아이 A.I.사의 ‘라이프 파트너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야심 찬 프로젝트이다.  일본 최초의 감정 공유 및 공동 생활형 로봇이니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일본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인간사에 깊이 침투한 인공지능을 법령으로 경계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기능이나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만이 시중에 판매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요리를 하는 로봇이라면 허가를 받을 수 있지만 구매자를 위해 요리하고 맛있다는 칭찬에 기뻐하는 로봇은 불가하다.  쉽게 말해, 인간처럼 말하고 생활하고 생각하는, 감정을 공유하는 인공지능 로봇은 출시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미 인공지능의 기술 수준이나 인체 구현 능력은 정점에 도달한 지 오래지만, 생활 밀착형 상품 시장은 0에 머물렀다.  자그마치 10년 동안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 규제가 풀렸다.




“비난 여론은 어떻게 막을 거지?”


“글쎄요, 일단 출시가 미지수라……”


“다들 우리 회사가 법령을 사는 데 수백억을 들였을 거라고 떠들던데.”


“수천억이라곤 생각 못 해서 다행이네요.”




씁쓸하게 웃는 다이치에게 펜이 날아든다.  마지막 장까지 전부 서명해.  어차피 제대로 읽고 있지 않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우카이는 연구실 한 켠의 빼곡한 캐비닛들에서 여러 가지를 꺼내 바닥 한 군데로 모았다.




“임무가 막중하네, 사와무라. 네 보고에 따라 이 기획이 진척되느냐, 폐기되느냐 결정되는 거 아냐?”


“무조건 진척시킬 겁니다.”


“각오가 대단하군.”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선배. 라이프 파트너스는 성공할 거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이치는 수조 쪽은 쳐다보지 못 했다.  양심에 찔려서 차마 아까처럼 다가설 수가 없다.  모순이다.  로봇이 마치 인간의 동반자, 친구,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다이치는 그저 그 역할을 ‘적당히’ 기대했다.  머릿속이 혼란한 가운데, 우카이에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절대 들켜선 안 된다.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일 수도 있어.”




우카이가 중얼거렸다.  묵직한 목소리.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이 프로젝트의 중책을 맡고 있는 이상 순순히 그렇다고 답할 순 없다.




“라이프 파트너스가 출시되면, 숙명을 벗어날 수 있겠죠.”




다행이 우카이는 더 이상 사적인 대화를 원치 않았다.  그저 서명을 끝마친 다이치에게 기본적인 사용법을 줄줄 늘어 놓았다.  음식물 섭취 금지, 2주에 한 번 내방할 것 등 거의 매뉴얼에 있는 내용이다.  또한, 스가와라 코우시는 이미 다이치가 답변한 1,000개의 문항과 개인적인 기호, 추구하는 가치관 등 모든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어서 별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100% 고객 맞춤 커스텀을 비전으로 내세운 상품이다.  이상형의 존재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1호가 바로, 다이치와 ‘스가와라 코우시’다.  수조의 액체가 증발되자 상품은 천천히 바닥에 세워졌다.  흘러내린 물방울이 맨발에 고인다.  우카이가 멍한 로봇을 우악스러운 손길로 잡아당긴다.  만류하는 손을 뻗을 뻔한 다이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이거, 설마…… 쟤를 여기에 넣을 거에요?”


“그래, 뭐가 문제야? 이 패키지 멋있지 않아?”


“뭐, 좀…… 문제라기보다는, 네, 문제는 없어요.”




바코드가 찍혀있는 각 잡힌 거대한 플라스틱 포장재에 이것저것 묵묵히 집어넣기 시작한 우카이의 옆에 있던 다이치가 뒷목을 긁적거린다.  갑자기 밖으로 꺼내져 어리둥절할 이를 슬쩍 돌아보았다.  스가와라가 제 팔을 끌어안은 채 몸을 떨고 있다.  매뉴얼에서 일정 온도에 따라 추위나 더위를 느끼게 설정되어 있다는 걸 얼핏 본 기억이 난다.  망설이다가 바닥에 놓여있는 천을 들어 그 쪽으로 다가갔다.  로봇의 몸을 닦아주려는 다이치를 힐끔거린 우카이가 입을 뗀다.  의외였어, 다이치.




“마지막 요구사항 말이야, 너답지 않게 냉정하더군.”


“아, 그거요? 눈 앞에서 멈추는 건 싫을 것 같아서요.”




매끄러운 피부의 물기를 닦아냈다.  멀뚱멀뚱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 눈가의 점을 발견하곤 다이치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점의 개수와 위치를 설정하는 항목이 있기에, 딱 하나를 새겨 넣은 것이었다.  잘 어울려.  뺨에 달라붙은 회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이름을 불러주면 아까처럼 웃을까?  불러보고 싶었지만 왠지 우카이의 비웃음을 살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앞으로 수없이 부르게 될 이름이다.




“저기, 선배. 아무래도 포장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거기에 넣는 것보다……”




마음대로 해.  무안한 듯 변명을 늘어놓는 다이치의 말을 끊어버린 우카이는 상자를 옆으로 밀고 몸을 일으켰다.  제 재킷을 벗어 실험체 1541-3의 어깨에 걸치고 있는 후배가 보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낮게 읊조렸다.  다이치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너를 너무 믿지마, 다이치.”














스가와라를 들춰 업다시피 하고 드디어 거실에 다다른 다이치가 앓는 소리를 낸다.  얼른 그를 내려놓았다.  몸무게를 왜 63kg이나 나가도록 한 거지?  키도 고작 3cm 차이다.  실재성을 살린답시고 실용성을 버린 과거의 자신을 나무라며 이마에 베인 땀을 쓸었다.  미동 없이 서 있는 등을 밀었다.  앉아 있어.  아직 중추 시스템에 소유자를 각인시키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자꾸 말을 걸게 된다.  말간 눈이 그를 응시한다.  살짝 올려다보고 있으니 알아들을 수 없는 제 말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직접 두 손을 잡아 한 발 한 발 이끌어 소파에 앉혀주었다.  시작부터 파란만장하네.




“피곤하다, 피곤해.”




히터부터 작동시킨다.  여전히 스가와라의 입술이 떨리고 있는 것이 쭉 신경 쓰였다.  맨 몸에 웃옷만 걸치고 있으니 보는 사람마저 추워지는 모양새이긴 하다.  소파 옆에 포개져 있던 담요를 집어 들고 다시 그에게로 다가갔다.  가지런한 다리 위에 덮어주고는,




“아직도 추워?”




하고 물었다가 다이치는 다시 얼굴을 붉힌다.  옆에 앉아서 눈만 깜빡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살짝 갸웃거린 스가와라는 아까처럼 무언가 묻고 싶은 표정이다.  입을 다무니 삽시간에 집 안이 고요해졌다.  원래 혼자인 장소여서 조용한 것이 당연한데 지금은 왠지 어색하다.  낯선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잠시 진짜 혼자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수증기가 자욱한 욕실에서도 그는 소파에 앉아있을 로봇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혼자 두고 싶지 않아.  초면인 남자와 처음 발을 들인 장소에서 불안을 느낄 것만 같았다.  서둘러 씻고 나왔다.  다행이 추위가 가셨나 보다.  떨림이 그쳤다.  물기 어린 손으로 뺨을 만지려다 그만 두었다.  헛웃음이 난다.  그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과 지내는 것일 뿐인데, 벌써부터 온 신경을 쏟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코우시이기 때문일까?  그냥 기계가 아닌 걸.  잠시 서서 내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우선, 각인부터 해보자!  현관에 놓아둔 포장재와 각종 설명서, 부속 기기들을 가지고 들어와 바닥에 늘어놓는다.  우습게도, 바로 스가와라가 앉아있는 소파의 앞이다.  다이치가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매뉴얼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1. 음성 인식: 파트너의 이름을 부르세요. 명확하게 발음하셔야 반응합니다.

2. 홍채 인식: 1분 동안 눈을 맞추세요. 인식에 성공하면 파트너의 동공이 축소됩니다.

3. 지문 인식: 파트너의 손가락에는 당신의 지문과 같은 모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한 손가락씩 차례로 맞추세요.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을 보인 것을 상기해내곤 아이처럼 신이 나 팔을 흔든다.  연구실에서 음성 인식을 완료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빨리 매뉴얼을 완독한 다이치는 그 아래 크게 표시된 주의 사항을 마저 읽으며 턱을 문질렀다.  각인이 완료되면 재설정과 중도 폐기가 불가하다는 경고 문구가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 든다.  빨간 색인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행을 예고하는 느낌이랄까?




“XX년 X월 XX일 19시 23분, 라이프 파트너스 데모 시작.”




레코더 기능을 최적화하고 자동 종료 기능을 껐다.  테스트가 끝나면 회사는 다이치의 기록과 보고를 토대로 프로젝트의 생사를 판가름할 것이다.  의욕 충만한 그의 화면으로 군데군데 설치한 카메라가 찍고 있는 화면들이 종횡대로 정렬되어 나타난다.  그 중 하나가 거실에 있는 저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시 시야를 되돌렸다.  스가와라를 올려본다.  그의 시선 또한, 녹화되어 메모리에 저장되고 있을 거다.




“스가와라 코우시.”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눈동자가 저를 부른 목소리를 따른다.  입술이 마르고 온 몸의 신경이 서는 기분이다.  다이치는 침을 삼켰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어 퍽 간절해 보인다.  나중에 이 장면을 되감아 보면서 누가 보면 청혼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며 웃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맞추었다.  1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저도 모르게 무릎을 세워 다가갔다.  조금 지나자 초점을 맞추는 양 동공이 작아졌다 커졌다 반복하다가 멈춘다.  그 속에 반사된 얼굴은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 들뜬 것 같기도 했다.  급히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손바닥을 간질여 펴고 엄지부터 천천히 손가락 끝을 맞붙인다.  미미하게 파인 길에 들어차는 살.  아아!  눈이 번쩍 뜨였다.  소름이 돋는다.  실은 자신이 인공지능 로봇인 것처럼 느꼈다.  각성.  이 순간이 두려워진 다이치가 막 손을 떼려 할 때였다.  신이 있다면, 우카이는 그의 분노를 샀을 거다.  인간의 창조물 따위가 경이롭기 그지 없다.  반드러운 선이 아름답고 별빛 박힌 눈동자가 신비롭다.  그리고,




“다이치.”




낭랑한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안녕.”






























 













강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