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찬첸] 어리석은 연애 보고서 제 8장

찬열X종대




























아침부터 운이 없었다. 심각한 운전 실력을 가진 이웃이 제 차 바로 뒤에 주차를 해놓고 잠수를 탄 덕분에 예정에 없던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했다. 이목구비 뚜렷한 얼굴에 가감 없이 짜증이 섞인다. 지옥철. 키가 큰 찬열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머리 사이에 우뚝 솟은 채 넋이 나갔다. 이리저리 치이는 것보다 답답한 공기에 질식할 것 같다. 독감의 여파로 미열이 있다. 식은땀이 주르륵 등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진다. 하필 내려야 하는 역에선 사람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억지로 인파를 파고들어 겨우 빠져 나왔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계단은 어떻고? 높기도 높다. 집을 벗어난 지 1시간 만에 완전히 지쳤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가방이 1g씩 무거워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만 몸이 축축 처지는 건 실제다. 퇴근하고 싶다고 중얼거리면서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어? 김종대……”




푹 꺼진 눈꺼풀이 힘차게 뜨였다. 몸집부터 총총 걷는 걸음걸이까지, 저 멀리 걸어가는 뒤통수를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영락없이 개 같다. 종대 말고 제게 하는 말이다. 주인 만난 개처럼 신이 난 찬열이 걸음을 재촉한다. 희소 걸린 입술이 이름을 외치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 정도면 운명이고말고. 엉망진창이었던 아침이 단숨에 개연성을 갖는다. 이웃의 형편없는 주차 실력도, 끔찍한 지하철도 종대와 만나려던 도화선이었다. 회사 1층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보나마나 팀원들 마실 음료를 양손에 들고 나올 게 뻔하다. 가끔이지만 몇 년 동안 꾸준해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오죽하면 저번에 앞에 앉은 이 주임이 출근길에 커피를 사왔더니 누군가 ‘네가 우리 팀 김대리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더라. 사귈 때에 이런 행동을 두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타박한 일이 있다. 가뜩이나 눈독 들이는 여자들이 많은데 미담이 늘어나니 저로선 속이 탈 수밖에.




‘질투해? 한 명도 아니고 다 사준 건데, 그것도 아메리카노로 통일이고.’


‘아, 그래도 싫어. 딴 생각 하는 사람도 있다니까!’


‘또 질투 폭발하셨네.’


‘네가 이렇게 웃으면서 말이야, 커피를 주면 얼마나 귀여운지 아냐?’




이렇게. 손가락 하나로 눈매 끝을 잡아 내린 찬열이 투덜거렸다. 얼씨구? 깔깔 웃으면서 삐친 등으로 엎어졌다. 종대는 찬열의 목을 깊이 안았다. 둘 다 외골수는 아니어서 잘 달래면 싸울 일이 없다.




‘혼자만 마실 순 없잖아, 피곤한 날엔 커피 마셔야 되는데…… 자기는 내가 졸다가 왕창 깨지면 좋겠어?’




아니, 아니, 아니. 그 때 처음 들려준 ‘자기’라는 애칭 하나로 제 입을 봉해버렸다. 우리, 진짜 어리고 간지러웠구나. 다디단 기억이다. 너무 달아서 쓰다.

카페의 유리문이 열리자 산뜻한 종소리가 울린다. 카운터 앞에 선 그 옆으로 슬쩍 다가섰다. 기척도 모른다. 피곤한지 하품을 하면서 지갑을 꺼내다가, 문득 지나치게 가까운 타인을 의식해낸다. 찬열은 일부러 그의 턱 끝에서 목 언저리에 시선을 두었다. 지금은 차가운 눈빛이면 감당하기가 힘들다. 도망치고 싶어질 것 같아서 아예 보지 않았다. 그래서 종대가 질색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




“나도 사줘.”




눈이 가늘어진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잠긴 목소리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나 해대는 찬열의 귀를 세게 잡아당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밤새 꼬박 앓은 사람 티내듯 허옇게 말라붙은 입술이랑 홀쭉해진 볼이 영 거슬린다. 헤어지면 다 끝이어야 하는데, 왜 이리 서로를 놓지 못해 안달일까? 느지막이 돌아온 지난밤에 덜컥 품은 의문이다.




“청포도 에이드도 같이 주세요.”




묻지도 않고 찬열이 즐겨 마시던 음료를 주문했다. 반복된 기억이 버릇이 되었다. 점원이 건네는 영수증과 벨을 받으려 손을 뻗었는데 그가 더 빨랐다. 냉큼 받아 테이블로 가 버린다. 어이가 없어서 쏘아보는 데에 실실 웃으며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종대가 한숨을 쉰다. 터져버린 실소를 감추기 위한 한숨이다. 원래 넉살이 좋은 사람이다. 보통의 가정에서 모자란 거 없이 사랑 받고 자랐다. 같이 있으면 티가 난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감정에 솔직하다. 주고받는 사랑에 물러섬이 없어서,




‘오늘은 술 안 마셨는데, 너랑 뽀뽀하고 싶어. 이거 좋아하는 거 맞지?’




곁에 있을 땐 고질적인 두려움을 멀리할 수 있었다. 사랑 받았을 때에는.




‘미, 미쳤어?’


‘미쳐야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럼 미친 걸로 치고, 사귀자.’




안 돼. 고백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밥 먹자는 말만큼이나 담담한 어조여서 하마터면 고백인 줄 모를 정도였다. 찬열이는 너무 고민을 했더니 머리만 아프다며, 그냥 만나자고 했다. 참으로 쉽다. 그래서 좋았나 보다. 겁 많고 나약해서 피하기 급급한 저와는 달라서.




‘우린 둘 다 남자고, 힘들기만 할 거야, 또……’


‘잠깐만, 좋은지 싫은지 물어본 거야, 제대로 대답해.’


‘안 된다니까!’




또 틀렸어.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어쩔 줄 모르는 종대의 어깨를 붙잡았다. 보는 만치로 부드러울까?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내내 바라던 일이다.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을 줄 알았는데 미동이 없다. 슬쩍 눈을 떴더니 놀란 눈이 꽉 감기는 게 보였다. 좋아해. 웃음이 새나가지 않게 입술을 더 깊이 눌렀다. 김종대는 언제부터 날 좋아했을까? 궁금했지만 찬열은 굳이 묻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꽃일어 퍼진 감정을 참을 수 없어 고백한 이는 자신이었으니까.




‘거절하려면 싫다고 했어야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테이블에 들고 있던 지갑을 내리고 아무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서슴없이 지갑을 가져간다. 제 것인 양 카드랑 영수증을 넣고 있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종대는 유리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찬열이 안절부절 못하고 제 머리카락을 긁적거렸다. 이런 태도에 쥐약이다. 일일이 맞서 싸우거나 돌진하는 것보다 그를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기 좋은 수다. 

테이블에 가만히 놓인 손을 잡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못내 어려워진 탓이다. 끝내기 전에,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에도 종대는 저런 모습이었다. 차라리 버려지길 바라는 듯한, 그런. 몇 시에 돌아갔냐고 물으려던 차에 진동이 울렸다. 찬열이 싱그러운 빛깔의 제 것 대신 두 손에 음료 캐리어를 든다. 이번에도 말리지 않았다. 종대는 먼저 나선 그에 아랑곳 않고 커피에 시럽을 들이붓고 다른 손으로 에이드를 들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다. 이리 와. 한 쪽 구석에 붙은 찬열은 몸을 웅크린 채 음료를 바짝 올려 든 그에게 안쪽을 내준다. 꼭 맞춘 듯이 곁에 붙는다. 중량이 초과했다는 알림에 누군가 툴툴거리며 내렸다. 목덜미가 희게 드러난 뒤를 내려다보는 머릿속에는 더운 갈망뿐이다. 아아, 뽀뽀하고 싶다. 찬열은 몸을 뒤챘다.

인간은 기억 앞에 무력하다. 꺼내기 싫은 기억을 마음대로 불러들이는 것들을 피하지 못 한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셀 수조차 없이 많은 기억을 가졌고, 종대는 여지없이 그려지는 옛날을 막을 수 없다. 업무 기한을 통보하는 내용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난다.




[바빠요? 저번에 영화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주말에 보러 갈래?]




고작 메신저의 쪽지 하나로 옷깃을 부여잡았다고 하면 믿어질까? 찬열이는 기억력도 좋아. 중얼중얼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배시시 웃는다. 과거의 종대는 그랬다. 수많은 글자 중에 박, 찬, 열 각각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세 자가 붙어 읽어지면 두근두근 가슴이 떨렸다. 평소엔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데 그가 나타나면 여기 있었지롱! 하고 심장이 야단이다. 우리는 회식 자리에서 얼굴 도장 찍고, 눈 오는 날 통성명을 했다.




‘다음에 눈 오면 쪽지 해요, 김종태씨.’




‘그림의 떡’이 제 이름으로 장난을 치는데 마냥 좋다고 멀어지는 차 뒤에 손을 흔들었다. 그 뒤로 또래가 없어서 그랬는지 부서가 다른데도 찬열이는 종대에게 퍽 친근하게 굴었다. 열렬한 제 마음도 모르면서. 눈이 오면 차로 데려다 주고, 비가 오면 소주 한 잔 하자고 꾀고, 날이 좋으면 1층 카페에서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오늘도 눈 온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사실, 눈치 없는 척 추파를 던진 건 종대가 먼저이긴 했다.

주스를 받다가 손가락이 닿았다. 야외 휴게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던 종대의 귀가 붉어진다. 느긋하게 턱을 괴고 훔쳐보다가 찬열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잘 생겼어?’




세상에서 제일, 아니 우주 통틀어서 너처럼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봐. 종대는 진심이다. 대답은 빠르고 진지했다. 덕분에 뻔뻔스레 물어놓고도 부끄러워진 건 찬열이다. 귀가 달아서 음료가 써졌다. 헛기침이 난다. 당연한 걸 묻는다는 식으로 저를 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버렸다. 김종대는 가끔 사람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두 눈 동그래선 진짜야! 하는데 뭐라 할까? 그만해. 찬열은 팔로 그의 목을 감아 끌어당겼다. 어깨동무하기 딱 좋은 키다. 가까이에서 흔들리는 그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 새삼스럽게 킁킁거리자 무슨 짓이냐며 품을 빠져나갔다. 어깨를 바짝 세운 모습이 꼭 펭귄 같다. 

희한해. 함께 있으면 봄 같기도 하고 여름 같기도 하고. 가파르게 온도가 높아진다. 얼마 전에, 우연히 친해진 것치고는 많이 좋아한다.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젓가락 두드리던 모습이 처음이고, 노래하는 팀장님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런 충동이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함박눈 맞으며 동동거리는 그 앞에 차를 세운 게 두 번째.




‘전 회계 부문 김종태입니다! 아니, 아니, 대요…… 김종대…….’




동성에게 이런 화락한 마음을 품은 건 낯선 일이었다. 선이 가는 얼굴에 오목조목 들어간 눈, 코, 입이 하나하나 떼놓고 봐도 괜찮고 모아놔도 조화롭다. 뚝 떨어지는 눈썹은 시소 같아 귀엽다. 메신저로는 잘도 친근하게 굴다가 낯을 가렸는지 막상 마주하면 조용했다. 그러다 요즘엔 곧잘 짹짹거린다. 살이 닿아도 물러서지 않아서 편해졌나 여겨보았다. 성격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착한데, 지나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상대가 작정하고 속이면 제 밥그릇까지 내놓을 위인이다. 아까도 남 도와주느라 계단 왔다 갔다 하는 걸 위층에서 다 봤다. 찬열은 바람이 찬데 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그를 슬쩍 넘겨보았다. 어차피 저는 사기꾼도 아니라서 종대의 순하고 배려 깊은 성정에서는 얻을 게 별로 없다.

웃어 봐. 하지만, 생글거리는 얼굴이라면 말이 다르다. 이 애가 웃으면 사기 당하기 좋은 사람은 저가 되고 만다. 싫어─ 그러면서 눈이 벌써 반달이었다. 아, 눈부셔. 겨울 햇살에 눈이 멀겠다. 찬열은 갸웃거리는 종대의 머리카락을 살살 흐트러뜨렸다.




‘내가 여자였으면 죽자 살자 쫓아다녔을 텐데.’


‘뭐?’


’너한테 고백했을 거야.’




무릎 꿇는 시늉을 하며 장난치는 그를 앞에 두고 사정없이 얼굴이 구겨졌다. 하고 싶은 말 중 할 수 있는 말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종대는 억지로 하하 웃었다. 여자였으면. 현실성이 0%인 가정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친해진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했더니, 백현은 안타까워했고 세훈이는 속도 좋다고 비웃어댔다. 그리고 자기가 여자였으면 고백했을 거래, 덧붙였다. 백현이는 누구 약 올리냐며 성을 냈다. 설마. 세훈이 눈썹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 말은, 좋은데 그거 하나가 걸린다는 뜻 아냐?’




종대는 제 일임에도 뒤로 목을 젖히며 손사래를 쳤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잖아! 찬열이가 날 좋아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 그 때 지지기로 한 장을 아직도 못 지졌다.

둘은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말이 좋아 워크샵이지, 교육이 끝난 오후부터 늦은 저녁이 된 지금까지 술독에 빠져 부어라, 마셔라. 팀원들과 신나게 어울리고 있던 차에도 종대는 무의식적으로 찬열을 찾느라 바빴다. 인원이 많아서 장소가 나뉘었는데 아무래도 여기에 없나 보다. 아쉬움을 달래며 찰랑거리는 술잔을 기울였다. 그 때, 문 옆으로 머리 하나가 빼꼼 나왔다. 잠, 깐, 나, 와. 입을 뻐끔거리고는 사라져버린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파도 부서지는 소리, 모래알이 밟히는 소리 그리고 너의 목소리. 취했어? 조금.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눈가에 아른아른. 기분이 좋아 보여. 종대도 덩달아 들떠서 팔을 앞뒤로 흔들었다. 발재간을 부리다가 모래사장의 반을 지났다. 우린 여느 때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다. 유행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제 갔던 식당을 평하고. 그러다가 찬열이 저기, 하고 운을 뗐다. 평소랑 다르긴 했다. 눈을 빠르게 깜빡였고 어깨를 흔들거렸다.




‘손 한번 잡아볼게, 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저도 모르게 뒤로 숨겼다. 다가온 찬열이 경직된 손목을 덥석 붙든다. 웃음기 없는 면면이 퍽 낯설었다. 손목을 쥐었다가 부드러이 손을 맞춘다. 아찔해졌다. 잔잔했던 심연에 파동이 인다. 가만히 있자니 부덕해지고, 내치자니 원치 않는 일이었다. 한참 뻣뻣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이리저리 뒤집어본다. 그가 확인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모르는 체 하기로 했다. 손에 땀났다고 중얼중얼하는 걸 듣고 급히 빼려다 꽉 잡혔다. 내 심장, 무사하니? 종대의 속눈썹이 미약하게 떨린다. 반면, 찬열은 자신의 감정과 온 감각을 헤아리느라 바빴다.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가. 성에 안 찬다. 안는다? 하고 통보했다. 종대는 거의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이미 들썩거리는 가슴이 맞붙은 채다. 어색하게 등을 감싸는 팔이 느껴진다.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찬열이 또 뭐라고 읊조린다. 신발 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안 들린다고 속살거리는 종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두근거린다고? 제게 가만히 안겨있는 이의 머리에 입술을 댔다.

나 요즘 이상해. 원래 이상했다고 웃기에 찬열도 얕게 일소했다. 그러나 키스해도 되냐고 물었다가 정강이를 차이는 바람에 기껏 잡힌 분위기는 허무하게 깨졌다. 얼마 뒤, 찬열은 종대에게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고 몇 번 거절당한 끝에 고백을 했다. 좋아해. 그 날에는 키스를 해도 발길질이 날아오지 않았다.




[퇴근하고 밥 먹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멍하니 턱을 괴고 있던 종대가 마우스를 움직인다. 현실로 돌아왔는데 쪽지의 내용이 이상하다. 지워지지 않는다. 메신저를 종료시켰다가 다시 메시지함을 확인한 후에야 진짜 찬열이 보낸 쪽지라는 걸 깨달았다. 거절하려면 싫다고 했어야지. 낮은 목소리가 귓전에 새겨진다. 오전에 사무실까지 굳이 커피를 배달해주곤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더니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나 보다.




[그래]




회사 근처에 있는 감자탕집 구석에 앉은 둘은 한참 말이 없다. 와중에 찬열은 눈치를 살피면서도 헤벌쭉 웃고 있다가 종대가 고개라도 들라치면 표정을 갈무리하느라 고생이었다. 밑반찬을 뒤적거리던 그가 의외로운 것을 묻는다. 핸드폰 바꿨어?




“아니, 그대론데?”


“그럼, 번호만 바꾼 거야?”


“번호? 안 바꿨어.”




의심하는 눈초리에 찬열의 커다란 눈망울이 억울한 빛을 띤다. 몸이 앞으로 나와서 식탁이 덜컹거렸다. 다시 고개를 숙인 종대가 우물우물하는 걸 용케 알아들었다.




“없는 번호라고…… 나오던데……”


“전화 했었어?”




실수로, 짧게 답하고 얼른 콩나물을 집어먹는다. 찬열은 다 안다는 듯이 비죽 입술을 올렸다. 하고 싶은 말을 내놓지 않고 참았다. 마음 같아선 귀여워 죽겠다며 식탁 아래에 뻗어 있는 발을 잡아당겨 옆으로 오게 하고 싶었다. 섣불리 애정 표현을 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태연하게 그러냐고 대꾸하는데 어미가 장난스럽게 늘어졌다. 퍼뜩 흘기는 면전에 손사래를 쳤다. 아차, 실수로! 저가 생각해도 실수였다고 말한 것에 어이가 없었던 종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또 꼬집어낸 찬열의 너스레에 맥없이 무릎을 꿇은 거다. 입술을 깨물어도 올라간 입 꼬리가 그대로다. 그 틈을 놓치지 말아야 했다. 필사적으로 뻗친 손. 세게 손가락 끝을 붙잡힌 종대는 할 수 있는 최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서슴없이 짜증난다는 말도 했다. 날 선 목소리에 잠시 주변 사람의 시선이 그들을 오간다. 그로서는 최선의 거부였지만 찬열은 꿈쩍도 않는다. 헤어지자는 말까지 들은 마당에, 짜증난다는 말쯤이야 달콤했다.




“네 번호 차단했어, 그 때, 술집에서 홧김에……”


“…….”


“같이 밥 먹으니까 좋다, 내가 고기 발라줄까?”




다시 날 웃게 만들던 사람 같다. 갓 만나기 시작했을 때의 그 사람. 잡힌 손이 따뜻하다. 손수 공기밥 위에 살코기를 얹어주면서 자꾸 눈을 맞추려고 한다. 종대는 묵묵히 시야를 넘는 그를 보고 있었다. 후회하기엔 늦었다. 손을 놔야 밥을 먹지, 면박을 주었더니 깨갱 물러난다. 약속이라도 받아내려는 듯이 다 놓지 못한 손가락을 걸고 밥 먹고 다시 잡을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온기를 떨쳤다. 무시로 일관하는 게 헛수고라는 걸 알지만 오기가 생겨서 밥을 크게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언제까지 이럴래? 우리 헤어진 지 벌써……”




종대는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가락을 접어 달을 셌다. 다섯 달이 지났어. 지우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인정한다.

찬열은 종대와 엉겨 붙어있던 소파를, 종대는 잠들지 못했던 새벽을 떠올렸다.




“어차피 똑같을 거야, 해봤잖아.”




실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탓하는 말도 아닌데 찬열은 잘못한 아이 같이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상대방이 돌아설까 봐 자신이 가진 패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을 쥐었다. 종대야, 나 좀 봐줘. 넌 그런 사람이잖아. 예쁘고 착하고, 나한테 한없이 약한 사람.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되뇌고 생각했다. 이 애가 어떤 마음으로 내 옆에 있었는지, 모질고 싸늘한 저조차 사랑하려 얼마나 애썼는지 세어봤으면 놓아주는 게 맞다. 아는데 도저히 그렇겐 못 하겠다. 꾸역꾸역 밥을 넘기는 종대가 애달프다. 끝까지 이기적인 저한테 싫다는 말 한 마디를 뱉지 못하면서.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담배 필 시간에 전화하고 생각날 때마다 너 보러 가고…… 그럼, 네가 나 믿어주고 더 사랑해줬을 텐데.”


“오늘은 그만하자.”


“이대로는 못 보내겠어.”


“그만하라니까!”




이 시간까지도 사랑이면 우리, 우리는 어떡할까? 

이별까지도 사랑이면 나는 어쩌나.



















기빨리는 연애괴담ㅎㅎㅎㅎㅎ 9장부터는 고속 전개됩니다!!

6월까지 완결내기로 했는데 벌써 7월 말이에요, 약속지키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ㅠㅠ

꾹 참고 기다려주시는 독자 요정님들,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무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세요.














강나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17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