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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순정의 가치 完

섹스피스톨즈 AU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우리의 자리도 단단하게 굳어진다. 한적한 도로를 서행하는 검은 중형차, 그 뒷좌석에 사자와 고양이는 나란히 앉아있다. 그들은 어느 하나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 한다. 저희를 닮은 불그스름한 얼굴이다. 둥근 콧방울. 촘촘한 속눈썹. 야쿠가 잠든 아기의 가슴께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리에프의 팔에 안긴 채 새근새근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잠결에 코를 찡그리기만 해도 리에프는 어깨를 움칠 떤다. 깨서 울까 봐 성화를 하더니 차에 탔을 때부터 지금까지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는 목은 반쯤 아래로 꺾인 채다. 편히 앉으라고 해도 도저히 안 된단다.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가 야쿠는 웃어버리고 만다. 아마 누가 보더라도 웃었을 것이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다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대로 꾹 눌렀더니 차마 크게 외치진 못 하고 입 모양으로 안 돼요! 안 돼! 하지만 순순히 놓아줄 고양이가 아니다. 기우뚱 넘어간 등이 의자에 닿았다. 훨씬 편해졌을 거다. 빙그레 웃는 리에프의 팔을 고쳐주며 물었다.




“너 아까 왜 울었어? 예상은 했지만.”


“그게요……”




옴짝달싹하며 쉬이 대답하지 못 한다. 동물이 새겨진 손수건으로 침이 흐르는 아기의 입가를 닦는 고양이를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가 선연하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러운 이유라 말 꼬리가 흐려졌다.




“문이 열렸는데 다 깜깜해지고 진짜 야쿠상이랑 레이한테만 빛이 났어요. 다른 건 하나도 안 보이고, 둘 다 작고, 예쁘고…… 믿기지 않았다고 해야 되나?”




아기가 태어나거나 처음 안을 때, 느닷없이 와닿는 경이에 눈물을 흘리는 아빠도 있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야쿠가 레이를 안고 신생아실을 나오자마자 앞에 선 리에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그 탓에 주변이 어수선해진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마지막까지 소란이라며 배웅을 나왔던 요코가 핀잔했다. 울음이 터져서는 두 팔 벌려 다가오는 키 큰 남자를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도리질을 한 야쿠는,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 뚝!’




꾸중하면서도 그 품에 포옥 안겼다. 달보드레한 눈빛이 저와 아기를 감싼다. 누가 보든 말든 리에프의 가슴팍에 깊숙이 머리를 기댔다. 비로소 셋이다. 조심스럽게 저희를 둘러싸는 팔이 여느 때보다 단단하다. 소음은 음악처럼 감미롭고 어린 아이는 따뜻하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현실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리만치 아름다운 책 말이다. 눈물 어린 사자의 숨 아래서 야쿠는 확신했다. 수많은 과거의 나날 중에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쿠로는 왜 울었어?”




감성에 휩쓸린 건 비단 리에프뿐이 아니었나 보다. 켄마가 아직 눈가가 벌건 쿠로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얇은 입술에 걸린 미소가 짓궂다.




“으…… 켄마, 너.”


“쿠로오상, 울었어요?”


“리에프야 아빠라서 그렇다 치고 넌 뭐냐?”


“몰라! 그냥 눈물이 났어!”




조수석에 앉은 쿠로오의 얼굴이 빨갛게 익는다. 창피한 꼴을 보여 놀림만 받는 처지다. ‘행복’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밝혀주러 온 사람치고는 푸대접이다. 전날, 고즈넉한 밤을 만끽하던 그와 켄마는 리에프의 전화를 받았다.




‘켄마 선배, 도와주세요! 운전을 못하겠어요!’




아기를 데려와야 하는데 떨려서 운전을 못하겠다며 울고불고 하는 거다.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귀청이 떨어질 뻔 했다. 반가운 기색 하나 없이 그러겠다고 했지만 레이를 만날 생각에 기꺼이 허한 것이다. 귀찮게 딸려온 소꿉친구가 눈물을 흘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작은 아기 보따리를 안은 야쿠가 앞에 섰을 때만 하더라도 쿠로오는 한껏 느물거리면서 혀 짧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야오야. 켄마는 그가 천연덕스럽게 레이에게 ‘아기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 질색을 했다. 그들은 통통한 입술을 오물거리는 아기를 보고 있다가 일순 깨달았다. 사자의 부재. 진작 야단법석을 떨면서 정신을 쏙 빼놓아야 할 목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깨닫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으흐흑……’




켄마는 본능적으로 일행에게서 멀어졌다. 주변 사람을 통틀어서, 아니 병원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제일 커다랄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고 있었다. 그런 리에프를 보며 야쿠가 언제나처럼 크게 웃는다. 행복해 보이네. 멀찍이서 살짝 미소를 띤 켄마는 무의식중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찔끔 난 눈물을 닦다가 들킨 쿠로오가 멈칫했다. 당황스러워 보인다. 무심한 눈동자가 추궁하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는데 제 발이 저린 그는 끝내 입술을 삐죽거렸다. 켄마, 놀리지 마.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아직? 하긴 할 거란 얘기야?’


‘응, 웃기잖아.’




감흥 없는 말투로 이죽거리는 켄마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은 그는 다시 그들만의 세상에 빠진 반류 친구들을 넘겨본다. 웅성거림도 들리지 않는지 꿋꿋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바로 옆에서 시련을 지켜봤기 때문일까? 리에프가 우는 걸 보는데 괜히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품에 쏙 드는 작은 아기를 굽어보는 눈길이 얼마나 진득한지 제 머리가 멍해질 만치였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거다.




“쿠로오상 의외로 마음이 여리네요!”


“어우, 징그럽다.”




얄미운 한 쌍이 마음껏 그를 놀려댔다.




“왜 나한테 난리야, 난 누구처럼 대성통곡하진 않았다고.”


“누가 또 대성통곡했는데요?”


“인간아, 너, 너!”


“모리스케, 쿠로오상 좀 혼내줘요, 자꾸 저한테 뭐라고 해요─”


“야, 야쿠가 그런……”


“쿠로오, 리에프한테 그러지마.”


“뭐? 미쳤냐?”




경악한 쿠로오야 그러든 말든 리에프는 헤벌쭉하다. 변함없이 아기에게 달라붙어있는 야쿠의 머리카락에 입술을 비비면서 좋아하는 꼴을 보고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살겠다. 얼마 전까진 답지 않게 서먹서먹하게 굴어서 곁의 저희까지 불편하게 만들더니 지금은 사이가 너무 좋아서 탈이다.




“힘들지? 내가 안을까?”


“괜찮아요, 그것보다 배고파 죽겠어요.”


“가자마자 밥부터 먹자. 레이 맘마도 먹여야지.”


“아, 귀여워! 맘마라고 할 때마다 뽀뽀하고 싶으면 어떡해?”


“안 돼.”




쿠로오는 뒤에서 들려오는 간지러운 대화에 몸서리를 친다. 떨떠름하긴 켄마도 마찬가지인지 표범이 미쳤다고 중얼거리는 말에 가벼이 수긍했다. 저 난리 통에도 깨지 않는 레이가 신기하다. 순해도 저렇게 순하고 착한 아기가 없다.

볕 좋은 날, 따스하게 데워졌을 보금자리가 안락하겠지. 그 안에서 그들이 언제나 행복과 함께하길 바란다.












속싸개에 고이 쌓여 얼굴만 빼꼼 내놓은 아기는 모든 사념을 가라앉힐 양 평온한 표정이다. 천사가 따로 없네. 집이 떠나가라 응애응애 울던 게 언제였나 싶다. 엉망진창이던 부엌을 치우고 막 침실로 들어온 리에프가 불 끌까요? 하고 묻는다.




“응, 취침등은 켜야 돼.”




캄캄해지는 침대 주위로 은은한 빛이 떠오른다. 리에프는 모로 누워서 살살 아기의 가슴을 두드리는 야쿠의 등을 안으며 이불로 파고들었다.




“알람 맞췄어?”


“네.”




뒤로 손을 뻗어 리에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귓바퀴를 만지작거린다. 잘 했어. 당장 잠들 만치로 피곤한데 맘 편히 눈이 감아질 리 없다. 고양이와 사자의 눈꺼풀이 한 짐이다. 만만치 않은 육아에 초보 아빠들은 지쳤다. 아기를 품고 있던 8개월보다야 나을 거라 여긴 건 정말 뭘 몰라서 그랬던 거다. 출산 전 깨치다시피 한 육아서는 우렁찬 아기 울음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자다 깨서 울고 먹고 다시 자다 깨서 울고. 두세 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타는 것조차 전쟁 같았다. 온 몸에 힘을 준 채 기를 쓰고 우는 레이를 안은 야쿠는 빨리 하라고 성화인데 젖병을 집어 든 리에프의 머리는 백지장이었다. 미리 소독해서 건조시킨 우유병을 꺼냈는데 조립 순서가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해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맞춰도 안 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 되니 손은 헛돌고 울음은 더 커지고 딱 죽을 맛이었다. 겨우 젖병을 조립하면 무얼 하나? 펄펄 끓는 물에 분유를 타다가 반은 식탁에 쏟아버리고 이걸 또 식히려면 한 세월이 걸리는 걸. 끝이 아니다. 겨우 우유를 먹이고선 배운 대로 아이를 비스듬히 안아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소화를 도왔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 넘어갔는데 두 번째엔 먹은 것을 죄다 토하는 것이 아닌가?




‘어떡해……’


‘괜찮아요, 원래 그런다고 했잖아요.’




울상인 야쿠를 안심시키면서도 리에프의 낯빛은 사색이어서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목욕을 시키는 건 왜 그리 무섭던지 다 큰 어른 둘이서 줄곧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작아 안는 것도 겁이 나는데 목욕은 오죽할까? 그래도 서로가 있어 다행이다.

종일 그들을 거쳐 간 크고 작은 소동을 돌이킨 야쿠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으니 가만히 그의 허리를 어루만지던 리에프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요? 그냥. 귓가에 닿은 숨이 간지럽다.




“피곤해 죽겠어.”




긴 하품 끝에 야쿠가 소곤거렸다. 덩달아 하품을 한 리에프는 그의 뺨에 코를 묻었다. 이대로 잠들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자요.”


“응……”




대답을 하는 목소리가 졸음을 쫓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사자의 귀를 매만지던 손에도 힘이 빠진 지 오래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르륵 잠이 들었다.




“으앙!”




눈을 번쩍 뜨는 것과 동시에 야쿠는 몸을 일으켰다. 리에프는 번개라도 맞은 양 놀란 눈을 깜빡인다. 서둘러 아기를 품에 안아 누르는 고양이가 보인다. 입 모양으로 더 자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자가 아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뒷목을 긁적거리며 일어난 그는 무릎을 꿇어앉은 야쿠의 허리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왜?”


“기대요, 레이를 안고 있잖아요. 야쿠상은 제가 안아줘야죠.”


“말은.”




리에프는 제 다리 새로 들어 가슴을 누르는 무게를 가뿐하게 받쳐 안는다. 고개를 숙여 미소를 띤 고양이의 입 꼬리에 쪽쪽거리면서 아래로 칭얼칭얼 잠투정하는 아기의 통통한 뺨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짧고 가는 머리칼이 점점 진한 색을 띠는 것이 야쿠를 닮을 모양이다. 쇄골을 간질이는 머리카락과 같은 색깔이다. 종일 아기를 안고 있던 몸에서 포근한 냄새가 난다. 아기 냄새가 난다고 중얼거리면서 야쿠의 목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어깨를 움츠리면서 키득거린 그는 금세 잠드는 레이의 위로 달콤하게 읊조린다.




“행복하게 살자.”




얼마나 설레는지 알아요? 우리의 내일은 어떨지, 또 얼마나 행복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리에프가 감격에 겨워 빤히 쳐다보자 밭은 웃음을 낸다. 한 손으로 야쿠의 턱을 부드러이 잡아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질리지도 않아?”


“질릴 만큼 자주 말한 적 없잖아요.”


“까불어.”


“빨리 해줘요─”


“네가 애냐?”




사랑을 말하지 않는 입술을 벌하려 한다. 급하게 입을 맞춰오는 리에프가 귀여워서 야쿠는 기꺼이 눈을 감았다. 짧게 혀를 섞은 뒤 아쉽게 떨어졌다. 아무래도 지금은 레이가 방해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반드르르하게 젖은 입술을 닦아주면서 리에프는 어쩐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애가 이렇게 키스를 잘하겠어요?




“누가 잘한대?”


“못하진 않잖아요!”




픽 웃은 야쿠는 엉거주춤 그에게서 떨어졌다. 천천히 숙여 온 몸으로 아기를 누이고 싸개를 다시 침대에 포갠다. 여전히 레이의 가슴팍에서 손은 떼지 못한 채다. 은근히 두드리다 서서히 거리를 뒀다. 깨울까 봐 망설이다가 발그레한 뺨 근처 허공에 입을 맞춘다. 잘 자, 레이. 리에프가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잡아끌지 않았다면 계속 아기를 떠나지 못 했을 거다. 쉬이 침대 가운데로 끌려온 고양이가 몸을 뒤집기 무섭게 그 위로 올랐다. 얄망궂은 눈웃음을 치며 리에프의 목을 끌어안는다.




“아무래도 자긴 그른 것 같은데…… 하던 거나 마저 할까?”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저돌적인지 모른다. 어쩌면 의식은 이미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숨에 사랑의 포로가 된 리에프가 세차게 끄덕였다. 침실에서는 이따금 숨죽인 속삭임이 들려왔다.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서로의 품에서 몽롱한 새벽을 지새우며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늘 같은 자리에서 그들만의 나날을 맞이할 것이다. 아쉬운 하루를 떠나보낼 때도 있을 거고 새로운 하루를 기다릴 날도 있겠지. 냉장고에 붙어있던 「사랑해」, 「일어나면 연락 줘요♥」 따위의 쪽지와 애정 넘치는 두 사람의 사진 위로 「분유 사다 줘」, 「야쿠 여보, 설거지 내가 할 테니까 하지 마요!」, 「소고기, 양파, 당근」, 「분유 비율 7:3」 등의 메모와 아기의 사진이 쌓인다.




“어때? 향기로워?”




퇴근한 리에프를 붙잡고 기저귀를 들이민 야쿠가 물었다. 아기를 사랑하면 할수록 똥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진다고 덧붙인다. 정체불명의 우스갯소리에 사자는 자신만만하게 나선다. 당연하죠! 겁도 없이 기저귀를 받아 들었다. 그 뒤에서 고양이의 꼬리가 장난스럽게 하늘거린다.




“어쩜 똥도 이렇게…… 우욱!”


“푸하하, 미치겠다!”




헛구역질을 하면서 달음질치는 리에프를 보고 웃겨 죽겠단다. 기저귀를 들이밀면서 한참을 놀려주다가 아기 우는 소리에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레이를 안고 나오니 쪼그려 앉아서 눈 딱 감고 기저귀에 코를 대고 있는 그가 눈에 든다. 잔뜩 찡그린 얼굴이 가관이다. 엉뚱한 건 변함이 없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발로 엉덩이를 밀었더니 돌아보며 정말 사랑한다고 주절거리는데 왠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만 기다려요, 빨리 씻고 나올게요.”


“옷 이리 줘.”


“또 잊은 거 없어요?”


“잊은 거?”




찌개라도 데우고 있었던가? 무의식적으로 부엌으로 시선을 옮기는 걸 막아선다. 아기의 완두콩 같은 눈망울 속에 겹쳐진 인영이 그려졌다. 이렇게 평화로운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시련을 맞기도 한다. 육아는 늘 처음인 것처럼 어렵다. 곧 리에프의 퇴근 시간이라 마중을 나가려던 차였다. 켄마가 선물한 멜빵 원피스를 입힐 생각에 들뜬 야쿠가 푹신한 매트 위에서 발을 구르는 레이와 눈을 맞춘다. 아이, 예뻐. 경쾌한 혓소리를 내며 재롱부리는 아빠를 보며 방긋방긋 어여삐 웃는다.




“이거 입고 아빠 마중 가자, 망고 주스도 먹고─”




그러나 어쩐 일인지 현관문은 열린 적이 없다. 리에프가 돌아오기 전까지도. 다녀왔습니다! 인사는 쨍한 울음소리에 무참히 끊어졌다. 사랑하는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묻힌다. 서둘러 거실로 향했다가 리에프는 잠시 멈칫했다. 눈앞에 펼쳐진 뜻밖의 광경에 놀란 것이다. 악을 쓰는 아기의 손만 멀거니 붙잡고 있는 야쿠의 등이 보였다. 얼른 다가앉아 레이부터 안아 올렸다. 모리스케?




“으어엉! 리에프, 흑, 이거…… 미안……”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눈물범벅인 얼굴이 레이와 다름이 없다. 무작정 재킷에 얼굴을 묻더니 더 크게 울기 시작한다. 별안간 엉엉 우는 야쿠에 당황한 리에프는 입만 뻐끔거렸다. 식은땀이 비질 난다. 이게 무슨 일이지? 산후우울증인가? 눈물 바람에 휩쓸려 머릿속이 복잡하다. 한 손으로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울지 말라고 청해도 소용이 없다. 저마저 울고 싶어졌다. 다행히 착한 레이가 리에프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곧 울음을 그쳤다. 조그만 불가사리 인형이 달린 흔들침대에 눕혀도 가만한 것을 보고야 안심이다. 이제 남은 건 그의 옷을 부여잡은 고양이뿐이다.




“왜 그러는데, 응? 얼굴 좀 봐요.”




웅얼웅얼 뭐라고 말을 하긴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재킷을 벗어 당겼더니 그대로 거기에 엎어져서 우는 걸 보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심각한 상황인데 두 손으로 옷자락을 꼭 쥐고 엎드린 엉덩이가 사랑옵다. 이 정도면 병이지 싶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다시 귀퉁이를 잡아당겨 뺏으려니까 그제야 같이 딸려오다가 힘겹게 일어난다.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들썩거리는 이를 껴안았다. 리에프는 여전히 웃음을 참고 있다.




“왜 우는데요? 애기에요?”


“죽어……”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혼자 노는 아기를 넘겨보며 야쿠의 울음이 사그라질 때까지 가만히 안아주었다. 슬며시 등을 문지르면서 왜 그러는지 되물었다.




“……단 말이야…… 어떡해……”


“네?”


“상처 났다고…… 레이, 얼굴.”




상처? 급히 옷을 갈아입히다가 헛손질을 해서 레이의 귓가를 할퀸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뽀얀 얼굴에 발간 선 하나가 그어지긴 했지만 이렇게 울고불고 할 정도는 전혀 아니다. 허나 아이를 더 귀히 여기지 못해 안달인 사람에겐 큰 사고였겠지. 얼마나 놀랐을지 뻔할 뻔 자다. 흉터 남으면 어떡해? 하며 다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한참 어르고 달래도 안 되다가 결국 리에프가 약국에서 전용 반창고까지 사오고서 눈물을 멈췄다. 그래도 시무룩해서는 자꾸 미안하단 말밖에 안 하더라.




“괜찮다니까요.”


“얼마나 아팠겠어?”


“내 등 할퀼 때도 그런 생각해요?”


“이 짐승, 너랑 레이랑 같아?”


“와, 너무해. 내가 좋아요, 레이가 좋아요?”


“레이.”


“비켜요.”


“싫어─”




야쿠를 무릎 사이에 앉히고 손톱을 깎아주던 리에프가 그의 귀를 깨문다. 살살 간질이니까 그제야 퉁퉁 부은 눈을 휘어 웃었다.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이들이 덧나지 않도록 어루만지면 상처는 금세 아문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껏 서로를 구해왔다. 기억이 하나로 얽혀 그는 또 다른 내가 되고 나는 그가 된다. 변치 않는 애정으로 믿음이 굳어진다.

거세게 부딪힐 때도 있다. 당신의 사랑을 시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리에프의 눈이 깊게 감긴다. 얕게 고개를 저었다. 두 시간이나 늦게 퇴근을 했다는 사실 말고도 끔찍한 게 더 있다. 집에 가면 하루 종일 레이와 씨름했을 모리 여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우유병 소독도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갖다 버려야 하고 아기에게 자장가도 불러줘야 하고.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힘에 부친 게 사실이다. 첫 사회생활에 육아가 더해져 몇 달째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

오늘은 졸다가 업무가 지연되고, 실수까지 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랜만에 차를 끌고 나왔는데 평소엔 한적한 길이 오늘따라 꽉 막혀있다.




[차 밀린다ㅠㅠ]




답장은 안 올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돌보느라 바쁜 야쿠는 요새 전화도 잘 받지 못 한다. 레이가 크면서 깨어있는 시간이 늘었고 아무거나 입으로 집어넣는 통에 전처럼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짧은 통화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간단한 요깃거리로 허기를 채우고 저가 퇴근하면 휘몰아치듯 밥을 퍼먹는 걸 보면 안쓰러워 죽겠다. 하지만 밥을 못 먹는 건 리에프도 마찬가지다. 수면 부족으로 입맛을 잃어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한숨 자는 게 나은 요즘이다. 그들이 누리는 행복에 걸맞은 고된 대가다. 역시 집에 도착하도록 야쿠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 축 처진 어깨로 들어온 리에프는 빈 현관에 달랑 놓인 슬리퍼가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왔어?”




씻고 나올 때까지도 얼굴을 못 봤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면서 거실로 가니 레이를 안고 우유를 먹이다가 고개를 든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게 예쁘다. 야쿠는 다시 아이에게로 눈을 돌린다. 맛있어요? 물으면서 우르르 까꿍! 아양을 부린다. 그걸 내려다보면서 웬일인지 리에프가 뾰로통했다.




“내 밥은 챙기지도 않으면서.”




불만스런 목소리에 야쿠는 그저 코웃음을 칠뿐이다.




“이젠 레이한테까지 질투야?”


“그냥…… 잘 표현해주지 않으니까, 가끔은 자신이 없다고요.”




리에프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를 이으려던 야쿠는 날 선 말투에 흠칫 놀랐다. 동그랗게 떠진 눈이 그림자 진 녹색 눈동자 아래에 놓인다. 왜 그래? 갸우뚱거리며 손을 잡으려 했는데 리에프는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피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의 리에프를 보고도 몸은 움직일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기의 눈망울이 야쿠를 묶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는 야쿠상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고, 저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뭐? 말도 안 돼.”


“처음엔 그랬잖아요, 아기만을 원한다고.”


“그 때랑 지금은 달라!”


“알아요, 제 말은 그러니까……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저도 모르겠네요.”




말 그대로다. 나오는 대로 뱉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지친 걸까? 단지 위로가 필요하다. 저도 레이처럼 따스한 그의 품에 안겨 애정 어린 입맞춤을 받고 싶은 것만은 확실하다. 레이를 질투하는 스스로에 기가 차고 난색을 띤 야쿠에게 미안했다. 그는 지금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니 제 이기심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될 위기에 놓였다. 리에프는 쓰게 웃었다. 어디에라도 기어들어갈 듯 낮은 음성으로 그냥 해본 말이라고 둘러대고는 물러났다.




“리에프.”




야쿠는 손수건으로 레이의 입가를 닦고 우유병을 내려놓았다. 오래 다리를 접고 앉아 있다가 일어서니 저릿한 감각이 뻗쳐오른다. 리에프. 설거지가 쌓인 부엌으로 가다 우뚝 멈춰 섰다가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니까 천천히 돌아본다. 팔을 뻗었다. 이리와. 리에프는 주저하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다른 팔에 안겨있는 아기가 손을 흔든다.




“저는, 그냥……”


“쉿, 말하지 않아도 돼.”




허리로 감기는 작은 손. 얌전히 그에 안긴 리에프는 입술을 꾹 깨문다.




“내가 너무 무신경했어, 미안. 힘들었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린다. 속상하다. 힘들다고 말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한 걸 보면 어지간히 사자에게 신경을 쓰지 못 했나보다. 진작 달래줬어야 했는데 아기 사자에게 온 마음을 쓰느라 겨를이 없었다. 언제든 살갑게 엉기는 성격도 아니라서 여린 리에프에게 마음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야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선 그를 더 세게 껴안았다.




“너와 레이가 나의 전부야.”


“…………”


“이런 말 하긴 늦었지만…… 너여서 다행이야, 네가 아니라면 레이도 없었을 거야. 혼자선 못 버텼을 테니까.”


“……”


“사랑해.”


“……”


“리에프?”




묵묵부답이다. 콧등으로 떨어진 물방울을 맞은 야쿠는 픽 소리 내어 웃었다.




“이래서야 울보가 둘이잖아, 정말 피곤하다─”




훌쩍거리는 커다란 아기 아빠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투정을 부리고 저를 괴롭혀도 사자들은 귀엽기만 하다. 리에프는 몸을 배배 꼬면서 소리 없이 항의한다.




“주말에는 단둘이 어디라도 다녀오자.”


“응?”


“우린 휴식이 필요해. 레이는 부모님께 맡기고, 좋아하실 거야.”


“레이를 두고……”


“그럼 가지 마?”


“음……”


“자고 올 건데?”


“가, 가요!”




빨개진 귀를 잡아당겨 입을 맞추자 리에프가 내빼려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만한 게 느껴졌다. 손이 올라와 뺨을 감싼다. 리에프는 두 손으로 애틋하게 야쿠의 얼굴을 쥐고 입술을 내렸다. 눈물 맛이 난다. 이 사람은 어쩜 이렇게 능숙할까? 언제나 미워할 수 없도록 옭아매고 도망가지 못 하도록 손을 잡는다. 맞물린 입술 새로 속절없이 내뱉었다. 사랑해요. 사랑해, 레이. 우리는 매일 행복을 안는다.

볕은 따사롭고 선풍기가 돌아가는 집 안은 산뜻하다. 리에프의 배 위에 포개진 아기가 여기저기 손짓하는 걸 보는 야쿠의 입에 웃음이 걸렸다. 요즘 레이는 말문이 트여서 부쩍 질문이 많다. 지금도 아빠의 코를 가리키며 웅얼거리고 있다.




“이거? 코.”


“이, 이.”


“눈.”




아이가 까르르 웃으니까 두 아빠도 따라 웃는다. 기분이 좋은지 작은 귀가 팔랑거린다. 아직 발현할 때가 되지 않았어도 가끔 귀며 꼬리를 보여줄 때가있다. 팔을 휘젓던 레이가 문득 고양이 아빠를 찾는다. 힘겹게 도리질을 치더니 드디어 짤막한 손가락이 야쿠를 가리켰다. 저거?




“내 거.”


“레뿌?”


“응.”




별안간 인상을 팍 찌푸린 레이가 힘차게 고개를 젓는다. 턱받이에 침이 흥건하다. 리에프 거 아니래! 야쿠는 뒤로 넘어가며 폭소하고 리에프는 아랑곳 않고 단호히 답한다.




“어? 모리스케는 리에프 거야!”


“안냐! 리에부 아니!”


“맞아!”




진심으로 싸우고 있는 거야? 사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함박 입은 다물어질 줄 모른다.




“그럼 사이좋게 나누자, 레이.”




레이를 안아 곁으로 기어온 리에프가 그의 팔을 당겨 눕혔다. 한 팔에 아이를 안겨주더니 반대쪽으로 가서 저도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야쿠는 양 팔에 누운 이들을 번갈아 보다가 리에프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고 고개를 돌려 가슴팍에 엎어진 레이의 뺨에도 똑같이 했다. 꼬물꼬물 앙증맞은 손이 옷자락을 움킨다. 고새 아빠를 따라 입술을 내밀어 턱에 대고 옹알이를 한다. 그걸 보고 리에프가 질 수 없다는 듯이 그의 볼에 입술을 부풀렸다. 새된 웃음소리가 한적한 주말 오후를 수놓는다. 행복하다. 꿈조차 이렇게 행복할 순 없을 거야.

그 길로 깜빡 잠이 들었다 깬 야쿠가 흐리멍덩한 눈을 깜빡인다. 레이. 무의식중에 옆을 더듬는데 손에 채인 건 얇은 이불뿐이다. 반쯤 몸을 일으켰다. 아늑한 불빛 아래 리에프가 보인다. 사랑스러운 나의 연인. 잠투정하는 아이를 어깨에 모로 안고 춤을 추듯 몸을 움직인다. 눈이 마주치자 살포시 미소를 띤다.




“더 자요.”




금세 다가와 이마며 코, 눈두덩, 입술에까지 상냥하게 입을 맞춰준다. 그에게선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가 났다.

자기를 쏙 빼 닮은 아기를 안고 있는 저이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오롯해진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 시간, 온 감정…… 살아가면서 순정의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야쿠는 아득히 눈을 감았다. 온통 행복이다.



잘 자.






































드디어 완결!!  

순정의 가치는 쓰는 내내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마음이 따뜻하고 즐겁고~

부족한 점이 많은데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무리 하기까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막상 끝이라고 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ㅠㅠ 예정보다 늦어지기도 했고ㅠㅠ

바쁜 일이 끝나면 1-15 수정본이 있었던 것처럼 16-完 수정본을 게시할 예정입니다.

언급한 적이 있던 쿠로켄 번외는 기약할 수는 없지만 꼭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리에프와 야쿠가 이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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