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 해 여름은 지독히도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이은 폭염주의보 속에 동네에 있던 작은 연못물이 말랐다. 거기에 사는 물고기들이 죄다 바닥을 기어 다닌다는 친구의 말에 모험심 충만한 새끼 고양이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보육원 선생님 몰래 뒤뜰로 나온 소년, 야쿠 모리스케는 들꽃이 피어있는 풀 길을 헤쳤다. 동그란 갈색 눈동자에서 넘치는 생기가 꽃봉오리를 틔울 듯 했다. 고양이로 변해서 물고기 간식을 입에 털어 넣는 걸 상상했더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넝쿨이 매끄러운 종아리를 할퀴는 것도 모르고 내달린다. 날 선 갈맷빛 가시들을 순식간에 지나쳐 고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아아…… 으, 으악!’




신나게 달려온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건 ‘죽음’이었다. 입을 벌리고 말라 죽은 것들 앞에 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풀썩 주저앉은 엉덩이가 아팠다. 내려다보이는 다리에는 불그죽죽하게 그어진 상처들에 피가 맺혀 번진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하얀 눈들. 두려움인지 고통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퐁퐁 솟아오르는데 개중에 뻐끔뻐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들이 보였다. 하찮게도 작다. 망설일 것 없이 두 손으로 꿈틀거리는 물고기를 움켰다.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몇 번이나 미끄러졌고 넘어지기도 했다. 보육원 뜰에 있는 회색 수돗가에 이렀을 때에는 무릎 아래 흰 피부가 온통 핏물로 얼룩져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비가 힘겹게 아가미 부풀리는 것을 적셔간다. 눈물이 말라붙은 볼이 따가웠다. 제발. 흙 묻은 손이 물에 떠오르는 것들을 누르고 또 눌렀다. 살아줘. 갑자기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정신 놓으면 안 돼, 눈 떠!”




뺨을 내리치는 손이 매섭다. 야쿠는 아프다고 말하려다가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산소 호흡기의 굴곡진 단면이 보인다. 괜찮아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었지만 얼마 못 가 요코에게 무심히 잡아 내려졌다. 그래서 눈물을 닦아줄 수가 없다. 그녀가 울고 있는데.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마른 목구멍이 들러붙어 괴롭다. 허억, 허억 하는 기분 나쁜 숨소리는 내 것일까? 아니면, 가여운 아기의 것일까? 눈앞이 가물가물한데 머릿속에는 예쁜 얼굴 하나가 박힌 듯 비켜나지 않는다. 리에프, 많이 놀랐겠지? 창피하게 또 엉엉 울면서 달려오는 거 아냐? 그 애라면 분명 그러고도 남을 거다. 날 많이 좋아하니까.

도로를 가로지르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요란하다. 차가 밀려있는 도로는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적막한데 차 안은 급박하고 참혹하다. 볼품없는 잠옷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붉어지고 간이침대의 모서리를 비집은 핏방울이 끄트머리에서 추락했다.




“5분 후 도착 예정입니다, 바로 수술해야 돼요!”




요코는 간헐적으로 튀어 오르는 다리를 붙잡았다. 보잘것없이 패인 뺨과 핏줄이 터져 거무스름하게 변해지는 얼굴을 살피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기에 누운 이는 야쿠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밥은 당연히 먹었죠! 오늘은 입맛이 없어서 한 그릇밖에 못 먹었어요.’




당장이라도 웃음기 어린 눈으로 말을 붙일 것 같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미동이 없다. 일부러 조산기가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벼운 증세였고, 아기에 관한 일이라면 무슨 얘기만 해도 과민 반응이어서 괜한 걱정만 하게 할까 봐 그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대신 부족한 시간을 쪼개 그의 집에 들르고 여의치 않으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는데, 오늘 야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뭐라도 하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지나친 기우이길 바랬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들이닥친 집에 그가 피를 뒤집어 쓴 채 쓰러져 있었다. 이미 고통에 몸부림치다 기절한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바닥 여기저기에 난잡하게 이어진 핏자국이 생생하게 야쿠를 그려냈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하고도 반이 남았을 때다. 위험해. 얼마나 방치되었는지 정확하지 않고 일반 여성의 몸도 아닌 반류다. 느리게 감겼다 뜨이는 눈이 초점을 잡아내려 필사적이다. 살아줘.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임에도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고 싶은 것처럼 보여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억……”




그 때, 야쿠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핏물이 아래로 왈칵 쏟아진다. 갑자기 밀려오는 통증에 명확해진 의식으로 야쿠가 비명을 질렀다. 숨이 멎을 듯 마르는 고통으로 비틀린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모리!”




수없이 마주해왔던 장면이 오늘처럼 두려운 적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야쿠의 몸을 덮어 눌렀다. 불길한 떨림을 세게 안았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요코의 앞으로 저지하는 손길이 뻗어진다. 그녀는 밀려났다. 냉정함을 잃은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제 배에 손톱을 세운 야쿠를 응시하던 허망한 눈길이 끝내 돌아선다. 다행히 핸드폰을 꺼내드는 요코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여보세요?




“하이바.”


‘요코상,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업무 중이라 곤란한지 목소리가 작다. 요코는 이마를 짚은 손을 연신 꼼지락거렸다. 전해야 할 소식이 지나치게 절망적이다.




“미안해요, 지금 바로 XX병원으로 와야 해요.”




택시 기사는 뒷좌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목적지를 이야기한 이후로 넋이 나간 손님에게는 안 좋은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 아니라면, 저렇게 슬픈 얼굴일 리 없으니까.




‘조산입니다, 수술 전망은…… 좋지 않아요. 하지만……’




색을 잃어버렸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전부 잿빛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음악에는 가사가 없다. 혹시 꿈은 아닐까? 우리의 현실이 이리도 끔찍할 수가 있을까? 리에프는 전화를 넘어온 가녀린 음성이 내뱉은 말들을 억지로 되뇌었다. 수술, 조산, 미지수, 확률…… 지독히도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어떤 부분을 야쿠와 연결시켜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데 코앞에 닥친 현실은 잔인하게 종용한다. 갑작스런 타격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불안을 이기지 못해 쿵쿵 울리는 박동을 막으려 목을 눌렀다. 잠시뿐이다. 제 기억 속 고양이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리자 내내 억누르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웃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탓이야.

새벽에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도맡게 된 리에프는 근래 과로에 시달렸다. 집에서 힘든 내색을 지우는 건 쉬운 일이었다. 현관에서 반갑게 매달리는 무게를 느끼는 것만으로 고단함이 잊혔으니까. 동화책 읽어줄래? 곁에 다가앉자 익숙하게 허벅다리를 베고 눕는다. 익살맞은 눈이 어서 읽으라고 재촉했다.




‘그 때였어요, 숲 속에 성난 사…… 야쿠상, 너무한 거 아니에요?’


‘뭐가?’


‘읽어달라고 해놓고, 지금 핸드폰 게임 하는 거예요?’


‘계속해, 레이는 재미있게 듣고 있을 거야.’


‘네…… 숲 속에 성난 사냥꾼 리에프가 나타나 고양이를 공격했어요, 뽀뽀 공격이었어요!’


‘뭐? 으아, 하하하! 간지러워!’




뺨을 깨물었더니 목을 끌어안는다. 행복에 겨운 웃음이 귓가로 흩어졌다.

그러나 어제는 날이 좋지 않았다. 협력하던 부서의 담당자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겼고 그 책임이 고스란히 리에프에게 전가되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를 조아리고 죄송하다는 말하기가 싫고 화가 나더라. 한껏 짜증이 난 채로 몇몇 동료와 술자리를 가졌다. 야쿠에게 안겨 투정하고 싶었지만 저를 위로한답시고 어깨를 두드리는 이들을 내치기도 힘들었다. 밤늦게 집에 도착했다.




‘으, 술 냄새! 피곤하지도 않아?’


‘모리 여보다─’




들러붙는 사자를 억지로 방으로 이끈 야쿠는 그를 던지다시피 침대로 밀어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리에프는 정말 무겁다. 헉헉거리면서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섰다. 널브러진 회사원이 팔을 휘저으며 여보를 찾는다. 겨우 넥타이와 양말만 벗겨냈는데, 그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일부러 멀찍이 걸터앉았더니 반쯤 뜨인 눈초리가 따라온다.




‘나 싫어요? 술 마셔서 싫어요?’




픽 웃으며 일어난 야쿠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아니라고 하는데도 의심스러운 표정이다. 그럼? 하고 묻듯이 손을 잡아당기기에 못 이기는 척 문뱃내 나는 가슴팍으로 쓰러지면서,




‘그래도 좋아.’




대답했다. 그제야 헤벌쭉 웃더니 눈을 감는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리에프의 주사는 애교 수준이고 야쿠는 그가 잠든 뒤에 짐볼을 가지고 놀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술 냄새가 싫어서 등을 지긴 했지만 취한 리에프가 싫은 건 아니었고 내일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걱정과 안쓰러움 속에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번쩍 눈을 뜬 야쿠는 마치 잠들지 않았던 것처럼 선명한 의식에 의아하며 몸을 일으켰다. 배가 고픈가? 속이 허하다 못해 쓰려서 자연스럽게 침대를 벗어났다. 어둠 속을 밝히는 냉장고 불빛이 오롯하다. 과일이나 냉동 케이크 등 당장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끌리지 않았다. 냉장고를 닫고 부엌의 조명을 켰다. 까치발을 들고 선반을 손으로 쓸다가 라면을 채어 내린다. 물이 끓는 동안 고양이는 엉덩이까지 실룩거리면서 야식을 만끽했다. 먹음직스러운 라면이 담긴 사기그릇을 놓쳐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쨍그랑!




‘어? 리에프, 그게……’




상황 파악이 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침실에서 뛰쳐나온 리에프는 야쿠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국물 바닥에 널려있을 그릇 조각에 다치기라도 할까 봐 절로 나온 행동이지만 놀란 야쿠에게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깨워서 미안하다고 배가 고팠다고 어리광을 부리려던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로 뒤로 밀려났다.




‘뭐 하는 거예요, 이 시간에!’




순간적으로 오싹해진 등골에 식은땀이 베이는 게 느껴진다. 야쿠에게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날카로운 마찰음 뒤로 이어진 최악의 상상이 리에프의 화를 끌어올렸다. 왜 나한테 성질이냐고 따져 물을 줄 알았던 야쿠는 웬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깜짝 놀라 얼어붙었다. 부주의한 제 잘못인 건 알지만 이 시간에 배고픈 것도 서러운데 라면도 못 먹고 사자한테 혼나기까지 하니까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어디 다친 덴 없는지 묻지도 않고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걸 보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깨우든가 하지……’




‘뭘 깨워…… 배불렀다고 라면도 못 끓이겠어? 그냥 미끄러진 건데……’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잘못 엎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미안해, 내가 치울게.’




맞은편에 쪼그려 앉은 귀가 새빨개진 것을 보고야 리에프는 완전히 잠에서 깼다. 이런 걸로 야쿠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기가 막혔다. 되는 일이 없다.




‘이리 나와요.’




손목을 잡으니 야쿠는 별다른 말없이 그에 따랐다. 국물이 튄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향하는 길목에 바닥을 치우느라 성난 등이 있어 살금살금 움직였다. 다리에 물을 끼얹는데 곧 리에프가 따라 들어와 손을 씻는다. 뒤뚱뒤뚱. 리에프는 도망치듯이 나가는 야쿠를 붙잡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못 자고 또 나갈 생각에 한숨이 난다. 사회생활이 괜히 힘들다는 게 아니다. 원래의 저라면 지금쯤 삐친 여보를 위해 새 라면을 끓이거나 졸졸 쫓아다니면서 어떻게든 화를 풀어줬을 것이다. 애초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허나, 여유를 잃은 회사원 리에프는 그러지 않았다. 침대 끝에 딱 붙어있는 어깨로 팔을 뻗으려다가 아까 소리친 것이 민망해서 다시 거두었다. 내일도 옆에 있을 사람이라서 그리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퇴근길에 야쿠가 좋아하는 망고 주스를 사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희미해질 리 없는 사람이었다. 리에프는 바짓단을 꽉 쥐었다.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자꾸 앞이 캄캄해지는 걸 견딜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고인 눈물이 눈꺼풀을 데울 양 뜨겁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경과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산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기는……’




유리벽으로 차단된 공간에 죽은 듯이 누운 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가냘픈 몸에 버겁게 이어진 기계들. 창백한 뺨을 어루만지고 싶은데 리에프의 손이 닿은 건 차가운 유리다. 춥진 않을까? 이대로 눈을 뜨지 않으면 어떡해요? 내가 미워서 깨어나기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묻는 이도, 답하지 않는 이도 불분명하다. 푹 꺼진 환자복 아래로 드러난 가는 발목, 커다란 바늘이 꽂혀 있는 팔, 실핏줄이 터져 거무죽죽한 뺨까지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게 없다. 세게 누르고 있지 않으면 벅찰 정도로 가슴이 아려서 그는 이따금 탄식처럼 신음을 뱉었다. 야쿠의 숨결이 꿈만 같다. 따뜻한 눈동자를 마주 보고 웃던 것이 거짓처럼 어렴풋하다.




“실례지만, 나가셔야 돼요.”


“아, 여기에 있으면 안 될까요? 안도 아닌데……”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중환자실 바로 앞 의자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남자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급히 고개를 든 리에프는 그 그림자가 야쿠이길 바랬던 양 티 나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요코는 쓰게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든직하게 가족들을 위로하며 깨어나지 않는 야쿠를 지키더니 지금은 다른 얼굴이다. 충혈된 눈이며 갈라진 입술이 윤기를 잃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다. 손에 난 손톱자국이 그의 두려움을 여실히 내보이고 있어서 그녀마저 심장이 떨렸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을 거예요, 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여기 있어봤자…… 하이바, 들어가요. 당신까지 약해지면 안 되는 때에요.”


“그래도…… 좀 불안해서요.”


“모리스케는 괜찮을 거예요.”




의외로운 일이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쾌한 알림이 울리고 곧 문이 열린다. 현관을 디딘 구둣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리에프는 어둠에 잠식되어버린 집에서 생소한 감정을 맞닥뜨렸다. 지독한 상실감. 세상의 모든 불행이 제게 닥쳐온 것은 아닐까?




“다녀…… 니다……”




어서 와! 불 꺼진 집 어딘가에서 당장이라도 이름을 불러줄 것 같다. 안 들어오고 뭐해? 그는 기꺼이 환청을 따랐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서늘한 공기를 밟으며 불을 켜자마자,




“아…… 으윽…… 흡……”




무너진다. 우리는 괜찮지 않다. 지금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다. 리에프는 행복한 잔상이 가득한 곳에 홀로고, 야쿠는 냉랭한 곳에 덩그러니 누워있다. 바닥나지 않을 것 같던 애정도 우리를 잇던 ‘행복’을 잃으면 무용지물이다. 바닥에 선명하게 새겨진 핏자국 앞에 주저앉은 그는 가슴을 뜯으며 오열했다. 떨어지는 눈물에도 상흔이 흐려지지 않는다. 지켜주지 못 했다. 야쿠 모리스케가 깨어나 현실을 마주했을 때, 절망은 두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옆에 선 남자는 무력하게 가진 전부를 잃겠지.











사흘 만에 듣는 목소리는 차분했다. 회의 중이었지만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급히 빠져 나온 리에프는 회사야?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하고 벽에 기대어 고개만 주억거렸다. 나 일어났어. 기다렸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목이 메어서,




“네, 네……”


‘울지 마.’


“네……”




멍청하게 답했을 뿐이다. 끝이 갈라진 음성에 어린 물기를 숨길 수 없었다. 너머로 들리는 울음에 숨죽이던 야쿠는 운전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야쿠상!”




허공에 놓였던 시선이 벌컥 열린 문으로 향해진다. 왔어? 리에프는 억지로 발을 옮겨서 침대로 다가갔다. 다리에 추라도 달린 듯이 걸음이 무겁다. 다짜고짜 핼쑥한 뺨에 손을 대본다. 손바닥에 감기는 보드라운 감촉. 생생하다. 야쿠는 진짜인지 가늠하는 그에게 응하려 손을 겹쳐 잡았다. 걱정했구나. 허리를 숙여서 야쿠의 어깨에 턱을 기댄다. 단단한 느낌이 전혀 없는 몸이 부서질까 경직된 팔이 어정쩡하게 둘러졌다. 부드럽게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너른 어깨가 크게 들썩거린다.




“얼마나 무서웠냐 하면…… 텔레비전 채널에 공포 영화밖에 없는 거, 그 만큼이었어요……”




야쿠는 엷게 웃었다. 깨어나자마자 리에프가 없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마음을 갈무리할 시간이 없었다면 모진 말로 상처를 줬을 거다. 사랑스러운 그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원망을 말했을지 모른다. 수척한 몰골로 치자면 사자는 이제 막 의식이 돌아온 저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정도로 엉망이다. 그걸 보니 응어리진 마음이 잘 숨겨졌다.




“밥은 먹었어?”


“당연하죠.”


“거짓말.”




가만히 안겨있던 야쿠가 리에프를 살짝 밀어냈다.




“레이…… 보러 갈까?”




리에프는 짤막한 머리카락이 눌린 뒷모습을 내려다본다. 움츠러든 몸이 ‘신생아 집중치료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유리창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쏠려 있다. 어쩐지 낯설다. 야쿠가 울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찜찜하고 조마조마하다. 절뚝절뚝하는 걸음을 쫓는 리에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우리는 레이를 만날 수 없었다. 링거바늘을 빼기 전에는 감염의 우려가 있어 아기를 직접 볼 수 없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간호사를 붙들고 아기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가 다른 미숙아에 비해 건강한 편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나 보다.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곤 멀거니 선 리에프에게로 돌아왔다. 야쿠는 난처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를 빤히 본다.




“못 본대……”




어쩔 줄 모르겠다. 눈시울이 붉어진 리에프가 서둘러 야쿠의 뒤로 가 어깨를 감싸 안는다. 마주하고 있었다간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았다. 왜 그러는지 묻지도 않고 헐렁한 환자복에 덮인 손이 그의 팔을 꼬옥 붙잡는다. 그러곤 그저 분홍색 담요가 덮여있는 인큐베이터에 달린 명찰을 보고 있을 뿐이다.

레이는 32주 만에 세상에 나왔고, 체중은 고작 1.9킬로그램이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응급환자’가 되어 수술실 앞을 지키고 있던 가족을 지나쳤다고 한다. 이틀 간 의식이 없던 야쿠는 여덟 달 동안 품고 있던 아기를 보지도 못한 채다. 우리에게 이렇게 가혹해도 되나?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 하다가 리에프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넌 봤지? 어때?”


“예뻐요, 작고……”




코에 연결된 수유 관이나 주사 바늘 꽂힌 손등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리에프는 담당 의사에게 들었던 말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인큐베이터에 언제까지 있게 될 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고, 그 동안은 언제든 응급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늘어놓을 수 있을 리 없다. 휠체어의 손잡이를 끌었다. 부축을 받아 그에 앉은 야쿠는 영 어색한지 병실로 돌아가는 내내 휠체어가 싫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리는 나약하다. 그래서 마음껏 울지도 못 하고 서로에게 잘 견뎌내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등이 눈에 든다.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다가섰다. 모리, 하고 부르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석양에 살만 데우고 있다. 길어진 해가 보랏빛으로 부스러진다.




“몸은 좀 어때?”


“좋아요, 아픈 데도 없고.”


“오전에 진통제 달라고 했다며?”


“아, 비밀이라고 했는데…… 진통제 맞았더니 괜찮아졌어요.”


“얼굴 보여줘.”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얼굴에 무심하리만치 표정이 없다. 울고 있을 줄 알았어. 뚝뚝하게 중얼거리자 야쿠는 살짝 웃었다. 침대에 놓여있는 정장 재킷과 가방은 리에프의 것이겠지. 진작부터 유명 인사였던 이 반류 커플은 여전히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요코는 오늘만 해도 중종이 지극정성으로 경종을 보살피더라, 아기는 아직 인큐베이터에서 못 나온다더라, 둘이 죽고 못 사나 보더라 하면서 속닥거리는 것을 목격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못 들은 척 돌아섰다. 리에프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병원에 와서 야쿠가 잠들고 나서야 돌아간다. 주말에는 내내 병실을 지키고 앉았고 집에는 잘 가지도 않는다. 다리가 뻗어 나오는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웅크리고 자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 원래 야쿠에게만은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지. 하지만, 어딘지 이질적이다.




“오늘도 밥을 거의 안 먹었네, 다시 죽으로 바꿔줘?”


“입맛이 없어요.”


“재미있네.”


“내가 입맛이 없다는 게 그렇게 웃을 일이에요?”


“누구라도 웃었을 거야.”


“리에프는 눈물을 글썽이던데요?”




요코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침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리에프다. 병실의 문 높이가 아슬아슬하다고 고개를 꺾는 사람은 저이밖에 없을 거다. 그는 요코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고는 작은 냉장고에 물통과 음료 몇 개를 집어넣었다.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간식을 꺼내서 야쿠와 그녀 사이에 놓더니 자연스럽게 옆에 걸터앉는다. 요코는 리에프가 바나나 맛이 나는 쇼트케이크의 포장을 뜯어 야쿠의 작은 손에 쥐어주는 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착각인가?




“다음 주엔 퇴원해도 되겠다.”


“그냥 있으면 안 돼요? 레이랑 같이 나가고 싶은데……”


“병원이든 집이든 면회 시간이 30분인 건 바뀌지 않아.”


“그래도……”


“하이바 생각도 해줘, 매일 여기로 퇴근하고 있잖아.”


“아……”


“저, 전 괜찮아요.”




착각이 아니다. 우물쭈물하다 야쿠와 눈이 마주치자 허둥거리기 바쁜 리에프를 본 요코가 한숨을 뱉었다. 야쿠는 어느새 벽을 보고 있다. 요즘엔 허구한 날 엉겨 붙어 있던 모습을 통 볼 수가 없었다. 유능한 의사여도 마음의 병에는 답이 없다. 갈게. 그녀는 답답해진 공기를 참지 못 하고 병실을 나섰다.

리에프는 급히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고 옷가지를 건다. 내쳐지지 않으려 안간힘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썼다. 지금 야쿠는 사자를 돌아볼 여력이 없다. 한계에 서서 레이만을 바라고 있는 것만으로 벅차다. 땅에 붙다시피 한 간이침대의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가 들린다. 자고 갈 셈인가.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


“네, 야쿠상은요?”


“별로.”


“의사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아기 양말 가져갔었다고……”


“추워 보여서……”


“인큐베이터 안에 체온 유지 장치가 있어서 괜찮대요.”


“응.”




양말을 신겨주려다가 저지당했다. 아기는 여전히 작고 빨갛다. 리에프를 쏙 빼닮아서 코가 오뚝하다. 어떤 날은 이상한 보호막을 머리에 쓰고 있고, 어떤 날은 눈 옆에 쭈글쭈글한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얼마나 순한지 우는 건 한 번도 못 봤다. 눈동자도 사자를 닮아 녹색일까? 사실 아직 눈을 뜬 것도 본 적이 없다.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있는 전화로 하품을 했다, 몸무게가 늘었다 전하는 소식은 점점 많아지는데 정작 저희가 만나러 가면 레이는 잠만 잔다.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리에프의 손길이 느껴진다. 야쿠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보니 리에프가 저녁이나 챙겨 먹었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병문안을 왔던 쿠로오가 그더러 네가 환자냐고 야단하더니 밥을 먹여 돌아왔다. 오늘은 그의 식사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

리에프는 한참 동안 색이 바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손이 닿을 거리에 있는데 가깝지가 않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해도 거리감이 적나라하다. 함께여도, 대화를 나누어도 속이 텅텅 비어있어서 도저히 따뜻해지지 않는다. 안아주고 싶어도 그럴 자격을 잃어서 망설이다가 놓치게 된다. 무서워요. 나 좀 봐줘요. 침대에 얼굴을 묻은 리에프의 억눌린 울음소리가 들리는데도 야쿠는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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