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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순정의 가치 19

섹스피스톨즈 AU



























언제나 현관에 나와 있던 야쿠가 없는 집을 한 눈에 담으면서 서둘러 구두를 벗어 던졌다. 어디 있어요? 묻는 말에 여기! 하는 대답이 멀다. 좌우로 늘린 목에서 뚝뚝 소리가 난다. 어느덧 출퇴근에 익숙해졌지만 아직은 답답하기만 한 양복을 차례차례 벗어 개어놓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살겠네. 온 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비로소 마음이 자유롭다. 집이 제일 좋다니까. 그 중에서도 고양이가 있는 집은 최고의 안식처다. 휘적휘적 거실로 나온 그는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여니까 이제 막 속옷을 끌어내리던 고양이가 질색을 한다.




“왜 들어와!”


“새삼스럽게 뭘 그래요? 밥은?”


“쿠로오가 왔었어.”




애매하게 걸려있는 속옷을 잡아당겼다가 손등을 꼬집혔다. 도와줄게요.




“또 저번처럼 불끈하려고?”


“약 올리는 겁니까?”




근래에는 미끄러질까 봐 욕조 이용을 삼갔다. 레이의 만만찮은 무게 때문에 요코도 거듭 주의를 줘서 물을 멀리했고 매번 리에프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헤헤…… 그럼 오늘은 반신욕 좀 해야겠다.”




리에프가 내민 칫솔을 받아 들었다. 꽁무니에 사자 캐릭터가 붙어있는 해괴한 칫솔이다. 심지어 사자 머리가 커서 칫솔걸이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심부름을 시켰더니 이런 걸 사와서는 야쿠가 양치를 할 때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리에프는 정말 그렇게 된 게 분명하다. 물이 받아지는 틈에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이를 닦았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장난하는 모습이 참 그들답다. 안 해도 된다니까! 이제 임신에 대한 거라면 전문가 수준인 리에프가 사뭇 진지하게 온도계를 욕조에 담근다. 야쿠는 유난이라고 야단하면서도 싫은 눈치가 아니다. 눈 하나 까닥 안 하는 리에프가 제 티셔츠를 꼭 붙든 손을 잡아챘다. 조심하라고 중얼거리면서 등을 받치는 팔에 의지해 물이 찰랑이는 욕조로 발을 디딘다. 아아, 따뜻해. 나른해지는 표정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사자가 꼬리를 흔들면서 그 곁으로 쪼르르 다가앉았다. 그런 그가 귀엽다는 듯이 야쿠는 물기 어린 손가락으로 아래턱을 쓰다듬는다.




“머리도 감아야죠?”


“해주게? 나야 좋지만…… 피곤하지 않아?”


“누가 그냥 해준대요?”




자. 한 쪽 뺨을 내민다. 야쿠는 그에 입술을 대고 키들키들 웃었다. 상쾌한 치약 냄새가 베인 숨결이 간지럽다. 뻔뻔하게 고개를 돌려 반대쪽에도 뽀뽀를 받아낸다. 마지막이라며 눈을 감은 리에프의 귀를 잡아당겨 콧잔등과 입술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장난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진득하기에 어깨를 밀어냈다. 사자가 혀를 내어 입맛을 다신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회식이라더니.”


“저녁만 먹고 끝났어요, 갑작스러운 자리여서 사람도 적었고……”




야쿠의 머리맡에 걸터앉아 분홍빛이 된 몸을 내려다본다. 온전히 내 것일까? 가끔은 곁에 있어도 욕심이 난다. 머리카락이 짧아서 힘들일 것도 없이 거품을 내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긴 손가락이 조금 엉성해 보인다.




“다행이다, 일은? 바빴어?”


“음…… 말하기 싫은데……”


“무슨 일 있었어?”


“주문서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회사를 말아먹을 뻔 했어요.”


“뭐?”


“천만 원을 일억으로 만드는 게 쉬운 일이더라고요, 다행이 보내기 전에 알았는데……”


“혼났어?”


“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지만 실수 때문에 울적했던 게 틀림없다. 제게 한 눈망울을 피하는 눈초리가 한껏 처져 있었다. 그는 심각한 것 같아서 야쿠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신입사원 리에프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정도면 약과야.




“나는 회사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법인카드 잃어버렸어.”


“헉! 야쿠상, 심해.”


“죽을래? 아무튼 난생 처음 멍청하단 소리도 들어보고…… 집에 와서 술 마시고 울었어.”


“풉…… 귀여웠겠다.”


“귀엽긴, 회사에 불 지르려고 했는데?”


“하하,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아.”


“그 때는 해결하겠다고 며칠을 고생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누구나.”




처음이니까 괜찮아. 머리카락을 헹구는 손에 기대 눈을 감으면서 야쿠는 어른스러운 말투로 리에프를 위로한다.




“너무 기죽지 마, 대신 다음부턴 조심해.”


“멋있어, 사랑…… 으앗, 바지 다 젖었다!”




제 팔에 턱을 괸 야쿠는 허둥지둥 발을 구르는 리에프를 보며 함소한다. 웃옷도 이미 절반이 물에 젖어 살에 달라붙은 걸 보고 놀려댔더니,




“받아라!”




샤워기를 들어 물을 뿌려댔다. 미쳤어? 쏟아지는 물줄기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치는데 그는 유치하게 에베베베 약을 올린다. 손에 잡히는 거라곤 샤워 볼이 전부고, 힘껏 던졌지만 리에프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야쿠가 분한 마음에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별안간 꽥 소리를 낸다.




“아! 나 엉덩이, 엉덩이!”


“모리!”


“쥐! 쥐나…… 히잉……”




못 살아!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쥐를 달고 산다고 핀잔하며 수건이란 수건은 다 꺼내서 바닥에 펼쳐놓는다. 제 딴에는 미끄러지면 안 되니까 하는 일이지만 잘 했다고 하기엔 참 고생스러운 수다. 빨래는 다 누가 하냐며 칭얼거리는 야쿠에게로 펄쩍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지금 빨래가 문제에요?”


“왜 네가 성질이야?”




인상을 찡그린 채 느릿하게 뻗어지는 야쿠의 팔을 잡아당겨 제 목에 두르게 했다. 다급히 안아 올린 와중에 제 어깨를 깨무는 야쿠가 얄미워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은데 두 손이 자유롭지 않아 보복할 수가 없다. 에잇! 대신 안은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야! 크게 버둥거린다. 하지만 다시금 퍼지는 고통에 곧 얌전해졌다.




“레이, 리에프는 바보야. 그리고 멍청이, 똥개야……”


“야쿠 모리스케가 훨씬 나빠.”




레이가 듣고 있다면 아빠들은 사이가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험난한 목욕이다. 수건을 쌓아 올린 바닥에 앉혔다. 허리에서 다리로 내려가는 따가운 통증에 눈물이 다 났는지 야쿠가 훌쩍거린다.




“자꾸 몸 생각 안 하고 움직이니까 그렇죠.”




꾸짖으면서도 리에프는 허리를 숙여 붉은 눈가로 입술을 내린다. 이럴 때마다 왠지 제 잘못인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축축한 욕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용서를 비는 양 고양이의 허리춤을 주물렀다. 야쿠는 산책이랍시고 쿠로오를 역까지 데려다 준 것을 후회하는 중이다. 리에프가 회사원이 된 후로 근처에서 일하는 그가 자주 식사 상대가 되어주기에 심한 말은 삼가도록 하겠다. 리에프의 자상한 손 밑에서 쓸모없는 상념에 빠져 있던 야쿠는 문득 벌거벗은 몸이 부끄럽다. 은근슬쩍 손에 차이는 수건 하나를 끌어당겨 가렸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말 걸지 마.”




리에프는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낸다. 일어날 수 있겠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벽에 걸린 가운을 가져와 손수 입혀준다. 사회선배로서 충고를 한 뒤였다는 걸 감안하면 참 민망한 상황이다. 허나 이런 보살핌은 그들로 하여금 애정을 샘솟게 한다. 야쿠는 머리칼을 닦아주는 팔에 매달렸다. 추워. 이를 딱딱거리니까 화들짝 놀란다.




“바르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요!”




야쿠의 손에 오일을 쥐어주고는 엉덩이를 두드렸다. 절뚝거리며 나가는 뒤로 빨리 오라고 보채자 사자는 크게 웃었다. 금방 야쿠가 있는 침실로 쫓아온 얼굴에 피곤이 가득하다. 리에프는 이불 위에 널브러져있는 둥근 언덕 옆에 벌렁 드러누웠다. 공기를 물들인 싱그러운 향이 퍼진다.




“죽겠다! 눈 감으면 바로 잠들 것 같아.”


“빨리 자자.”


“몸 차가워요, 이리 와.”




이불을 들어 꾸물거리는 몸을 재촉한다. 야쿠가 돌아눕자 자연스럽게 등을 끌어안은 리에프는 제 다리로 차가운 발을 문질렀다. 야쿠는 몸을 단단히 얽는 팔에 얼굴을 묻는다. 서로를 빈틈없이 포개어 안은 둘은 살며시 눈을 감는다. 잠이 쏟아진다.




“요코상은 별 말 없었어요?”


“응, 딱히 이상한 건 없다고 했는데…… 원래 반류는 임신하는 것도 힘들고 출산해도 한 동안은 안심할 수가 없대.”


“레이는 괜찮을 거예요.”


“걱정 안 해, 우릴 닮았으면 엄청 튼튼할 걸?”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숨소리가 엷어질 때까지, 경각에 무의식이 된 부드러운 갈기가 뒷목을 간질일 때까지 기다린다. 여러 가지 이유로 깊은 수면을 할 수 없게 된 야쿠가 좋아하는 틈이다. 리에프가 제 곁에서 최대로 안심한 채 잠드는 시간. 두툼한 앞발을 살살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은색 털이 달빛을 받아 윤슬을 만들어낸다. 네가 없었다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아기의 몫까지 커질 외로움을 홀로 떠안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마 못 했을 거야. 절망의 늪에서 레이를 잃어버렸을지도 몰라. 소중한 존재로 자라지 못했겠지. 야쿠는 리에프의 품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배를 껴안았다. 포근해.



그 날,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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