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너 정말 뚱뚱하구나. 안간힘을 쓰며 방문에 귀를 대고 있던 야쿠가 제 배를 밀듯이 문지른다. 결국 자세를 바꿔서 문에 등을 기대었다. 차단된 방에서 간간이 리에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중하게 되묻거나 알겠다고 답하고 있다. 괜스레 저가 다 긴장이 되어 침을 꿀꺽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 이심전심이랴. 뱃속 아기가 꼬물꼬물 움직인다. 쉿!

리에프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임이 분명하다. 길게만 느껴졌던 학기가 끝나자마자 리에프는 망설일 것도 없이 취업을 준비했다. 교수님 한 분이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셨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야쿠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최종 면접까지 보게 될 줄 몰랐으니까! 졸업까지는 아직 1년이 남은 그를 만류했음에도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솔직히 서운했다. 방학 내내 함께 아기 방도 꾸미고 운동도 다니고 이것저것 준비할 계획으로 들떠있었는데 당장 면접에 합격하니 멀게만 느껴지던 그의 입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걸 실감했다. 결국 성격상 속에 담아두지 못 하고 당장 거리에 나앉을 처지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저를 혼자 두는 거냐고 버럭 화를 내버렸다.




‘누가 너한테 돈 벌어 오래? 필요 없어!’




텔레비전을 가로막으며 소리친 고양이에 놀라서 튀어나온 하얀 뭉치 귀가 쫑긋 섰다가 사라졌다. 놀랄 만도 하다. 서류를 넣을 때나 1차 면접까지는 한 마디도 않았고, 나란히 앉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성화한 것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싸움에 불이 붙기도 전에 리에프가 항복을 선언했지만 말이 좋아 항복이지,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야쿠를 굴복시킨 셈이다. 그는 씩씩거리는 고양이를 끌어안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달래듯이 뒤뚱뒤뚱 몸을 흔들면서 웃는데 거기에 대고 계속 열을 냈으면 바보가 된 기분이었을 거다. 아아─ 모리스케─ 하고 아양을 떠는 어깨에 박치기를 했다. 시끄러워! 답지 않게 유치한 말만 하게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더니 다리 사이에 절 앉혀 놓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이런다고 풀릴 거면 애초에 삐쳤겠냐? 싶어서 뚱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반지 사주고 싶어요!’


‘뭐?’


‘야쿠상한테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지금은요, 여기 널려있는 젤리도 제 힘으로 사줄 수가 없어요.’


‘안 먹어…….’


‘거짓말.’




리에프는 픽 웃었지만 야쿠는 웃지 않았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빠 리에프를 이해하다 못해 완벽히 이입해버려서 마음이 아프다.




‘저도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어요, 방학하면 놀러 갈 데도 생각해놓고…… 그런데 정말 좋은 기회에요, 잘해보고 싶어요.’




쓰게 돌아보는 야쿠의 턱을 부드러이 잡아 고개를 숙인다. 오래도록 입을 맞추었다. 손을 겹치고 이따금 숨결 앞에 기억나지도 않는 시시한 말을 엮으면서. 야쿠로서는 그가 무리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회생활이 얼마나 녹록하지 않은지 잘 알기 때문이다. 잘 됐으면 좋겠다만 한편으로는 떨어져도 나쁘지 않다고 몰래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최종 면접 때에 열렬히 응원을 해주긴 했다. 전날 잠이 안 오는지 자꾸 뒤척거리기에 팔베개를 해주면서 그가 안심할 때까지 괜찮을 거라고 속삭여주고 가슴도 토닥거려주었다. 잠이 쏟아졌지만 참고 참아서 끝내 리에프가 잠드는 걸 보고야 눈을 감았다. 그뿐인 줄 알아? 정신없이 씻고 준비하는 틈에 정장 재킷안쪽 주머니에 선물도 넣어 놓았다. 이 정도면 할 만큼은 했지?




‘여―보! 끝났어요!’


‘야, 야! 구두부터 벗어! 어땠어? 분위기는 괜찮았어?’


‘네, 하나도 안 떨었어요!’


‘정말? 잘했어, 잘했어.’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올려 반듯한 이마가 도드라진다. 야쿠는 수트를 차려 입은 리에프가 가방을 집어 던지며 제 품으로 뛰어드는데 새삼스럽게 가슴이 뛰어서 혼났다. 앳된 느낌이 지워지니 어깨도 더 넓어 보이고 전에 없던 분위기까지 장전이다. 남들 앞에선 헤실헤실 웃지도 않을 텐데 그럼 더 멋있어 보일게 뻔하다. 젠장! 왜 이렇게 잘 생긴 거야? 속으로 다시 한 번 불합격하라고 빌었다.




‘모리 여보, 뭐하고 있었어요?’


‘그만해…… 두 번 다신 안 써줄 거야.’




첫 면접에는 별로 긴장하지 않았는데 최종이라는 말이 붙으니 벼락 맞기 직전인 것 같았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다리를 떨고 있는 리에프에게 야쿠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머니]




얼른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지다가 안쪽에서 손에 걸리는 무언가를 찾아냈다. 아기의 초음파 사진, 그 아래에 「나 돈 많아, 걱정 말고 파이팅♥ – 모리 여보 –」 쓰인 메모를 내려다보던 그는 소란스러운 군중 속에 허리를 숙였다. 코끝이 찡해질 만큼 좋아서 자기소개서를 쥔 채 덜덜거리던 게 언제인가 싶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야쿠가 또 파자마 단추를 다 풀어헤치고 있었지만 잔소리보다 손이 먼저 뻗어진다. 포옥 껴안고 작은 얼굴이며 머리카락에 쪽쪽거렸다. 그만하라고 이마를 꾹꾹 밀어내는 손에도 입술을 내밀었더니 까르르 웃는다. 입술도 맞았다. 이렇게 든든한 모리 여보 덕분에,




“야쿠상! 붙었어요! 다음 주부터 출근이에요!”




합격했습니다.




“와, 리에프! 잘했어! 네가 안 될 리가 없지!”




벌컥 문을 열고 나온 리에프에게 와락 안겨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주었다. 기특해라! 다음 주부터 출근 잘 해! 무심코 함께 기뻐하던 야쿠가 그의 팔에 휘둘리면서 일순 멍해진다. 출근? 출─근? 출근!














“소화 안 되거나 그런 증세는? 슬슬 숨이 찰 수도 있는데.”


“속이 쓰릴 때는 있는데 아직 숨 찬 건 모르겠어요, 그보다 제 얘기 들었어요?”


“슬슬 조심해야 돼, 천천히 걷고……”


“진짜 걱정이라니까요! 지금까지 연락도 없고, 사고라도 친 거 아냐?”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요코가 옆에 있는 찻잔으로 손을 옮긴다. 검진은 나 몰라라 하고 백사자의 첫 출근 이야기로 야단인데 도무지 뭐라고 대꾸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하이바 리에프가 회사를 갔다니 이게 말이나 되냐고 묻는데, 그녀로서는 어깨를 으쓱거릴 수밖에. 야쿠 눈엔 마냥 사랑스러운 아기 사자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어엿한 성인이다. 심지어 덩치도 크고 가끔 대화를 나눠보면 의외인 점도 많다. 엉뚱한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저가 흥미 있는 사항에는 꽤 심도 깊은 지식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를 허투루 봤던 요코는 몇 번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야쿠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리에프가 누구한테나 멍청하게 웃어주고 간이며 쓸개며 빼줄 것 같이 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하긴, 이런 건 야쿠가 알 수 없고 굳이 알 필요도 없겠지만. 걱정스럽게 푸념을 늘어놓는 그에게,




“그래? 내가 보기엔 너보다 나은데? 그다지 어린 애 같지도 않고.”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일축해버렸다. 그녀가 맨몸으로 바닥에 누워있지 말랬지? 덧붙이기에 야쿠는 덥다고 중얼거리면서 옆에 있는 셔츠에 은근슬쩍 팔을 꿴다.




“정신적으로 말이에요, 집이랑 회사는 다르잖아요! 요코상은 걔가 얼마나 여린지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덩치만 컸지, 물러 터져 가지고.”


“글쎄…… 그건 야쿠 한정 아닌가?”


“네?”


“제3자로서 말할게, 하이바는 약하지 않아, 오히려 가끔은 위협적이야.”




쓸데없는 걱정 말고 축하한다고 전해 줘.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멀어진다. 야쿠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따라 느려터진 시침 궁둥이에 채찍질이라도 하고 싶다. 지옥으로 들어간 리에프에게서는 종일 연락이 없다. 밥은 잘 먹었는지, 혼나진 않았는지 보낸 메시지에도 답이 없고. 야쿠에게 그는 아직 기대고 싶다기보다 안으로 품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어린 연인이다. 엄한 데에 내놓기엔 불안하다. 침실로 향하는 걸음에 힘이 하나도 없다. 아침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낮잠 시간마저 놓쳤더니 급격히 피곤해졌다.




“레이, 아빠 보고 싶지?”




괜스레 리에프의 베개를 귀 옆으로 당겨 놓고 눈을 감았다. 이불로 배를 꽁꽁 감싸주는 서툴지만 애정 어린 손길이 벌써부터 그립다.

그 시각, 어느 디자인 회사의 한 사무실에 빳빳이 등을 세운 신입사원이 보인다. 끌끌하게 웃고 있는 사원증의 증명사진과는 달리 경직된 얼굴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 가운데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다리를 떨기도 하고 요리조리 힐끔거리면서 눈치를 보기도 한다. 두꺼운 매뉴얼을 세 번째 읽고 있다. 금방 오겠다던 선임은 몇 시간 째 그를 방치해서 리에프는 졸지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오전에 배운 것들을 다시 수첩에 정리하는데, 아까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던 것들이 처음 보는 것처럼 이게 뭔가 싶고 너무 빨리 지나간 부분은 뒤죽박죽 적혀 있어서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엉망진창이네.




“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점심까지만 해도 넘치던 의욕이 시들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제 자리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동기 한 명은 아직 자리가 정리되지 않아서 응접실에 우두커니 앉아 벌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시스템이라도 익혀보려고 마우스를 붙잡았지만 ‘권한이 없습니다.’란 문구 앞에 좌절하고 마는 사자다. 핸드폰은 왠지 들여다봐서도 안 될 것 같아서 진동이 울렸을 때 가방에 넣은 뒤로 꺼낸 적이 없다. 보나마나 야쿠일 것이다. 그는 출근 전날까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아직 어리다느니 내공이 부족하다느니 걱정을 늘어놓았다.




‘해내면 되잖아요!’




종반에는 아직도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가 싶어서 조금 신경질을 냈다가 아차! 했다. 허나 주먹을 날리거나 서운해 할 줄 알았던 야쿠는 의외로운 포옹으로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네가 다른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 들을까 봐 그래, 생각만 해도 싫어…… 분명 있을 거란 말이야, 넌 당연히 실수할 거니까.’


‘당연히라니, 너무한데요?’


‘처음인데 어떻게 실수를 안 해? 그게 더 이상하지, 어쨌든 누구나 그런 거니까 상처받으면 안 돼.’




내 사람이 타인에게 받는 상처, 생각만으로도 진저리가 난다. 사랑 받고 있구나. 리에프는 새삼 감동해서 야쿠가 팔뚝을 꼬집을 때까지 껴안은 어깨를 놓아주지 않았다. 잘 포장된 가죽 수첩이랑 펜까지 받았을 때에는 눈물도 날 뻔 했다. 고양이가 보고 싶다. 아침에는 어디 멀리라도 보내는 양 시무룩해져서는 기껏 하는 말이 안 가면 안 되냐는 거였다. 힘이 쭉 빠져서 헛웃음을 뱉었더니 그런 소리를 한 게 저도 머쓱했는지 입 꼬리를 늘려 히죽 웃더라. 귀여운 웃음소리를 떠올리니 굳어있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야쿠 앞에선 달고 사는 웃음이 이곳에선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계속 억지로 웃었더니 눈가에 경련이 일 지경이다. 이제 와보니 야쿠가 왜 그리 노심초사였는지 알 것도 같다. 겨우 몇 시간인데, 벌써 숨이 막힌다. 나중에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건네는 말마다 신경을 써야 하고 도통 갈피를 잡기 어려운 업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천지 차이다. 지금은 하는 것도 없이 시간만 헤아리는 게 전부라 더 불편했다. 피곤해. 집에 가고 싶다.




“리에프!”




퇴근 시간에 휩쓸려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 전철역을 빠져 나오던 리에프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양 손에 망고 주스를 들고 있는 야쿠가 보인다.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왜 나와 있어요? 오래 기다렸어?”


“레이가 당장 망고 주스를 먹지 않으면 발로 찰 거라고 했어.”


“야쿠상이 먹고 싶었던 게 아니고요?”




보잘것없는 우스갯소리가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낯선 공간에서 이만큼 절실한 게 없었다. 야쿠는 고단했다는 말도 없이 망고 주스를 받아 드는 리에프를 안쓰러운 눈길로 쓸어본다. 열심히 했나 보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역시 이 집이 주스를 잘한다니까요! 너스레를 떨기에 손날에 묻은 펜 자국은 눈 감아 주기로 했다.




“수고했어.”




얼른 들어가서 밥 먹자! 허리를 감싸오는 작은 손을 제 손으로 덮으면서 리에프는 가슴이 먹먹하다고 느꼈다. 존재의 이유. 다들 이렇게 버티고 사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 아등바등 애를 쓴다.




“피곤하지?”


“아니요!”




그들의 행복이 내게도 고스란하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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