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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순정의 가치 15

섹스피스톨즈 AU



























임신이란 정말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론,




“짜증나.”




그렇다.

지금 야쿠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앞에선 리에프가 답답한 가슴을 친다.




“화났어요? 갑자기? 왜 그러는지 말을 해야 알죠!”


“지금은 말하기 싫어, 리에프!”


“무슨 일 있었어요?”


“하이바 리에프, 나가.”


“네, 네.”




터벅터벅 불만이 가득한 발소리 끝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이어진다. 이불자락을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진다. 야쿠는 배가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숨을 쉬었다. 안면 홍조와 피부 트러블이 심기를 어지럽히는 나날이다. 갑자기 이마에 오돌토돌 잔뜩 올랐다가 사라지더니 그 다음엔 왼뺨, 입가, 하다못해 콧등이 그렇게 되었을 땐 진짜 눈물이 날 뻔 했다. 바보 리에프가 쓸데없이 좋아하는 홍조는 어떻고? 아무 때나 불쑥 두 뺨에 올라오는 발간 동그라미. 호빵맨이냐고 놀린 리에프가 입술로 앙앙 물기에 옆구리에 호빵 펀치를 날려줬다. 아기가 자라 몸이 변하니 하릴없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기분이 울적하다. 운동도 안 나가고 종일 빈둥거리다가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 제 꼴이 가관이었다. 뻗친 머리카락, 불그스름한 볼, 울퉁불퉁한 피부에 펑퍼짐한 공주 잠옷, 늘씬한 적이 없던 것처럼 부푼 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특히, 이틀째 감지 못해 기름진 머리가 끔찍했다. 불현듯 요즘 리에프에게서 귀엽다든가 예쁘다든가 하는 간지러운 표현을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시험 기간이라 붙어있을 시간이 없었다는 걸 고려할 여유가 없다. 피하지 않고 마주쳐 오는 거울 속 밤색 눈동자가 싸늘했다. 야쿠는 슬며시 그 눈을 피해 애꿎은 배를 두드렸다.




‘나 못 생겼어?’




묵묵부답. 힘껏 발로 찰 땐 언제고 누굴 닮아 이리도 눈치가 빤한지 아기는 숨죽인 채다. 하긴 고양이 아빠의 불편한 심기를 누구보다 뚜렷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으, 피곤해! 힘을 줘요, 호빵맨!’




아무래도 리에프의 눈치를 닮은 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학교에서 느지막이 돌아온 그가 야쿠를 보자마자 외쳤다. 코앞까지 한달음에 서느라 축 처진 어깨 위 시무룩한 입술을 알아챘을 리가 없다. 그의 기준에서 호빵맨이 멋있든 귀엽든 전부 알 바가 아니다. 지금 야쿠의 머릿속에 그려진 호빵맨은 그저 홍조가 촌스럽고 터진 머리에서 칙칙한 팥이 흘러내리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하지 마. 표정만큼이나 살벌한 목소리였는데 귀여운 애인 놀리는 재미에 푹 빠진 이는 듣지 못 했다. 뜨끈뜨끈한 볼을 주무르는 큰 손을 몇 번이나 뿌리쳤지만 힘으로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상황은 단숨에 역전되었다.




‘하지 말라고!’




천진난만한 눈이 끔뻑거리는 걸 노려보던 야쿠는 힘껏 리에프의 발등을 밟고는 돌아섰다. 어리둥절하다. 뭘 잘못했지? 리에프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지만 걸리는 게 하나도 없다. 문이 닫혀버리기 직전에 겨우 모서리를 붙들었다. 급히 몸을 둥글린 야쿠가 파고 든 이불더미 옆에 슬그머니 걸터앉아 저기, 하고 말 꼬리를 늘이는데 나가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얼굴 보고 얘기하자며 이불을 휙 잡아당겼다가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발길질에 어깨를 얻어맞는다. 나가라니까!




‘화났어요? 갑자기? 왜 그러는지 말을 해야 알죠!’


‘지금은 말하기 싫어, 리에프!’


‘무슨 일 있었어요?’


‘하이바 리에프, 나가.’


‘네, 네.’




너무 심했나? 싶다가도 제 속도 모르고 실실 웃던 낯을 떠올리자 울컥 화가 치민다. 나가란다고 진짜 나간 것도 짜증나잖아. 실은, 계속 버티고 들러붙었어도 싫었을 거다.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외모를 따라 심성까지 못나게 쓰고 나서 더 기분이 나빠졌다. 한숨으로 채워진 공기가 답답해서 이불을 턱 아래로 끌어내렸다.




“나간 줄 알았죠?”




문 앞에 서 있는 리에프를 마주한 야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어정쩡하게 일으켜진 무거운 몸이 제 무게를 못 이겨 기우뚱했다. 푸하하! 저가 나갔다고 믿고 홀로 구시렁구시렁 꼼지락꼼지락 하는 꾸러미를 오래 지켜보며 참았던 웃음이 길게 이어졌다. 나가는 척 고양이를 속이는 데 성공한 녹색 눈동자에 장난기가 그득하다.




“하하, 금방 알아챌 줄 알았는데!”


“…….”


“뭐가 그렇게 짜증…… 헉!”




순식간에 함소가 가셨다. 후다닥 무릎을 꿇어 앉아 눈높이를 맞춘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제 심장도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리에프의 얼굴빛이 창백해진다. 뒤늦게 심상치 않은 야쿠의 상태를 알아챈 것이다. 괜한 심술을 부릴 때부터 낌새를 차렸어야 했는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빗방울처럼 주르륵주르륵 흐르는 눈물이 꾹 다물어진 입매에 고인다. 그 모습이 낯설어서 리에프는 평소처럼 눈물을 닦아주거나 안아줄 수도 없었다. 언어가 되지 못한 어, 어, 저 따위의 음성이 허공을 방황하는 손과 어우러진다. 야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직접 눈물이랑을 지워냈다. 옆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리에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멈추지 않는 눈물을 손등으로 담담히 닦아낼 뿐이다. 젖은 뺨이 따끔거린다.




“울지 마요. 응? 진짜 무슨 일 있었어요?”


“…….”


“말 안 하면 모르는데……”




눈가를 찡그리자 천천히 시야로 들던 손이 황급히 사라졌다. 남의 속도 모르고 장난만 치더니 지금은 안절부절 못하고 납작 엎드린 리에프가 밉다. 서로의 어느 것도 이해하기 힘든 시간이다. 야쿠가 자주 울기나 하는 사람이면 모르겠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게 분명한데 짚이는 건 없고 리에프는 미칠 노릇이었다. 차라리 아까처럼 소리라도 질러줬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야쿠는 울기만 하고 그는 이불 끝만 만지작거렸다. 버겁게 불은 배에 붉어진 눈가며 뺨이 죄다 가여워서 그 또한 울고 싶어졌다.

이심전심. 야쿠는 저대로 리에프를 불쌍히 여겼다. 솔직히 그는 잘못이 없다. 아니, 있긴 있는데 크진 않다. 이상한 타이밍에 폭발해버린 눈물샘에는 많은 이유가 쌓여 있었다. 임신으로 인한 빈혈이나 부종처럼 가벼운 것부터 혼자 리에프를 기다리는 시간의 쓸쓸함이나 출산에 대한 두려움처럼 묵직한 이유까지. 아, 참! 아까 머리를 감다가 샤워기를 놓쳤는데 배 때문에 바로 잡아채지 못한 것도 한 이유였다. 한참 동안 끙끙거리며 물벼락을 맞아야 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왜 그러냐고 물어도 제대로 내놓을 답변이 없어서 고개만 저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고양이를 놀려댄 것이 죄라면 죄였지만 창피해서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죄목이다.




“호빵맨이라고 놀려서 그래요?”


“어흑……”


“아니, 아니, 아니에요! 으아, 미안해요!”




다시금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당황에 리에프가 무릎을 세운다. 그게 아니라고, 호빵맨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했어야 되는데 솔직한 울음이 쏟아졌다. 리에프는 야쿠의 얼굴을 가슴팍으로 끌었다. 화가 누그러졌는지 밀어내지 않는다. 울지 마요. 진중한 목소리를 내느라 입가 근육에 힘을 줘야 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짓궂은 웃음기는 지우지 못 한다. 생각이 들리진 않을 테니 리에프는 안심하고 그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했다. 얼마나 싫었으면 이렇게 펑펑 울까? 계속 빨개지는 볼이나 피부에 생긴 티끌을 신경 썼었나 보다. 아기를 가지면 오감과 감정, 모든 신경이 예민해진다지만, 평소엔 어떻게 약 올려도 진심으로 화나게 만들기 어려운 사람이라 놀라웠다. 가끔 이렇게 허를 찌른다. 리에프는 오늘도 속수무책이다. 천하의 야쿠 모리스케가 대책 없이 귀여울 때마다 어쩔 줄 모르겠다.




“진짜 호빵맨 때문이에요?”


“아냐.”


“미치겠다.”




허리를 당겨 무작정 얼굴을 들이밀었다. 뽀뽀할 기분 아니야, 라며 질색을 해도 어쩔 수 없는 걸. 불가항력을 피력할 말주변이 없어서,




“미안해요, 너무 좋아. 예뻐 죽겠어.”




거듭 말하면서 어디든 가릴 것 없이 입술을 떨어뜨렸다. 고작 예쁘다는 한 마디와 입맞춤에 기분이 나아진 데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 야쿠는 공연히 불평한다.




“너, 싫어.”


“거짓말.”




짜증난다고 읊조리는 목소리가 여전히 눈물에 잠겨 있다. 하지만, 속눈썹에 매달린 마지막 물방울은 리에프의 입술이 앗아가 떨어지지 않았다. 코를 킁킁거리기에 콧물을 닦아주려 하자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 피한다. 간신히 웃음을 참으면서 품에 안긴 머리에 턱을 기댔다. 미처 몰랐는데 씻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머리카락에 물기가 어려 있다. 한기가 돈다. 감기 걸릴라. 더 붙어있고 싶지만 옷부터 갈아 입혀야겠다는 판단에 그의 어깨를 살짝 밀어냈다.




“버, 벌써 공부하러 갈 거야?”




몸을 다 일으키기도 전에 야쿠가 소매를 콱 붙들었다. 저가 잡아놓고도 놀란 모양인지 그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옷만 가져올게요.”




리에프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방을 나섰다. 진짜 내 잘못이잖아.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서 야쿠가 매일 운동도 나가고 밥도 잘 먹어서 저도 모르게 안일해졌나 보다. 그리고 저이는 늘 괜찮다고 말하니까. 이 넓은 집에 우두커니 앉아 아기에게 도란도란 말을 걸면서 제 귀가만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하니 느닷없이 심장이 요동친다.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질서 없이 한 데 섞인 옷 사이에서 품이 크고 두툼한 티셔츠 하나를 꺼낸다. 원래는 비슷한 색끼리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던 서랍장이다. 야쿠는 지저분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것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힘들어졌구나.




“야쿠상, 손들어요.”


“줘, 내가 입을게.”


“한번만!”


“그 놈의 한번만은.”




툴툴거리면서 팔을 올린다. 젖은 옷을 벗기자 그가 몸을 움츠렸다. 추워요? 응. 씻고 오일 발랐어요? 아니. 꼭 발라야 된다니까. 까먹었어. 오늘따라 리에프의 잔소리가 길다. 이불로 꽁꽁 감싸주고는 바디 오일을 가지러 가버렸다. 평소 같으면 귀찮다며 진작 새 옷을 입어버렸을 테지만 오늘은 얌전히 리에프를 기다리기로 한다. 애정 어린 보살핌이 필요한 때였다. 바보야! 서둘러 돌아온 사자는 커다란 손바닥에 넘치게 오일을 짜서 혼이 났다. 간지럽다며 몸을 비틀거나 은색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통에 침실이 소란하다.




“가만히 좀 있어요, 빨리 해야 된단 말이에요!”


“내가 할게! 간지럽, 히익!”




감기라도 걸릴까 봐 서두르는 와중에도 정성껏 피부를 문지른다. 아기야, 고양이를 울려서 미안해. 둥근 배 가운데, 당겨진 배꼽을 툭툭 건드리자 야쿠가 아마 자고 있을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깨우지 말라고 덧붙이는 끝에 얕은 웃음이 뒤따른다. 야쿠에게 옷을 입혀주는 건 좋아하는 일이어서 오일을 바르는 것보다 수월했다.




“눈이 엄청 부었어요.”


“나도 느껴져. 웃기지?”


“아니요, 귀엽기만 해.”


“웃기시네! 눈이 웃고 있잖아.”




새침하게 리에프를 흘겨보고 싶었지만 퉁퉁 부은 눈꺼풀이 도와주지 않는다. 집게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야쿠의 뒤로 향한 두 손이 목덜미와 등을 받쳐 침대에 눕혔다. 그림자 진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진다. 잘 시간이잖아요.




“너는 지금 안 잘 거지?”


“어? 완전 아쉬운 표정.”


“아니거든!”


“잠들 때까지 옆에 있을게요.”




얼른 가서 공부나 하라느니 혼자 자도 상관없다는 말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여 야쿠의 입을 막았다. 겹쳐진 팔의 피부가 촉촉하다. 기분 좋아. 부드럽게 입술을 문지르고 혀를 섞었다. 리에프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눈물을 보이지 않아도, 굳이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를 진정으로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어른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었다면, 어떤 이유로도 핑계를 대기는 무리다. 그보다 우위인 것은 없으므로.

야쿠는 강하게 얽는 손길에 미소를 지었다. 맞물린 입술의 말랑말랑한 감촉, 손으로 느껴지는 단단한 뼈마디, 리에프의 전부가 그를 안심케 한다. 이부자리에서 며칠간 서로에게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렌지 가격이 올랐다거나 옆집에서 넘어온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았다거나 하는 시시콜콜한 얘기다. 이마에 엉겨 붙은 머리칼을 정리해주자 시험지 뒷장을 늦게 봐서 곤혹스러웠다고 칭얼거리던 리에프가 산드러지게 웃었다. 그 얼굴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서 머리를 감싸 안자 부른 배에 뺨을 기댄다. 사랑한다는 속삭임이 살결을 간질였다. 

앞으로 겪게 될 무수한 갈등의 실마리는 늘 애정 뒤에 숨어 있을 것이다.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언제나 열쇠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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