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들이 모여 둥지를 틀었다.  밤새 함박눈이 내리고 이제 막 그친 참이다.  신이 난 까치들이 날갯짓을 하자 삐죽한 가지 아래로 다시금 눈이 내린다.  반짝반짝.  햇볕을 흡수한 결정들이 보석처럼 빛났다.  숲 속 3층 집의 지붕도 여과 없이 두터운 눈 이불을 덮은 채다.  벅벅 플라스틱 빗자루로 정원의 눈을 쓸던 백현이 심드렁한 눈으로 하얀 숲을 살핀다.  얼마 전부터 수상한 낌새가 느껴져 예의주시하고 있는 그이다.  야행성이라 이건가? 중얼거리는 입술에,




“명중!”




새까만 눈썹을 비죽 올리고 웃는 경수를 흘기며 얼굴을 터는데 또 다른 눈덩이 하나가 그의 뒤통수로 날아든다.  어쭈!  오랜만에 내린 눈에 신난 건 비단 까치뿐만이 아닌가 보다.




“진돗개 처치, 헤드 샷입니다.”


“오세훈, 도경수, 해보자는 거냐? 아악!”




허둥지둥 주저앉아 눈 뭉치를 만들어 보지만 미리 여러 개를 만들어 두었던 다람쥐를 이길 방도가 없다.  로봇처럼 백현을 공격하는 그를 보면서 실실 웃던 세훈이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눈을 둥글리고 있는데 별안간 그의 주변에 눈보라가 친다.  순식간에 눈사람이 된 이는 모습에 걸맞게 굳어버렸다.




“끄아앙! 종인아, 잘했어!”




해맑은 웃음 소리에 빠드득 이가 갈린다.  방금 뒷발질로 눈을 헤쳐 저를 파묻어버린 말의 등허리에 앉아있는 종대가 한 마디 덧붙였다.




“금연한다면서 또!”




“… 그렇다고 눈을 끼얹어?”




항의는 들은 체도 않고 검은 갈기를 쓰다듬고 있다.  히이잉, 종인이 종대와 함께 웃는다.  세훈은 한기를 털어내고 눈바닥에 떨어져 불이 꺼져버린 꽁초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았다.  몇 개 안 남았는데.  우리 선생님이 너른 도화지를 한 장 가져와서 이름이 적힌 칸에 새해 목표를 쓰라기에 달리 생각나는 게 없어 마지못해 쓴 것이 ‘금연’이라는 단어였다.  제각기 다른 글씨체로 삐뚤삐뚤 채운 그 종이가 거실 한복판에 붙게 되었고 이후 담배를 피울 때마다 목격자들에게 잔소리 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특히, 종대는 잔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담배를 뺏으려다가 데이고, 라이터를 숨기거나 하는 행동파라서 이에 질린 세훈은 담배를 끊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도 새해 목표에 관해서라면 저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겨울잠에 빠져 있는 곰보다는.  찬열은 천진난만하게 ‘종대에게 1순위 되기’라고 적었다가 혼쭐이 났다.  방긋 웃으면서 위염이나 낫고 오라는 의사 선생님의 일침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목표는 ‘건강이 최고’가 되었으니까.  픽- 곰을 비웃은 그는 고개를 들었다.  다그닥다그닥 눈밭을 산책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종대와 종인, 얽히고설켜 한 덩이가 되어버린 백현과 경수, 이보다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힘이 남아도나 봐, 쟤들은.”




옆에 선 준면이 일부러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낸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휴일이 오랜만이라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 동안 크리스마스, 방학, 명절까지 더해져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다.  평일에도 돌아가면서 일손을 도우러 왔어야 될 만큼.  다음 월급 들어오면 호랑이 기운을 솟아나게 할 칡즙이나 사다 줘야겠다고 세훈은 되뇌었다.  그나저나 호랑이의 목표는 뭐였더라?




“그러게, 민석이 형은 좀 어때?”


“자겠지, 일부러 안 들어가봤어.”


“겨울만 되면 코빼기도 못 본다니까.”


“어쩔 수 없지, 뱀이니까.”


“박찬열은?”


“걘 배고프면 기어나올 걸?.”




눈은 진돗개와 늑대에게는 기쁨을 주지만 뱀, 곰, 다람쥐에게는 쥐약이다.  단, 혈기왕성한 도경수 다람쥐는 제외하고.  부족해지는 먹이 때문에 겨울잠이 필요한 곰은 영양분이 부족할 일 없으니 찬열은 버릇처럼 잠이 늘어난 것뿐이고 문제는 뱀이다.  기온 변화에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는 몸인데 겨울이라고 인간의 삶을 내팽개칠 수도 없는 처지여서 쉬는 날이면 꼼짝 않고 방에 틀어박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느새 눈에 파묻혀 다 죽었어! 소리치고 있는 다람쥐를 가리키며 저건 돌연변이인가? 묻는 준면에게 세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형, 새해 목표 뭐였어?”


“나? 우리 여행 가는 거.”


“아아.”




그거라면 이뤄주기 쉽겠다.  성공률이 미지수인 제 목표는 미뤄두기로 한 세훈이 날아오는 눈을 피하며 계획해 본 적 없는 여름 휴가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고 보니 여행이란 거, 저희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하하아하, 장이씽이다!”


“으악!”


“입 다물고 웃어요! 눈 들어가잖아요!”




정원에 있는 아름드리 나뭇가지에 숨어 있던 이씽이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나무 아래 모인 네 명의 머리 위에서 발을 굴렀다.  펄쩍펄쩍 나뭇가지들을 뛰어다닌 끝에 쌓여있던 눈이 몽땅 흩날린다.  순식간에 눈사람이 된 종대가 눈을 퉤퉤 뱉으며 찡찡거린다.  경뚜야, 살려줘!




“내려와, 원숭이. 죽인다.”


“도망간다아!”


“김종인, 지금 변하면 어떡해! 얼어 죽고 싶냐?”


“어어…… 깜짝 놀라서.”


“빨리, 말, 말! 나 좀 등에 태워, 장이씽 잡으러 가게.”




소란스럽게 숲 속으로 몰려가는 이상한 조합을 보며 준면은 그나마 찬열이 자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저기에 소동 일으키기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반달가슴곰마저 껴있었다면 고요한 숲에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쾅!’




어라라?




“나만 빼고 어디 가는 거야!”




2층에서 스스럼없이 뛰어내린 육중한 몸이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이들의 뒤를 따른다.  토실토실 엉덩이.  끔뻑끔뻑 두 눈동자만 굴리고 있던 준면과 세훈은 곧 서로를 마주보았다.




“… 무슨 일 나진 않겠지?”


“에이, 종대도 있으니까……”


“그 인간이 제일 문제인 것 같지 않아?”


“좀…… 그렇지?”


“젠장……”


“갑자기 오한이…… 에취!”




아니나 다를까?




“도대체 우리가 왜 지금 새끼 멧돼지들 밥을 먹이고 있는 거야?”


“헤헤…… 미안하다니까요.”


“꾸에엑!”




제 손에 들려있던 배춧잎을 잽싸게 채가는 멧돼지를 어이 없다는 듯 눈으로 좇는다.  집 안 꼴이 가관이다.  소파나 가구에는 급하게 씌워진 비닐이 펄럭거리고 제각기 몸집이 다른 멧돼지 아홉 마리가 흙 발로 이리저리.  준면은 낑낑거리는 멧돼지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모르고,




“제, 제발...... 울지마, 뱀이 깨면 안 된다고.”




이 사단의 원흉 중 하나인 경수와 이씽은 각각 다람쥐, 원숭이로 변해 일찌감치 커튼 위에 매달려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진돗개는 벌써 세 번째 보물 창고에 저장했던 곡식 따위를 공수해온 참이다.




“허억, 허억…… 작은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이 먹는 거야?”




괜히 돼지겠냐?  채소 더미를 내려놓으며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백현에게 곰이 대꾸한다.  아기 멧돼지들 등살에 쩔쩔 매고 있는 세훈과 준면을 힐끗 넘겨보았다.  짙은 눈썹 사이에 콱 박혀있는 주름으로 미루어보아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큰일났다, 쫓겨나는 건 아니겠지?”


“착한 일이니까…… 봐주지 않을까? 일단 김종대 선생님이 우리 편이잖아.”


“아무리 우리가 반은 짐승이라지만 왠지 요즘 동물 세계랑 교류가 잦네, 하하……”


“김종인한테 앞으로 통역해주지 말라고 하자.”


“쟤가 안 하면 네가 하고 있을 걸? 멍청한 곰아.”


“아니거든!”


“눈을 초롱초롱하면서 이것 좀 전달해 주세요, 하는데 안 해줄 거라고? 네가? 퍽이나.”




한껏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대 흉내를 내면서 백현이 비아냥거린다.  저 쪽에서 마침 아하항, 하지마! 종대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품에 파고드는 멧돼지들에 밀려 엉덩방아를 찧었으면서도 좋다고 까르르.  그걸 보며 찬열이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해달라면 해줘야겠지?  세훈은 엎어진 수의사이자 이웃이자 인간 가족, 이젠 사고뭉치 역할까지 해내는 종대를 일으키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천진난만한 이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참기 위해서였다.




“아! 히잉…… 잘못했다고 했잖아……”




결국 못 참았지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신이 나서 눈밭을 구르고 바짝 언 냇가에 미끄러지고 난리를 치다 보니 지난번 멧돼지 아저씨와 신경전을 벌였던 곳까지 간 것이 문제였다.  겨울날 고요로 물들어있던 숲 속을 깨우는 웃음 소리에 구경 나온 멧돼지들과 안부를 묻다가,




“얼마 전에 새끼 두 마리가 행방불명 되었대요.”




한참 어른 멧돼지들과 마주하던 종인이 옆에 붙어 궁금해하는 종대에게 조곤조곤 일러주었다.




“정말? 어쩌다가!”


“아마 배고파서 마을로 내려갔다가 잡혔거나 죽었을 거라고 하네요.”


“하긴, 오래 걸리긴 해도 이 산은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마을이 나오니까.”


“겨울은 새끼들이 버티기엔 힘든 계절이지.”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나머지 새끼들이 걱정인 어미와 눈이 마주친 종대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괜스레 제 잘못인 것 같아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들에게는 섭리로 여겨지는 모양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발 아래에서 꼬물거리는 어린 것들이 굶어 죽거나 마을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니 너무 안된 일이다.




“뭔가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우리 창고? 팔을 끌어안고 있던 장이씽이 어깨로 기어오르면서 종대의 물음에 답했다.  우리 집에 초대하자는 말을 덧붙이자 모두 앞뒤 재지 않고 좋은 생각이라 여겨버렸다.  눈 놀음의 연장선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만히 있던 경수가 정말 좋은 방법 맞아?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미 종인이 멧돼지에게 새끼들을 초대하겠다는 말을 내뱉었고 그들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해서, 거실을 멧돼지들에게 점령당하게 된 것이다.  종종종종.  꿰엑!  꾹꾹.  꾸에엑!




“배불리 먹였으니 당분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잘 가요!”


“고맙대요.”


“쫑쫑거리는 거 봐, 귀엽다.”


“뿌듯하네.”


“배고파 죽겠어, 빨리 우리도 저녁 먹자!”


“그 전에 청소부터 해야 돼.”


“으아…… 끔찍해.”




억센 갈기에 노을을 앉힌 채 숲 길로 몸을 감추는 멧돼지 무리를 보면서 여덟은 손을 흔든다.  다들 꼴이 엉망진창이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준면이 도끼눈을 뜨며 돌아봤다.  눈치는 빤해가지고 세훈과 경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번쩍 두 손을 든다.  잘못했습니다!




“너희 때문에 명이 준다, 줄어.”


“혀엉, 너무 불쌍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진짜 미안해요.”




오지랖 대표로 종대는 준면에게 용서를 구한다.  제 가슴팍에 비벼지는 머리카락에 저야말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면서 준면은 일부러 엄한 목소리로 벌서고 있는 이들을 혼낸다.  함소 어린 하얀 얼굴이 전혀 혼내는 것 같지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좋은 일이어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해.”




듣는 체도 않고 백현은 어느새 경수의 팔을 잡고 억지로 벌을 세우면서 티격태격하고 곰은 하품을 한다.  잔뜩 피곤한 눈을 한 종인은 세훈에게 기대었다가 꿀밤을 맞는다.  하긴, 큰 잘못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참 착한 식구들이다.  됐다, 됐어.  딱 붙어있는 종대에게 어깨 동무를 하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에휴…… 저녁이나 먹자, 떡국 어때?”


“우와! 김준면 짱!”




풀이 죽은 게 언제였냐는 냥 반달 눈이 웃는다.  그걸 마주한 호랑이도 미소 짓고.  언제나 무른 큰 형이 못마땅한 듯 세훈이 쯧쯧 혀를 찼지만 사실 저였어도 헤벌레 웃는 저들을 당해내진 못했을 게 분명하다.  느릿느릿 뒤처져 걷다 걸음을 멈추었다.  담배 한 대만 피우고 들어가야지.  주머니에서 흰 개비를 꺼내 물었던 세훈은 잠시 눈 앞에 일렁이는 라이터 불을 보고 있다가,




“밥 먹고 피우지, 뭐.”




불 붙이기를 그만두고 손에 있던 것들을 도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괜히 춥다고 중얼거리면서 모두가 들어간 문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더러워진 집이어도 따뜻할 게 뻔했다.





















“선생님, 손 노래졌잖아요. 귤이 그렇게 좋아요?”


“맛있잖아, 겨울엔 귤이지.”


“열 개 넘게 먹었죠? 손 줘 봐요, 킁킁, 귤 냄새 난다.”




속닥속닥.  바닥에 늘어져있는 뱀을 눈 앞에 두고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는 백현과 종대.  하루 종일 꼼짝도 않고 짧은 겨울잠에 빠져있는 민석이 걱정되어 올라온 둘은 옹기종기 모여 소곤거린다.  민석씨, 겨울마다 이래?  네, 그나마 있는 기운도 회사에 쏟고 오니까 집에서는 정신을 못 차려요.  보고 싶다.  근데 오늘 우리가 사고친 거 봤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쓰러졌을 지도 몰라요.  하긴, 그래도 밥이라도 먹고 자면 좋을 텐데.  깼을 때 엄청 많이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부드럽게 웃는 백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면서 종대는 흰 뱀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잘 자요, 민석씨.”




보고 싶어요.  느릿하게 올라갔던 눈꺼풀이 반을 채 뜨지 못하고 다시 감겼다.  아득히 느껴지는 익숙한 목소리들.  민석은 깊은 잠 속에 꿈을 꾼다.  커다란 귤에서 손이 뿅뿅 나타나더니 제 꼬리를 살살 쓸어주면서 잘 자라고 속삭여주는, 그런 우습고 다정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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