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긴.  경수는 샤프를 고쳐 잡으며 중얼거린다.  스탠드 불빛 아래서 홀로 픽 웃어버린 게 머쓱해서 괜스레 책으로 코를 박는다.  숫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문제 위로 번진 핏자국 때문에 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수험생 티 좀 내겠다고 수면 시간을 줄였더니 제 몸은 그게 싫은가 보다.  코피로 반항을 하고 있다.  2주도 채 남지 않은 수능.  꼭 가고 싶은 학교가 있다거나 흥미 있는 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공들인 만큼의 결과가 있길 바라는 건 당연지사.  왼쪽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그 느낌이 싫어서 얼른 눈을 감았다.  점점 더 잦아지는 경련에 컨디션은? 물은 바보 의사 선생님이 봤다면 얼마나 호들갑이었을지 떠올려본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눈을 떴다.  시험이 지나고 나면 숲 속에 틀어박혀 마음껏 빈둥거려야지.  반드르르하게 윤이 나는 눈동자에 웃음이 어린다.

















제 몸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다란 이불 속에서 눈을 뜬 다람쥐는 꼬리 끝까지 힘을 주어 몸을 둥글린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베란다에 앉아 재잘거리는 참새들 때문에 늘 잠이 깨곤 한다.  매일 애벌레에 관한 논쟁이다.  이불 속에서 뻗어 나온 다리.  부스스한 까치집 머리카락.  눈을 비비며 경수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던 속옷과 잠옷을 껴입었다.




“하암..”




입을 쩍 벌리고 연달아 하품을 하며 문고리에 손을 얹는다.  달칵-  몸이 변한 이후로 이 방문의 잠금 장치는 열심히 일하지 않을 때가 없다.  굳게 잠겨있던 문이 열린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적이 사라진 그의 방.  책상과 붙어있는 책장, 침대와 옷장이 전부인 군더더기 없는 방이다.  하지만 옷장 위에 그만의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평지에 보드라운 손수건이 깔려 있고 그 위에는 화려한 색깔의 쳇바퀴 두 개와 블록 모양 이 갈이 나무가 놓여있다.  그리고 인형용 소파와 침대가 가지런한 다람쥐 경수의 방.  이 방을 꾸미는 취미 때문에 대형 마트의 장난감 코너를 오래도록 지나가지 못한다는 후문이다.  잠시 후, 물기 묻은 머리카락으로 들어온 그는 귀찮아, 투덜거리면서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거울 앞에 서 넥타이를 끈을 단단히 조이고 짙은 눈썹을 꿈틀-  거무튀튀한 눈가와 충혈된 눈, 그래도 잘 생겼네.  다녀오겠습니다!




‘학생입니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학교까지 가는 버스에서 운 좋게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어폰을 꽂자 영어 듣기 지문이 흘러나온다.  아침부터 쌓여있는 메시지.  숲 속의 바보들이다.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아냈다.  가끔 살가운 종대의 애정 표현에 동화된 형들이 우습기만 한 경수다.  어디 쯤인가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퍼뜩 몸을 일으키더니 손짓으로 자리를 양보한다.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에 쑥스러워 대꾸도 없이 어깨를 으쓱일 뿐인 잘 자란 청소년이다.  그의 형들이 봤다면 쪼끄만 게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한다며 놀려댔을 것이다.  한 명쯤은 칭찬했을 수도 있고.




“숙제 하는 거?”


“어, 왔어? 넌 했냐?”


“당연히 했겠지, 도경수가 넌 줄 알아?”


“너도 했냐? 그럼 빨리 내놔 봐, 새끼들아!”


“공부 좀 해라.”


“했어, 숙제를 안 한 거지.”


“경수야, 어제 몇 시까지 했어?"


“2시.”


“와, 역시.”


“그래서 얼굴이 매우 X같구나.”


“미친.”




오늘도 경수는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시시덕거리고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마주치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마다 저의 푸석한 얼굴에 대해 한마디씩 했지만 대수롭지 않다.  잠을 못 잤으니 당연한 걸. 

오히려 그 말들이 칭찬처럼 느껴질 정도다.  열심히 했다는 표시가 난다는 거겠지.  쉬는 시간마다 띵해지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야 했어도, 뒷목이 시큰거려도 그는 무시했다.  괜찮은 줄 알았다.  몸이 보내는 위험 경보를 허투루 넘겨버린 근거 없는 자신감은 결국 객기가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고 보충 수업이 시작되기 전, 편한 체육복 바지로 갈아입기 위해서 들어간 화장실 둘째 칸에서 경수는 다람쥐가 되어버렸다.  정신력으로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던 그로서는 쉬이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일이어서 이게 꿈인가 싶다.  눈 앞으로 여러 겹이 되어 쏟아진 옷가지가 암흑을 만들었다.  의식하지 않고 있던 인간의 소음이 예민한 귓가에 울려 퍼진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빳빳하게 선 꼬리.  아무리 집중해도, 변하려고 해도 몸이 변하지 않는다.  일단 밝은 곳으로 나가자.  그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어둠을 빠져 나왔다.  핸드폰이 있으니 누구한테든 데리러 오라고 할 수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 생각은 빠르게 지워졌다.  그나마 믿을만한 뱀이나 늑대는 부를 수도 없는 회사원이라 더 그랬다.  우선 다람쥐는 화장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퍼져 있는 옷들을 힘겹게 뭉쳐서 안쪽으로 밀어 놓았다.  누군가 옷깃을 보고 닫혀있는 화장실 둘째 칸에 호기심을 품었다간 큰일이니까.  옷이 너무 크고 무거웠지만 심장을 옥죄는 긴장감에 정신없이 힘을 썼다.  그럴 수 없는 몸인데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침착하자, 도경수.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리고 진정으로 혼자 남겨지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왜 안 되는 거야..”




반짝거리는 까만 눈에 눈물이 고인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생각나는 거라곤 가족들의 걱정스런 얼굴뿐.  사랑하는 부모님과 숲 속 친구들.  종인을 떠올리자 당장이라도 왈칵 울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경수는 조그만 밤색 손으로 눈가를 문질러버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던 검은 말을 놀려서 벌을 받나 보다.  종인이 형, 그 때 이렇게 무서웠겠구나.  오도가도 못하고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있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최악의 상상 속에 빠진 채, 다람쥐는 몸을 떨었다.

 시작은 저를 찾으러 온 친구나 선생님에게 들킨다면, 하는 것이었다.  이해시키기 어려울 거야, 그 사람들은 나랑 다르니까.  소문 나겠지?  더 이상 학교는 못 다니게 되는 건가?  회사원도 못 해 보겠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됐다가 연구실 같은 데 끌려가서 실험용 다람쥐가 될 수도 있어.  형들에 대한 심문을 하면 어쩌지?  내 앨범에 같이 찍힌 사진들 때문에 용의 선상을 벗어날 수 없을 텐데, 진돗개한테 바보 소리 듣게 생겼네.  아, 엄마랑 아빠한테는 뭐라고 하지?  아무것도 모르시는데, 많이 놀라시겠다.  나도 버림 받을까?  그건 견디기 힘들 것 같은데.




“근데 왜..”




왜 나한테만 이래?  왜 나만, 우리한테만.  자꾸 숨으려고 하는 형들을 한심하다고 여긴 적이 있다.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이미 그들은 경수가 느낀 이 절망을 알고 있는 거다.  그들은 그때부터 하나하나 포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앙증맞은 제 손을 내려다보면서 다람쥐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싶다고.
















문 바깥쪽에서 뻗어 나온 손이 빠르게 경수가 밀어내는 옷가지와 핸드폰을 낚아챈다.  틈새로 보이는 단화를 보면서 잠시 꾸물거리는 다람쥐.  쪽팔려.  몸을 접어 드디어 지옥 같았던 두 번째 칸에서 빠져 나왔다.  언제나처럼 바보같이 웃고 있는 얼굴과 마주하자 안심이 됐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누구 본 사람 없죠?”




퉁명스레 묻자 짧게 그럼, 대답한다. 그리고 두 손으로 저를 안아 코트 안쪽에 품었다.  뛰어온 모양인지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거칠었다.  익숙한 냄새에 다람쥐의 꼬리가 안심한 듯 힘을 잃는다.  경수의 연락을 받은 종대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서둘러 나오다가 화분 하나를 엎은 것이 버스에 올라서야 그랬지, 하고 생각났을 정도로 놀랐다.  어린 다람쥐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제게 데리러 와달라는 오타 투성이 메시지를 보내면서 아이가 가진 자존심이 얼마나 아팠을까?  잘못 없이 가져야 하는 미안함이 얼마나 부당하게 느껴질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저를 대하고 있지만,




“비밀이에요.”




볼록해진 코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작다.  신분증을 돌려받고 교정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다람쥐는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품 속으로 꽁꽁 숨어버렸다.  이 인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쳇.




"잘했어, 경수야.. 거기에서 기다려줘서 고마워."




몸을 둥글게 제 꼬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퐁퐁 흘러 나오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으므로.  그래도, 사라질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었다.  종대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흐느낌을 모른 체 했다.  따뜻한 품에서 다람쥐는 울다 잠이 들었다.  수많은 날들 중, 그냥 흔한, 힘든 날이었다.






















“아직 멀었어?”




잠시만요! 분주하게 오가는 종대를 따르는 눈길.  언제 올 거냐고 보채는 메시지에 부리나케 퇴근을 하고 동물 병원으로 달려왔건만 갈 준비는커녕 졸고 있기에 얄미운 이마에 꿀밤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챙길 게 뭐 그리 많으냐 세훈이 툴툴거리니 멧돼지에게 보낼 연고며 곰의 위염 약 따위를 줄줄이 세며 여전히 손이 바쁘다.  뜨끈뜨끈.  세훈은 베이지색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핫팩을 쥐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탓에 호되게 감기를 앓았던 회사 동료가 조심하라며 퇴근 전에 나눠준 것이다.  겨울이네.




“가방 안에 고구마 있어, 꺼내 먹어요!”




가방 안에 있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는 플라스틱 도시락 뚜껑을 열자 자잘한 껍질 사이 작은 고구마 두 개가가 파묻혀 있다.  오늘 종대의 점심은 고작 고구마였나 보다.  준면이 알았다면 우리 종대, 하면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가서 일러줘야지.  그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저희의 의사 선생님을 위해 또 이것 저것 반찬을 만들어 들려 보내겠지.  식었지만 달큼하기 그지 없는 노란 고구마를 베어먹고 있으니 곧 다가온 종대가 맛있죠? 묻는다.




“밥을 먹어야지.”


“어젯밤에 쪄놓은 게 남아서요.”




가방 안에 두 손 가득 들려있던 것들을 차곡차곡 집어넣고 벽면에 걸려있던 남색 코트에 팔을 끼우는데,




“그것도 입고 가게?”




세훈의 물음에 고개를 내린다.  자주 있는 일이라 종대는 바보같이 웃을 뿐이다.  부랴부랴 흰색 가운을 벗어 의자에 걸고 다시 코트로 손을 뻗었다.  고구마를 입에 문 이가 바보, 라고 중얼거린 것을 못 들은 체 한다.  갈까요?  선생님, 핸드폰 챙겼어?  아, 핸드폰!  저기 있잖아.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거야?”




병원 문을 잠그고 서둘러 제 옆으로 붙은 이의 주머니로 핫팩을 넣어주면서 묻자,




“세훈씨 생각하느라.”


“으..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니까.”


“곰은 좋아하는데.”


“곰은 멍청해서 그래.”




너무해.  곰의 가슴팍에 있는 반달처럼 눈을 휘어 웃는 종대를 따라 웃었다.  사랑스러운 이웃과 함께 숲 속으로 일하러 갑니다.  종대는 무언가를 빙- 둘러싸고 있는 사이로 아무 생각 없이 끼어들었다가 정신을 놓을 뻔 했다.  큰 눈을 반짝이는 원숭이, 주위를 맴돌며 떨어질 것처럼 꼬리를 흔드는 진돗개, 테이블 위에 엎어진 덩어리의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종인이, 열심히 밤을 까는 찬열까지.  이 중심에는 수능이 끝나고 오랜만에 함께인 다람쥐가 있었다, 흉악한 귀여움을 내뿜는 살찐 다람쥐가.




“이 인간 좀 어떻게 해 봐!”




다람쥐가 털을 가시처럼 세우고 앙증맞은 두 손으로 얼굴을 밀어내느라 애를 쓰고 있다.  쭉 내밀어진 입술을 찰싹 때리자 종대가 우는 소리를 한다.  뽀뽀 할래!  날래게 종대의 손길을 피해 커튼을 잡았지만 무거워진 몸이 얼마 못 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준면이 두 손에 가득 차는 다람쥐를 안아 들었다.  씩씩거리는 경수에게,




“살찌니까 사랑 받는구나, 우리 막내.”




라고 말했다가 손가락을 물렸다.  종대가 쪼르르 다가가 준면의 옷 자락을 쥔다.




“제, 제가 안을게요! 제발요!”


“꺼져요!”


“가만히 있을게!”




발버둥치는 다람쥐를 종대의 머리 위에 놓아준다.  묵직하게 짓눌리는 머리카락.  경수가 그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살짝 잡아당기며 명령한다.  앞으로.  오른쪽으로.  앉아.

그저 저와 붙어있는 게 좋은지 종대는 입을 벌리고 가만히 웃으면서 그에 따른다.  준면은 부엌으로 돌아와 볶은 견과류에 꿀을 뿌리면서 조심스럽게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는 선생님과 그 머리 위 다람쥐를 곁눈질한다.  귀여운 모임이네.




“박찬열, 밤 다 깠어?”


“네, 돼지, 아니 다람쥐님.”


“방금 돼지라고 했냐?”


“아니요.”




경수의 귀여움 앞에 무릎 꿇은 찬열이 열심히 깎은 밤 알갱이가 올려진 손바닥을 내민다.




“여기 있습니다, 돼람쥐님.”


“변백현, 물어.”




진돗개가 찬열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난 살찐 다람쥐의 노예다!  뒤엉켜 바닥을 뒹구는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다람쥐.  곡식 부스러기가 얼굴로 우스스 떨어지는데 종대는 까르르 웃고만 있다.  그걸 보면서 세훈은 이마를 짚고 종인은 얼른 핸드폰을 들어 찰칵.  찰칵, 찰칵, 차차차차차차찰칵.  연속 촬영이냐?  종대의 어깨에 매달려 부스러기를 주워 먹던 장이씽이 감탄하듯 돼람쥐, 중얼거렸다가 다람쥐가 던진 밤에 맞았다.  그야말로 꿀밤이다.




“저렇게 살찐 건 처음 보네,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




그러게, 대꾸하고 준면은 땅콩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 동안 수고했다는 말 대신, 우리 집 다람쥐가 제일 좋아하는 꿀 조림을 만드는 중이다.




“그래서, 수능은 잘 봤대?”


“저러고 있는 걸 보면 잘 본 것 같은데?”




종대를 머리카락으로 조종하며 사악한 웃음을 흘리는 다람쥐.  그 아래에서 진돗개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소리 친다.




“패버리고 싶어, 근데 너무 귀여워! 으악!”


“닥쳐.”


“까부는 것도 귀여워! 돼지 같아!”


“닥치라고!”


“오늘 나랑 자자!”


“엥? 곰이랑 자기로 했는데?”




이미 곰과 은밀한 거래를 마친 뒤다.  밤 알맹이와 맞바꾼 하룻밤.  포동포동한 다람쥐가 잠들 침대가 될 생각으로 찬열은 의기양양하게 씨익- 웃는다.  귀여우니까 깔아뭉개버려야지.




“경수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이랑 자야지! 이이잉!”


“맞아, 곰은 아니야! 아아앙!”


“아, 시끄러워! 징징대지마, 둘 다!”




세훈은 우스꽝스러운 쟁탈전을 넘겨보다가 그들의 쪼끄만 왕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고개를 숙여 웃으면서 곰의 손아귀에 잠든 다람쥐를 훔치는 계획을 세우는 늑대다.  엄청 푹신푹신하겠다.

 이 곳의 형들은 힘든 시간을 이기고 돌아온, 살찐 막내를 귀여워해줄 의무가 있다.




“경수 살찌니까..”


“응.”


“되게 맛있게 생겼지?”




아.  이 형, 호랑이였지?  준면의 짓궂은 농담에 세훈은 심드렁하게 참으라고 받아주었다.




“큰일이다, 민석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살찐 쥐인데..”


“야근이라서 다행이네.”


“혹시 우리가 이성을 잃으면 네가 말려줘.”




장난스러운 웃음이 가신다.  난색이 된 세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  진심이었냐?



















빛 바랜 잔디에 맺힌 아침 이슬.  꼬불꼬불한 길로 멀어지는 트럭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배추랑 무랑.  일찌감치 일어나있던 숲 속의 장정들은 앞치마 끈을 동여맨다.  손에 들린 담배개비를 입에 문 세훈은 한 쪽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종인에게로 다가선다.  비몽사몽 엉뚱한 팔 부분으로 머리를 넣으려고 낑낑거리고 있다.  앞치마를 빼앗아 제대로 입혀주는데 담배 냄새 난다고 투덜투덜.  눈이나 뜨고 말하시지.  야무지게 고무장갑을 낀 찬열은 벌써 수돗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식칼을 들었다.




“올해는 몇 포기야?”


“30포기.”


“10포기나 늘었어? 왜?”




식구가 늘었잖아, 얼렁뚱땅 대꾸하는 준면에게 못마땅한 눈길들이 쏟아진다.  늘어난 식구, 김종대 선생님이 많이 먹긴 하지만 김장 김치를 10포기나 늘릴 만큼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일 벌이기 좋아하는 호랑이가 얼마 전에 큰 맘 먹고 장만한 김치 냉장고를 채우고 싶어 벌인 만행이리라.  맏형 민석이 있었다면 질색을 하며 잔소리를 해주었겠지만 그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슬그머니 나무 기둥에 매달리는 작은 손가락들을 올려다보며 찬열이 헛웃음을 짓는다.  딱 걸렸어.  다가가 큰 눈망울 위 짧은 털로 덮인 이마에 턱을 비비며, 좋게 말할 때 배추 날라라.  나무 위에 숨어있을 생각이었던 원숭이는 실패, 읊조리고는 두 발을 땅에 디딘다.  벌레 먹은 배춧잎으로 맨 등을 두드리며 옷 입으라고 성화하는 준면 때문에 쫓기듯 집으로 올라가는 꼴이 우스웠다.  꽃처럼 퍼진 배추를 씻고 다듬고 쪼개고.  둘러앉은 그들은 제법 칼질이 능숙하다.  특히 준면은 평소에도 저가 한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서툰 종인과 장이씽 곁을 번갈아 차지하며 선생님 노릇하기에 여념이 없다.  커다란 배추 밑동을 4등분해서 늘어놓은 찬열이 킁킁 코를 찡긋-  초겨울 아침 공기가 차갑다.  아직 고춧가루는 구경도 못 했는데 찬물에 담가진 손 끝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내년에는 사먹자.”


“제발 좀.”


“그래도 집 김치가 맛있긴 하잖아.”


“젠장.”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앞치마를 신경질적으로 잡아채는 세훈을 위로하는 건 집 안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한 고기뿐이다.  푹푹 삶아져 김이 모락모락 날 고기, 굴을 넣은 김칫소와 함께 노오란 배추 쌈 위에 냠냠.  맛있겠다.




“그나저나, 할 일이 산더민데 슬슬 깨워야 되는 거 아냐?”


“민석이 형 늦게 들어왔잖아, 내버려둬.”


“변백현은?”


“개 팔자가 상팔자.”


“도경수는?”




네 옆에.  찬열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옆에 와있는 다람쥐가 눈에 들어온다.

배에 얹어진 작은 손.  나한테 일 시킬꼬야?  뀨?  동시에 세훈과 눈이 마주친 찬열이 퉁퉁한 몸뚱어리를 발로 밀어버린다.  귀여우니까 빠져.




“김종대는?”




잠자코 있던 종인이 이런 일을 선생님한테 왜 시켜? 묻는다.




“식구라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세훈이 대꾸하자 말문이 막혔다.  식구인 건 맞으니까.  종인이 분한 얼굴이 되어 옆에 있는 준면의 옷깃을 잡아당기자,




“걘 다르지, 소중해.”


“어이가 없네, 우린 안 소중해?”


“거기, 소금 좀 줘라!”




이 곳에서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종대가 있는 3층 침실은 여전히 고요하다.  온기가 갇힌 이불 속에서 뻗쳐 나온 꼬리가 살랑이다가 도로 모습을 감추었다.  해가 중천인데 꿈나라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건 뱀뿐만이 아니다.  기다란 몸이 옆에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품으로 파고들었다.  선생님, 잘 잔다.  뱀이 느긋하게 그의 팔에 턱을 괸다.  맞은편에 네 발을 뻗고 옆으로 누워 자는 진돗개가 보인다.  저건 왜 아직도 자빠져 있어?  잠에서 깨고 보니 소란스러운 바깥이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들려온다.  도마 소리, 물 소리 그리고 웃음 소리.  큰 일거리가 있으니 깨우러 왔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은 걸 보니 어제 야근하느라 늦게 들어온 걸 신경 써준 모양이다.  민석의 방에서 자고 있던 종대와 백현도 덕분에 운이 좋게 되었다.  뒤척거린 종대가 건드린 진돗개의 발에 힘이 들어간다.  두 눈을 멍청하게 깜빡거리다가 저를 보고 있는 뱀과 눈이 마주쳤다.  잘 잤는지 묻는 것처럼 혓바닥을 들이대려다가 뾰족한 이빨에 콧등을 찔리고 만다.  아야!




“침 묻히지 마.”


“몇 시에 들어왔어? 야근?”


“응, 선생님은 언제 오셨어?”


“저녁에. 김장 시작했나 보네, 시끄러워.”


“우리도 얼른 나가자.”




속닥속닥 목소리 사이에 잠이 깬 종대가 두 팔을 뻗는다.  잘 잤어요?  부드러운 털과 촉촉한 비늘을 끌어안았다.  진돗개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턱 끝을 할짝거리고 하얀 뱀이 목에 몸을 감으며 머리카락을 헤집는 바람에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고 있다.  뱀 목걸이를 하고 무거운 진돗개를 두 팔로 힘겹게 안아 내려갔다.  백현의 다리가 어정쩡하게 땅을 짚는다.




“민들레 씨.”




장이씽의 삿대질 덕분에 사방으로 뻗친 머리카락을 알아차렸다.  신이 나서 버둥거리는 개를 놓아주고 종대가 빨개진 얼굴로 허둥지둥 머리를 누르지만 소용이 없다.  민들레 씨앗이라니.  그 가까이에 있던 찬열이 벗은 고무장갑을 옆에 내린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내려주고 얼마나 오래 잤는지 퉁퉁 부은 눈덩이를 쓸어본다.  혀를 날름거린 뱀과도 눈인사를 하고.  못난이가 된 종대의 두 볼을 한 손으로 주무르면서 낄낄거리더니, 잘 잤어? 물었다.




“저건..”




홀린 듯이 종대의 몸을 타고 내려가는 뱀을 둘은 의아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는 몸이 향하는 곳을 알아차리자마자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경수의 몸을 칭칭 휘감는 비늘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답답하게 조여오는 몸통.  민석의 사냥을 처음 목격한 종대가 놀라서 옆에 있는 찬열의 등을 미는데 그는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다들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사람들처럼 구는 사이 살이 밀려 올라가 경수의 목이 두 겹이 되어 있다.  종대가 안심한 건 다람쥐의 한껏 귀찮다는 표정을 본 뒤다.  뱀의 혀가 눈 앞에 날름거린다.




“먹어도 돼?”


“미쳤어?”


“뱃속에 들어갔다 나올래?”


“아이, 답답해! 비켜.”


“힝.. 우리 막내.”




귀엽다-라고 쓰고 먹고 싶다로 읽는다-.  울상이 된 뱀은 신경질 섞인 발악은 들은 체도 않고 입을 찢어 다람쥐의 머리를 물었다 놓았다 반복한다.  먹을까, 말까?  캄캄해졌다 환해졌다 하는 시야에 짜증스러운 한숨이 흘러나온다.  큰 형만 아니었어도 험한 말을 쏟아 부을 텐데.  매끄러운 뱀 밧줄 틈새로 짧은 팔이 뻗어 나와 앞에서 박장대소하는 이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민다.  다람쥐와 뱀은 나머지가 으쌰으쌰 김장에 열중하는 내내 엎치락뒤치락 그 주변을 굴러다녔다.  당장 다이어트 해야겠어, 다짐한 경수는 일주일 만에 다시 홀쭉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형들의 애정은 끝이 없었다.




“다람아, 이것 좀 먹어줘.”


“싫어!”


“살 찌우자, 그 때 얼마나 귀여웠는데! 지금은 먹다 버린 뼈다귀 같아, 흑흑..”


“왜 살 뺐는데도 지랄이야, 귀찮게 하지마!”


“살 쪄라, 짝! 살 쪄라, 짝!”


“준면이 형, 도토리묵 좀 해 봐!”


“안 먹는다고!"




종인은 소파 구석에 몸을 말고 앉아 다람쥐의 전성기 시절-불과 일주일 전-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문 열어, 새끼야.  당장이라도 그 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번 겨울에 그의 식량 창고에 기름진 땅콩을 선물해야겠다.  많이 먹고 더 더 귀여워지라고.
















강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