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모양의 젤리를 잡은 집게 손가락이 날래다.  드러누운 채 입 안으로 떨어뜨린 것을 오물오물.  허리 아래 깔려 있는 온열 패드가 따뜻해서인지 집 안이 조용한 탓인지 다갈색 눈망울에는 잠이 가득하다.  허벅다리에 아무렇게나 말려 있는 담요를 끌어당기면서 고개를 젖혔다.  식탁 아래로 쭉 뻗어있는 두 발에 제 것과 같은 모양과 색을 가진 실내화가 신겨져 있다.  이따금 한 쪽 다리가 흔들거렸다.  방해하면 안 되겠지?  몇 시간째 열심히 과제를 하고 있는 리에프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야쿠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깊게 눈을 감았다.  웅웅거리는 세탁기의 소음이 점차 흐려진다.




“음……”




가슴 위로 더해지는 무게에 인상을 찌푸린다.  더 자요.  팔베개를 해주면서 리에프가 속삭였다.  담요 속 고양이의 몸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그의 다리에 제 다리를 문지르듯 얽으면서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전이되는 체온.  이대로 한 몸이 되었으면,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키들거렸더니 야쿠가 크게 뒤척거렸다.  시끄러워.  다소 신경질적으로 웅얼거린 것과는 다르게 얇은 팔목을 들어올려 은색 머리칼을 부드러이 헤집는다.  리에프는 모자란 사람처럼 헤벌레 웃으면서 닿아있는 몸을 꽉 끌어안았다.  빨래 냄새가 퍼진 집 안이 어둑하다.  잠이 들 때까지만 해도 밝았는데 어느새 땅거미 진 거실로 베란다 빗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몇 시야?”


“7시.”


“많이 잤네…… 과제 다 했어?”


“대충이요, 실은 계속 깨우고 싶었어요.”


“왜?”


“보고 싶으니까.”


“풉…… 느끼해, 저리가.”


“진짜에요!”


“그래, 그래.”




여전히 손을 떼지 않고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던 야쿠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꽤 오랫동안 데워주던 온열 패드와 떨어진 등에 한기가 돌았지만 곧 리에프의 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좀 나아졌어요? 물으면서 그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땀이 베여 촉촉해진 피부를 쓸었다.  괜찮다고 하는데 리에프는 끈질기게 등허리를 꾹꾹 주무른다.  그렇게 한들 가실 고통이 아니지만 말리지 않는 이유는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입덧이 잠잠해지자 요통이 생겼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아기가 커지는 만큼 시시각각 몸이 망가진다.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건 고통을 직접 겪고 있는 이 만큼이나 힘든가 보다.  가끔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볼 때면 알 수 있다.  꼭 안쓰럽거나 걱정스러워 죽겠다는 말을 하는 것 같은 표정이거든.  지금처럼.  그래서, 아픔을 감추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둘째는 제가 가질게요.”


“그러시던지.”


“흘려 듣지 마요─ 방금 그 말투, 나빴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그럼 또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요?”


“저기요, 애초에 두 번째를 허락한 적 없습니다만.”




아직 나오지도 않은 첫째 아가를 사이에 두고 쓸데없는 입씨름이다.  두런두런.  어둠으로 스며드는 두 사람의 소리들.  일단 얘부터 낳고 보자고, 야쿠가 배를 통통 두드렸다.  리에프는 마른 등허리를 누르던 손을 옆구리에 얹고 그의 입가에 입술을 내린다.  마주보고 누워서 둘째를 갖네, 마네 성화일 땐 언제고 연신 쪽쪽거리기에 바쁘다.  배고파요.  나도.  하다못해 저녁 메뉴를 꼽아보면서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장난하느라 그들의 집에 불이 켜진 건 한참 뒤다.  전골을 해주겠다고 나선 고양이 옆에서 채소를 다듬던 리에프가 슬쩍 웃음이 터진 입가를 가린다.  야쿠가 갈아입고 나온 이 파자마 차림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펑퍼짐한 원피스 형태에, 아랫단에는 작은 프릴이 달려 있고 상아색이다.  그의 어머니가 보내온 것인데 둘은 이걸 보자마자 두 말 할 것도 없이 ‘공주 잠옷’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레이스로 짜인 헤드 드레스도 함께 들어있었지만 야쿠가 몇 번인가 발로 차 어딘가에 처박아버려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죽어도 안 입겠다는 걸 조르고 졸라서 한 번 입어보게 했더니 그 뒤로는 제일 좋아하는 옷이 되었다.  촉감이 보들보들하고 가벼워서 이 만큼 편한 옷이 없다나 뭐라나.  뭘 해도 좋지만 공주 잠옷을 입은 것도 참 사랑스럽다.




“아아!”


“변태같이 웃지 마라.”


“알았으니까 발 좀!”




야쿠에게 발가락을 밟힌 리에프가 우스꽝스럽게 팔을 퍼덕인다.  발을 떼자 다시금 올라가는 저 얄미운 입 꼬리.




“맛있게 해줘요, 모리 공주님─”


“국자로 맞아 볼래?”


“그럼 이건 어때요? 맛있게 해주시오, 모리 공주!”




뒤로 와서 어깨를 끌어안고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이죽거린다.  애냐?  야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왕자님, 아기가 있어서 험한 말은 참겠습니다.”




왕자님이래, 귀여워 죽겠다니까.  리에프는 제 가슴에 닿아있는 작은 머리통에 턱을 비볐다.  한 손에 들린 국자, 다른 손으로는 살살 소금을 치는 게 내려다 보인다.  야무진 손놀림이지만 콩깍지 쓰인 그의 눈에는 그저 즐거운 소꿉놀이다.  저리 가!  옆구리로 날아든 팔꿈치에도 꿋꿋하게 등 뒤에 딱 붙어 서서 귓바퀴를 입술로 앙앙 물고 머리카락 끝을 킁킁거리다가,




“야쿠상…… 우리, 부엌에서 야한……”


“가위가 어디 있지?”


“으악, 잔인해!”


“뭐가?”




주방 가위를 들고 쫓는 야쿠를 피해 줄행랑 친 리에프가 욕실로 숨어버렸다.  문 열어!  두드리다가 문에 귀를 댄다.  기척이 없다.  불을 껐다 켰다 하는데도 돌아오는 건 고요.  그러다 벌컥 열려 형형한 녹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번엔 영문도 모르고 돌아선 야쿠가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얼마 못 가 붙잡힌 그는 번쩍 들려 식탁에 앉혀졌다.  식탁 모서리를 짚고 선 리에프가 짐짓 무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장난기 그득한 고양이의 손이 그 위에 얹어지자, 그는 낮게 웃더니 위험하다고 말했다.  가위가 제 자리로 돌아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데 곧 허리를 숙여 다가오는 리에프에 시야가 가려진다.  너의 제 자리는 내 옆이구나.  들춰진 옷이 허벅지 위로 살랑거린다.  까르르 번지던 웃음 소리가 그쳤다.  애정이 꽃일어 전골만 속을 끓일 뿐이다.



























꽉 막힌 도로를 불안한 눈빛으로 살피던 리에프의 무거운 한숨이 차 바닥으로 떨어진다.  왜 우리 일을 멋대로 결정하려는 걸까요?  핸들을 움켜쥔 화기 어린 손을 겹쳐 잡은 야쿠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허나 그 미소 또한 씁쓸해서 큰 도움이 되지 못 한다.  목적지는 상견례였다.  주인공들이 초대되지 않은, 그런.  의도치 않았던 이 만남을 알게 된 건 우연히 앨리스의 전화를 받게 된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리에프가 욕실에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든 야쿠는 화면을 채운 ‘아리사’라는 이름이 그의 누나, 앨리스의 본명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가출한 뒤, 리에프가 가족들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던 그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전화를 받았다.  언제까지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 빨리 명확히 다듬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드디어 받는구나! 너 때문에 돌아버리겠어, 레보치카!’


‘아, 저……’


‘엄마, 아빠가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저기!’


‘너한테 정말 실망이야! 잘될 것도 다 망치게 생겼어, 아기가 태어나면 네 아빠는 멍청이라고 일러줄……’


‘안녕하세요, 야쿠 모리스케에요. 지금 리에프가 씻고 있어서…… 죄송해요.’


‘아, 실례했습니다. 하이바 아리사에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아서 잠시 후회했지만 곧 그녀가 상냥한 목소리로 아기는 잘 있나요? 물어봐 주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했더니 다행이라는 혼잣말이 휴대폰 너머로 전해져서 그마저 위안이 되었다.




‘리에프한테 전화 드리라고 전달할게요.’


‘아, 잠시만요! 혹시 내일 부모님끼리 만나기로 하신 거 알고 계세요?’


‘네? 그게 무슨……’


‘저희 부모님께서 댁에 청하신 일이에요, 리에프가 제멋대로 나가버리고 연락이 두절돼서 화가 많이 나셨거든요.’




이럴 수가!  혼란 속에 통화가 끝나자마자 야쿠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이런 일을 앞두고 일언반구도 없을 분이 아니었다.  모리짱!  밝은 목소리가 예상했던 대로 아기의 안부부터 물었다.  어머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다짜고짜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처음엔 시치미를 뚝 떼시더니 종반엔 사실대로 털어놓으셨다.




‘그 쪽은 상견례가 아니라고 딱 자르더라, 그래서 너한테 말 안 했어. 모리, 신경 쓰지 마. 사자 사위가 아무리 탐나도 널 어여삐 여겨줄 가족이 아니라면 이 쪽에서도 사양이란다.’


‘정말 괜찮으신 거에요?’


‘그럼! 그나저나 언제부터 만난 거야? 임신도 모자라 백사자를 낚다니, 누가 내 자식 아니랄까 봐.’




이미 얻을 건 얻었잖니?  아기를 지칭하는 말이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야쿠는 그녀의 소중한 자식이다.  아기까지 벤 고양이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 것 같은 하이바 가족의 태도에 화가 나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부족할 것 없이 야쿠 가문의 사람이었다.  아무리 선조 귀환에 중종인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우리 집안을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하고 계실 거다.  한층 깊어진 갈등만을 직시한 채 야쿠와 리에프는 소용돌이 가운데 섰다.  서로 다른 이유로 노기 충만한 두 부모가 만나 좋은 이야기가 오갈 리 만무하다.




“그래도 우리가 가면, 좀 낫겠지.”


“제 잘못이에요, 이렇게 미루는 게 아니었는데……”


“됐어, 나도 마찬가진 걸.”


“그래도…… 좋은 분들인데, 저한테 화가 나서 그러신 거에요. 야쿠상 먼저 보여드리고 집에도 가고 그랬으면 이러진 않으셨을 텐데.”




속상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리에프의 입술이 퉁퉁 부었다.  저가 바로잡지 않은 오해들이 좋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입혀버렸다.  아아, 난 역시 애송인가 봐.  야쿠는 상심한 리에프의 손등을 간질이며 몇 번이나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그건 저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이 애와 떨어지게 되면 어떡하지?  너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면의 아득한 공포가 호시탐탐 저를 집어삼키려 한다.  오늘따라 딱딱한 것 같은 배를 쓰다듬으며 그는 강해져야 한다고 되뇌었다.  때때로 일은 일대로 벌여놓고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던 걸 상기하면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이런 생각은 긴장감을 잠재우는 데에 조금 효과가 있었다.  고급 일식 음식점 주차장에 다다라 앞에 선 검은 차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머님……”


“제법 배가 나왔구나.”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자갈 바닥 위에 선 노부인의 흑색 기모노에 윤슬이 인다.  야쿠를 뒤따르던 리에프는 저로 향해진 눈씨에 움칠 했다.  퍼뜩 고개를 숙였지만 몸을 세웠을 땐 이미 뒤돌아선 뒷모습이 보여 제대로 인사가 전해졌는지 알 길이 없다.  재빨리 그녀를 에스코트하려 팔을 뻗었던 야쿠는 단호한 손길에 저지당하곤 뒤로 물러났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가문과 더불어 몇몇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었으니 그에 마땅한 위엄이 흘러 넘치는 분이다.  그래도 아기가 생긴 뒤에는 의기양양하게 마주할 용기가 있었는데, 죄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벌여놓은 일이 있어 그는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입이 두 개여도 할 말이 없다.  얼른 야쿠의 어깨를 감싸 안은 리에프는 그녀의 기백에 몰래 혀를 내두르며, 고양이가 그 동안 왜 그렇게 벌벌 떨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상견례가 아닌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게다.”


“그게……”


“뒷방 늙은이가 되었어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네가 잘못 처신한 덕분에 망신살이 뻗쳤구나, 경종 중에서도 하찮은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오르려거든 제대로 올랐어야지.”




그녀의 말은 언중유골이라,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난도질했다.  분명 무뎌진 고통이었는데 사랑하는 이 앞이라서 새삼 극심하게 차고 오른다.  그에겐 한없이 귀한 사람이었던 저가 한 순간에 바닥을 내보인 것 같아 수치심이 일었다.  고개를 숙이자 눈에 드는 부푼 배, 나의 기적.  덩달아 아기도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켜버린 것 같은 기분에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리에프의 가족들에게도 이런 취급을 받을까 줄곧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어느 정도 외면 당한 게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사자의 애정을 등에 업었지만, 그게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응?  자괴하고 있을 틈을 빼앗겼다.  어깨를 안은 큰 손이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리는 걸 인지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리에프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혼현을 개방시킨 바람에 포효로 뒤바뀐 음성이 귀를 찢을 것처럼 거세어서 주변을 지나던 몇몇 반류가 꼬리가 빠져라 달아나는 게 보였다.  리에프가 달려들 기세로 으르렁거린다.  그만해!  놀란 야쿠가 갈기를 잡아채지 않았다면 그의 기운을 느낀 반류들이 몰려와 구설에 올랐을 것이다.  붉은 꽃이 핀 기모노 사이를 헤쳐 나온 검은 꼬리가 경계하듯 털을 세웠다.  허깨비는 아닌 모양이로군.  반면 할머님의 면면은 가소로운 비소로 물들었다.




“모리, 거기 있는 백사자를 진정으로 갖고 싶은 게냐?”


“네?”


“두 번 묻게 하지 말거라.”




야쿠는 고개를 들어 옆에 딱 버티고 선 사자를 올려 보았다.  참 나, 큰 할머님 앞에서 이 소란이면 어쩌자는 거야?  제 일이라면 앞뒤 잴 것 없이 나서서 말썽을 일으키는 사자가 내뿜는 콧김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한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린 야쿠는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갈무리하고는 대답했다.




“네, 지금은…… 함께 있고 싶습니다.”




역시나.  안내 받은 방 안에 대치하듯 마주 앉은 부모님들 사이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처음 뵙는 리에프의 부모님은 야쿠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큰 키에 돋보이는 서구적인 외모, 말 그대로 리에프 판박이.  혼혈인 어머니는 그렇다 치고 러시아인인 그의 아버지가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했을 때에는 너무 신기해서 솔직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에프는 쪼르르 앉은 야쿠 가족에 흠흠하게 웃었다가 죽을래? 묻는 것 같은 눈빛을 받고는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닮은 구석은 없지만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것만큼은 똑같아서 마치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로시카 같다는 게 그들의 첫인상이었다.




“모리, 너 의외로 외모를 중시하는구나?”


“들리겠어요, 엄마.”




부모들도 서로의 아이들에게 제각각 감상을 써 내리고 있었다.  막상 외모가 출중한 리에프를 보자 눈 녹듯이 앙금이 풀린 야쿠의 어머니는 앞에 놓인 굴 요리를 그에게 밀어주려다가 눈총을 받았지만 사자가 넉살 좋게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먹어 완전히 기권해 버렸다.  부모끼리 네 자식이 잘났네, 내 자식이 잘났네 신경전을 벌이던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공기가 온기를 띠기 시작한다.  우선, 식사부터 하십시다.  숨막히는 정적 새로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온다.  꼬르륵.  이렇게 어려운 자리인데도 넌 배가 고픈가 보구나?  괜스레 아기에게 탓을 돌린 야쿠는 차려진 진수성찬에 눈이 돌아가서 연달아 침을 삼켰다.  상견례 아닌 상견례에 부모님이 고른 식당만큼은 최고급 생선을 전문으로 하는 이름 있는 곳이었다.  깨작깨작 눈치껏 움직이던 수저가 점차 속도를 더해간다.




“몇 개월이랬지?”


“4개월이요, 조심해야 될 땐데 엄마, 아빠 때문에 이게 뭐에요?”


“철없이 가출한 네 잘못이지!”


“잘 먹네.”


“그 동안 거의 굶었거든요, 입덧 때문에.”


“저런.”




리에프 부모의 두 눈이 야쿠를 따라 요리조리 움직였다.  제 자식들은 전부 키가 커서 이렇게 작은, 그들의 또래를 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두 볼이 터질 듯 음식으로 가득 찬 것이 귀여워서 손이 근질거린다.  애기가 애기를 가졌네.  오구오구, 잘 먹는다.  거기다 그들은 반류가 아니기 때문에 리에프의 아기까지 가졌다니 굽어살피게 되는 건 본능이나 다름이 없었다.  생식 능력이 떨어지는 반류 사회에서는 거래가 만연해 혈맹이 약해졌다는 이론은 그들에겐 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별안간 리에프가 조상 중 한 분의 영향을 받아 반류가 되어 그런 거래에까지 손을 뻗쳐 버렸지만 원래 저희의 가치관에 따르자면 두 사람의 결혼은 당연한 거란 말이다.  아기도 생겼고 둘이 좋다는데 무엇이 문제랴?  홧김에 리에프를 막을 생각만 하다가 막상 눈 앞에 아기가 잠들어 있을 배를 마주하자 오만 생각이 다 쏟아진다.  앗!  야쿠의 입가에 게장의 양념이 묻은 걸 발견한 리에프의 아버지가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냅킨을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활짝 웃는 밤색 눈동자에 매료된 두 사람이 속닥거린다.




“여보, 쟤는 고양이라고 하지 않았나? 보기엔 햄스터일 것 같은데?”


“그러게요. 어머, 새우를 한입에 털어 넣네요.”




이제 우리가 만난 연유를 따져봐야겠지요.  향긋한 꽃 내음이 녹아있는 차를 마시며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 되어서야 두 사람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불거졌다.  급속도로 어색해진 공기에 식탁 아래로 발바닥을 붙이고 꽁냥꽁냥 눈짓을 하고 있던 사자와 고양이가 몸을 굳힌다.




“굳이 따지자면…… 계약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요.”


“맞습니다, 큰어머님. 이런 경우는 드물어서 계약서에 거래 대상과의 혼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오히려, 거래 상대와 관계 발전이 계약 위반이죠.”


“그렇게 계약서 상으로만 보자면, 귀 댁의 하이바 리에프 군은 아기에 대한 권한이 전혀 없습니다만!”




기껏 화기애애해졌다 싶었는데 또 시작이다.  야쿠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서 이 곳에서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모든 언어들이 저와 리에프를 향해 주먹질을 퍼붓는 것 같다.  다 너희 잘못이라고, 너희가 나쁜 아이들이라고.  그 때, 고고한 자태로 찻잔을 내려놓은 노인이 몸을 일으켜 앞에 섰다.




“할머님,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시면……”


“보아하니, 너희들의 부모 중에는 혜안을 가진 이가 없구나.”


“말씀이 지나치세요, 큰어머니!”


“이 애들을 계속 함께 둘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라면 그럴 필요 없소. 그건 이미 직접 선택했으니, 그렇지?”




갑작스런 질문이었지만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둘에게는 정해진 답이 있었으므로.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건 뒤치다꺼리뿐이라오.”


“하지만, 그렇다고 계약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기가 생겼어도 둘이 만난 건 고작 몇 개월입니다.”


“혼인이라면, 집안끼리의 이치도 맞아야지요!”


“아드님이 야쿠 가문의 일원이 된다면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요.”


“잘은 모르지만, 보통 종이 다르면 안 된다고 하던데……”


“저, 저! 잠시만요! 말씀 중에 죄송한데, 이대로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요. 이렇게 된 건 다 저 때문이에요, 잘못했습니다. 할머님 말씀대로 저희는 이미 같이 있기로 했어요, 그건 절대 안 변해요! 그러니까 한번만 봐주세요, 집 나간 거 죄송하고 비밀 연애한 거 다, 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나선 리에프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제일 영향력 있어 보이던 할머님이 제 편인 걸 알자 힘이 실린 것이다.  모두 갑작스럽고 당당한 전개에 어안이벙벙한 와중에 야쿠가 슬그머니 그 옆에 꿇어 앉았다.  이럴 땐 맞추고 싶지 않아도 죽이 잘 맞는다.  부른 배를 엉거주춤 감싼 채인 그를 보는 눈동자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나부꼈다.




“네, 저희가 잘못했어요. 혼인 신고든 뭐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리에프가 제 옆에 있게만 해주세요.”


“에? 혼인 신고는 해야 되지 않을까요?”


“넌 빌기나 해, 윽……”




뒷골부터 허리까지 찌릿한 고통이 훑고 지나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 곳에 있던 손들이 죄다 그에게로 뻗어졌다.  빨리요!  리에프가 펄펄 날뛰며 어른들을 닦달했다.  용서고, 허락이고 당장 해주지 않으면 야쿠를 들춰 업고 도망이라도 갈 기세다.




“야쿠상 힘든가 봐요! 땀나잖아요! 빨리 받아주세요, 저희가 잘못했다고요!”


“이, 일단 일어나!”


“받아주셔야 일어나죠.”


“그럼…… 우선, 같이 있는 건 허락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요, 저러다 배라도 뭉치면 큰일 나요!”




같이 있는 걸 허락한다니, 그게 전부 아닌가?  얼떨결에 내뱉은 허락을 의심하기도 전에 리에프가 야쿠를 일으키며 와아! 감사합니다! 잘 살게요! 선수를 쳤다.  명분을 잃은 네 명이 멍한 얼굴로 박수 치는 것을 보며 호탕하게 웃은 노부인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손자를 따사로운 눈길로 쓸었다.  우여곡절 끝에 화합을 이끌어낸 뒤에는 큰 할머님이 오랜 식견으로 부모들을 설득해서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녀는 사자를 갖고 싶다던 야쿠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리에프의 부모에게 자존심이 없는 사람 마냥 굴었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모습이다.  계약서를 파기하는 조건으로 위약금 배상은 물론, 장기적인 사업 투자까지 약속하시며 부디 고양이를 어여삐 봐달라고, 고개를 숙이셨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저자세였다.  사이 좋은 두 사람이 싹싹 빌기 전부터 진즉 마음이 풀려가던 양가 어른들은 못 이기는 척 화답하고는 두 손을 맞잡으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결말은 일절 상상해본 적 없는 것이다.  코 끝이 찡했다.  식당 앞머리에서 할머님께 혼이 난 것은 지금에 비하면 약소한 것이었다.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한 야쿠가 모든 게 자기 잘못인 것처럼 겁을 집어먹고 있던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그녀는 문 앞에서 절 기다리고 있던 이에게로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아직도 기백이 부족하다, 고개 숙여야 할 때와 뻗대야 할 때를 구분하거라.”


“오늘 일은…… 감사해요.”


“그럼, 안아주지 않으련?”




경직된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당황스러워 그저 뭐라고 하셨어요? 하고 묻는 얼굴로 우뚝 서 있었다.  뒤에 있던 리에프가 등을 밀자 그 때서야 허리를 조금 숙여 찻잎의 향기가 베인 기모노 자락을 부여잡았다.




“아가, 기특하구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손은 미약하지만 거세게 마음을 흔든다.  지금이라면, 세상 무서울 게 없다.  이렇게 든든한 뒷배를 두고서 홀로 전전긍긍했던 것이 어리석은 짓이었다.  할머님을 태운 승용차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  곰비임비 쌓여 있던 너더분한 일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처럼 후련해서 눈물이 쏟아진다.  목구멍이 울렁거린다.  저는 혼자인 적이 없었다.  나의 가족.  리에프가 만들어준 기적이 야쿠가 간절히 바라던 것을 찬란하게 선사한다.




“야쿠상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있나 봐요.”


“…….”


“그래서,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곁에 있어주고 싶어요.  원한다면,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가족으로, 좋은 아빠로, 친구로, 당신만의 사자로, 오로지 야쿠 모리스케만을 위해 살게요.  더 이상 제 앞에서 약한 모습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는 게 기뻐서 리에프는 가슴이 떨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흐르는 뺨에서 눈을 떼지 못 하겠다.  그는 듬쑥하게 야쿠의 손을 잡았다.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함께 있으면 언제까지고 반복될 감정이다.




“사랑해, 내가 진─짜 행복하게 해줄게요.”




나도야.  훌쩍거리는 콧등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저도 안아주면 안돼요?”




리에프는 말없이 이마를 기대는 이를 제 품에 숨긴다.  기쁜 의미가 담긴 눈물이라 떨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어깨를 떨면서 끅끅 우는 야쿠의 머리를 끊임없이 쓰다듬었을 뿐이다.  예쁘다, 예쁘다, 속닥거리면서.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그가 마음껏 지금을 행복해 할 수 있도록 리에프는 기다려 주었다.  기운 달빛이 그들을 비춘다.  야쿠는 잡고 있던 손을 느릿하게 잡아 당겼다.




“돌아가자.”




우리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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