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주린 배를 안은 야쿠가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으로 발을 내딛는다. 멍한 얼굴로 제자리에 맨발을 구르다가 어두컴컴한 거실로 나왔다. 주홍빛 석양이 드리울 때쯤 낮잠에 들었는데 깨어나니 밤이다.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을 하며 웬일로 조용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광고 전화뿐이잖아! 절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부재중 전화는커녕 메시지 한 통도 남겨져있질 않다. 집에 불쑥불쑥 들이닥치거나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안부를 묻던 사자가 개강을 했다. 리에프가 학생이었다는 걸 잊고 지내던 야쿠는 새삼 도둑놈이 된 기분으로, 그를 애송이 취급했다가 화나게 만들어서 이틀째 벌을 받고 있다. 연락두절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이다.




‘개강? 맞다, 너 아직 학생이지!’


‘졸업반이에요, 금방 일할 거니까……’


‘으아! 학생이면 공부를 했어야지, 매일 나랑 놀고먹고 있잖아!’


‘그런 건 알아서 해요.’


‘너무 죄송해서 너희 부모님 뵐 낯이 없다!’


‘아, 제발!’


‘깜짝이야!’


‘야쿠상한테는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요.’


‘뭐?’


‘제가 그렇게 못 미더워요?’


‘당연하지! 너, 너 같으면 안 그렇겠어?’




이렇게 속 좁은 놈인 걸 알았으면 좋아하지 말 걸 그랬어. 뽈록 나온 배를 문지르면서 중얼거렸다. 아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라고 혼내줬을지 모른다. 냉철한 목소리로 오늘은 그만 두자며 전화를 끊어버린 뒤로 깜깜무소식인 연하 애인이 입덧으로 고생인 저는 방구석에 처박아두고 친구들과 술이나 퍼 마시고 흥청망청 노는 걸 상상하니까 부글부글 속이 끓는다. 발에 차이는 천 조각을 밀어버렸다. 어머니가 태교를 위해 한 가득 가져오신 바느질감인데 야쿠에게는 영 손에 잡히지 않는 일거리여서 내팽개친 것들이다. 바닥의 찬 기운이 다리를 타고 오른다. 불 꺼진 집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눈앞이 핑 돌아서 얼른 벽을 짚었다. 뭐라도 먹어야 되는데, 또 토하겠지? 찌푸려진 미간이 펴질 줄 모른다. 가뜩이나 입맛이 없는데 마음까지 불편해져 그나마 걱정 없이 먹던 과일마저 다 토해버리곤 곡기를 끊은 차다. 차라리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다. 그러면 배고프다는 생각도, 너무너무 미운 리에프의 얼굴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보고 싶고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 죽을 것 같아도 못난 자존심 때문에 먼저 사과하기는 싫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실은 욱하는 마음에 리에프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믿음이 없다는 말, 분명 상처였겠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먼저 꽥 성질을 부린 리에프가 괘씸해서 멋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쩌면 의식하지 않고 있던 진심일 수도 있고. 아기가 생겼고 같이 살자는 말도 나왔지만, 현실은? 봐, 지금도 혼자인 걸. 무료한 시간에 자연스레 그리게 되는 앞날에는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아직은 셋이 아닌 둘의 모습뿐이다. 아기와 나. 그게 리에프에겐 실례인 걸 알지만 솔직히 말해 언제나 곁에 있을 거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오롯이 사랑하기엔 공유한 시간이 짧은 게 사실이다. 여전히 그는 사자이고 저는 일개 고양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마주하고 싶지 않아 감추던 불신이 약해진 틈을 비집고 나와 야쿠를 괴롭혔다. 몸의 변화로 인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 것도 크게 한 몫을 한다. 다툼이 있기 전에도 리에프에게 툭하면 사소한 일로 짜증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달래주었는데 한계였던 걸까? 제 잘못도 있지만 그렇다고 저와 아기에게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나 싶어 그 동안의 애정조차 허상으로 여겨졌다. 속이 울렁거려. 두 눈 가득 물기가 어린다. 한 방울씩 쌓여가던 서운함이 흘러넘치니 오르락내리락하는 갈비뼈조차 힘겨웠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 야쿠는 눈물만 뚝뚝 떨어뜨린다. 젖은 눈물이랑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렀다. 이제 오지 않으면 어쩌지?




“아!”




별안간 야쿠가 배를 쥐고 앞으로 굴렀다. 옆구리가 욱신거린다. 뭐지? 처져 있던 눈꼬리가 번쩍 떠졌다. 임신인 줄 몰랐던 때에 겪은 복통보다 더 묵직한 고통에 간담이 서늘하다. 야쿠는 주저 없이 핸드폰을 켰다. 지금 떠오르는, 필요한 사람은 단 하나뿐이다. 하이바 리에프, 그의 마지막 사랑이 되려는 이였다. 질린 얼굴이 불빛을 받아 밝아졌다.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는 녹색 눈동자는 미동이 없다. 이로써 감금된 지 이틀째인가? 지금까지 이어진 끔찍한 시간을 떠올린 얼굴이 사납게 굳어진다. 하루를 달콤하게 마무리하던 연인과의 통화중에 섣불리 짜증을 냈다가 다투고 말았다. 이번엔 야쿠상이 너무했어!




“하아……”




아닌가? 한숨을 쉰 그가 옆으로 돌아누워 벽을 긁었다. 혹시나 괜한 걱정을 끼치게 될까 봐 꺼내지 않은 속사정은 리에프에게도 산더미였다. 재회의 계기는 그리 달갑지 않은 ‘거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고양이의 연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꿈인가 싶을 정도로 행복에 겨운 일이다. 더군다나 야쿠가 절실히 바라던 아기까지 와주었으니 더한 기쁨은 없을 거라 믿었다. 허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뒤늦게 온 몸과 마음으로 깨닫는 중이다. 야쿠에게만은 듣기 싫던 세상 물정 모른다는 소리가 가슴에 폭풍우를 일으켰다. 아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저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막연히 그의 바람만을 위해 임신을 원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끈끈한 믿음이 생기기도 전에 아기가 생겨 조금만 길을 잘못 들어도 엇나가기 쉬워졌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다. 공유하지 못한 것들이 이제 와 아쉽다. 예를 들어, 선선한 밤에 강변을 걸으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해가 쨍쨍한 날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먹거나 하는 달콤한 기억이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지새운 새벽 같은 것들 말이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야쿠가 둔통으로 잠 못 드는 밤에 그 또한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고양이와 아기가 소중한 만큼 그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어렵다. 잘해낼 수 있을까? 막연한 앞날과 꾸려나갈 가정에 대한 걱정은 만만하지 않았다.




‘너, 너 같으면 안 그렇겠어? 난 네가 갑자기 우리 집에 안 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해.’




리에프가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한 건 야쿠의 ‘우리 집’이라는 말 때문이기도 했다. 그 ‘우리’에 리에프는 없었으니까. 신뢰받지 못했다는 것보다 존재를 철저히 배제시키는 그의 무의식이 가슴에 박혀서 무슨 뜻이냐고 버럭 몰아붙이고 말았다.




‘너랑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떳떳한 사이도 아니잖아.’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묻는데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걱정한들 내일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이를 누가 온전히 믿을 수 있겠어? 부모님께 야쿠의 존재를 알리고 갈등을 빚자니 읽어본 적 없는 계약서가 마음에 걸리고, 당장 청혼이라도 해서 결심을 내보이고 싶어도 반짝거리는 이에게 어울릴만한 반지 한 가락 살 돈이 없었다. 든든한 반려자가 되겠다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현실은? 이제 막 스물다섯이 된 철없는 대학생. 결심은 대단했지만 이것저것 재고 따지느라 배불러오는 야쿠의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 그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이대로는 안 되었다.




‘저 책임질 사람이 생겼어요, 반대할거면 짐 싸서 나갈게요!’




그 날 밤, 둘러앉은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그리고 방에 갇혔다. 이거야말로 지극히 리에프다운 행동이었다. 고양이가 알면 길길이 날뛰겠지만 막상 저지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역시 난 애송이야. 거래 상대와 정식으로 교제하고 있다고 덤덤히 늘어놓은 서설이 청천벽력이었는지 부모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했다.




‘아, 혹시 임신에 성공했다는 건 들으셨어요? 제가 아빠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네요, 하하!’




눈치 없이 호쾌하게 웃은 게 잘못이었나 보다. 경거망동하면 곧장 야쿠를 찾아가 항의할 거라고 유치한 협박을 하는 바람에 호기롭던 시작과는 달리 끝내 깨갱하고 말았다. 야쿠 모리스케, 리에프에겐 너무 치명적인 약점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야쿠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핸드폰마저 압수당했다. 밥도 안 먹고 학교에 다녀와서도 방에만 틀어박혀 시위 중이지만 부모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젠장. 공중전화와 친구의 핸드폰을 빌려 전화를 걸었지만 낮잠을 자는 건지 모르는 번호여서 그런지 야쿠는 받지 않았다.




“보고 싶어 죽겠네.”




믿어주지 않아도, 아픈 말만 해도, 아무래도 좋으니까 어쩔 수가 없다. 금세 화가 났던 것은 잊히고 식탁에서 베란다 앞까지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르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사랑스러운 모습만 아른거린다. 싸우기 전 날에는 기운 없다는 핑계로 잠옷도 안 갈아입는 걸 더럽다고 놀리자,




‘그래서…… 안아주지 않은 거야? 치사하게.’




툴툴거리더라. 야쿠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굶었을까 봐 집에 가자마자 부엌으로 향한 것뿐인데 더러워서 안아주지 않은 거냐고, 어디서 그런 깜찍한 발상이 나오는 걸까? 인간이 맞긴 한 걸까? 요정 아냐? 그런 야쿠상에게 화를 낸 거야? 미친……




“레보치카!”




쾅 열리는 문소리에 놀라 벽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당장 싸놓았던 짐 가방을 들고 이판사판이다! 하고 뛰쳐나갈 생각인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누나 아리사가 다급하게 방으로 들이닥쳤다.




“이 사람, 임신했다고 하지 않았어?”




보고 싶은 이름. 찰랑거리는 금발 사이로 내밀어진 핸드폰에 얼떨떨해하는 리에프의 옷자락을 흔들며 그녀가 더 크게 소리쳤다.




“계속 전화가 온다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빨리 받아봐!”




높은 음성이 날카롭게 귀에 박힌다.

걱정 마. 아리사는 초조함을 다스리지 못하고 다리를 떠는 동생을 부드러이 타일렀다. 부모님께 상의하지 않고 리에프의 가출을 돕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누군가의 울음으로 느껴진 연락을 무시했다면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좋아했던 사람이지?




“어떻게 알았어?”


“사진 보자마자 선보겠다고 했잖아, 나중에 보니까 아는 이름이더라고.”


“기억하고 있었네.”


“그 때의 레보치카, 정말 귀여웠으니까. 나한테 열쇠고리 같은 선물을 사달라고 했었지?”




분위기를 전환하려 꺼낸 이야기에 애써 웃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것이 불쌍해서 그녀는 도리어 제 눈물샘을 달래야 했다. 묵묵히 저릿한 손끝을 주무르던 리에프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엇에도 위로 받을 수 없다. 야쿠의 캐비닛에 몰래 두고 온 고양이 열쇠고리의 잔상 뒤로 전화 너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 나, 나…… 배 아파, 흑……’




말아 쥔 안으로 파고드는 손톱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미어진다. 제발. 닥치지 않은 불행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섬뜩하게 쫓아온다.

눈에 익은 주차장에 차가 멈추자마자 그는 인사도 없이 가방을 들춰 메고 내달렸다.




“모리스케!”




헉헉 가쁜 숨소리가 텅 빈 집을 채운다. 리에프는 묵직한 가방을 현관에 던지듯 내려두고 초점 잃은 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도 벗지 않고 야쿠의 자취를 찾아 온 방을 헤집는 소음이 어둠을 가른다. 왜 불이 꺼져 있지? 인기척 없는 방을 뒤지며 허공을 휘젓던 손이 우뚝 멈추었다. 야쿠상은 여기에 없는 거야. 뒤늦게 알아채곤 등골이 오싹해졌다. 미아가 된 적이 있다면 틀림없이 이런 기분이었을 거다. 지나치게 몰두해서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다 내 잘못이야. 후회스럽다는 생각 따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만약 아기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야쿠상을 볼 수 없을 거야. 끔찍한 상상에 잠식되어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철컥. 현관에 놓인 커다란 가방에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한 야쿠는 그 주인이 누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리에프?”




얼른 신발을 벗어 던진다. 오자마자 어딜 간 거야? 조금 남아있던 메론 맛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날름 먹어 치우며 불을 켰다. 시야가 밝아지자 단숨에 포착되는 이에 저도 모르게 방긋 웃었다가 다투었다는 것을 상기해내고 슬그머니 반가운 기색을 밀어냈다.




“리에프! 어떻게 연락도 안 할 수가 있어?”




허리에 두 손을 얹은 고양이가 빈 눈동자를 채운다. 목소리가 들리는데 뭐라고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리에프는 가까워지는 인영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 넋이 나간 얼굴에 허망한 심정이 고스란하다. 철렁 내려앉았던 심장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듯 호흡마저 멈춘 그대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신발을 신고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며 야쿠는 사자를 나무라며 바로 앞에 섰다.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


“아직도 화난 거야?”




묻는 말에도 그저 제 얼굴을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한다. 리에프 딴에는 놀란 마음에 꿈인가 생시인가 하여 뚫어져라 쳐다본 것이지만 지은 죄가 있는 야쿠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더 이상 멀어질 자신은 없다. 코앞에 있는데도 안길 수 없다는 게 짜증스럽다. 야쿠는 핼쑥한 볼이라도 쓰다듬어줄까 싶어서 최대한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리에프의 팔을 붙잡고 보채듯 두어 번 잡아당겼다.




“미안해, 다 홧김에 한 말이었어. 화 풀어.”


“…….”


“응?”




화해하자는 뜻을 담아 슬쩍 두터운 손가락을 꼬옥 잡는다. 축축하게 땀이 베여있는 데에 의아해서 동그래진 눈으로 살피니 그의 낯이 사색이다. 뭐라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리에프가 와락 몸을 짓눌렀다. 무작정 저를 세게 껴안은 남자의 얕은 떨림이 가감 없이 전해진다.




“어떻게 된 거에요? 배가 아프다고 해서…… 너무, 놀라서……”


“아, 참! 그게……”




아이스크림의 단내가 묻은 입술이 망설이다가 둘러댔다.




“요즘 화장실을 못 가서…… 변비는 아니고, 임신하면 그럴 수 있대! 나만 그런 거 아니고, 먹는 게 없으니까…… 진짜야!”


“하?”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어앉은 리에프는 야쿠의 배에 이마를 기댔다. 그거 때문이었어? 정말이죠? 안도의 한숨이 눈물과 함께 왈칵 쏟아지는데 제 속도 모르고 고양이는 머리 위로 하하하 머쓱한 웃음을 흘린다. 그래도 하나도 밉지 않다. 다행이야.




“무서웠어요, 무슨 일 있을까 봐……”


“바로 올 줄 몰랐어, 미안.”




땀 좀 봐, 웅얼거리면서 손등으로 리에프의 이마에 베인 땀을 닦아주었다. 눈물로 얼룩진 눈가를 보니 가슴이 시큰하다. 걱정했는지 묻자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곤 코를 훌쩍거리면서 웃옷에 얼굴을 비빈다. 야쿠는 상냥한 손길로 그의 머리칼을 쓸며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놀란 건 저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복통에 혹시 아기가 잘못 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 펑펑 울며 유난을 떨었으니까. 그게 화장실 신호인 줄 누가 알았겠냐고! 복통이 싹 낫자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진 게 화근이었다. 오랜만에 돋아난 식욕에 신이 나서 리에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곧장 집 앞 슈퍼로 향했고 돌아와 보니 천하의 나쁜 애인이 되어 있었다. 울면서 전화했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지.




“울지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쪽쪽 입술을 내렸다. 혀에 남은 아이스크림 맛 때문에 눈물이 달다.




“네…….”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한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사자의 숨이 가여운 동시에 참을 수 없이 사랑옵다.




“갑자기 아프니까 네 생각밖에 안 나더라.”


“…….”


“나 이제 너 없으면 못 살아.”




때 아닌 고백에 얼굴을 붉힌 리에프가 나지막이 저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전개가 빠른 연애에 각자 조바심이 났었다. 야쿠는 리에프더러 어리다고 투덜대는 동안 저는 얼마나 어른스러웠나 싶어 멋쩍다. 우린 이제 막 어우러지는 중이다. 수백, 수천 번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지지 않는 신뢰가 생길 거라 믿는다. 그러니까 오래도록 곁에 있어 줘.




“예민했나 봐, 입덧 때문에 짜증나고…… 그냥 조금 불안했어.”


“저 때문이에요, 이런 때에 혼자 둬서 미안해요.”


“이제 싸우지 말자, 네가 안 오니까 기분이 이상했어.”




애기도 엄청 심심해했어! 라며 제 배를 콩콩 두드린다. 야쿠상, 이런 게 애교라는 걸 모르는 게 분명해. 리에프는 확신하며 고개를 숙여 그의 얼굴에 뺨을 문질렀다.




“근데 저 가방은 뭐야? 자고 가게?”


“네.”




리에프의 팔을 잡아당겨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밥은 먹었어? 부엌으로 향하는 야쿠의 등을 보며 리에프는 머뭇머뭇 콧등을 긁적거린다. 가출해버렸다고 하면 혼나겠지? 어차피 되돌릴 마음도 없다.




“이제 매일 여기서 잘 거예요.”


“뭐래?”


“저 가출했어요, 헤헤.”




잘 부탁합니다! 차마 진짜인지 묻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는 야쿠를 두고 태연히 방으로 들어간다. 난데없이 시작된 더부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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