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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열렬한 봄맞이

계간리에야쿠 3월호 참여작(http://ly113.tistory.com/9) / 하나하키병 AU



















오후 3시.  나른한 햇볕 아래 담벼락에서 단잠에 빠져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가까워오는 인기척에 재빨리 몸을 숨긴다.  단조로운 주택 건물 사이사이 골목을 서성거리던 장신의 고등학생, 리에프는 따사로운 빛을 머금은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다시 손에 들린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이 근처 같은데, 저긴가? 처음 와 보는 동네는 주변에 꽃밭이라도 있는 건지 숨이 달다.  공기마저 분홍으로 물든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 채 걸음 하던 흰색 운동화가 아담한 2층 주택 대문 앞에 멈추었다.  [토요일에 우리 집에 와줄 수 있어? 부탁이야.]  어제 저녁에 야쿠 모리스케라는 배구부 선배로부터 받은 메시지다.  신입생들의 훈련을 도맡고 있는 그와 접점이 많긴 하지만 집에 초대받을 만큼 친한지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라서 의아했지만 거절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활기 넘치던 사람이 갑작스런 독감으로 결석을 한 게 걱정되기도 하고.  딩동.  집근처 과일 가게에서 산 청포도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매달린 손으로 초인종을 누르곤 총총 발을 구른다.  곧 잠시만,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철컥 문이 열렸다.




“어서 와, 리에프.”




이름보다 ‘리시브!’라고 불릴 때가 더 많아 낯선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틀 새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에 놀라 주춤하고 말았다.  얼마나 아프기에 그 모양이에요? 놀리듯 묻는 말에 야쿠는 헛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평소 같으면 까분다고 눈을 치떴을법한데 잠잠하니 머쓱해져 얌전히 뒤를 따랐다.  단색으로 깔끔한 가운데 침대 위 널브러진 이불은 피카츄 패턴이라니, 참으로 주인과 어울리는 방이다.  앉기나 해.  고개 숙여 키들거리다가 등을 콕 찔렸다.




“이런 건 뭐 하러 사와, 부탁한 건 난데.”


“초대받았는데 빈손으로 올 순 없죠! 그보다 감기는 좀 어때요?”




좋아보이진 않는데, 덧붙이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살짝 열려있는 창문으로 따뜻한 바람이 새어들어 두 사람을 감쌌다.  봄이 가깝다.  털썩 침대에 걸터앉는 리에프의 옆에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웁!”




야쿠는 방에 딸린 화장실로 내달렸다.  찰나에 가슴을 난도질당하는 고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에 선 리에프를 살필 겨를이 없다.  질끈 감은 눈에 눈물이 찔끔.  혀 위에 돋아나는 위화감은 이틀 동안 몇 번이나 반복된 것임에도 두렵다.  저리 가라는 말이 텁텁하고 껄껄한 것들에 막혔다.  다 너 때문이야.  바짝 다가와 등에 손을 올린 이가 잘못한 거 없이 미워진다.




“으… 그거! 마, 만지지 마!”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슴께를 부여잡고 구역질을 하던 야쿠가 살랑이는 하얀 송이로 손을 뻗는 리에프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꽃?  넋을 잃은 녹색 눈동자가 묻는다.  야쿠의 입술 끝에서 흩어져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은 것은 분명 엄지만한 꽃 머리다.  그것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야쿠상, 지금… 괜찮아요, 이거?”


“괜찮을 리가 없잖아!”




상기된 목소리에 울음이 베여 있어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들었다.  떨리는 어깨가 보인다.  알고 있던 선배와 너무도 이질적인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펄쩍 두 손으로 어깨를 껴안듯 붙잡았다.  복부로 팔꿈치가 날아왔지만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야쿠가 왜 꽃을 토하는지 놀란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하나만은 분명히 알 것 같다.  지금은 귀 끝이 빨개진 채로 훌쩍거리는 그의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하나하키병이라…”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리에프를 힐끔거리던 야쿠는 어느 때보다 절망적인 기분이다.  뒤집어쓰다시피 한 이불자락을 더 끌어 당겼다.  까마득한 후배를 짝사랑을 하게 된 것만으로 골치가 아픈데 희귀병까지 걸려 고백하기도 전에 이런 꼴을 보인 것이 수치스럽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고백할 생각은 한 적이 없으므로 하나하키병에 걸린 것은 여러모로 낭패였다.  이 애가 날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얼굴을 반절이나 이불에 파묻고 있지만 처진 눈 꼬리는 숨겨지지 않는다.




“근데, 야쿠상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데요?”


“뭐?”


“짝사랑에 시달리다 걸리는 병이라고 나오는데…”


“네 놈이 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리에프, 하이바 리에프, 너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저요?  당혹감을 가감 없이 내비친 이 때문에 꽃송이가 식도를 타고 올라올 때처럼 가슴이 따끔하다.  이렇게 무신경한 애를 좋아하게 되다니, 너무하잖아!  다갈색 눈동자에는 여전히 물기가 어려 있다.  야쿠는 입술을 꾹 깨물며 얼떨떨한 표정인 리에프를 노려보았다.




“지금 저한테 고백하신 거예요?”


“아니야!”


“저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하셨잖아요!”


“맞아, 하지만 고백은 절대 안 할 거니까 걱정 마.”




좋아한다고 말해놓고 고백은 안 할 거라니, 단호한 대답에 기가 찬 리에프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꼬리를 물었다.  아까부터 저를 둘러싼 향긋한 꽃내음이 고백의 명백한 증거물이었으므로 그는 의기양양해보이기까지 했다.




“내 감정 때문에 너와 멀어지고 싶지 않아. 오늘은 어쩔 수가 없었어, 갑자기 꽃을 토해서… 알아봤는데 가벼운 접촉이… 도움이 된대, 이렇게 부탁할게. 계속 결석할 순 없어.”




한껏 가엾은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본다.  큰 눈이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귀여운 외양의 반면에 참 대담한 구석이 있다.  너와 멀어지고 싶지 않아, 이게 고백이 아니라고요?  듣고 있자니 억울해지려 한다.  발그레해진 두 뺨과 부산스럽게 꼼지락거리는 작은 손이 대신 속살거리는 것 같았다.  널 좋아해, 하고.  신체 조건에 의존한다거나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이유로-이를테면, 귀엽다는 말- 툭하면 혼내는데다가 버럭 소리 지르기 일쑤였지만 리에프는 야쿠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부원들을 챙기기에 바쁘고 해맑게 웃는 얼굴로 힘을 북돋아주는 것만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상처 주고 싶지 않다.  감정을 마주하는 것 대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해줘야겠지.  야쿠가 무안하지 않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려다 보니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을 수는 있대요?”


“심리적인 거라니까 감정이 사라지면 낫겠지. 노력할 테니까 그 때까지만 도와주지 않을래?”




저를 향한 애정을 지워가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 게 과연 좋은 일일지 의심스러웠지만 도와줄 거지? 채근하는 야쿠에게 알았다고 답했다.  고마워.  그는 다행이라는 듯 눈을 휘며 덧붙인다.




“널 좋아해서 미안해.”




어쩐지 너무 서글픈 말이어서 리에프는 다감한 목소리를 피해 바닥에 짓이겨진 꽃잎 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싱그러운 연두색 이파리들이 빛을 받아 반드르르 윤이 난다.  소곤소곤.  체육관 뒤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그늘에 붙어 앉은 두 인영의 목소리가 나른한 공기에 번졌다.  리에프는 가만히 잡고 있던 야쿠의 손을 들어 새삼스레 요리조리 뒤집어본다.




“야쿠상, 손 진짜 작아. 이것 봐요, 제 손바닥 만해요.”


“작다고 하지 말랬지.”




손을 조몰락거리는 그에 아랑곳 않고 다른 손에 들린 빵을 크게 베어 문다.  두둑해진 볼이 씰룩거리는 것을 고개까지 기울여 들여다보며 리에프가 키득거렸다.  귀여워, 혼잣말하듯 내뱉자 맞을래? 라는 대꾸가 돌아온다.  경고의 의미로 맞물려있는 손을 한번 꽉 잡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극적이기까지 했던 지난날의 고백 이후, 리에프는 성실하게 야쿠의 치유를 돕고 있다.  가벼운 접촉이 효과적이라는 정보가 유언비어는 아니었는지 손을 잡거나 팔이 닿아있는 것만으로도 꽤 오래 꽃을 토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야쿠에게는 짝사랑 상대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을 달래는 데에 큰 도움이 된 모양이다.  더 이상 리에프와 전처럼 지낼 수 없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이런 밀회를 하고 있으니 병이 호전되지 않을 리 없다.  처음에는 잠깐 손등을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간질간질했는데 지금은 눈이 마주치면 손부터 뻗을 정도로 닿아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근데 그 꽃 이름이 뭐에요?”


“몰라.”


“맨날 보면서 그것도 몰라요?”


“음… 저주의 꽃이나 망할 꽃?”


“하하, 말도 안 돼! 그렇게 예쁜데.”




예쁘긴 개뿔.  도리질 치는 야쿠를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소담한 그 꽃, 왠지 선배와 닮았는걸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질색할 게 뻔해서 그는 입을 다문 대신 손가락을 제 손과 얽으며 장난했다.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변한 것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야쿠는 여전히 그를 향해 리시브 연습해, 맞을래? 따위의 말들만 하고 이렇게 손을 잡고 있을 때도 담담하다.  그 날의 꽃들이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티를 내주지 않아서 섭섭할 지경인데, 가끔 넘쳐흐르는 애정에 닿아 저까지 녹아내릴 것 같을 때가 있다.  쉬는 시간 또는 연습이 끝나거나 하는 틈에 파리해진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애타게 저를 찾다가 야쿠상, 하고 부르면 달려들듯이 다가와 팔을 꼬옥 붙잡고 이마를 기댄다.




‘리에프, 하아… 리에프.’




가쁜 숨소리로 불리는 이름이 좋아한다는 말보다 진솔해서 리에프는 그 때마다 또렷하게 상기해내곤 한다.  아파도 그치지 못할 만큼 날 좋아해주는구나.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든 볕이 앉은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거린다.  손톱을 문지르며 손장난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를 빤히 훔쳐보는 밤색 눈이 깊다.  그를 응시하며 남은 빵을 모조리 입으로 욱여넣다가,




“주말에 같이 있어줄까요?”


“켁!”




갑자기 눈을 마주치며 묻는 바람에 사례가 걸려버렸다.  눈썹 사이를 좁히고 콜록거리는 앞으로 우유 갑의 주둥이가 놓여진다.  리에프는 우유를 받아 마시는 야쿠의 얼굴이 붉은 것은 단지 목이 메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또 훔쳐봤죠? 짓궂게 묻자 빵이 맛이 없다느니 연습 시간이 다 됐다느니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며 먼저 일어나 버린다.  픽 웃으면서 몸을 일으킨 리에프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같이 가요, 야쿠상!  서로의 피부를 스치는 옷이 기분 좋게 살랑거린다.




“오늘은 컨디션 좋아 보이네, 야쿠.”


“저 가까이 가서 구경해도 돼요? 한번 만요, 네? 켄마상─”


“혼나도 난 몰라.”




체육관 반대편에서 연습 경기를 하고 있는 야쿠가 신경 쓰여 일부러 공을 그 쪽으로 보내는 데에도 지친 리에프가 얼른 코트로 걸음 했다.  그가 하나하키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떨어져 있는 게 불안해진 건 오히려 리에프 쪽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 자기뿐이고, 원흉이기도 하니까.  갑자기 증세라도 나타나면 들춰 업고 뛸 요량이라 자꾸 곁을 서성이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연습 전에 리에프와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최대로 안심한 야쿠가 날랜 몸으로 몇 번이나 공을 받아내고 있다.  끝까지 공을 쫓는 손과 바닥으로 떨어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다리.  왜소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집념에,




“멋있다…”




사로잡힌 녹안이 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별안간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이 기뻐져서 목청껏 야쿠상! 불렀더니 티셔츠로 땀을 훔치다말고 쿵쾅쿵쾅.  연습하고 있으랬지!  어쩐지 오늘은 잠잠하다 했지, 다들 잠시 둘을 쳐다봤다가 흩어졌다.




“얏쿵, 나이스 게임.”


“쿠로오, 너도.”


“저도 하이파이브 해줘요!”


“하이파이브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연습해!”


“쳇, 리시브 못 해도 점수만 잘 따면 되잖아요.”


“오야, 리시브는 못 하지만 에이스인 하이바 군을 믿어보자고─”


“에이스는 무슨.”




리시브 100번 하고 있어, 확인할거야.  단호하게 등을 미는 손길에 리에프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쿠로오와 마주서서 화기애애하게 장난을 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나라면서 왜 저기서 방긋거리고 있담?  뚱한 얼굴로 터덜터덜 걷는데,




“야!”


“으앗, 뭐하는 겁니까?”




세게 잡아당겨진 반바지의 허리춤을 겨우 붙잡은 리에프가 바보 같이 입을 벌린 채 뒤돌아보았다.  하마터면 바지 내려갈 뻔 했어요! 날뛰는데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여전히 옷자락을 놓지 않은 채다.




“주말에 같이 있을 거야?”




네?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아까 흘리듯 했던 말이 떠올라 얕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계속 생각하고 있었나?




“그럼 50번만 해, 리시브.”


“풉… 100번 하라면서요.”


“하고 싶으면 하던가.”




집으로 갈게요!  돌아선 야쿠의 등 뒤로 경쾌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사분사분하게 웃으며 코트로 되돌아가던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꾹 눌렀다.  점점 커지는 욕심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조금만 더 있다가 그만 두면 안 될까?  아주 잠시만.
















이따금 흘러들어오는 보드라운 바람에 얇은 커튼이 나부낄 때마다 그늘진 방 안으로 볕이 부서져 내린다.  늦은 오후에 놓여있는 야쿠의 방은 불을 켜지 않아 아늑한 색의 어둠으로 물들어있다.  침대에 나란히 기대어 앉은 두 사람은 노트북 화면에 그려지는 영화만을 응시한다.  바닥을 짚은 새끼손가락이 닿을 때에만 야쿠가 헛기침을 하거나 기지개를 켰다.  지금처럼.  옆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니 그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풋풋한 향이 진해졌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봄맞이, 아파요?”


“뭐?”


“봄맞이 꽃이래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저 꽃, 이름이 봄맞이라고요.”




리에프가 노트북을 올려둔 낮은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는 하얀 티끌을 가리켰다.  봄맞이 꽃?  앙증맞고 따스한 모양새와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일부러 찾아봤냐고 묻자 잘했죠? 잔뜩 뿌듯해 보이는 얼굴로 되묻는다.  잘게 웃으며 은색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새삼스럽게 몸을 굳힌 리에프가 반달눈을 한 야쿠를 빤히 내려다본다.  방금 뭐지?  낯선 울림에 위화감을 느낀 그가 눈앞에 일렁이는 손목으로 천천히 손을 가져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을 뒤늦게 눈치 챈 야쿠가 그 손이 닿기 전에 황급히 팔을 거둔다.  미안, 웃음기 가신 리에프의 표정에 애먼 죄책감이 들어 등 뒤로 손을 감췄다.




“선배는 제 어디에 반한 겁니까?”


“갑자기 그런 거 묻지 마.”




깜짝 놀랐잖아!  비죽 올라간 눈썹.  그렇게 째려봐도 귀엽기만 하거든요? 속으로 이죽거리면서 뒤로 숨긴 손을 찾아 깍지를 껴 끌었더니 놀라서 입술만 벙긋벙긋.  소중하게 감싸이는 손이 보들보들해서 기분이 좋다.  말해 줘요.  싫어.  치사해!  싫어.  한참을 서로 잡아당기며 실랑이한 끝에 야쿠가 질렸다는 듯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놓으면 말할게, 읊조렸다.  냉큼 손에 힘을 풀었다.  자유로워진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아 턱을 괸다.  부끄럽게, 입술을 쭉 내밀고 투덜투덜.  리에프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역시… 얼굴이랄까?”


“와, 야쿠상 눈에 제가 그렇게 잘 생겼어요?”


“그 놈의 주둥이만 아니면 울고불고 매달렸을 텐데.”


“아아, 너무해!”


“농담이야.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언젠가부터 연습 시간이 기다려졌어, 같이 있는 게 좋고… 내가 자꾸 너를 찾고 있더라고.”




선배 속눈썹, 촘촘하네.  어슴푸레한 공기 속에 함초롬한 눈이 노트북의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야쿠를 오롯하게 바라보며 또 뺨을 붉힌 채일 거라고 가늠해볼 뿐이다.  사슴 같기도 하단 말이야.  콧방울은 날래고 입술은 도담하다.  그 입술에서 하뭇하게 쏟아지는 애정에서 리에프는 눈을 뗄 수가 없다.




“확신한 건 꽃 때문이고.”


“……”


“야, 그만 봐…”




야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무릎에 푹 파묻어버린다.  늘어진 티셔츠 위로 가는 목이 드러났다.  좋아하는 사람의 끈질긴 시선 때문에 속이 울렁거린다.  고작 그가 쳐다봤다는 이유로 숨어버린 것이 마냥 창피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시울까지 열이 오른다.  진작 그렇게 부끄러워요? 하며 놀리고도 남았을 리에프가 웬일인지 조용했다.  그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야쿠의 앞에 목석처럼 굳어 있었다.  도리어 붉어진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진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야쿠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허공에서 눈이 맞았다.




“가, 가봐야겠어요!”


“벌써?”




펄쩍 일어나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던 웃옷과 가방을 집어 든다.  얼마나 서둘렀던지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 했다.  리에프!  휘적휘적 나서는 긴 다리를 쫓는 음성이 다급하다.




“갑자기 왜?”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미안해요.”




얼빠진 표정으로 배웅도 마다하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 리에프는 벽을 돌아 골목에 발을 내딛자마자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았다.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 때문에 숨이 가쁘다.  안아버릴 뻔 했어!  드디어 미쳤나 보다고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내내 붉으락푸르락,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따사로운 색을 가진 짤막한 머리카락을 품에 안고 쪽쪽거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그가 성큼 다가선 봄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이상한 거 나도 안다고.”




닫힌 문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야쿠는 우울에 빠져 있었다.  미안해요, 라는 뒤늦은 거절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곁에 있었는데도 실은 각각이었다는 게 비참해서 세게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다.  턱으로 고인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봄맞이, 아파요?  꽃을 토하는 게 야프냐고 물었던 그에게 끝내 봄맞이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이라고 말해주지 못 했다.
















야쿠상 왔어요?  헐레벌떡 체육관으로 뛰어 들어온 리에프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쿠로오에게 물었다.  라커룸에 있다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리는 후배는 며칠째 야쿠라는 이름을 입에 달고 산 차여서 무덤덤하게 으쓱거릴 뿐이다.  야쿠한테 꿀이라도 발라뒀나 몰라.




“선배!”


“어? 일찍 왔네.”


“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에게 차마 오늘도 괜찮은지 묻기가 망설여진다.  어제처럼 그렇다는 답이 돌아올 거고 그럼 저는 왜 나아버린 거냐고 따지고 싶어질 테니까.  시무룩해진 리에프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교복을 개어놓는 저 손을 잡을 이유가 없어진 지 오늘로 일주일째.  그는 이제 쉬는 시간에 1학년 3반으로 찾아오는 일이 없고, [체육관 뒤로 와. 뭐 마실래?] 따위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다.  연습할 때 전처럼 옆에 있어주지도 않고.  야쿠가 일부러 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께 연습이 끝난 후, 집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가 난처한 얼굴로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나 쿠로오랑 약속 있을 걸? 그 옆에 있던 당사자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나랑? 물은 게 타격이 컸다.  순간순간 허우룩했던 마음이 도로 밀려와 입 꼬리가 내려갔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제일 서운한 건, 더 이상 흰 꽃송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리에프?”


“진짜 다 나았나 봐요.”


“그렇다니까! 너한텐 정말 고마워.”




그렇게 홀가분한 양 웃지 말아요.  갑자기 함께인 시간이 줄어들자 불현듯 덮쳐오는 불안을 막을 수가 없다.  이제 날 좋아하지 않아요?  저도 모르게 야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탓에 리에프의 그림자 속에 갇힌 야쿠가 반사적으로 옆으로 피하지만 기다란 발길이 따라와 빠져나가지 못 했다.  죽을래? 장난스럽게 밀쳤지만 꿈쩍 않는 몸뚱어리.  묵묵히 고개만 떨구고 있기에 왜 그러냐며 걱정스럽게 묻자,




“정말 그만둔 거예요? 제가 싫어졌어요?”


“그건…”


“안 돼요, 저는 좋아한단 말이에요!”


“뭐라고?”


“선배가 좋아졌… 윽!”




소매를 꽉 붙잡고는 절절하게 소리치던 리에프가 갑작스레 몸을 움츠렸다.  입을 막은 그의 손가락 틈새로 떨어져 내리는 것들이 야쿠의 눈동자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얼결에 까치발을 하고 티셔츠 끝자락을 들어 올린 덕분에 꽃을 꽤 건질 수 있었다.  만발한 봄맞이가 눈부시게 넘실거린다.




“으으… 이거, 원래 이렇게… 아파요?”


“당연하지! 꽃 만졌었어? 옮는다고 만지지 말랬잖아!”


“야쿠상 때문이야, 힝… 그렇게 피하니까, 바보.”


“바보? 까불어, 이 자식! 뭐야, 너, 진짜야?”


“빨리 손 잡아줘요…”




선배를 좋아하고 있어요.  우는 시늉을 하며 칭얼거리는 리에프가 뻗은 손은 본체만체 야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너무 늦게 왔잖아!  뜻밖의 고백에 어이가 없었다가 체념하려 애쓴 것이 억울해서 야쿠는 사랑스러운 후배의 엉덩이를 팡 차버렸다.  꽃잎이 공기 중으로 나부낀다.  번지는 홍소를 참을 수 없어 마음껏 입매를 늘린 채 리에프의 허리를 껴안았다.  어깨를 감싸는 손길이 지극하다.




“저 책임질 거죠?”


“응.”


“지금… 뽀뽀할 타이밍?”


“아니, 청소할 타이밍이야.”


“쳇, 무드 없어.”




이마로 툴툴거리는 가슴팍을 콩 찧더니 체육관이잖아, 하고 속삭인다.  단번에 헤벌레해진 리에프가 품 안에 쏙 들어찬 야쿠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이제 진정으로 봄맞이를 끝마칠 때가 되었다.  우리가 서로의 봄이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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