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리에야쿠] 순정의 가치 10

섹스피스톨즈 AU





















임신 8주차가 되어 태아에 팔다리가 생기도록 입덧은 하지 않기에 다행이라 여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 9주차에 들어서자마자 망할 입덧 때문에 며칠째 굶다시피 하고 있다. 원체 먹는 걸 좋아했던 이가 하루아침에 입맛을 잃은 건 물론이거니와 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일어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니 기운이 없는 것도 당연지사요, 머리가 지끈거리고 미열까지 있어 딱 죽을 맛이었다. 요코가 집에 왔을 때도 한낮에 이불에 틀어박혀 있다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더니 속이 울렁거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창백한 낯빛에 거칠한 눈가가 가엾다.




“미치겠다고요.”


“입덧은 시간이 약이야, 야쿠.”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굶어죽을 지경인데 시간이 무슨 소용이람? 투덜거리는 야쿠에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사망할 확률은 없다고 대꾸했다. 가방을 챙기는 사이 초음파 사진을 쥐고 깔깔 웃는 걸 보니 걱정이 덜어지지만 증세로 보아 당분간 꽤 심하게 앓을 모양이다. 정말 예쁘지 않아요? 사진 하나를 골라 내미는데 그녀가 보기엔 그저 쭈글쭈글한 모습이라서 말끝을 흐리자 눈썹을 찡그린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함함하다고 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제가 밥을 못 먹어도 아기는 괜찮아요?”


“응.”




정말 묻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구나. 요코는 애꿎은 바닥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딴청을 피우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 또한 묻고 싶은 게 따로 있었다.




“너무 작고 약해서 지금도 걱정인데.”


“아, 걱정 마세요. 태아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


“아니, 야쿠상이요.”


“네?”




야쿠에게 바짝 붙어 앉아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당황시키는 이 자가 누구인지 말이다.

이제 막 입덧을 시작해 궁금한 것이 많은 야쿠와 이것저것 상담을 하고 있을 때 알아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장신의 남자. 스스럼없이 겉옷과 가방을 벗어 두고 제 집처럼 차까지 내어오더라.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로 힐끔거리니 그저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기에 얼떨결에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런 그를 본체만체 입술이 댓 발 나온 고양이는 소개시킬 생각이 없는 건지 배고프다, 기운 없다 하소연하기에 바빠서 결국 왕진 내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였던 것이다. 무릎까지 꿇고 앉아 저 하는 양을 꼼꼼히 살피더니 끝내는 야쿠의 등을 끌어안으면서 작고 약해서 걱정이라니, 그녀는 멍하니 두 사람을 응시했다. 순간 결 좋은 은빛 머리카락 위로 꿀밤을 떨어뜨리는 임부가 눈동자에 아롱아롱 맺힌다.




“리에프, 조용히 하고 있어!”


“아야! 왜 때려요― 진짜 폭력 남편이야!”


“내가 왜 네 남편이야?”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둘이 애도 만들었는데!”


“창피하게 이럴래?”


“언제는 걱정해주는 게 너무너무 좋다면서요!”




둘째도 만들자고 했던 게 누군데? 하고 낯간지러운 소리를 덧붙이는, 리에프라고 불린 남자에 요코는 경악했다가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했다. 문득 동료 의사가 귀띔해주었던 것이 떠오른다.




‘요코의 환자, 야쿠 모리스케 말이야. 고양이과 중종을 두 마리나 데려왔던데 어느 쪽이 아빠야?’




그 말을 허투루 듣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한 쪽은 계획에 있던 흑표범 쿠로오였을 거고, 다른 한 쪽이 저이였군. 정황으로 보아 야쿠의 거래 상대이던 백사자인 게 확실하다. 지금은,




“누가 걱정하지 말래? 둘이 있을 때 하라고!”




연인으로 발전한 건가? 엉겨 붙어서 속닥거리는 바보 커플이 아차! 하고 드디어 조용한 그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을 가늘게 뜨고 리에프를 살피던 요코가 살짝 미소 지었다. 묵직한 위용을 내뿜는 백사자의 녹안이 드레지게 야쿠를 쫓는 것만 보아도 한낱 불장난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다. 사실은요, 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야쿠에게 친구로서 한 마디 해주어야겠다. 능력 좋네, 모리. 축하해.




“비밀로 해 달라 이거지?”


“네.”


“알았어, 그보다 뭐라도 찾아 먹어야 해. 정 힘들면 영양주사라도 가져올 테니까 바로 연락하고.”


“고마워요.”


“아, 그러면 엽산 사다 준 것도 그 쪽?”




리에프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요코가 구두를 신으면서 무심한 어투로 좋은 아빠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진 건 고양이 쪽이다. 슬쩍 리에프의 옷자락을 잡으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이 마치 내 사자가 이 정도라고 자랑하는 것 같아서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배웅이 끝나자마자 야쿠가 옆으로 팔을 뻗는다. 처진 속눈썹이 느릿하게 맥없는 눈동자를 숨겼다. 저를 향해 내밀어진 손끝에 살짝 입술을 댄 리에프는 몸을 숙여 야쿠의 허리를 번쩍 안아들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뺨을 기대고 고목나무가 된 몸통에 다리를 감는다. 열기 어린 숨결이 목을 간질였다.




“뭐 좀 먹었어요?”


“키위 조금.”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 먹여도 부족한데 고작 키위라니,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그나마 과일이라도 먹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앓고 있어서 요즘은 자나 깨나 야쿠 걱정뿐이다. 접시까지 씹어 먹을 기세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밥이라는 말만 들어도 헛구역질을 한다는 게 처음엔 신기했는데 지금은 뱃속 아기에게 제발 그만하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다. 내 고양이한테 너무하잖아! 신체 변화로 누구나 겪는 임신 과정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힘없이 배시시 웃으면서 괜찮다고 할 때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에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따라 뼈가 더 불거진 것 같은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안쓰러운 마음에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잠투정하는 애처럼 단단한 어깨에 눈가를 비빈다. 그래도 이런 건 좋단 말이야. 몸이 약해진 만큼 기대는 일이 많아졌다.




“어제도 자다 깼어요?”


“거의 못 자서…… 졸려.”


“잘래요?”


“응.”




쪽. 침대에 누이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리에프는 해가 들지 않도록 커튼을 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초저녁처럼 어슴푸레해진 방이 고요하다.




“얼른 자요.”


“나 자면 뭐하게?”


“청소하고 빨래해야죠.”




요즘 매일같이 이 집을 드나드는 리에프가 주로 하는 일이다. 때때로 저가 낮잠을 잘 동안 우렁 각시처럼 집안일을 해놓고 가기도 한다. 야무진 야쿠에 비할 수준은 전혀 아니지만 뭐든 성심껏 해놓아서 주인이 아픈 것 치고는 집이 늘 깨끔하다. 음식을 할 때도 있다. 그가 처음 해준 죽의 설익은 밥알이 떠오른다.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난생 처음 죽을 끓일 때는 허리를 반쯤 접은 채로 허둥지둥하다 냄비를 태우고 난리도 아니더니 이젠 죽이나 수프 위에 김으로 하트를 수놓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야쿠는 턱 끝까지 이불을 올려주는 리에프를 졸음 가득한 눈으로 올려보다가 궁둥이를 뒤로 빼면서 이불자락을 들어 올렸다. 이리 들어와. 저가 내준 침대 반쪽에 눈짓하자 재빠르게 품을 차지한다.




“청소하지 말고 나랑 자자.”


“그럼 만져도 돼요?”




아얏! 등을 꼬집힌 리에프가 질세라 야쿠의 어깨를 껴안아 제 몸을 밀착시켰다. 순식간에 등을 내주게 된 야쿠가 변태라고 읊조리면서 제 뺨을 만지작거리는 손을 잡아내려 배를 쓰다듬도록 한다. 손바닥에 둥그스름하게 감기는 배. 아직 옷 위로는 티도 안 나지만 만져보면 불쑥 나온 걸 알 수 있다. 손가락이 뻣뻣해질 만치로 조심스럽게 문지르자 밭은 웃음소리가 침대로 떨어진다.




“물 풍선 같아요.”


“느낌 좋지? 쫀득쫀득해.”


“다음에 병원 가면 꼭 심장박동 녹음할 거예요.”


“또 울게?”


“제가 언제 울었어요?”


“눈물 고인 거 봤는데.”


“아니거든요!”


“아가야, 네 아빠는 울보란다.”


“아니야, 나 울보 아니야!”




애정 어린 속삭임이 쉬이 그치지 않는다. 한 이불 안에서 입을 맞추고 자늑자늑 손장난하다가 야쿠가 먼저 눈을 감았다. 사랑해요. 편안한 저음이 자장가처럼 귓가에 내려앉는다. 속절없이 쏟아지는 잠에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소매를 꼬옥 쥐었다. 나도 그래, 리에프. 잠에서 깨어났을 때 늘 네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강나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