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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첸] 어리석은 연애 보고서 제 4장

찬열X종대





























먹구름이 부유하는 하늘. 대낮인데도 잿빛이다. 이에 어우러져 매캐한 담배 연기가 독하게 내뿜어졌다. 회사의 야외 휴게실 나무 벤치에 앉아 미간을 좁히며 찬열이 깊게 그 연기를 들이킨다. 회사의 작은 숲 속이라는 조성 의도와 달리 이곳은 흡연자들의 쉼터가 되었다. 하늘색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팔이 쓰러진 플라스틱 튤립을 세운다. 처음에는 생기 넘치는 생화가 오밀조밀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철사가 튀어나와 흉측하기까지 한 조화로 바뀌었다. 여러모로 관리가 힘들었나 보다. 애연가들이 꽃의 목을 졸라서일 수도 있고. 가끔 여기에서 종대와 밀회를 즐겼다. 먼발치에 떨어져서 우리는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찬열은 지금처럼 담배를 태웠고 그는 커피를 마시거나 우두커니 서 있고. 온 신경을 서로에게 쏟은 채 은밀한 눈길을 얽는 것은 의외로 짙은 여운을 남겼다. 그 사이로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나가도 우리의 영역은 침범 당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안에 있던 이가 그 영역을 무참히 찢고 나가버렸는데.

비가 오려나? 중얼거린 찬열은 팔을 뒤로 짚고 고개를 젖혔다. 주말에 할 것도 없었는데 마침 비나 철철 내렸으면 좋겠다.




“오늘 고백할거라니까!”




뒤쪽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음이 잔상을 흐트러뜨린다. 시끄러워. 앞쪽으로 지나치면서 통화를 하는 여자에게로 힐끗 시선을 던진 찬열은 그녀가 종대가 있는 회계 부서의 신입 직원임을 알아챘다. ‘사원증에 피카츄 스티커가 붙어있는 단발’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이렇듯 그에 대한 사소한 것들이 헤어진 후에야 불쑥불쑥 튀어나와 잊으려는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곳곳에 저와 종대의 기억들을 버려둔 채 야속하게 떠난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더니 어렵지 않게 잊어가는 중이지만 때때로 보고 싶어지는 것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같은 회사에 다녀도 부서의 층이 달라서 우연히 마주칠 일도 없고 이젠 전처럼 나와라 마라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종대는 이젠 여기에 올라올 일도 없겠지. 볼 수가 없으니까 보고 싶다. 만지면 안 되니까 만지고 싶다. 청개구리도 아니고. 찬열이 짧게 혀를 차더니 이내 토막 난 꽁초를 쓰레기통으로 던진다. 그럼 왜 가만히 있느냐고? 실은 간절하지가 않다. 그냥 허전하고,




“아까 야근 안 한다고 좋아하는데, 귀여워 죽을 뻔. 우리 대리님? 나보다 5살 많아, 근데 진짜 동안이야. 아, 단 거 좋아하니까 케이크도 살까? 퇴근하고, 밥 먹고……”




남 주긴 싫을 뿐이다. 몸을 일으키던 찬열은 그녀의 고백 상대가 김종대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비소를 머금었다. 딴에는 속살거린다고 목소리를 낮추고 있지만 위치가 좋지 않다. 하필이면 전 애인 앞에서 통화를 할 건 뭐람? 저기요, 김종대는 남자 좋아하거든요? 거기다가 나같이 키 크고 어깨 넓은 게 필수 조건이야, 알지도 못하면서. 속으로 마음껏 비아냥거리면서 돌아섰다. 걸음걸음마다 사납게 굳어진 그의 얼굴은 무서울 지경이다. 삽시간에 기분이 바닥을 친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메신저에서 쉬이 익숙한 이름부터 찾아냈다. 초조한 건지 화가 난 건지 책상에 어질러진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밀어버린다. 짜증나. 작게 욕을 읊조렸다. 찬열은 왜 그러고 싶은 건지 따위의 본질은 생각지 못한 채 야외 휴게실에 있던 그녀를 방해하기 위한 묘안을 찾으려 머리를 굴렸다. 그 동안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그치던 것이 모조리 헛수고가 되었다. 정신없이 김종대에게 몰두한다. 그 여자가 종대에 대해 아는 것이, 호감을 가지는 것이 진저리 처질 정도로 싫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같은 사무실에서 그에게 치근덕거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빠드득 이가 갈렸다. 쓸데없이 순해가지고 또 헤프게 웃어주겠지. 그러면서 나한테만 모질지, 나쁜 새끼. 저에게는 웃어주지 않게 된 전 애인이 다른 사람에게 욕심날 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자존심이 상해서 애꿎은 데로 화살이 날아간다. 쪽지 창을 열어서 회계부서 아래 ‘김종대’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손가락이 부서져라 세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재무 보고 회의 계획서 오늘 회신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양식 및 참고 자료 첨부합니다.]




갑작스러운 일거리에 열이 뻗쳐 씩씩거릴 것을 떠올리자 그제야 눈에 힘이 풀린다. 성격상 이 쪽지에 항의하지 않을 거고 업무에 관련된 것이니 무시하지도 못할 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찬열이 보낸 것이니 왜 회신 일자가 당겨졌는지 묻지도 못 하겠지. 입을 가린 채 키득거린 찬열이 화면에 떠오르는 수신 확인 메시지에 쾌재를 불렀다. 김종대 야근 확정! 더불어 저도 야근을 해야겠지만 개의치 않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시원하게 복수한 기분이다.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이유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퇴근 시간이 되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 이름들 사이에 예상대로 종대의 것은 꺼질 기미가 없다. 기어코 오늘 고백을 하려는 건지 회계 부서에 남은 건 두 사람이다, 김종대와 그 여자.




“꺼라, 꺼…… 그냥 가라, 좀.”




텅 빈 지원팀 사무실에 탁탁 다리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의자에 등을 기대어 있던 찬열은 창문에 빗줄기가 그려지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픽 웃어버렸다. 너 지금 뭐 하냐, 박찬열. 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되는 사람에게. 이것도 미련인가? 그 때였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계획서 확인 후 답변 요망.]




아직이야. 종대가 보낸 파일을 대충 훑어보고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내용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쯤 되면 일부러 이러는 걸 알고 어이없어 하거나 지질하게 왜 이러냐며 질색을 하고 있을 거다. 조금 지나자 드디어 여자의 이름이 사라졌다.




“진작 그럴 것이지.”




잠시간의 성취감에 몸을 떨었다. 고백을 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오늘은 안 돼. 어줍지 않게 안심이 된 찬열은 ‘김종대’라는 이름을 눈에 새긴다. 비록 업무적인 메시지일 뿐이지만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게 새삼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퇴근도 안 하고 그를 묶어두려 안달한 제 모습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오롯이 그를 생각하는 일이 지금은 이다지도 쉽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헤어지기 전이라면 이 시간조차 소중했을 텐데 지금은 낭비일 뿐이다.




‘배고파, 집에 밥 없는데. 퇴근하고 어묵 먹으러 가자!’


‘오늘? 아, 피곤해, 나중에.’


‘지금 배고프다니까, 무슨 나중에야?’


‘나 요즘 너무 피곤해, 한번만 봐줘, 종대야.’


‘알았어, 얼른 집 가서 쉬어.’


‘주말에 맛있는 거 사줄게.’


‘또 귀찮다고 배달시킬 거면서…… 너 짜증나, 끊어!’




나중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정작 나중이 되자 해줄 수 없게 되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종대가 다시 보낸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확인했다는 답변을 보냈다. 한 글자씩 망설이며 식사라도 하자는 문장을 완성했을 때에는 이미 목록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진 뒤였고 찬열은 어떤 것도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뭐가 맞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는 차를 몰고 나오는데, 비를 맞으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변함없이 말간 얼굴. 왠지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막상 마주하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저가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면 비도 안 맞고 식사도 거르지 않았을 텐데. 언젠가부터 그를 망치는 데엔 도가 텄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조차. 하지만, 지금은 이 길이 맞는 것 같다.




“씨발, 우산은 어디에 팔아먹고……”




찬열은 괜스레 욕지거리를 하며 속도를 올려 종대를 지나쳐버렸다. 쉴 새 없이 눈앞을 흐리는 빗물에 그가 녹아 없어지면 좋겠다.











아늑한 주홍 불빛이 깔린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두리번거리다 테이블에 홀로 앉아 술을 따르고 있는 찬열을 찾아낸다. 그 앞에 자연스럽게 마주앉아 술병을 빼앗자 풀린 눈이 억지로 힘을 주어 쳐다본다.




“어어, 민석이 형이다!”


“아직 정신은 있네.”


“혀엉……”




민석은 새 수저와 잔을 받아 내려두고 오랜만인 찬열을 살폈다. 푹 꺼진 눈 밑이 까칠하고 얼굴이 반쪽이 된 것이 있어도 뭔가 대단한 일이 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저 혼자만 불러낸 것을 보니 연애에 관한 일인 것 같아 선수를 쳤다.




“싸웠냐?”


“우린 싸운 적 없는데? 김종대는 착해서 맨날 먼저 사과하잖아.”


“그럼 무슨 일……”


“헤어졌어.”


“뭐?”


“끝났다고…… 끝, 끝, 완전히 쫑났어.”


“갑자기 왜?”




몰라. 의외의 사건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민석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서둘러 빈 잔에 술을 채웠다. 몇 년 전, 갑자기 남자가 좋아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칠 때 그렇게 뜯어말려도 결국 연애를 시작하더라. 지지고 볶고 웬만한 사람보다 잘 만나기에 어느새 거부감도 사라지고 익숙해졌는데 이제 와서 헤어졌다고 하니 조금 김이 샌다. 잘 됐다고 말하기도 영 찜찜하고. 그의 연인에 대해 아는 것은 저뿐이어서 위로를 해주긴 해야 되는데 정황이라도 알아야 조언이든 충고든 할 거 아니야? 해롱해롱한 찬열은 남이 되어버린 이가 보고 싶다고 중얼거릴 뿐이다.




“네가 헤어지자고 한 거야?”


“아니.”


“걔는 헤어지잔 말 못한다면서 밤새도록 퍼 마시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꼴좋다, 박찬열.”


“허락 받았었거든? 형, 가, 진짜! 가뜩이나 답답해 죽겠는데……”


“참나, 그러셨어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말해 봐.”




헤어진 이유? 마음이 변해서? 눈앞에 채워진 술잔을 쥔 채 멍하니 어묵 탕을 바라본다. 나도 몰라, 종대가 헤어지자고 했어. 근데, 그 애가 어떻게 그런 말을 했을까?




‘찬열아, 혹시 말이야, 네 마음이 변하면……’


‘또 이상한 소리 한다.’


‘그러니까, 혹시! 만약에!’


‘취했지?’


‘마음이 변하면, 음…… 별로 보고 싶지도 않고, 막 그런 거 있잖아. 생각도 안 나고…… 표정 봐, 한 대 치겠네. 박찬열씨, 됐어요, 됐어, 말 안 해!’


‘계속 해, 대신 쓸데없는 말이면 꿀밤 맞아.’


‘그러면 꼭 나한테 말해줘. 혼자 삽질 하지 않게, 우리한테 남은 것들이 비참해지지 않게.’


‘그렇다고 하면 뭐, 헤어지자고 하게?’


‘아니, 난 못 하지.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낫겠다! 악!’


‘맛이 갔네, 아주! 봐봐, 진짜 깨물면 어떡해! 피나, 아파?’


‘아아, 아파.’




헤어지자, 가슴에 품고 있기엔 뜨겁고 괴로운 말이다. 그런 걸 종대의 가슴에 떠안긴 사람이 다름 아닌 나다. 아마 몇 번이나 울컥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억누르고 달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워서 바깥으로 뱉어냈겠지. 이미 다 헤져버린 제 마음은 돌아보지도 못 하고 끝까지 내 걱정을 했을 거다. 이별의 말을 들었을 때, 네가 이렇게 아픈 말도 할 줄 알아?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참 뻔뻔하고 멍청했다. 그렇게 만든 사람이 너잖아, 박찬열.

사랑을 받은 게 아니라 빼앗았다. 그래서 넘치게 된 마음인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져서는 소홀히 대했다. 연락? 바쁜 거 알잖아, 네가 이해해. 산책? 피곤하니까 내일 하자. 약속 있다고? 나 그 때밖에 시간 안 된단 말이야. 영화? 그거 재미없대, 다운 받아서 봐. 내일? 친구 결혼식, 모임, 회식이니까 봐줘. 5주년이라고? 오래 됐네. 소름 끼치도록 관계에 나태했다. 끄집어낸 마지막 1년 속에 있는 제 모습이 가관이다. 곁에 머무르기엔 너무 매섭고 차갑다. 이 혹한으로부터 종대는 우리한테 남은 것들을 지키려고 떠난 거다. 애틋하고, 소중한 기억이 비참해지기 전에.




“미친 놈, 우냐?”


“형, 걔 알지? 실실 웃는 거, 막 이렇게.”




손가락으로 눈매를 당기자 손끝에 물기가 어린다. 민석은 서른 넘어서 차이고 질질 짜고 있는 친한 동생의 모습이 가관이라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못난 놈은 아니었는데 사랑의 힘이란 게 참 대단하다. 사람 하나 망쳐놓기 쉬운, 위험한 놀음이다.




“너무 보고 싶어, 옆에서 웃고 있을 때 많이 봐둘 걸…… 흑……”


“가지가지 하네. 2층만 올라가면 걔네 팀 아냐? 가서 보든가.”


“근데, 보기 싫어.”


“미친……”


“괜찮은데, 안 괜찮아. 진짜 미치겠어.”


“그래 보여.”




얼굴 보고 있으면 잘못했던 것들이 다 쏟아져 나와서 진짜 놔줘야 될 것 같단 말이야. 옆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남한테도 그렇게 못 되게는 안 했을 거야.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누구는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서 안달이라고. 걔는 아마 내가 아니라 누굴 만나도 좋은 사람일 거야. 나는 걔 아니면 개차반이고. 주절주절 늘어놓은 찬열은 가만히 테이블에 얼굴을 기댔다. 차가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진다. 기분이 더럽다. 눈이 크면 눈물이 많다더니 널 보니까 알겠다고 민석이 키들거리는 것이 아득해졌다.













“감사합니다.”




대리 기사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찬열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게 한 종대는 두 팔로 그의 허리를 잡아 당겼다.




“으, 술 냄새!”




인상을 팍 찌푸린 채 거칠게 코트 자락을 움켜쥔다. 어이가 없어서 욕도 안 나오는 지경이다. 왜 남의 주소를 부르고 난리야?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계속 김종대, 김종대 이름을 부르기에 대리 기사가 대신 전화를 걸어줬단다. 찬열의 번호로 세 번이나 전화가 오기에 받지 않았더니 모르는 번호로 다시 전화가 오는 거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갑작스레 불안감이 밀려와서 조심스럽게 여보세요? 했다가 이 꼴이 되었다. 찬열의 집을 다시 알려주어 보내려 했지만 늦은 시각 주정뱅이 손님에 질린 기사에게 짜증스러운 퇴짜를 맞았다. 겨울이 아니라면 길가에 내버려두고 싶은 심정이다. 비가 내린 뒤라 바람이 차다. 너무 무겁다. 그리고 이 애가 깨어날 내일이 무섭다. 회사에서 일부러 골탕 먹일 때부터 알아봤지.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일을 시키질 않나, 트집을 잡질 않나. 어쩜 헤어지고도 이렇게 못살게 굴까? 제게 그런 날이 있는 것처럼 오늘따라 참기 힘든 날이었나 보다, 그에게도.




“계단이야, 정신 좀 차려 봐! 박찬열!”


“으응……”




실눈을 뜨고 가만히 종대의 얼굴을 쳐다본다. 흠칫 놀란 그가 입술을 깨물면서 몽롱한 시선을 피했다. 아직 안 되나 봐. 그래, 헤어진 지 고작 세 달이잖아.




“헤…… 김종대? 김종대다, 김종대.”


“어!”


“아아, 아파.”




갑자기 등을 와락 끌어안은 팔이 억세다. 너무 놀라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종대가 진저리를 치며 두 팔로 가슴팍을 떠밀었지만 힘으로는 찬열이 우위다.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꿈쩍도 안 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안겨 있기로 했다. 술 취한 사람 상대로 빼고 있을 만큼 힘이 넘치지 않는다.




“종대야……”


“왜.”


“김종대.”




살이 좀 빠졌나 보다. 술 냄새, 담배냄새, 익숙한 향수 냄새. 어느 것 하나 낯선 것이 없다. 쌀쌀한 새벽공기만큼 차가운 표정으로 찬열을 대하고 있는 종대는 그에게 낯설어지고 싶다. 넌 더 이상 날 아프게 할 수 없어. 감내하는 것에는 도가 터서 종대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종대야, 부르는 목소리에 이제 와서 그렇게 불러봤자 소용없다고 수십 번 매몰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곧 팔을 올려 흐느끼는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나 때문에 울지 마, 찬열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어떤 아픔인지 알아서 차마 견뎌내라고 다그쳐지지 않는다. 아직도 이 애 앞에서 나는 약한 사람이다.




“올라가자.”




소파에 던지다시피 찬열을 누였다. 따뜻한 안 공기에 술기운이 다시 오르는지 눈을 깊이 감은 채다. 뒤척거리는 몸에서 코트를 벗겨주는데 옆으로 온 봄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그 몸에 앞발을 들이민다. 개를 팔로 장난스럽게 막아내면서 웃은 종대는 옆에 있는 담요를 덮어주곤,




“봄아, 우린 들어가서 자자.”




방으로 들어갔다.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가 어두운 공기를 묵직하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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