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안 먹었지?”




주홍 불빛으로 데워진 작은 가게. 저녁 식사 겸 추위를 피해 근처 라멘 가게에 들어온 참이다. 구슬 채워진 유리병으로 반짝거려 눈에 띄었다. 온기가 응집된 곳으로 후다닥 들어온 두 남자는 잠시 눈을 마주치곤 잡았던 손을 확 놓아버린다. 마주 앉아 있으니 새삼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호텔에서 만났을 때부터 리에프가 없던 어제까지의 기억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는 바람에 붉으락푸르락하던 야쿠가 빳빳한 소매를 만지작거린다. 수저를 앞에 놓아주기에 반사적으로 나온 고맙다는 인사에 사자는 싱긋 웃었다. 얼굴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냐? 야쿠는 일부러 그를 째려보고는 서둘러 젓가락질을 했다. 후루룩후루룩 소리만 요란하다.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느꼈던 건데,




“정말 잘 드시네요.”


“너, 진짜 잘 먹는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보려 꺼낸 말이다. 둘은 하하 마주 웃고는 다시 그릇에 코를 박았다.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야무지게 젓가락을 쥔 손을 힐끔거리다가 리에프가 먼저 운을 뗐다. 야쿠상, 하고 부른 입술이 부루퉁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뭘?”


“왜 저 피해요?”


“내가 언제 피했다고……”




지금도 눈 피했거든요? 슬그머니 굴러가는 눈동자 앞에다가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지난 며칠간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이다.




[야쿠상, 저녁 먹을까요?]


[아니, 약속 있어]


[퇴근하고 심야영화 볼래요? 새로 나온 거 죽인다는데!]


[아니, 피곤해]


[이번 주말에 뭐해요?]


[별로]


[그럼 만나주세요!]


[싫어]




뜨끔. 답장할 때는 몰랐는데 모아놓고 보니 눈발처럼 매몰차다. 저를 내버려둔 리에프가 괘씸해서 도끼눈을 뜨고 작성한 문자들이어서 그런가 보다. 차단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야쿠상! 하지만, 그러기 전에 재촉 당하는 바람에 ‘그게……’ 하고 말꼬리를 늘였다가 콱 붙잡혀 버렸다.




“우리 그 때…… 좋았잖아요, 밥도 맛있게 먹고, 얘기도 많이 하고.”


“…….”


“같이 씻고, 자고……”


“그, 그건 그 때고!”




입을 막으려 했지만 뒤로 물러나며 그 손을 낚아챈 리에프가 더 빨랐다. 순간적으로 비죽 올라간 눈초리가 매섭다. 넘어갈 생각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눈이다. 잡혀있는 손을 빼내려 할수록 그의 손아귀에 힘이 더해진다. 아파. 혈기왕성한 어린 사자를 이겨먹기는 글러먹은 것 같아 포기했다. 리에프는 힘이 빠지는 손을 놓지 않고 살살 그러쥐어 달랜다. 그제야 공중전을 그치고 얽힌 두 손이 테이블 위로 안착했다.




“집에 잘 들어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최대한 불쌍한 척 어깨를 늘어뜨린 리에프가 저 아팠단 말이에요, 덧붙이며 툴툴댔다. 아팠다고? 내가 100배, 1000배는 더 아팠거든! 갑자기 나타난 야쿠의 꼬리가 발끈해서 바짝 서는 걸 보고 푸른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제 손바닥 아래서 불끈 쥐어지는 주먹이 느껴진다.




“너야말로 연락 없었잖아! 나도 아팠거든!”


“어? 정말요? 어디가요!”


“어디긴!”


“엉덩이?”


“야! 이씨……”


“아니에요? 그럼 허리? 가슴?”


“그 망할 입 좀 다물어.”




이를 악물고 소곤거리는 게 귀여워서 머리를 숙여 키득거리자 눈을 치뜬다. 맞을래? 관자놀이를 누르는 야쿠의 이마를 짚으면서 머리도 아파요? 묻자 어이가 없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너 때문이라고 대꾸하는 입술이 도톰하다. 그게 얼마나 보들보들한지 알고 있다. 짧은 속눈썹이 촘촘한 것이, 그마저 도담스러워 만지고 싶다. 야쿠는 어느새 논점을 잊고 손을 꾹꾹 누르며 잡아먹을 듯이 저를 주시하는 사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절로 모르는 척 하게 만드는 절절한 눈빛이다. 보통 경종이 중종에게 발정해야 되는 거 아냐? 혹시 저도 모르게 페로몬을 흘렸나 싶지만 절대 아니다. 꿀꺽. 리에프가 입맛까지 다시는 걸 보고나서야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디가 아팠는데요, 병원은?”


“온 몸이 다 아팠다고, 누가 사자 아니랄까 봐 깨물기는……”


“지금은 괜찮아요?”




장난스럽게 묻던 아까와는 달리 잔득한 음성에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잡힌 손이랑 신발 끝이랑 죄다 리에프가 꽁꽁 묶어버린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눈길까지 사로잡혔다. 가만히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방금 전까지 유치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게 우습다. 우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연락 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그 날 일, 미안하기도 하고요.”


“신경 쓰지 마, 반류의 본능이잖아?”


“그게 싫은 거예요, 그 때 저는 섹스가 아니라 다음엔 어디서 만날지 뭘 할지 얘기하고 싶었으니까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강한 어조여서 야쿠는 아연실색한 낯으로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다행이 타인은 모두 각각의 관계에 빠져있다. 인상을 찌푸린 채 으르렁거리는 리에프에게 주의를 되돌리기가 무섭게 바로 옆 테이블로 손님이 몰려온다. 이래가지곤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겠어. 평소에도 흐지부지한 것을 못 참는 성격상 야쿠는 되도록이면 오늘 이 애매모호한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야쿠상 때문에 선조 귀환, 중종 같은 거 다 하기 싫어졌어요!”


“누군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것들이야, 철없는 소리 말고……”


“남들이 무슨 소용이에요? 제가 좋……”




쉿.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대화를 제지시킨 야쿠의 손가락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먼저 겉옷을 챙겨 입은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나머지는 차에 가서 하자. 이 말만을 남기고 먼저 앞으로 나아가 계산을 한다. 우리가 차에 가서 해야 될 건 역시 대화겠지? 남겨진 리에프는 갑자기 열이 오르는 제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 쥐며 페로몬이나 혼현 따위가 아니라 진짜 문제는 야쿠에게 반한 자신에게 있는 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와, 야쿠상 차다!”




회사 주차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흰색 승용차의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고갯짓을 하니 잔뜩 상기된 얼굴로 싱글벙글한 것이 수상쩍다. 리에프는 차에 오르자마자 갇혀있던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방향제의 상큼한 향기. 차의 주인과 곧잘 어울리는 향이라서 좋다. 춥다고 구시렁거리면서 야쿠가 시트에 몸을 기대자마자 리에프의 커다란 손이 어깨를 잡아챘다. 쪽.




“야!”


“휴…… 이제 살겠다, 뽀뽀 하고 싶어서 죽을 뻔 했어요.”




어깨까지 들썩거리면서 느물거리는 사자가 너무 뻔뻔해서 말문이 막혔다. 이 능청맞은 자식! 감촉이 남아있는 뺨을 슥 문지른다. 적어도 한두 대 얻어터질 줄 알았는데 야쿠는 부끄러움을 덮으려 깜찍하게 혀를 찬 게 다다. 아까는 누가 볼 새라 감정, 표정이나 혼현, 가진 것들을 감추려고 애쓰던 야쿠가 자기 공간에서 티 나게 수더분해진 것이 신기하다.




“어디까지 얘기했지? 중종인 게 싫다고?”


“아까처럼 손잡을까요? 너무 조용하니까 조금…… 쑥스러운데.”


“풋…… 그래.”




잡아. 수줍게 눈을 내리깐 리에프가 귀엽다. 확실히 단 둘이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야쿠는 내내 실룩하던 표정을 풀고 조수석으로 몸을 틀었다. 진짜 작다는 둥 또 쓸데없는 말을 읊조리면서 제 손을 꼬옥 잡는다. 어린 애처럼. 손톱으로 손가락 하나를 꼬집었더니 리에프는 헤헤 소리 내어 웃었다.




“제가 중종이라서 밀어내니까요, 야쿠상이.”


“그건……”




정확하게 맞는 말이라서 딱히 핑계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리에프는 아직 반류 사회에서 중종과 경종의 신분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몰라서 이렇게 진실할 수 있겠지. 후에 관계가 틀어지면 상처 받는 건 고양이일거고, 먼저 버림받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다. 호텔에서처럼 회의적인 표정을 짓는 야쿠에 답답함을 느낀 리에프가 기다리지 않고 입을 떼었다.




“그래서, 제가 아무것도 아니면 좋겠어요. 그럼 내 말 곧이곧대로 들어줄 테니까…… 좋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전부.”


“…….”


“비겁해요, 제가 싫은 게 아니라 사자라서 안 된다고 하는 거.”


“그렇지만 보통 반류는 끼리끼리야. 네가 나한테 끌리는 건 처음 맺어진 반류라서 그럴 수도 있어, 리에프.”


“아니에요, 확신할 수 있어요.”


“참 나…… 그걸 어떻게 확신한다는 거야?”


“나랑 있는 게 싫어요?”




아니, 오히려 좋을지도. 소리를 갖지 못한 대답이 머릿속에서 부서진다. 사자와 함께일 때마다 거세게 흔들린다. 땀이 베어나 마주한 손바닥이 촉촉하다. 초록 눈은 애절하고 짙게 물든 채이고.




“정말 싫었어요?”




또 손을 콱 잡아당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진심을 다해 부딪쳐 오는 것일까? 궁금하면서도, 밀려오는 마음이 상냥해서 야쿠는 잠식된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지금은,




“네? 야쿠상, 싫……! 으음……”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 사자와 키스하고 싶을 뿐이다. 주저 없이 파고드는 혀에 당황한 것도 잠시, 리에프는 눈을 감으며 그에 응했다. 서로에 조금이라도 더 묻고 싶어 안달인 것처럼 두 사람은 급하게 입을 맞춘다. 야쿠는 끈적거리는 손으로 리에프의 뒷목을 끌어안았다. 가빠지는 숨결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핥는 이의 뺨 위로 흩어진다. 공기가 축축하게 젖어 머릿속마저 뿌예지는 것 같다. 반들거리는 입매에 재차 입술을 비볐다.




“하…… 리에프.”


“네? 네!”


“안전벨트 매, 데려다 줄게.”




내비게이션에 새로 입력된 주소를 따라 운전하는 내내 옆에서 웃음이 들려왔다. 실실 웃지 말라고 연신 주의를 주는데 리에프는 성의 없이 알겠다고 대답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푸흐흐 웃었다. 스스로 저질러버린 행동이 기가 막혀 괜히 정면만 보고 있던 야쿠도 끝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희소를 머금는다. 생각지 못한 열렬한 대답이 돌아온 것이 기뻐 안전벨트를 부여잡은 손으로 쿵쾅거리는 가슴께를 눌러봤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야쿠상, 너무 멋져. 운전하는 것도 멋있고, 키스도 잘 하고……”


“내리기나 해!”


“주말에 데이트해요! 알았죠?”


“몰라.”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집 가서 연락해야 돼요!”




곧장 들어가지 않고 맨션 앞에서 방방 손을 흔든다. 키가 워낙 커서 저러고 있으니 지진이라도 날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야쿠는 핸들을 돌렸다.

앞으로 어떡하지? 걱정하는 입가에 걸려있는 건 사분사분한 애정이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가볍게 만나보지, 뭐. 그러지 못할 사람이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떠오르는 기분을 참아보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샤워를 하다 웃음이 터졌을 땐 혼자임에도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다. 미쳤다, 미쳤어! 소리 지르는 것도 당연히 했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문지르며 나온 그는 빠른 걸음으로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던 핸드폰부터 찾았다.




[야쿠상, 도착했어요? 전 씻고 누웠어요.]


[보면 답장해주세요! 우리 이제 사귀는 거예요, 무르기 없어요!]


[눈이 감겨요, 졸려. 또 보고 싶어요.]




정말 못 말리겠다. 반달눈으로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움직인다.




[집 왔어, 얼른 자]




딱딱하게 답장하고는 아주 어른스러웠다고 자찬했다. 살랑살랑. 마음껏 혼현을 풀자 꼬리가 춤을 춘다. 기분이 좋아서 푹신한 이불에 등을 동글게 말아 비비적거렸다. 지잉 울리는 소리에 귀가 쫑긋 선다. 리에프의 메시지다. [잘 자요, 모리스케♥]




“미쳤나 봐……”




너무 귀엽잖아! 젠장! 온 몸으로 침대를 팡팡 두드리다 절규하듯 이부자리에 손톱을 세운 야쿠는 한참 동안 침대 위를 굴러다닐 수밖에 없었다. 리에프는 귀여움으로 승부하겠다던 저의 다짐이 한 고양이를 잠 못 들게 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답장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잘 자, 리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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