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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첸] 어리석은 연애 보고서 제 2장

찬열X종대


























방 안의 모든 것이 새벽이라는 시간 속에 어슴푸레하게 잠들어 있다. 갈증으로 잠에서 깬 찬열은 몸을 일으키려던 것을 그만 두고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끔뻑끔뻑 눈꺼풀만 움직이고 있으니 정적이 형체를 입고 저를 둘러싸는 느낌이다. 옆에 누워있는 종대의 어깨 너머로 휴대폰 액정 불빛이 넘실거린다. 이 시간에 누구와 연락이라도 하는 건지 뭘 하는 건지 그 빛은 꺼질 기미가 없다.




“……안 자? 뭐 해?”




막 깨어난 채하며 묻는 목소리가 잠겨 평소보다 낮게 울렸다. 종대가 동그래진 눈으로 어깨를 젖힌다. 깼어? 두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빽빽한 글자들이 채워져 있고 찬열은 자연스럽게 그게 어떤 책이나 기사라는 걸 알아차렸다.




“잠이 안 와?”


“그냥. 요즘 좀 그러네…….”




어쩐지 뺨도 핼쑥하고 피곤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 아니었나 보다. 깜깜해지니 가까이에 있는 말간 얼굴이 뚜렷해진다. 자야지, 중얼거리면서 화면을 점멸시키고 돌아눕기에 두 팔로 종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살도 빠졌나? 힘없이 딸려온 머리카락이 맨 가슴에 달라붙어 간지럽다. 숨결 때문에 피부 한 바닥이 따뜻해졌다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살짝 내려다보니 감긴 눈 끝에 이어진 속눈썹이, 날렵한 콧날이 보인다. 여전히 예쁘다. 찬열은 새삼스런 감상에 빠졌다. 이성애자였던 저를 반하게 한 데에 이 얼굴이 크게 한 몫 했다는 건 변명할 길 없는 사실이다. 특히, 끝이 말려 올라간 입 꼬리를 힘껏 늘려 웃으면 세상이 다 환해지는 것 같았다. 거기에 안으로 머금어지는 특이한 웃음소리까지 더해지면 아아, 그냥 넘어가는 거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웃는 걸 보기가 힘들다.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그런가? 하여튼 망할 놈의 회사가 문제라니까. 품 안에서 뒤척거리는 등을 조금 쓸어주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나? 종대는 아직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찬열은 크게 하품했다. 무슨 일 있었으면 말했겠지. 눈을 감자 또 다른 어둠이 밀려든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이었는데, 내일 물어봐야겠다.











바지춤을 끌어당기면서 거실로 나온 남자는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긴 다리 한쪽이 휘적거리며 리모컨을 찾는다. 텔레비전을 켰다가 급히 볼륨을 낮췄다. 간밤에 쉬이 잠들지 못하던 연인이 아직 한밤중이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채널을 변경한다. 내가 쉬는 날에는 재미있는 거 하나도 안 하더라. 찬열은 뭐 볼 거 없나, 하고 중얼거리더니 거실 구석에 있는 수납장 앞으로 쪼르르 향했다. 쪼그려 앉아 눈을 치뜨고 뒤적뒤적. 수납장에는 종대가 수도 없이 봤을 DVD가 한 가득 이다. 그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장르나 평점에 구애 받지 않고 영화 보는 시간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정 시리즈는 지정 칸마저 만들어 놓았는데,




“이거…… 맞다, 꼭 봐야 된다고 했는데.”




아직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새 DVD를 꺼내 든 찬열이 탄식한다. 얼마나 당부하고 싶었던 건지 종대가 회사 메신저로까지 얘기했던 것을 기억해내곤 제 머리카락을 살짝 그러쥐었다. 회사에선 사적인 연락을 잘 하지 않는 그가 포스터와 예고 영상까지 보냈었다. 서둘러 검색해봤지만 이미 영화관 상영 일정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누구와 봤을까? 종대라면 이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봤을 텐데.




“칫…….”




조금 신경질이 나서 찬열이 짧게 혀를 찬다. 혼자 봤다면, 저에게 한 번 더 말해주지 않은 것이 섭섭하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봤다면, 이 영화 시리즈는 처음부터 자기와 봐왔던 것인데 암묵적인 약속을 깨버린 것에 짜증스러울 거다. 찬열은 담뱃갑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슬리퍼가 짝을 잃고 나뒹굴었다.




“……어디 가?”




퀭한 눈가를 비비며 나온 종대가 나갈 준비에 한창인 찬열에게 묻는다. 갈라지는 목소리를 어루만지듯 찬열은 셔츠 단추를 꿰던 손으로 그의 뺨을 툭 건드렸다. 하품을 하면서 벽에 머리를 기댄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가 오늘따라 유난히 헐렁해 보인다. 못 잤냐고 묻는 말에 종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살짝 끄덕였다.




“어디 가는데?”


“친구 생일인 것 같아서 전화했더니, 다음 주래. 오늘밖에 맞는 날이 없어서 보기로 했어.”




오랜만에 같이 있는 시간인데 멋대로 약속을 잡아서 화내려나? 갑자기 헤아려진 연인의 마음을 살피려 찬열이 눈을 굴린다. 기대어 있는 얼굴의 흐리멍덩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낯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의 표정.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하고 뭐 먹지? 같은 하찮은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그럴 리가 없는데.




“저녁은 같이 먹어, 일찍 들어올게.”




가슴 한편이 서늘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단추를 다 꿸 때까지 돌아서 부엌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 화났나? 아님, 몸이 안 좋은가?

마른 몸이 냉장고를 열고 서성이다가 준비를 끝낸 찬열이 방을 나오자 얼른 뒤로 돌아본다. 찬열은 신발 끈을 고쳐 묶으려 허리를 숙였다. 다가오는 발이 보인다.




“장이라도 봐야겠어, 먹을 게 없다.”


“내가 사올까?”


“됐어, 산책 겸 나갔다 올래.”


“그래, 그럼. 간다, 연락해.”




찬열아. 재킷을 붙잡은 손. 왜? 물었는데 이어지는 답변이 없다. 종대는 고개를 숙인 채 얼음이 된 것처럼 미동하지 않았다.




“왜, 뭐 사와?”


“아니…… 재미있게 놀다 와.”




싱겁긴. 여전히 옷을 놓지 못하는 손을 잡아당겨 끌려온 입매 끝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다녀올게. 찬열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집을 벗어나며 휘파람을 불었다. 늦잠을 자서 정신이 맑은 데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파랗다. 하지만, 역시 신경 쓰여.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머릿속에 메아리로 흩어진다. 왠지 가지 말라고 할 것 같았는데 별다른 말이 없기에 모른 척 했다. 기분 탓이겠지. 저녁 먹고 심야 영화라도 보러 가자고 해야겠다. 종대는 적당히 어렵고 적당히 쉬운 애인이다.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화내고 저가 어느 정도 정성을 들여 달래면 용서해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른 생각이 든다. 그의 용서가, 저에게 보여주었던 감정들이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 진짜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 시간이랑 장소만 통보하고 전화도 안 받으셔.’


‘어쩔 수 없지, 아시는 분 딸이면 우선, 나가는 게……’


‘나가라고? 선보는 거라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소리 지르지 마,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한 말이야. 너도 이제 서른둘이고 결혼은 해야 되니까.’


‘결혼?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어머님 입장에선……’


‘우리 엄마 입장을 네가 왜 생각해! 나 가지고 놀아? 너 만나고 있잖아! 내가 너였으면 앞뒤 안 재고 나가지 말라고 할 거야, 근데 왜 넌 남 일처럼……’


‘우리, 예전처럼 물불 안 가리고 만날 때는 지났잖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 만나면서 결혼 생각도 하라는 거야? 그러고 싶어, 너는?’


‘미안해, 내가 잘못 말했어, 그런 뜻 아냐. 그냥 나는, 넌 원래 이쪽이 아니었으니까……’




또 그 놈의 이성애자 타령. 선을 보게 생겼다니까 나가보라는 게 애인한테 할 말인가? 누굴 만나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종대는 가끔씩 태연한 얼굴로 찬열을 어차피 떠날 사람 취급한다. 자기야말로 언제든 그만둘 요량으로 한 발을 빼고 있는 것처럼 굴면서. 그럴 때마다 진심어린 마음이 마구 짓밟혀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것 같다. 성긴 가을볕에 찬열이 눈살을 찌푸린다. 어떻게 해야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은 온전한 너의 마음을 받을 수 있을까? 언제쯤 어떤 조건도 붙지 않은 마음을 줄 수 있을까?




‘김종대, 그만 말해. 나 진짜 화나려고 해.’


‘네가 안 나가면 어머님 곤란해지실 거야.’


‘닥치라고.’


‘찬열아,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내 눈을 못 봐. 그래서 난 너는……’


‘헤어질 거 아니면 그만해.’




이후에 우린 퍽 사이가 나빴다. 딱히 싸우거나 하진 않았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한 척하며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였으니까. 그러다 화가 나서 선을 보러 나갔고 종대는 그에 대해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다. 웃음 한 톨 없던 식사 한 끼가 다였지만 종대의 머릿속에선 저와 이름 모를 여자를 엮은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날 혼자 이불 속에 숨어 엉엉 울었을 것 같기도 하다. 박찬열 나쁜 놈, 무슨 놈 하면서. 귀엽게 훌쩍거렸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이 회상은 그만 덮는 것이 좋겠다. 사실은 안 그랬을까 봐 불안하다. 솔직히 요즘, 종대를 잘 모르겠다.

찬열은 약속 장소로 들어가기 전에 근처 베이커리에 들렀다. 케이크 사와. 친구들 중 그나마 제 정신인 놈 하나가 시킨 일이다. 스물 후반에 들어서부터 사내자식들끼리 더 낯간지러워져서 생일 같은 건 챙기지 않았는데 마침 모일 핑계거리가 되니 축하해주고 싶다. 유리 안에 진열된 알록달록 달콤한 것들이 눈에 찬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종대는 발까지 동동 구르면서 뭘 먹을지 고민한다. 뭐하고 있으려나? 문득 그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그 케이크는 누구한테 받은 거랬지?




“우리가 만나서 술 안 마시는 거 처음 아니야?”


“이렇게 일찍 만난 것도 처음이다!”


“내 말이, 대단하다, 대단해.”


“그래서 차 끌고 왔어.”


“제수씨 때문에 봐준 줄 알아, 새끼야.”


“당연히 봐줘야지, 입덧이 심해서 요즘 아무것도 못 먹는단 말이야. 여기 나오는 것도 얼마나 미안한지.”


“입이 귀에 걸렸네, 그렇게 좋아?”




결혼이나 아기, 찬열과는 멀어진 단어들이다. 시큰둥하게 젓가락질을 하고 있던 찬열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한 때는 저도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미친 건 박찬열이지, 저 새끼 연애 안 한지 6년 됐을 걸?”


“갑자기 왜 나한테 지랄이야?”


“제일 멀쩡하게 생긴 놈이 솔로니까 이상해서 그렇지!”


“아, 몰라. 귀찮아.”


“결혼 안 할 거야? 이제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될 나이다, 우리.”


“지금은…… 생각 없어, 신경 꺼, 새끼들아. 알아서 할 테니까.”




멋쩍게 웃으면서 옆에 있는 친구의 얼굴을 밀어버렸다. 현실이라. 정처 없이 헤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무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버려진 기분이다. 옆에 웃고 떠드는 친구 놈들의 목소리가 흐릿해져 그들 눈에 저가 보이지 않는 사람일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찬열은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타는 속을 달래려 물을 들이켰다. 혼란스럽다. 종대를 사랑하는, 평범한 것을 꿈꿀 수 없게 된 남자가 현실인지 책임지지 않고 되돌아가야 하는지 비겁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남자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차에 오르는 종대에게서 받아 든 작은 상자와 대파 따위가 뻗쳐 나온 종이봉투를 뒷좌석 바닥에 내려놓았다. 전화를 했더니 마침 마트에 나와 있대서 데리러 온 참이다. 예전에는 자주 같이 장을 보곤 했는데 참 비효율적인 시간이었다. 기껏해야 2인분 반찬 서너 가지와 맥주, 과자 등을 사는 데에 반나절씩 걸렸다. 카트를 끌며 장난치고 이걸 사야 된다느니, 내려놓으라느니 깜찍한 실랑이를 벌이느라. 그래도 재미있었다.




“이것저것…… 일찍 끝났네?”


“밥만 먹었다니까, 아빠 된다고 얼마나 유난인지.”


“…….”


“아무튼, 시간 맞아서 다행이다.”


“그럼 저녁은……”


“난 생각 없어.”




또 라디오가 켜졌다. 슬쩍 옆을 보자 앞을 향해있던 종대의 고개가 창문 쪽으로 틀어진다. 같이 먹기로 한 저녁 약속 같은 건 까맣게 잊은 찬열은 버릇처럼 무릎에 가지런한 그의 손을 끌어 그러쥔다. 이렇게 손을 잡고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되는 게 사실이다. 바보같이 그 때까지도 그 손에 반지가 없다는 걸 몰랐지만 말이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나지막이 물은 목소리는 찬열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만 떨렸다. 종대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다. 무슨 날이야?




“우리 5주년.”


“아, 오늘이야? 벌써 그렇게 됐나…… 깜빡 했어, 말 좀 해주지!”


“나도 잊고 있었어.”


“그래?”




오래 됐네. 추월하는 차에 소리 없이 짜증을 내면서 덧붙였다. 빠른 속도로 시야를 벗어나는 앞 차처럼 예상치 못한 답변이 찬열의 귀에 박힌다. 그러니까,




“헤어지자.”




뭐? 찬열은 입 안 여린 살을 씹어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았다. 자다가 물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헤어지자. 정말 네 입에서 흘러나온 게 맞을까, 저 가슴 시린 말. 라디오 선율 사이에서 조수석의 숨이라도 듣고 싶어 애를 썼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간혹 붙잡혀있는 손의 떨림만 전해질 뿐이다. 계속 잡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저를 버리고 있는 종대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서 그럴 수가 없다. 찬열이 소음이 되어버린 라디오를 신경질적으로 꺼버렸다. 울음이 들릴 줄 알았는데 어두운 침묵만이 가슴을 짓누른다. 5주년을 잊었다고 이러는 건 아닐 거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린 기념일을 지나친 적이 많으니까. 속이 탄다. 뭘 잘못한 거야? 어디서부터 틀어진 거지? 평소와 달리 한산한 주차장에 무리 없이 차를 세우고 잠시 가만히 숨을 골랐다. 주차 걱정을 했던 게 헛수고로 돌아갔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진심이야?”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묻고 싶었는데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에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걸 물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머리카락까지 헝클면서. 종대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의 마음이 변한 거라면, 제 마음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창문에 비친 얼굴이 얼룩덜룩하다. 차에 타자마자 창밖만 보고 있었던 건 이별을 고하기가 미안해서일지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아서일지 궁금하다. 내가 사랑한 이 애라면 전자일 확률이 높다. 뭐가 되었든 원하는 이유는 아니지만. 대답해, 손을 끌어당기듯 콱 쥐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드디어 찬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종대야, 나 봐. 정말 끝내고 싶은 거야?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은 또 찬열이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




“괜찮겠어?”




찬열은 절절한 속마음과 달리 비아냥거리고 말았다. 종대의 얇은 입매에 힘이 들어가는 게 똑똑히 보인다. 화났구나. 내 말은, 까지 뱉었을 때 손이 매섭게 떨쳐졌다.




“괜찮겠냐고? 넌 그럴 거라는 말로 들리네.”




허공에서 얽힌 눈동자는 또렷하게 찬열을 바라보았다. 이전처럼 달보드레한 감정이 읽히지 않는 딱딱하고 메마른 색. 그에게서 그런 눈빛을 받았다는 사실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서 찬열은 먼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오늘이 우리의 끝이 될 거라는 데에 근거 없는 확신이 들자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래, 난 너보단 안 괜찮을 거야.”




경멸하는 말투로 오해만을 남긴 채 종대는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멀어지는 등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찬열이 주먹으로 애꿎은 핸들을 내리쳤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 했다. 아니, 어쩌면 먼저 등 돌린 배신자에게 그런 배려를 하고 싶지 않아 망설이다 늦어버린 거일 수도 있고.




“젠장!”




괜찮겠냐는 물음을 제멋대로 해석한 게 분명하다. 아마 ‘나는 양성애자라 괜찮은데, 너는 어쩔래?’ 쯤으로 알아먹었을 거다. 원래 사려 깊고 여린 성격에 동성애자가 아니었던 저를 꾀었다는 피해의식까지 더해 마음대로 생각하고, 상처받고. 종대는 늘 그런 식이다. 이에 지쳐버렸는지 모르겠다. 갑작스레 닥친 이별 앞에 슬프고 가슴 아프기보다 화가 난다. 마음만 먹으면 따라 들어가 다리라도 붙들고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현관 비밀번호고 뭐고 난 저이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10분 뒤면 머리를 들끓게 하는 분노조차 사그라질 예정이다. 이런 개 같은 결말을 위해 5년을 만났나, 하는 멍청한 생각이 들자 헛웃음이 났다. 곧 찢어지는 마찰음과 함께 그의 차는 주차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식탁 위에 종대가 두고 내린 것들을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찬열은 냉장고를 열어 맥주 캔부터 찾아 들었다. 차게 식는 목구멍과 상관없이 아직도 머리가 뜨겁다. 울대가 크게 움직이도록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키면서 눈을 내리깔아 체크무늬 목도리를 보고 있다. 저가 사준 거다. 부러 두고 내린 거 아냐? 그게 걸려있는 의자를 발로 세게 밀었다가 아차! 넘어가려는 것을 붙잡는 바람에 흔들린 캔에서 맥주가 흘러넘친다. 소매를 물들이는 위로. 되는 일이 없네. 깊은 한숨이 바닥으로 흩어진다. 의자에 풀썩 앉은 찬열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질렀다. 눈에 띈 상자의 투명 필름으로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이 보인다. 하여튼, 애같이 케이크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그 곁에 낱개로 포장된 대파, 양파 따위를 보니 찌개를 하려던 모양인데,




“나쁜 새끼……”




한편에 정갈하게 포장된 석화를 내려다보던 눈에 별안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종대는 굴을 못 먹는다. 알레르기 같은 것은 아니니 먹기를 꺼린다고 하는 게 낫겠다. 저는 좋아해서, 억지로 같이 먹어주다가 체한 적이 있다. 찬열이 미련하다고 구박하자 빙긋 웃으면서 네가 좋아하는 거니까, 하던 게 떠오른다. 헤어지자고 말할 거면서 내 생각은 왜 한 거야? 먹지도 못하는 굴은 왜 사냐고, 등신같이. 언제부터인가 종대가 전처럼 웃지 않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했던 입 꼬리가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희미하다. 두꺼운 주먹이 파들파들 떨리고 그 위로 눈물이 방울진다. 종대는 어느 날부터 잘 자라는 인사 끝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가 없던 찬열의 하루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것으로 사랑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멍청하게 몰랐던 것이다. 왜냐하면,




“으흑…… 개새끼……”




관심이 없었으니까. 저도 변했다. 그 애가 좋아해 마지않는 케이크를 마지막으로 사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만난 지 5년이 되던 날,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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