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do not disturb. 호텔 1603호의 문고리에 방해 금지팻말이 박힌 듯 걸려 있은 지 48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굳게 닫혀있는 문은 이따금 장신의 남자가 나와 두 손 가득 무언가 들고 돌아오거나 호텔 직원이 가져온 룸서비스를 받아 들어갈 때에만 열리곤 했다. 암막 뒤로는 해가 지는 참인데 공기가 멈춘 듯 정적이 흐르는 방은 내내 어슴푸레하다. 이불 밖으로 뻗쳐 나온 은회색 갈기. 하품을 하자 송곳니가 날카로운 빛을 띤다. 옆으로 드러누워 너른 침대를 차지한 백사자는 천천히 두터운 앞발을 들어올렸다. 품에 고이 숨겼던 조그만 고양이가 보인다. 발라당 배를 보인 채다. 덮여 있던 사자 이불이 사라지자 허전한지 몸을 뒤채다가 푹신한 갈기에 절로 파묻힌다. 유연한 앞발로 제 털을 움키는 고양이를 한 입에 삼켜버리는 게 심장에는 차라리 이로울 것 같다. 매일 이렇게 함께라면 좋을 텐데. 완전히 잠에서 깬 리에프는 어느새 형체를 갖춘 긴 손가락으로 고양이 수염을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야쿠상, 일어나요.”




따뜻해. 뺨을 건드리는 손길에 입 꼬리가 올라간다. 야쿠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손을 뻗었다. 마주 잡아 깍지를 낀 리에프가 배고프지 않은지 묻는다.




“풋……”


“왜요?”


“계속 먹고, 자고.”


“야쿠상 목소리가 더 웃긴데.”


“누구 때문에! 이런 건데……”




눈을 흘기며 꼼지락거린다. 형편없이 갈라지는 새소리는 헛기침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부끄럽게도 이틀 동안 방탕하게 뒹군 바람에 목소리가 쉬어버렸다. 침대는 물론이거니와 욕실이며 응접실에서까지 흥분에 못 이겨 울부짖었던 게 떠오르자 낯이 뜨거워 야쿠는 고개를 저었다. 얼굴을 붉힌 그의 속이 빤히 보여 리에프는 장난스럽게 키득거린다. 무슨 생각해요? 빤한 것을 물으며 내려다보이는 울긋불긋한 목에 이마를 기댔다. 제법 힘이 실린 야쿠의 손바닥이 얼굴을 밀어낸다.




“좀 떨어져.”


“아아, 싫어요. 조금만 따뜻하게요!”




칭얼칭얼. 이럴 때면 리에프는 영락없이 어린애 같다. 밥을 먹을 때에 입가에 뭔가 묻히기 일쑤고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어하고 이것저것 호기심 천국에다가 상처받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벌써 그에 익숙해진 야쿠는 제 허리를 껴안고 데구르르 구르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살살 잡아당겨 고개를 들게 했다. 따뜻하게? 너처럼 하는 걸 말하는 걸까?




“리에프.”


“네?”


“잘 잤어?”




반듯한 이마에 닿을 듯 말 듯 속삭여진 인사는 앞선 요구대로 다감하다. 네, 네, 네!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답하고는 야쿠상은요? 되묻는다. 나도 잘 잤어. 마치 꿈결을 거니는 기분이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둘만의 아늑한 장소에 숨은 채 솔직하게 울음하며 몸을 섞는 게 다인, 너무 사랑스러워 오래 입을 맞추고 당연한 것처럼 서로를 찾아 헤매는 이상한 꿈 말이다. 몽롱한 고양이를 두고 침대를 벗어났던 리에프가 컵을 들고 시야로 돌아왔다. 건네진 물을 마시니 찌뿌드드한 게 가시는 것 같다. 부은 눈두덩에 쪽 입을 맞춘 리에프가 저보다 훨씬 조그만 몸을 다시금 끌어안았다. 이제 그 몸 곳곳에서 백사자가 남겨놓은 짙은 향이 풀풀 풍겼다. 만족스러운 빛을 띤 녹안이 공기 중에 날카롭다. 소유욕. 야쿠의 눈에는 순하기 이를 데 없는 덜 큰 사자로 보일지 몰라도 그의 피에 맹수의 본능이 잠식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큰 손바닥이 야쿠의 아랫배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아기…… 무섭지 않아요?”




이상한 걸 묻네. 솔직해져도 될지 우스갯소리로 넘겨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에 리에프가 팔베개를 해주었다. 허공에 얽힌 손가락들이 나른하게 장난한다. 반쪽 하트를 모양내는 리에프의 손가락에 집게손가락과 중지로 가위질을 했다. 너무해요! 제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자그마한 손을 잡아끌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야쿠상, 손 진짜 작아.”


“네가 큰 거야.”


“에이, 그건 아니죠.”


“까불지 마.”


“이럴 때만 어른인 척이에요?”


“어른이야!”


“쉿, 목 아프잖아요, 소리 지르지 마요.”




한참 유치한 손장난을 한다. 천진하게 웃는 밤색 머리칼을 쓸다가 리에프는 다시 진지해지기로 했다. 궁금한 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지금제일 궁금한 건,




“정말 아기가 생기길 바라요?”




야쿠의 진심이다.

마주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느새 웃음이 가신 고양이의 얼굴이 다른 사람 같다. 아무리 고새 정이 들었다 한들 두 사람의 관계는 쉬이 뒤집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야쿠에게는 그랬다. 이 방을 나서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뒤로는 볼 일이 없을 거다. 운 좋게 임신한다고 해도 계약상 리에프는 아기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을 거고 경종인 저가 주제넘게 우리는 아기만 만들 거라고 못 박았는데 이 애가 굳이 날 만나겠어? 첫눈에 반했다고? 지금이야 이런 상황에 휩쓸려 착각할 수 있지. 지금 내가 현실을 잊고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까지만 나의 특별한 사람이 되어줘. 그렇게, 조금 위로 받아도 될까? 야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제 손가락에 닿아있는 온기를 조몰락거리며 입을 뗐다.




“솔직히 무서워, 걱정도 되고…… 근데 좋을 것 같기도 해.”


“…….”


“애기는 내 진짜 가족이 될 테니까.”


“진짜 가족이요?”


“난 입양된 거야, 처음부터 이런 데에 쓰일 운명이었지.”




남색에 잔 꽃무늬가 수놓아진 기모노가 떠올라 야쿠는 잘게 몸을 떨었다. 가문의 당주였던 큰 할머님은 어린 그를 무릎 꿇린 채 찻잎을 자기 주전자에 갈아 넣으면서 끊임없이 당부하곤 했다. 중종을 베서 가문의 은혜를 갚아라. 몇 시간씩 어두침침한 방에 그 분과 단 둘이어야 했다. 엉엉 울고 잘못했다고 빌어도 아무도 데려가 주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노인의 피부는 온통 거뭇하고 그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손톱을 드러낸 채여서 어린 시절의 고양이는 그녀를 악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일가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어른이 되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기억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땐 정말 무서웠어, 덧붙인 끝에 리에프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런 속사정은 티 없는 야쿠의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보지 마,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다들 잘해주시고 부족한 거 없이 자랐어.”


“그래도……”


“쓸데없는 걱정이야, 동정하지도 마.”




걱정이 돼요, 당신이 괜찮은 척 하는 것에 속아 안아주지 못 하고 지나쳐 버릴까 봐.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답답하다. 만약에 저가 아닌 다른 이가 야쿠의 상대였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직해서 리에프는 질리는 낯을 숨기지 못한 채 그의 손을 세게 붙잡았다. 착한 사자와 함께한 시간이 야쿠를 위로했다. 설령 거짓이더라도 좋아한다고 속삭여주던 상냥한 이 애의 아기가 들어서준다면 그게 선물인 셈이다. 적어도 다른 중종과 다시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자조적인 웃음이 걸린 입술이 갑작스레 다가오자 리에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난 아기를 원해.”




입매에 닿은 입술이 뜨겁다. 야쿠가 의도적으로 흘린 혼현의 페로몬이 온 몸을 감싸자 무방비한 몸이 펄떡거렸다. 입술을 깨문 리에프의 눈가에 분한 기색이 어렸지만 잠시뿐이었다. 제 배를 타고 앉은 보드라운 살결에 억센 손자국을 남기면서 입술을 겹쳤다. 못된 고양이의 달큼한 숨결에 물기가 어린다. 아기를 원한다는 말은 명백한 선 긋기였다. 우리가 만난 목적을 상기시키고, 그게 시작이자 끝이라는 당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야쿠상은 아니었나 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지 따끔한 건지 모르겠다. 단지 리에프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의 몸을 취하는 것뿐이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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