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앉아있던 진돗개가 리모컨에 앞발을 올린다.  멈추지 않는 TV 채널.  재미있는 거 더럽게 안 하네.  늦가을 바람이 그들의 보금자리로 파고들자 설거지를 마친 앞치마 차림의 준면이 가림 막을 친다.  날씨가 제법 매서워졌다.




“윽..”


“아직도 못 마셨어? 작작해라~ 매일 지겹지도 않냐?”




먹구름 색으로 채워진 유리잔을 수 분째 들었다 놨다 하는 찬열은 울상이다.  이거 진짜 맛없어, 투덜투덜하면서 양배추즙 한 모금을 꿀꺽 삼켰다.  헛구역질을 하면서 제자리서 깡총거리는 걸 보고 백현이 낄낄거렸고 준면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누룽지 사탕을 꺼내 그 앞에 놓아준다.




‘벌컥-!’




“선생님!”




제 집에 콕- 박혀있었을 종인이 나체로 뛰어들어왔다.  그의 몸이 끌고 온 찬 기운에 백현이 춥지도 않냐고 이죽거리는데 사색으로 어버버버 말을 더듬더니,




“서, 선생님 오셨어?”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쌤?”


“종대 온대? 저녁은?”


“세훈이 형한테 전화 왔는데 아까 여기 오는 버스 탔다고 했대.”


“버스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그러니까!”




이미 핸드폰을 들고 있던 찬열이 고개를 젓는다.  전화 안 받아.  허공에서 얽힌 시선들.  TV에서 흘러나오는 무미건조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K모씨(28세, 호구/수의사)가 펜션 인근 야산에서 실종되어 숲 속 친구들이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라는 환청으로 그들의 귀에 흘러 들었다.  집에서 쏟아지듯 튀어나온 짐승들이 포효하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시각, 김종대 선생님은?




“헤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산이라도 가져올 걸..”




전에 멧돼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  산에서 야생 멧돼지를 만나면 우산을 펼쳐 위협하면 된다는 내용이 퍼뜩 떠올랐다.  문제는 그게 정답이었는지 오답이었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우산은커녕 가진 거라곤 이미 멧돼지의 앞발에 짓이겨진 비스킷뿐이었다는 것.  앞에 씩씩거리는 멧돼지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는 몸을 떨었다.











- 4시간 전 -



석양이 깔린 거리 위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동물 병원, ‘동물 친구들’이 있다.  너른 유리창으로 고양이를 들고 있는 흰 가운의 남자와 책상에 엎드려있는 또 다른 남자.  방심한 틈에 손등을 긁힌 종대가 아야, 엄살을 피운다.  벌겋게 부어 오르는 손톱 자국은 수많은 영광의 상처 가운데 새로이 그어진 것이다.  그 손에 잡혀있던 뚱뚱한 고양이가 금빛 눈동자로 딴청을 부리며 야옹-  두 팔에 턱을 괴고 있던 이씽이 미소를 지으며,




“계속 운동시키면 선생님의 유일한 장점인 얼굴을 할퀼 거래요."


“참 고맙네.. 쳇!”


“혼자 넘어지지나 말라는데.. 선생님, 혼자 넘어져요?"


“따, 딱 한 번 발이 꼬인 거야.”


“아아, 세 번 봤다는데요?”




머쓱하게 웃으면서 상처를 문지르는 의사 선생님에게서 벗어난 고양이가 이씽의 어깨로 떨어졌다.  종대가 다시 안으려고 팔을 뻗자 재빠르게 바닥으로 도망하더니 웃는 것처럼 다시 야옹, 하고 울었다.  흰 가운이 날랜 고양이를 허둥지둥 따라다닌다.  이씽은 바닥이 드러난 찻잔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진찰실 반대쪽에 있는 세면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앙칼진 고양이 소리 뒤로 작은 목소리가 뒤따른다.  ‘우리끼리 비밀로 하는 거 아니었어? 치사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투정을 부리니 고양이가 바보 선생, 대꾸했지만 통역사 이씽은 홀로 키득거렸을 뿐 그걸 전달하지 않기로 한다.  이씽은 이 곳에 자주 놀러 온다.  주로 종대와 차나 젤리 같은 것을 먹으면서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때때로 동물들과 친절한 의사 사이의 통역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자주 오는 동물들-강아지 ‘몽몽이’와 지금 종대와 꼬리 잡기를 하고 있는 고양이 ‘돼지’등-과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선생님, 오늘 숲 속 갈래요?”


“응? 평일인데?"


“준면이 형이 해주는 잔치 국수 먹고 싶다.”


“그래, 그럼 몰래 가자! 깜짝 놀라게."




하지만,




“혹시.. 장이씽 있나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 노부인이 어눌한 발음으로 묻는다.  종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아래로 내렸다.  어느새 원숭이로 변한 장이씽이 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만들어 보이더니 몸을 돌린다.  심장이 쿵쾅쿵쾅-




“여기 있었구나, 내 원숭이가 좀 별나서.. 그럼..”


“아, 저, 저기! 이거, 핸드폰..”




내 핸드폰이에요, 어설픈 거짓말.  그녀는 뜨끔한 표정을 갈무리하느라 애썼다.  종대의 손에서 핸드폰을 넘겨받는 제 원숭이의 머리 위로 한숨을 흘린다.  모른 척 하는 것도 어지간해야 장단을 맞추지, 라고 중국어로 푸념을 늘어놓고는 무릎 위 원숭이의 등을 쓰다듬는 손.  긴 주름치마를 입은 그녀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온 것은 처음이다.  종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은지 물으려다가 장이씽이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 소리로 그녀를 웃게 만드는 걸 보고 그만 두었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을 배웅하고 보니 홀로 남겨져 있다.  다시 저녁 식사를 어떻게 때울지 고민하던 그는 병원 문을 닫고 무작정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준면의 잔치 국수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꾸벅꾸벅 졸다가 눈에 익은 시골 길에 내렸다.  인적 없는 그 곳에 버스마저 꽁무니를 감추자 노란 가로등과 손을 비비는 종대만이 서 있다.




“백현이한테 전화.. 어..”




밤처럼 까만 화면은 그가 전원 버튼을 여러 번 눌러도 밝아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없어 꺼진 모양이다.  망연자실한 종대는 갑자기 몸에 한기가 돌아 제 팔을 끌어 안았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하는 눈에 잔뜩 힘이 실린다.  어쩔 수 없지.




“출발!”




한두 번 가본 길도 아니고-혼자 가본 적은 한번도 없다.- 나는 할 수 있어!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이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는 숲 속 친구들 이정표를 지나 희미하게 흙이 드러나 있는 숲 길을 밟았다.  다행인 것은 그의 가방 안에 경수가 준 지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다람쥐가 버리려는 것을 자기에게 버려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얻은 발자국 지도.  종대는 그것을 바짝 들여다보면서 어둠을 헤쳐나간다.  깩, 발에 넝쿨이나 나뭇가지들이 걸릴 때마다 해괴한 소리를 내면서 조심스럽게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머리 위로 무언가 푸드득 날갯짓을 했다.  몸을 움츠린 종대가 제자리에 멈춰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를 직시하는 금빛 눈동자.




“아, 안녕?”




무릎께까지 올 법한 크기의 부엉이.  종대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혹시 너도 사람이야? 아니면.. 준면이 형 친구?”




대꾸도 없이 새는 종대를 내려다볼 뿐이다.  아닌가 보네.  멋쩍게 손을 흔들고 다시 앞으로 발을 디뎠는데,




“아! 깜짝이야!”




제 앞으로 내려 앉은 커다란 새 때문에 뒷걸음질을 한다.  뜻하지 않게 부엉이와 대치하게 된 그는 침을 꼴깍 삼켰다.  부엉이가 사람도 먹던가?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있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우우, 하고 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더니 새는 따라오라는 것처럼 좁은 보폭으로 그 앞을 걸어나갔다.  종대는 홀린 것처럼 그 뒤를 따랐다.




“헉.. 헉.. 천천히 좀 가자아.”




초면이지만 부엉이가 함께여서 무섭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졸졸 흐르는 개울을 건너 빽빽한 나무가 나왔을 때, 이 길이 친구들의 3층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이 부엉이가 분명 여덟 중 누군가의 친구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힘차게 걸으면서 이게 지름길인지, 이 숲에 사는지 등 말을 걸어보았지만 갈빛 깃을 얕게 펄럭이는 게 반응의 전부였다.  새는 때때로 종대가 발을 헛디뎌 악 소리를 낼 때만 돌아보았는데 목만 움직여 절 보는 게 조금 무서워서-공포 영화 같았다.- 안 다치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더니 그 뒤로는 우연인지 진짜 알아들은 건지 돌아보는 일이 없다.  이마에 땀이 베일 정도로 오래 산 길을 걷다 보니 나무 밑동만 덩그러니 있는 평평한 땅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위에는 낑낑거리는 아기 멧돼지.

 
 

종대가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우뚝 선 부엉이를 지나쳐 버릇처럼 그 곁으로 달려가자 겁먹은 멧돼지가 쇳소리를 내며 발버둥을 친다.  두꺼운 점퍼를 벗어 얼굴 쪽으로 덮어주자 곧 비명은 그쳤지만,




“으.. 아프겠다..”




덫이 파고든 뒷발.  잔인한 사냥의 흔적이 피로 물들어 있다.  멀찍이서 쪼그려 앉은 종대를 보던 부엉이는 날개를 펼쳐 나무 사이로 날아가 버렸다.  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종대는 후드를 벗어 제 손을 감싸고 날카로운 덫의 이빨을 붙들었다.  두 다리로 양쪽을 고정하고 힘을 주어 벌리자 천을 뚫은 날이 손바닥을 찌르는 게 느껴졌지만 멈출 수는 없다.  끄응,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가 멧돼지가 몸을 크게 떨자 억지로 웃음을 짓는다.  그는 괜찮다고 끈임 없이 속삭였다.  틈이 생기자마자 발을 뺐을 때에는 잘했다고도 해주었다.  재빨리 손을 떼자 덫이 철컹- 그의 옷을 자비없이 물어버렸다.  끔찍해.




“후.."




내려다본 손바닥이 상처투성이다.  피가 고이는 것을 보자 저절로 세훈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약 발라요, 한동안 협박 당했던 걸 떠올렸다가 절뚝거리는 멧돼지를 놓칠 뻔 했다.  겁도 없이 뻣뻣한 털 뭉치의 등을 안은 종대는 귀를 찌르는 꾸에엑, 비명 소리에 질색을 한다.  지혈은 해야지, 이 돼지야!  숲에 울려 퍼지는 목청에 하는 수 없이 내려놓고 가방에서 먹다 남은 과자를 꺼내 늘어놓았다.  식욕 때문인지 경계심이 없는 건지 단번에 얌전해졌다.  가지고 있던 가방은 왕진용이 아니어서 마땅히 치료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어쩔 수 없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조심스럽게 상처에 꽉- 매주었다.  지금 저의 처지가 어떤 건지는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느긋하게 곧 다시 올게, 라고 말하고 있다.  야심한 시각에, 홀로, 숲 속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말이다.  코로 과자를 뭉개고 있는 걸 보고 깔깔 웃기까지 한다.




‘부스럭-‘




그 때였다.  아기 멧돼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바위 덩어리 같은 짐승과 눈이 마주쳤다.




“얘 어, 엄마나 아빠?"




대답할 리가 없다.  눈을 피하면 바로 공격 당할 거라는 생각에 종대는 목을 더 빳빳하게 세웠다.  그 와중에 은혜도 모르는 아기 멧돼지가 제 아비의 곁으로 절뚝거리면서 다가가 신음하는 폼이 꼭 이르는 것 같았다.




“헤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산이라도 가져올 걸.."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면서 중얼중얼-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 내린다.  금방이라도 돌진할 듯 앞발을 구르기 시작하는 멧돼지 앞에서 종대는 눈을 질끈 감고 주저앉아 버렸다.  나 여기서 죽나 봐요.  모두 안녕.




“잠깐!”




산을 흔들 것처럼 우렁찬 호랑이 울음에 경직된 몸에서 힘이 빠진다.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뜨자 보이는 반가운 줄무늬.  와락-껴안아 얼굴을 비비자 온기가 전해진다.  안도감에 젖어 준면이 혀엉, 하고 우는 소리를 했다.




“우리 말고 다른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


“새끼가 다쳐서..”




저 멧돼지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은데? 고개를 까딱거린 호랑이가 여전히 위협적으로 푸르르 울부짖는 멧돼지의 시야에서 종대를 감춘다.  몸을 낮추고 으르렁- 덩달아 종대도 몸을 움츠렸다.  저 때문에 애먼 다툼이 생길까 염려하느라 바닥을 짚은 손바닥이 아픈 줄도 모른다.




“우리 선생님이 구해 준 거라니까요. 거, 참 답답하네.”




준면은 난감해졌다.  단단히 화가 난 멧돼지 아저씨와는 말이 통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의사 선생은 제 뒤에서 덜덜 떨고 있는데 마땅히 좋은 방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만약 싸움이 벌어진다면 이길 자신이야 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산짐승을 죽이거나,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맞는 건지 혼란스럽다.

 
 

아저씨, 호랑이 처음 봐서 얼마나 무서운 지 모르죠? 캐물었다가 괜히 화만 돋우었나 보다.  까맣고 누런 억센 털이 세게 흔들리며 달려들 준비를 했다.




“뭐야? 싸움 난 거야? 왜? 멧돼지가 쌤한테 반한 거?"


“개소리 하지 말고 이 아저씨 좀 설득해 봐!"




숲 속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나타난 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호랑이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곧장 거지꼴을 한 종대에게 다가가 코를 댄다.  선생님, 괜찮아?




“아, 어떡하지? 저 아저씨가 우리 다 쓸어버리겠다는데?”


“형이 이기면 되잖아. 저 아저씨, 호랑이 처음 보나 보네."


“아, 안돼! 나 때문에 다들 다치..”


“비켜!”




쿵쾅거리며 달려온 곰이 제 속도를 못 이기고 호랑이의 몸통에 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두 맹수가 나가 떨어졌다.  종대는 그들이 굴러 떨어진 곳으로 기어가다가 발목을 잡혔다.  저 멍청이들!  안심하고 있던 진돗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방패막이 사라진 것에 신경질적으로 엉덩이를 일으킨다.  바지를 움킨 발을 떼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자 종대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린다.  용감한 귀가 곧게 섰다.  백현은 멧돼지를 설득하고 말고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제 사람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본능만으로 움직인다.  단숨에 목을 노릴 생각으로 송곳니를 드러냈을 때,




“아저씨, 욱하는 건 여전하시네요."


“아는 사이야?”




터덜터덜 걸어온 검은 말이 갈기에 달라붙은 나뭇잎을 털어내며 태연하게 그들 사이에 섰다.  종대는 종인과 눈이 마주치자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된 것이 창피해져서 우물쭈물 손을 흔들었다.  헛웃음이 나와서 말은 푸르릉 웃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했더니 실로 저희의 의사 선생님은 평범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21년 종인 인생에 다른 짐승들과 싸움이 붙은 건 처음이다.  다행인 것은 그 상대가 종종 산길에 만나 세상살이를 나누던 멧돼지라는 점이다.  애지중지하는 외동 자식 때문에 이성을 잃은 모양이지만.




“아시잖아요, 화풀이 상대를 잘못 고르셨어요. 오히려 고맙다고 하셔야죠.”




산짐승이 억울한 몸짓으로 제자리서 두 발을 구른다.  백현이 덩달아 사납게 짖어 종대가 주둥이를 끌어 안아 말렸다.  간신히 풀 언덕을 기어올라온 맹수 둘은 기진맥진한 채 멀뚱멀뚱 곁에 선다.  어떻게 됐는데?  지금 말이 나대는 거야?  쟨 목숨이 두 개래?  응?




“우리 선생님도 다쳤어요."




조곤조곤 잘잘못을 가리는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멧돼지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돌아서더니 제 새끼의 궁둥이를 민다.  종대는 어둠 속으로 희미해지는 뒷모습을 끈덕지게 바라보았다.  인간이 놓은 덫에 다친 것으로 치자면 제 잘못인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도 않는데 그는 크게 외쳤다.




“약 보낼게요!”




네 발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인다.  종인이 긴 주둥이를 뺨에 대는 게 꼭 칭찬해주는 것 같이 느껴져서 그는 갈기를 쓰다듬으면서 목을 안았다.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부엉이가 어둠 속으로 얼굴을 숨긴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도깨비 가시가 붙어 지저분한 곰과 호랑이, 의젓한 말, 앞장서 냄새로 길을 찾는 진돗개 가운데서 종대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콧물을 훌쩍거린다.  옷을 몽땅 잃어버렸네.  그래도 좋은 일을 해서 기분이 좋다.  곰이 덜덜거리는 종대의 다리에 몸을 붙인다.




“얼어 죽겠네, 나한테 붙어.”


“으으.. 찬열아.. 진짜 춥다, 오늘.”


“호구인 게 확실해, 도와주고도 이게 무슨 꼴이야?”


“쌤,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손 봐봐요.”


“손? 아얏, 아프다. 호~ 해줄래?”




종인이 걱정스럽게 손을 들여다보며 반달눈을 한 그를 나무란다.  웃음이 나와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어요.  그러면서도 그 손바닥 위에 정성스레 입김을 올려둔다.  나도 할래!  나머지 짐승들이 죄다 주둥이를 들이대서 종대의 손바닥만은 따뜻해졌다.




“아, 소화 다 됐다. 야식 해줘, 형."


“맞다! 나 오늘 준면이 형 잔치 국수 먹으러 온 건데.”


“잔치 국수 좋다!"


“알았으니까 빨리 가자, 민석이 퇴근했겠다.”




이번 일로 말미암아 종대는 또 하나를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건 모두가 예상한대로 다시는 혼자 숲에 들어오지 말아야지, 가 아니었다.  앞으로 산 속에 쓰레기나 덫 따위를 치우러 다녀야겠다며 주먹을 불끈 쥔 선생님을 보면서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저 자신과 집 앞 정원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젠 이 의욕 넘치는 인간 친구를 지키느라 숲 속 짐승들까지 보살피게 생겼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 얕게 웃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즐겁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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