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는 심심하더라도 그냥 집에 있을 걸, 하고 생각했다.  무거운 몸뚱어리로 제 허리를 베고 누운 곰-가슴팍을 벅벅 긁고 있다.-과 코 앞에 드러누워 앞발로 장난을 거는 진돗개와 함께 보내는 토요일 저녁 시간이 귀찮기 그지 없다.  군내 나는 개 발바닥이 정확히 다섯 번째로 제 턱을 스쳤을 때 목덜미를 콱- 물어버렸다.  깨갱, 하고 쏜살같이 몸을 일으켜 도망간다.  늑대가 백현이 죽인다!




“경수야.”




얍!  이상한 기합과 함께 호두를 깔아뭉개는 경수.  감히 다람쥐님을 방해하다니, 응징하듯 깨진 호두 껍질 한 조각이 원숭이의 이마에 부딪히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걸 본 찬열이 앞발로 힘겹게 뒷발바닥을 붙잡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깔깔거린다.




“선생님, 오신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선생님’이란 소리에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시집인지 뭔지를 읽고 있던 민석의 눈썹이 찡긋거렸다.  저도 궁금한 사안이라 은근슬쩍 세훈이가 알겠지, 하고 중얼거렸지만 그걸 주워들은 세훈은 심드렁히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다.




“나도 몰라, 집에 없었어.”




호두 껍질 총알을 온 얼굴로 받아내면서 꿋꿋하게 경수의 곁에 턱을 괴고 있던 원숭이가 설마 데이트? 혼잣말을 했다.  순식간에 허공에 얽히는 시선들.  그들에게 김종대란?  저희들만의 소중한 의사 선생님인데 남에게 빼앗길 순 없지, 라는 조바심이 한 데 모여 화살이 되었다.  애먼 늑대에게로 슝-




“오세훈! 넌 옆집 살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안 친한 거 아냐?"


“맞아, 내가 옆집이면 진작 살림 합쳤다.”


“그건 반칙이지! 살림을 왜 합쳐!”


“쓰레기."


“상상만 해봤어, 사, 상상만! 내가 내 머리로 생각도 못 해?”


“역시 쓰레기다."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경수에게 졸지에 쓰레기 취급을 받은 찬열은 억울하다.  얼마 전, 잠이 안 와서 종대에게 자요? 하고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기에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영상전화가 오는 것이다.  반가운 목소리로 뭐하냐고 물으면서 손을 흔드는데 해맑게 웃고 있는 남자 옆에 악마같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이미는 세훈이 함께였다.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러운 나머지 잠시 그 옆집에 사는 게 나였다면, 하고 상상해본 게 다인데 쓰레기라니 억울해도 여간 억울한 게 아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민석마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를 나무란다.




“선생님께 실례야, 생각도 하지마.”


“아, 형까지 왜 그래!”




시끄러워.  공중에 발을 구르는 반달가슴곰을 밀치듯 몸을 일으킨 세훈이 차가운 공기가 고스란한 창가로 뛰어오른다.  흥, 억울한 건 나라고.  관심 없는 척 했지만 막상 제3자에게 친하네, 안 친하네 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종대를 데려온 것도 저이고, 옆집에 사는 것도, 심지어 그에게 운명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지금에 오자 다른 짐승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졌다.  정작 이번 주말에 종대가 뭘 하는지 모르는 게 사실이니까.  평소에는 알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미주알고주알 잘도 일러주더니 어딜 간 거야?  달빛 묻은 가을 바람이 드나드는 곳에 주둥이를 괴고 엎드린 늑대의 눈에 심술이 일었다.  잔디밭에 앉아있는 말이 내려다보인다. 온통 검은 색이어서 달님이 없었다면 보이지도 않았을 거다.  거기서 뭐해? 물었지만 잠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는 게 다다.  다른 이였다면 청승이라고 끌어올렸겠지만 종인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우리 집 말은 감수성이 풍부하니까.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 이것들아.”




오랜만에 손님 없는 금요일을 잠으로 만끽하던 호랑이가 으르렁댄다.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와 반쯤 감긴 눈 아래로 요란하게 하품을 했다. 길게 뻗은 송곳니가 반짝거린다.  민석이 제게 다가오는 덩치에게 잘 잤어? 묻는다.  대답 대신 혀를 내어 제 뺨을 핥아 올리기에 신경질적으로 코를 밀어버렸지만 꿈쩍도 않는다.  에잇, 더럽게 침을 묻히고 난리야?  그 맞은편에서 곰과 뒤엉켜 장난을 치던 백현이 퍼뜩 몸을 일으킨다.  허전하다.  지금껏 이런 주말 속에 살아왔다는 게 새삼 놀라울 만큼.




“전화해볼래!”


“그래, 영상 하자!”




호랑이가 자연스럽게 머리를 민석의 팔 아래로 들이밀며 누구한테? 묻는다.  종대라는 대답에 손바닥의 볼록한 분홍을 핥으면서,




“10시야, 너무 늦었어. 자기 전에 항상 연락하시니까 기다리자.”




그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테니까 우리만 봐달라고 해선 안 돼.  틀린 말은 아니어서 반박하지 못한 채 나머지가 샐쭉한 얼굴로 호랑이를 쳐다본다.




“저번에 왕따였다고 했는데..”


“맞아.”


“그냥 한 말이지.”


“실실 웃으면서 빵셔틀 했겠지.”


“까불어, 다람쥐! 크큭.. 근데 빵셔틀인지 자기는 모르고..”


“아, 졸라 귀여웠겠다! 학생이었을 때.”


“지금이랑 똑같았을 것 같아”


“내가 집 가서 사진 있으면 훔쳐올게.”


“오세훈, 파이팅.”


“으아~ 선생님, 빨리 잘 자라고 보내보세요!”




숲 속 친구들은 지금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느새 아옹다옹하는 틈에 끼어 앉은 말이 다람쥐에게 선생님 안 오셔? 뒷북을 쳤다가 날아오는 호두에 코를 맞았을 때,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민석의 목소리가 반가움으로 들떴다.  왔다!






 
 






제 어린 시절이 갇혀있는 액자들을 지나쳐 종대는 부엌 앞 가냘픈 어깨 옆에 섰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을 위한 찌개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맛있겠다아~ 우리 엄마 김치찌개가 짱이지!”


“몇 달 만에 와서 먹고 싶다는 게 고작 김치찌개니? 그래도 생일인데..”




생일? 아, 그래서 갑자기 꼭 와야 된다고 하신 거구나.  종대는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어머니의 이런 혼동은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이 그의 마음에 파란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은 제 생일이 아니에요.




“이거면 됐어.. 아버지는요?”


“금방 들어오실 거야.”




발바닥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온기에도 쉬이 따뜻해지지 않는 마음을 외면한 채 종대는 어머니의 얼굴을 따라 웃었다.  요즘 일은 어떤지, 만나는 사람은 없는지 같은 심심한 질문에 대충 둘러대며 마주앉은 식탁을 채운다.  언제부터인가 벌어지기 시작한 부모와의 틈은 날이 갈수록 커지더니 지금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멀다.  아마 우리 가족이 넷이 아니라 셋이 되었을 때부터였을 거다.  처음에는 그저 화가 나고 슬프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연스럽게 이들과 같이 잊어버린 척을 하게 되었다.




“멸치 볶음 싸줄까? 가져갈래?”


“어어.. 아니요, 집에 있어요.”




지난 주말에 준면이 바리바리 싸준 것들이 떠올라 종대는 고개를 숙여 픽- 웃었다.  지금쯤 한 데 모여 있을 나의 숲 속 친구들.  그 곳에 함께이면 늘 용서받는 기분이 되곤 했는데 오늘 집에 온 것으로 단 몇 시간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머리가 아프다.  돌아가고 싶다.  오이 소박이에 무성의한 젓가락질을 하는데,




“어릴 땐 입에도 대지 않더니.”




그건 제가 아니었잖아요,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것을 모래알 같은 밥과 함께 삼켜버렸다.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온 종대는 조심스럽게 문을 잠갔다.  오늘이 형 생일이었구나.  침대 아래로 손을 넣어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어느 봉투를 찾아냈다.  색이 바랜 편지에 엉겨 붙은 먼지, 툭툭- 털어내자 공기 중으로 흩어져 종대는 얕은 기침을 했다.  편지를 무릎 위에 올리고 가만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거기에 쓰여있는 작별 인사를 아직은 받아줄 수가 없다.




“바보.”




답답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제 이 곳에 형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이야.  종대는 팔을 들어 눈가를 감춘다. 그리운 사람이 이 눈물을 보고 있다면 왠지 도망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참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혼자만 슬펐다.  서둘러 웃옷을 걸친 민석은 차 키를 낚아챘다.  계단을 내려가자 벌거숭이 일곱 남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게 보인다.  저것들, 무작정 변하지 말라니까.  이젠 익숙해져버린 몸뚱이들이지만 꼴보기 싫다는 의견에는 변함이 없다.  슬쩍 빠져나가려는 민석을 발견한 찬열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흔들면서 현관을 막아 섰다.




“형, 나도 갈래!”


“나도, 나도!”


“내 차에 다 못 타, 여기서 기다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뭐가 금방이야, 국도 타도 1시간은 더 걸리겠구만!”


“변해서 타면 되잖아, 그럼 안 좁지~"


“딱 보니까, 선생한테 무슨 일 있어, 지금.”


“맞아, 혹시 모르니까 맹수 한 마리쯤은 같이 가야 된다고!”


“펜션 차 끌고 가자, 우리 선생님을 구하러 가자!”


“와아! 가자, 가자!”




한밤중에 빨가벗은 장정들이 이리저리 날뛰는 것을 보며 이마를 짚은 민석은,




“미친 놈들아, 감기 걸려! 김준면, 그럼 네가 운전해.”




그리하여, 민석의 소형 승용차 대신 펜션에서 이용하는 승합차에 전부 몸을 싣게 되었다.  몸집이 큰 말과 곰을 제외한 동물들이 각자 컵 홀더, 핸들, 시트에 착석한다.  종인은 원숭이를 무릎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맸다.  두근두근.  다같이 외출하는 것이 오랜만인 데다가 저와 운전자 준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동물 모습인 채라 더 그랬다.  혹시나 남이 핸들에 말려있는 저 뱀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제 목에 매달려있는 원숭이는 어떻고.  다람쥐는 안 보이겠지.  그래도 별이 빛나는 밤에 도로 위를 내달리는 차 안이라서,




“놀러 가는 기분이다.”


“그러게, 휴게소 있는 길로 가 줘.”


“근데 요즘 도경수 자주 온다?”


“응, 이제 안 올게.”


“솔직히 말해봐, 너도 선생님 좋아하지?”


“형들은 나잇값 좀 해줬으면 좋겠어.”


“뒤질래? 까불어, 아오~”


“변백현, 그냥 네가 잡아먹어줘라."




찬열이 컵 홀더에 끼어있던 다람쥐의 목덜미를 잡아 진돗개의 주둥이 앞으로 내민다.  경수가 씩씩거리며 짧은 팔다리로 발버둥치지만 헛수고.




“안돼, 다람쥐일 때는 못 먹어. 너무 깜찍하단 말이야."


“미친, 내가 당장 형을 보신탕으로 만들 거야.”


“우리 다람이, 잔인해! 보신탕이라니!”


“닥쳐, 내려놔.”


“우엑, 변백현 보신탕 극혐.”




여덟은 도착할 때까지 떠들고 노래 부르고 난리가 아니었다.  준면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볼 때마다 운전에 집중하라며 민석에게 손을 깨물렸다.  차가운 밤 공기에 옷깃을 여며 쥐고 있던 종대는 저 멀리서 눈에 익은 차의 반짝거리는 불빛에 손을 흔들었다.  빨개진 코 끝이 딸기 같다.  차에서 내린 준면이 춥죠? 물으며 종대의 두 뺨을 주무르는데,




“아..”




닭 똥 같은 눈물이 준면의 흰 손등으로 떨어진다.  오랜 시간 동안 꽁꽁 끌어안고 있던 슬픔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그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용서할 수 있는 건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미안해요.. 갑자기 너무.. 흑.. 왜 이래애..”




준면은 웃음을 그치고 엄지 손가락으로 종대의 눈가를 쓱쓱 문질렀다.




“선생님, 내일 먹고 싶은 거 있어요?”


“킁.. 오징어 볶음..?”


“그거 맛있게 해줄 테니까 울지 마요.”


“네에..”




아이, 착하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미소에, 따뜻한 손길에 종대는 끄덕끄덕.  저희들 사이에 엉덩이를 붙인 종대가 안녕, 인사를 건네고는 푹- 고개를 숙인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침을 삼킬 뿐이다.  선생님, 왜 울어요? 다들 속으로만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고요한 차 안에 이따금씩 훌쩍거림이 들렸다.  종인은 원숭이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저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였다.  아무것도 몰라도 오늘 하루가 선생님에게 참으로 힘든 하루였구나, 하는 생각에 모두가 슬프다.  찬열은 경직된 몸으로 종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에 질세라 뒷자리에서 세훈이 두터운 앞발을 종대의 머리 위에 얹었고 진돗개가 눈물을 핥아주었다.  종대는 눈물을 그렁그렁한 채로 헤헤, 바보 같은 웃음 소리를 냈다.




“자, 한번만 만져요.”




그리고 제 무릎 위로 튀어올라 꼬리를 흔드는 다람쥐에 입 꼬리를 올려 더 크게 웃었다.  이 순간만큼은 평범하지 않은 스스로가 다행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을, 그리고 함께인 서로를 웃게 만들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빨리 가자."




누구도 우릴 슬프게 할 수 없는 숲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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