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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 숲 속 친구들과 수의사 이야기



 
 




나른한 오후. 향긋한 차 냄새와 정적에 섞이는 바깥 소음들.  그리고 턱을 괴고 졸고 있는 김종대 선생님이 있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은 여러 개의 검색 창에는 요즘 온 신경이 쏠려있는 이들에 대한 것들뿐이다.  독이빨 원숭이에게 물리면 죽나요? 뱀에게 유혹 당하지 않는 법.  반달가슴곰이 꿀을 좋아할까요? 다람쥐 꼬시기 등.  ‘동물 친구’라는 간판 아래 선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어 청 재킷 주머니에 꽂는다.  반듯한 얼굴에 가득 찬 호기심.  그는 한참 동안 유리창을 통해 동물 병원과 그 주인을 훔쳐 보았다.  바닥에 늘어져 있던 돼지같이 살이 찐 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뜨더니 야옹- 하고 울었다.  느릿느릿 다가와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앉더니 한번 더 야옹-




“아니, 깨우지 마. 나 한가해.”




누군가 봤다면 정신 나간 놈인 줄 알겠지.  심심하다는 고양이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에 흠칫- 놀란다.  밖에서 동물들이랑 대화하지 마, 늘 잔소리를 하는 민석의 전화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장이씽, 병원 도착했어? 민석이가 전화해보라고 하던데.’




역시나.  민석의 손바닥 위에 올라 앉아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이씽은 미소를 짓는다.




“응, 이제 들어가려고요.”


‘뭐 샀어? 음료수 같은 거 사가야 된다. 너 또 바나나 산 거 아니지?’


“아니야, 바나나 안 샀.. 어? 일어난다! 형, 이따 전화하겠습니다~”




준면의 전화를 황급히 끊은 그는 발 옆에 놓아두었던 묵직한 바구니를 집어 든다.  바구니를 가득 채운 앙증맞은 노란색들.  몽키 바나나, 엄연히 말하자면 그냥 ‘바나나’는 아닌 셈이다.  종대는 눈을 비비다가 들어오는 손님에 몸을 일으켰다.  어서 오세요!




“주사 맞으러 왔습니다.”


“어떤 애기에요?”




다가오며 반달 눈으로 웃는 의사를 따라,




“원숭이 애기요.”




대답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 꼬리를 더 늘려 웃으며 그럼 원숭이 애기 보여주세요오, 말한다.  엉뚱한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던 바나나 바구니를 의자에 내려두었다.  종대는 제 곁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드는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빼앗겼다.  계속 말을 걸고 건드려도 내내 잠만 자며 움직일 생각을 않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흥미롭게 저희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니, 이제 저희가 아니다.  눈 앞에 있던 남자는 사라져 버렸으니까.




“으아.. 자, 장이씽?”




종대의 시야로 기어들어온 하얀 털의 원숭이가 뚱뚱한 고양이의 목을 끌어안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흘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온다는 말 없었잖아요!”


“갑자기 시간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애완 동물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에 대한 설명을 기억해냈다.  잘 왔어요.  사람으로 있던 자리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옷가지들을 주워 들고 창가로 가서 누가 봤을까 좌우를 살폈다.  거리가 텅- 비어있었지만 그는 줄을 당겨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을 걸어 잠근다.  잠시 부재중.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씽은 제대로 관리 받고 있는 상태여서 종대는 감탄했다.  예방 접종은 물론이거니와 그 흔한 알레르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아 대단하다고 말하자 큰 눈의 원숭이는 제 손에 꼭 맞는 바나나를 부끄러운 듯 만지작거리며 주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전 늦게 발현한 편이라, 이렇게 언어를 익힌 것도 최근이에요.”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동물로 발현한 다른 이들과는 달리 누군가의 반려 동물로 살아가다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럼.. 주인 분은 아셔요? 변할 수 있다는 거.”


“4년 째 모른 척 하고 계세요, 가끔 본인이 치매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반 평생을 함께한 특이한, 아니 특별한 애완 동물과 우아한 75세의 노 부인.  둘에게 이어져 있을 보이지 않는 두터운 끈이 부러워졌다.  저는 절대로 헤아릴 수 없는 사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 하루 빨리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다.  두 번 다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




“선생님?”


“아, 미안! 갑자기 뭔가 떠올라서요..”


“아아. 어쨌든, 전 이 모습일 때가 훨씬 많아요. 행운이죠.”




우리 같은 인간으로 이 곳에서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이제는 흐려진 가을빛 깃털이 떠올라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노을이 퍼지는 시간, 작은 마을 버스 한 대가 인적 없는 길가에 멈춘다.  천천히 버스에서 내린 남자는 숲 사이로 만들어진 길 앞에 세워진 나무 푯말 앞까지 걸었다.  그 뒤로 황량하게 펼쳐진 논은 이미 추수가 끝난 뒤다.  ‘숲 속 친구들’이라는 글씨 옆에 새겨진 화살표를 따르지 않고 조금 더 걸어가더니 좌우를 살피고는 나뭇잎으로 뒤덮인 흙 바닥으로 걸음 했다.  그리고 곧 울창한 나무들에 가로막힌 숲 안으로 사라져 버린다.  좁은 개울을 따르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간혹 멈춰 서 부드럽게 팔을 흔들기도 했다.  하늘을 가린 나무 때문에 숲 속은 한밤중같이 어둡다.  꽤 오래 험한 산을 거리낌 없이 오르고 나니 작은 오두막집이 나타났다.  3층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흠뻑 젖은 것처럼 까만 색깔의 나무로 지어진, 아무렇게나 팔을 뻗은 넝쿨이 끌어안은 그런 집 아니, 집이라고 하기엔 단조롭고 허름해 보이는 것이다.  경쾌하게 발을 굴러 들어가자 불이 켜졌다.  작은 옷장 한 개와 바닥에 여러 겹으로 쌓인 색색의 담요들이 전부인 그 안에서 종인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빠르게 옷을 홀랑 벗어 버렸다.  청바지는 원래 있던 곳에 잘 개어 두고 티셔츠와 속옷은 ‘빨래’라고 정직하게 쓰인 플라스틱 통으로 던진다.




“아아, 피곤해..”




잔뜩 긴장해 있던 몸에서 신경을 끊어내자 그의 구릿빛 피부 위로 힘줄이 빗발친다.  뼈와 근육이 꺾이면서 순식간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구불거리는 검은 갈기가 담요 위로 쓰러지듯이 드러눕는다.  이 곳은 종인의 또 다른 집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쉽게 피로해지고 예민한 그를 위한 가족들의 선물.  저희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려면 온 신경을 신체에 집중시키고 있어야 하므로 정신적인 소모가 크다.  특히, 종인이 유난히 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유지하는 시간도 제일 짧고.  집에서는 자유로웠지만 그마저도 펜션이 입 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주말에는 무조건 아래층과 정원에 손님이 있다 보니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항상 충혈되어 있는 종인의 눈을 마주하며 모두가 미안해 했던 것 같다.  결국 피곤이 쌓여 숲 속에서 한 번 쓰러진 적이 있다. 깨어나서도 계속 변하려고 해봤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집에 돌어가지 못 하고 근처 숲 속을 배회하다가 덫에 걸려 발을 크게 다친 이후에 곧장 이 집을 선물 받았다.  그 뒤로는 손님이 있는 날이나 주말을 거의 이 곳에서 보내고 있다.




“종인아."


“아이.. 형, 거기로 들어오지 말라니까요.”




천장에서 말의 통통한 옆구리로 툭- 떨어진 하얀 뱀이 혀를 날름거린다.  종인은 매끈한 몸에 끈으로 묶여있던 작은 주머니를 물어 잡아 당겼다.  뭐에요?




“해바라기 씨야, 심심할 때 먹어.”


“도경수 왔어?”


“아니, 준면이가 주말에 경수 오면 꿀에 절여준다고 사왔어.”


“맛있겠다.”




그렇지.  종인의 갈기 사이로 기어 들어간 민석이 고개를 누이고 눈을 감는다.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




“오늘 선생님한테 카톡 왔다.”




혼잣말하듯 자랑하는 종인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말은 웃지 말라는 항의의 의미로 누워있는 뱀의 몸통을 콧등으로 건드린다.  응, 뭐라고 왔는데?




“그냥 뭐하냐고.. 찬열 형이랑은 벌써 친해졌나 봐, 동물병원에 갔었대.”


“그래서, 부러웠어?”


“아니거든요.”


“다음엔 네가 먼저 메시지 보내봐, 좋아하실 거야.”




낯가리는 걸로는 어디 내놓아도 지지 않을 종인이 처음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줬을 때처럼-집 열쇠를 잊어버려 전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민석은 이유 따윈 기억하지 못 한다.- 기뻐할 것이다, 김종대 선생님이라면.  ‘종인이랑도 빨리 친해지고 싶은데 절 피하는 것 같아요.. 히잉..’  민석은 어젯밤에 종대와 했던 통화 내용을 떠올리며 검은 갈기에 턱을 비볐다.  우리한테 왜 그렇게 열심인 거야? 귀여워.  믿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석은 저만은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게 저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롭지만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갑자기 뱀이 된 것처럼 피할 수 없는 그런.




“이번 주말에 오실까?”




긴 속눈썹이 묻기에 뱀은 지긋이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떴다.




“글쎄.. 오셨으면 좋겠다.”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둘은 저희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인간 친구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가지런히 놓인 구두가 통통 발을 구른다.  정장 차림의 민석은 손목을 감싼 금속 시계를 들여다봤다.  벌써 8시네.  과로로 침침해진 눈가를 문지르며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난 목소리들을 상기해낸다.  바쁜 나머지 제대로 듣지 못하고 끊어버린 전화에서 기억나는 거라곤 일찍 들어오라는 말 뿐.  무슨 일이지?  선생님 오시나?  즐거웠던 지난 주말을 떠올린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앉았다.  무언가 망설이 듯 입술을 꾹 깨물더니 곧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한 손으로 빠르게 메시지를 입력한다.  전송 버튼 위에 가만히 떠 있는 손가락.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에 그는 애먼 종료 버튼을 누른다.  퇴근하셨어요? 라고 쓰여진 텍스트가 전송되지 못하고 지워졌다.  너무 친한 척 하면 부담스러워 하실 수도 있어.  멋대로 판단해놓고 멋대로 상처받은 표정을 짓고 있다.  차에 오른 그는 시동을 걸기 전에 시트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  새로운 프로젝트 진행으로 바쁜 탓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뱀으로 변한 채 어딘가에 숨어 훌쩍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홀로 킬킬거린다.  그 웃음소리는 쓰다.




“집이나 가자.”




한 시간 뒤, 어둠이 짙게 깔린 숲 길을 가로지른 차가 눈에 익은 정원에 멈추었다.  민석은 한시라도 빨리 보금자리에 눕고 싶어 발걸음을 빨리 한다.  불행하게도, 그럴 수가 없었지만.  불이 꺼져있다.  집에 있어야 할 넷-준면, 찬열, 백현, 종인-의 이름을 부르며 3층으로 뛰어올라갔지만 마찬가지로 어둡다.  전화를 걸었지만 차례대로 집 안 어딘가에서 울리는 벨 소리에 민석은 욕을 읊조렸다.  기척이 없다.  아무도 없다.  늘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집 안의 공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싸늘하게 식은 공간에 서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도 모르게 상상해버린 끔찍한 생각들-모두가 몸에 총 구멍이 난 채 쓰러져 있다던가 철창에 갇혀 끌려간다던가 하는-에 몸서리 치며 침착 하려 애썼다.




“장난이면 죽는다!”




협박을 당한 정적에 조금 머쓱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옷 속에서 기어 나온 흰 뱀이 어둠을 가르고 난로 쪽으로 향한다.  이 집에서 가장 온도가 낮은 곳에서 그는 눈을 감는다.  열을 감지하기 위함이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어.  뱀은 벽을 기어올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가까운 숲 속에 뭉쳐있는 열기를 찾아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찔끔 흐른 눈물을 서둘러 지운다.  뱀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궁둥이들을 물어버리고 싶은 것을 참아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무도 없어서 놀랐잖아..”


“형! 왜 이제야 온 거야? 이것 좀 봐봐!”




그는 진돗개가 눈 앞으로 들이민 종이를 올려본다.  이게 뭐냐?  날이 선 뱀.  준면이 민석의 꼬리를 살핀다.  눈치 빠른 그가 팔을 뻗어 뱀을 안아 올렸다.  둥가둥가, 하고 달랬다가 따끔하게 손가락을 물린다.  아야!




“낙서야?”


“낙서냐고? 형.. 너무해..”


“김종인, 다시 설명해봐. 뱀들은 원래 예술을 몰라, 냉혈 동물이거든.”




멍청하게 제 배를 끌어안은 곰의 머리로 뱀의 혀가 닿기 전에 준면이 그를 더 깊이 끌어 안는다.  종인은 저가 그린 낙서-설계도였다.- 위에 발굽을 올려 그게 김종대 선생님을 위한 숲길 표지판을 세우자는 계획임을 설명해 주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훌륭한 생각이어서 민석은 목 아래로 준비했던 욕을 삼키고 조금 우스운 목소리로 종인을 칭찬했다.  오구오구, 기특하네.




“멍-! 아이디어를 낸 건 나야!”


“그랬어? 백현이도 잘했네.”




귀여운 동생들에 졌다는 듯 민석이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낸다.




“근데 문제가 생겼어, 다른 인간들이 표지판을 따라왔다간 곤란해져.”


“그래서 3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어.”




3시간?  얼간이들, 이라고 내뱉으려다가 순진무구한 말의 눈망울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을 위한 숲길, 이라니 몰래 선물을 준비할 생각에 어느새 피곤을 잊은 채 민석은 들떠 버렸다.  즐거움은 언제나 전염이 빠르니까.




“돌로 길을 만드는 건 어때?”


“나무에 리본을 다는 건?”


“아예 땅굴을 파자, 지하 통로! 두더지들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짱이다!”


“반대, 난 두더지가 싫어. 욕심이 너무 많아.”


“반달가슴곰보다 많겠어?”


“뒤질래?”




이렇게 3시간 동안 헛소리를 나누었구나.  현명한 뱀은 눈을 휘어 웃으며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오늘은 세훈이랑 경수, 이씽이가 없잖아. 내일 다같이 정하자.”




부드럽게 저희를 돌아보는 뱀의 뒤로 준면이 얼른 동의하라는 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착하게 그를 따른 셋은 그제야 민석의 꼬리를 살피고는 서둘러 집으로 몸을 돌렸다.  이 집 가장 뱀의 꼬리는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솔직하다.  주인은 모르는 눈치지만.  피곤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바짝 선 채 뭐라도 찌를 듯이 찌그러져 있는 모양이다, 바로 지금처럼.  이럴 땐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아무리 저희를 아끼는 맏형이라도 독사임에는 변함이 없다.  웬일로 저렇게 순순하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얀 고개.  그러나 민석은 자신을 더 괴롭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준면의 팔에 얼굴을 파묻는다.




“핫초코 타줄까?”


“응.”




너른 침대에 누워있으니 곧 준면이 제 옷가지 따위와 폭이 좁은 작은 컵을 가지고 들어와 협탁 위에 놓아 준다.  고마워,오늘 정말 피곤했거든.  달디단 핫초코를 마시자 기다란 몸이 초콜릿이 된 것 같다.  녹아버려야지.




“얼른 자, 불 끈다.”




삽시간에 어두워진 방 한 켠에서 노란 불빛이 반짝거린다.  메시지가 와 있는 모양이다.




“아, 뭔데~ 진짜.. 나 좀 내버려둬..”




무시하고 잠들고 싶지만 계속 신경이 쓰인다.  결국 이불 속에서 인간의 팔을 뻗은 민석이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낚아챘다.




“어? 힛.. 선생님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핸드폰을 두 손으로 쥐고 바짝 들여다 보는 이 모습을 찬열이 봤다면 뱀은 이중적이야, 라며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퇴근하셨어요? 아까 자신이 지워버린 여섯 글자가 되돌아온 것에 기뻐하며 그는 핸드폰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






 
 






다음날, 한 데 모인 여덟은 장장 4시간에 걸친 토론-이라고 쓰고 헛소리 누가 누가 잘하나,라고 읽는다.- 끝에 종대를 위한 발자국 지도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예를 들어, 앞으로 10 발자국 / 오른쪽으로 꺾어서 5 발자국 이런 식의 지도였다.  형평성을 위해 가위바위보에서 진 세 명이 만들어온 것 중에서 하나를 뽑기로 하였는데 여기에 큰 문제가 생겼다.



민석 : 1 발자국 오른쪽으로 1 발자국 왼쪽으로 1 발자국 왼쪽으로 1 발자국 앞으로 1 발자국


이씽 : 10 발자국 오른쪽 나무로 올라간다 왼쪽 나무로 옮겨간다 13번 오른쪽 나무로 옮겨간다 4번 앞 나무로 옮겨간다 21번 나무에서 내려온다


경수 : 앞으로 400 발자국 오른쪽으로 꺾어서 510 발자국 왼쪽으로 1300 발자국 앞으로 4150 발자국



세 장을 펼쳐놓은 나머지는 한참이나 셋을 조롱하듯 웃어댔다.




“인간 기준으로 만들어 왔어야지.”


“김민석, 너까지 왜 그랬어? 진짜 바보들 아냐? 크크큭..”


“하..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야.”


“다람이 지도 봐, 눈물 난다. 4000이라니, 이래서 맨날 데리러 오라고 했구나. 훌쩍..”


“닥쳐, 씨발!”


“선생님한테 나무로 올라가래, 미친 원숭이.”


"뱀은 다리가 없어서 무조건 한 걸음이면 되는 건가요?"




이들은 결국, 소중한 김종대 선생님을 홀로 위험한 산길에 오르게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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