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지?  달큼한 냄새.  코를 킁킁거리자 작은 웃음 소리가 따라온다.  간지러워.  팔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손길에 뒤척거리자,




“미안, 조금 따가울 거에요.”




따가워?  맛있는 알밤을 숨긴 밤송이처럼?




“그아아앙!”




짐승의 낮은 비명이 방 안에 짧게 울려 퍼졌다.  팔을 찌른 생소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방 안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바짝 엎드려있는 덩어리를 발견해낸다.  등을 둥글게 웅크리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쥔 인영.  사람이다, 낯선 사람.  그리고 팔에 꽂혀있는 두꺼운 주사바늘과 그에 연결된 둥근 약병.




“안녕하세요, 찬열씨.”




다시 아래로 고개를 돌리자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가 베시시 웃고 있다.  찬열은 무의식적으로 제 몸뚱이부터 확인했다.  동공을 가득 메우는 검은 털 사이 하얀 반달이 새겨진 가슴팍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들켰다!




“아니.. 나는.. 곰이 아니고, 사람인데.. 지금은 너무.. 아파.. 서..”




며칠째 이유 모를 고통에 시달렸던 지라 사리 분별이 어려운 모양이다.  잠결에 확인한 메신저로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잊어 버렸다.  종대는 가물가물 감기는 눈으로 변명을 늘어놓는 커다란 곰이 가엽다.  거칠거칠한 털이 엉킨 얼굴을 긁어주듯 쓰다듬었다.




“걱정 말고 자요, 인사는 이따가 해도 되니까.”




안심한 듯 재차 고개를 주억거리고 단추 같은 까만 눈동자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위장 경련에, 만성 위염으로 판단되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나 보다.  그 곁에 서 링거의 줄을 정리하고 잔뜩 어질러져 있는 책상으로 향했다.  굴러다니는 진통제 약병과 껍데기들.  이런 게 들었을 리가 없지, 곰한테 맞는 성분이 아니란 말이야.  종대는 울상이 되어 남아있는 알약 몇 개를 감추듯 손에 쥐었다.




‘똑똑-‘




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열린다.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도깨비처럼 생긴 분홍색 후드를 입은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민석?  아, 뱀이랬어!  세훈과 이 곳에 들자마자 ‘3층에 있는 곰 먼저 봐주실래요? 저희끼리 할 얘기가 있는데 손님이 계시면 불편할 것 같습니다.’ 정중하지만 차갑게 저를 쫓아버린 사람.




“헤.. 주사 때문에 잠깐 깼었거든요.”




괜찮으셨어요? 라고 묻는다.  종대는 짙은 회색 가방에 청진기를 집어넣으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남자에게 안심하라는 말 대신 어색하게 눈을 휘었다.




“저 순발력 좋아요! 바로 죽은 척 했더니 공격하지 않던데...”




걱정을 끼쳤나 보다.  괜찮은 척 했지만 절로 모아진 두 발이 불안한 듯 동동거린다.  멋대로 자신을 끌어들인 세훈의 잘잘못을 따지며 몰아붙이던 사나운 첫인상 때문에 종대는 그 앞에서 조금 주눅이 들었다.




“푸.. 그건 우화일 뿐이에요, 실제로는 소용 없으니까 다음부터는 하지 마세요.”




허나, 입을 가리며 웃으니 다른 사람 같다.  둘 사이를 채우는 그 웃음에 실린 보드라운 공기 방울.  어르는 말투가 단숨에 그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괜스레 쑥스러운 나머지 얼굴이 붉어진 종대는 제 손을 넣은 채 가방을 닫았다.




“아야!”


“하하하.. 선생님, 뭐 하시는 거에요.”




민석이 이번엔 입을 둥글려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자 눈 아래에 옅은 보조개가 패여 그게 묘했다.  허공에 손을 터는데 어느새 다가온 그가 다시 한번 괜찮은지 물으며,




“초면에 큰 소리 내서 죄송해요.”


“그럴만해요, 백 번 천 번 이해해요!”


“놀라셨잖아요.”


“아니에요!”


“아까 세훈이 뒤로 숨는 거 봤는데.”


“아.. 보셨구나.”




긁적긁적-  혀를 내어 웃으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를 지나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곰을 들여다 본다.  그러면서 민석은 슬쩍 운을 뗐다.




“사실 선생님이 신경 쓰여서 올라온 거에요.”


“저요?”




오해하실까 봐요, 덧붙이며 침대에 걸터앉아 그 옆자리를 두드렸다.  쪼르르 그 곳에 엉덩이를 붙인다.  나란히 앉은 두 남자는 눈을 곧게 맞추며 꾸밈 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띤 소년들처럼.




“선생님 때문에 화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좋은 분인 것 같아서 안심한 걸요.”


“그거, 제가 마음에 든다는 뜻?”


“네.”


“저, 정말이요?”




또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으아, 이 사람 웃는 거 너무 좋다.  넋을 놓고, 가방 끈을 쥐고 있던 손도 놓고.  떨어지는 왕진 가방으로 둘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종대가 먼저 제가 주울게요, 말했지만 민석이 더 빨랐다.  제 손등으로 겹쳐진 종대의 따뜻한 손.  냉혈동물인 뱀은 쉬이 그와 같은 체온이 된다.




“민석씨, 웃을 때랑 안 웃을 때랑 너무 달라요.”


“그래요?”


“귀여워요!”




갑자기?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민석의 뺨이 달아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어찌할 줄 모르며 부끄러움을 감추려 애쓴다.




“선생님도 그런데..”




두 사람, 뭐하세요?




“뱀이라고 하셨죠? 그래서 그런가?”


“뭐가요?”




홀린 것 같아요,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종대는 간신히 참았다.




“아니에요,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희야말로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선생님.”




손이 닿아있는 채 채 서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그 새로 나타난 시큰둥한 표정의 까만 얼굴.




“뭐해요?”


“늦었네, 경수 만나서 왔어?”




민석의 물음에도 대꾸 없이 새로운 이를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조금 민망해진 종대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문 뒤로 쏙- 사라져 버렸다.  이제 다들 모인 것 같아요.  사람 홀리는 집주인이 내려갈까요? 묻자 씩씩하게 네! 답한다.  제 손에 쥐여있던 가방을 은근슬쩍 뺏어 들고 걸음을 옮기는 의사 선생님.  여전히 손등을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은 채여서 민석은 조금 의아하다.  계속 잡고 있을 생각인가?  하지만, 손을 빼지 않고 뒤집어 마주 잡았다.  따뜻하게 번지는 이 온도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 딸기를 먹는 세훈, 그 옆에 안절부절못하고 부엌 쪽만 힐끔거리는 김종대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늦은 손님상을 차리겠다고 민석은 일찌감치 부엌으로 들어갔고 마주 앉아 있던 다른 사내들도 눈을 굴리다가 하나 둘 그를 따라가 버렸다.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저희의 사정을 알게 된 인간 손님을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건장한 남자 다섯이서 복작거리는 부엌이 소란스럽다.  나가 있어!  산에 가서 잣 좀 주워와.  싫어요.  포도도 꺼낼까요?




“가서 좀 도와야..”


“그냥 있어요.”


“으.. 근데 집 진짜 좋은데요, 세훈씨는 왜 나와 살아요?”




냠냠.  일 때문에, 짧게 답한다.  그리고 딸기를 향해 다시 팔을 뻗으면서 아까부터 계속 신경이 쓰이는 종대의 어깨를 일부러 건드린다.  반사적으로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걸 봤다.  저가 문 상처가 아직 덜 아문 모양이다.




“약은 발랐어요?"


“약이요? 아, 어깨? 다 나았어요, 걱정 마세.. 악!”


“약 발라요.”


“힝.. 네.”




어깨를 지그시 누르자 악 소리가 나온다.  오리처럼 입술을 내밀고 순순히 대답하는 걸 듣고 나서야 세훈은 소리 없이 웃었다.




“저 쫓겨났어요.”




그 앞으로 천진하게 다가온 한 명이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을 종대에게 들이밀었다.  저가 이 집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반겨준, 예쁜 이름의 견(犬), 백현이다.  옆에 앉더니 친근하게 말을 잇는다.




“선생님, 몇 살?”


“스물 아홉이요, 세훈씨랑 동갑이에요.”


“제가 한 살 어리네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좀 먹어요.”




세훈이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딸기가 꽂힌 포크를 옆으로 슥- 내민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든 빠알간 딸기가 종대의 입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백현이 그 포크를 천천히 빼앗아 제 입으로 가져갔다.  괜찮죠? 라고 묻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러고는 멀뚱멀뚱 저를 보고 있는 의사 선생님에게 다른 딸기를 내민다.




“지, 집이 너무 좋아요! 3층이고 방도 많고..”


“구경 시켜 드릴까요?”




저도 모르게 의지가 되고 있던 세훈에게 고개를 돌려 허락을 구하려는데 팔목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몸을 일으켰다.  네모 반듯한 나무 계단을 디뎌 1층으로 내려가며 기쁜 마음으로 앞선 사람을 따른다.  살가운 이다.  강아지라고 했던가?  이렇게 편히 대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마음을 쓸며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보지 못 했던 집 안을 두리번두리번-  깊은 산 속 작은 호숫가에 자리한 온기를 품은 커다란 나무집.  들어오는 길에 눈에 띈 ‘숲 속 친구들’이라는 푯말이 떠올랐다.




“1층은 펜션이에요, 고객용. 우리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숨어 살면서 돈도 되고.. 딱이죠?”




손님은 많이 없지만, 덧붙이며 킬킬거린다.  백현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3층에 이들의 방이 있다.  방은 3개로 찬열이 독방을 쓰고 나머지가 한 방을 쓴다고 한다.  남는 방은 이 곳에 거주하지 않는 세훈, 경수, 이씽의 것이다.




“방은 그냥 형식적인 거에요.”




종대는 이 설명이 무슨 뜻인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지붕 틈에서 자고 있는 뱀이나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개, 장미 넝쿨 아래로 뻗친 말발굽 따위를 발견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때 말이다.  


 
 


한쪽 벽면이 뚫려 있는 특이한 2층은 거실과 카페테리아로 손님이 있을 때는 응접실과 카페로 이용된다고 했다.  왜 한쪽 벽이 없는지 물으려다가 그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고는 그만 두었다.  오히려 그 곳을 통해 들락날락할 이 친구들을 상상하자 가슴이 벅차 오른 것은 혼자만의 비밀.  한 켠을 우뚝 차지한 흙으로 구워진 것 같은 난로가 정말 멋있다고 말하자 가끔 민석이 그 곳을 통로로 이용할 때가 있으니 불을 떼는 것은 삼가라는 주의를 받았다.




“큰 길에서 여기까지 차 없이는 위험하니까 꼭 연락해요, 데리러 나갈게요."


“아.. 백현씨, 고마워요. 긴장했었는데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그래서, 안 무서워요? 선생님이랑 다른데?”




말이 싹뚝- 잘렸다.  종대는 그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 했다.




“네, 전혀 안..”




‘쾅-!’




무서워!  겁을 집어먹었다.  종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현이 벽을 세게 내리치며 제 팔 안에 그를 가두어 버렸으니까.  등을 떠미는 것처럼 느껴지는 딱딱한 벽.  순해 보이던 처진 눈이 자비 없이 앞에 있는 상대에 칼날처럼 꽂혔다.  빛을 등진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선생님 좋은 분 같아요, 그러니까 믿을게요.”




눈이 웃고 있지 않다고요, 으앙!  끄덕거리길 멈추지 않자 백현은 다정한 척 뺨을 쓸어 그 움직임을 그치게 했다.  아이, 착해.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길,




“허튼 짓 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듣기 좋은 목소리로 경고를 받았다.  마른 침을 꿀꺽- 강아지가 아니었나 봐.  얇은 뺨에 얹어져 있던 손이 내려와 아프지 않게 종대의 목덜미를 잡으며 이제 무섭죠? 묻는다.




“네.. 아니, 아니요?”


“다시는 이런 모습 보이지 않게 도와주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굳어있는 가슴팍에 사랑스럽게 이마를 기댄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지만 벽에 가로막혀 몸이 조금 흔들렸을 뿐이다.  지금은 어떤 표정일까?  겁이 났던 걸까?  자신들과는 다른 이와 비밀을 공유하게 된 것이, 아니면 과거에 어떤 상처가 있는 건 아닐까?  협박을 당한 건 저이면서 종대는 백현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을 헤집자 그는 품으로 더 파고 들었다.  역시 강아지였어.  내가 도와줄게요!




“개수작 부리고 있네.”




계단 쪽에서 들린 목소리.  종대가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다?




“개수작이라니, 듣는 개 찔리게.”




투덜거리며 시선을 옮기는 백현을 따라 아래로 눈을 돌리자,




“다 됐다고 올라오래.”




 
 

손바닥보다 큰 다람쥐 한 마리.  귀여워!  종대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지만 재빨리 계단을 올라가 버려서 닿을 수 없었다.  토실토실한 볼이 불만스럽게 실룩거린다.




“다람아, 잣 주워왔어?”


“그렇게 부르지 마.”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면서 백현의 팔로 뛰어올라 단숨에 어깨까지 오른다.  둥글게 퍼져 있는 꼬리를 보며 종대는 두 손을 꼭 쥐었다.  너무 귀여워, 꼬리 만지고 싶어.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시선을 피하던 교복차림의 소년, 도경수.  첫인상과 상반되는 귀여운 모습에 손이 간질간질-




“김종대씨, 물리기 싫으면 그만 둬요."




계단에 서 어느새 손을 뻗고 있는 종대를 말린다.  세훈의 말에 백현과 경수가 뒤를 돌아보자 다람쥐의 꼬리 앞에 꾸물거리는 마수가 보인다.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어요!




“헤.. 꼬리가 만져달라는데요?”


“하하! 선생님, 절대 현혹되지 마소~”




빠른 속도로 백현의 머리 위로 도망가 버린다.  흥.  새침하게 저를 내려다보는 다람쥐를 보며 종대는 입맛을 다셨다.  언젠간 만지게 해 주겠지.




“빨리 올라오기나 해요, 배고프다며.”


“네에!”




앞서 올라가는 세훈과 종대에게서 멀찍이 뒤따르며 둘은 티격태격.  다람쥐가 백현의 머리카락을 앙증맞은 두 손으로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얼굴 질린 거 못 봤어? 왜 겁을 줘?”


“어쭈? 네 마음에 들었어?”


“아니, 난 절대 안 친해질 거야. 단지 형이 나댄 게 마음에 안 들어.”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기대하지 않으면, 기대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경수의 말에는 아랑곳 않고,




“어쩐지 처음부터 선생님한테 톡톡대더라, 관심 받고 싶었구나.”


“개소리.”


“관종이네, 우리 다람이~”




편하거나 좋아할수록 심술을 부리는 그의 심성을 안다.  경수는 친하지 않을수록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는 심오한 청소년.  종대를 협박했던 저를 은근슬쩍 혼내고 있다.  아무래도 김종대 선생님은 벌써 저희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나 보다.




“으악! 짱 아파! 미친 다람쥐!”




백현이 경수를 놀리듯 키들거리다가 귀를 물렸다.  관종 아니거든, 개새끼.











다소 어색하게 시작된 그들의 첫 저녁식사는 서글서글한 준면과 백현 덕분에 금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품었다.  곁에 앉은 민석은 혹시 의사 선생님이 이 자리를 불편하게 느낄까 싶어 가끔씩 뒤로 손을 올려 종대의 등을 토닥거린다.  낯가림이 심한 종인은 직접 말을 붙이진 않았지만 그를 뚫어질 듯이 주시했다.  눈이 마주쳐도 그 시선을 거두지 않아 종대는 조금 난감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당근 샐러드, 견과류 볶음, 인스턴트 토마토 파스타 등 사실, 치킨 이외에 종대가 먹을 만한 건 그리 많지 않았다.-이 자취를 감춘 후에는 준면이 어디선가 화려하게 수놓아진 파티션을 짊어지고 나와,




“진짜 동물 병원처럼 해주세요!”


“창피하다, 준면이 형.”




동물 병원에 그렇게 요란한 파티션은 없습니다만.  그리하여 2층 한 켠에 종대의 간이 진료실이 마련되었다.  사람 앞에서 제 본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이는 것은 처음인지라 다들 긴장한 채, 차례대로 갑작스런 건강검진과 예방 접종을 받았다.




“저기.. 선생님, 계속 만지실 건가요..?”


“으앗, 죄송해요! 민석씨 촉감이 너무 좋아서.. 매끈하고, 차갑고!"




 
 

김민석(31세), 보아뱀 / 회사원

특이 사항 : 만지기 전에 손을 차갑게 하자, 꼭!  홀리지 말기.






“주사를 꼬리에 맞아야 된다는 게 말이 돼요? 의사 자격증 보여주세요.”


“안 갖고 왔어요오! 일단 꼬리를 만지고, 아니 잡고 주사를..”


“만지면 도토리 공격할 거에요.”


“히잉.. 꼬리..”




 
 

도경수(19세), 다람쥐 / 고등학생

특이 사항 : 꼬리가 귀엽다. 만지는 걸 싫어한다.  사춘기, 성질 有  조심하자.  이갈이 나무 준비하기.






“살살 놔주세요~”


“잘 참으면 대왕 개 껌 드릴게요,이힛.”


“멍-!”




 
 

변백현(28세), 진돗개 / '숲 속 친구들' 관리인1

특이 사항 : 화나면 무섭지만 나만 잘하면 된다.  다음에 발톱 깎아주기.






“와.. 검은색이었구나, 멋있다.. 바, 발굽도 보여줘!”


“너무 가까운데.. 발로 찰까 봐..”


“헤헤.. 말이니까 당근 좋아하나?”


“사과도 있으면요.”




 
 

김종인(21세), 흑마 / 대학생, '숲 속 친구들' 아르바이트

특이 사항 : 학업 스트레스를 춤으로 풀어 발굽이 닳았다.  착용감이 좋은 편자 찾아보기.  브러쉬도!






“으아아악! 이렇게 크다고 말 안 했잖아요, 무서워!”


“제가 좀 크죠? 허허, 여기도 보실래요?”


“으앙! 일어나지 마세요, 너무 크다고요!”


“김준면, 선생님 놀리지 말고 이리 나와! 서, 선생님! 지금 우시는 거에요?”


“호, 호랑이가.. 이렇게.. 막 얼굴을 들이대고..이따 만큼 크고..”




 
 

김준면(30세), 호랑이 / '숲 속 친구들' 사장

특이 사항 : 너무 커서 무섭지만 온순하다.  빨리 익숙해지자ㅠㅠ 장난꾸러기.  웃기다.  커다란 칫솔 필요.




“다 울었어요?"


“끅.. 조금 놀랐어요.”


“나 봤을 때는 괜찮았잖아.”




 
 

오세훈(29세), 늑대 / 회사원

특이 사항 : 맥주를 좋아한다.  옆집이라서 좋다.






“그 때는 술기운도 있었고 세훈씨가 먼저 도망쳐서 이럴 줄 몰랐죠오..”


“참 나.. 씽이는 오늘 못 들어온다니까, 걔는 주인이 있거든.”


“씽이? 원숭이랬죠?”




 
 

장이씽(26세), 독이빨 원숭이 / 어느 부잣집의 애완동물

특이 사항 : 아직 모름.  이 중에서 유일하게 동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함.






“네, 병원에 들르라고 할게요. 아님 우리가 한번 더 오거나.”




우리? 발개진 눈가를 문지르며 종대는 바보처럼 실실 웃어버렸다.  세훈이 소파 위에 늘어진 종대의 짐을 가방에 넣어주면서 왜 저래? 라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왜 웃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죠."


"찬열 씨가 기다리랬는데?"


"늦었어요, 언제 일어날 줄 알고. 내일 출근이라는 거 잊지 마요."




 
 

박찬열(29세), 반달가슴곰 / '숲 속 친구들' 관리인2

특이 사항 : 아픔.  만성 위염.  위장이 약한 것 같으니 약과 식단표를 준비하자.




여전히 파티션 뒤가 소란스럽다.  뱀이 커다란 호랑이를 벌 세우고 다람쥐는 푹신한 말 갈기 위에 앉아 맹렬하게 짖는 진돗개를 약 올리고 있다.  짧고 강렬했던 첫 만남 끝에 숲 속 친구들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아직은 어렵고 낯설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서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먼저 걸음을 떼준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훨씬 바보 같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채버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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