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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 숲 속 친구들과 수의사 이야기





“몽몽아, 퇴근이다아.”




의사 가운을 입은 이의 웃음이 하얗다.  그 앞 털실뭉치 강아지가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세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걸 보고 바보같이 헤헤거린 남자는 연신 혀 짧은 소리를 내며 강아지와 대화를 나눈다.  오구오구, 그래쩌?  배고파쩌요?  드디어 병원의 불이 꺼진다.  그는 끝! 하고 박수를 치더니 허리를 숙여 양 손을 내밀었다.  펄쩍 다가온 강아지를 소중히 안아 든 남자는 유리문을 걸어 잠그고 발길을 돌린다.  나도 강아지나 길러볼까?  외로울 틈이 없네.  부드러운 털에 닿아있는 손을 꼬물꼬물 움직여 본다.  품에 안겨있는 털 끝에 입술을 대자 따뜻한 냄새가 났다.  단골 고객이 갑작스레 출장을 가게 되어서 며칠 돌봐주기로 한 것인데 고작 이틀 만에 정이 들어버렸다.  돌려보낼 때에 몰래 눈물을 훔쳐야 할지도 몰라.  혼자 키득거린 그는 가운을 입은 채 퇴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큰 길을 따라 얼마 걷지 않아 나오는 골목으로 쏙- 모습을 감추었다.  크고 작은 빌라들이 모여있는 곳.




“잠시만요!”




가까스로 엘리베이터에 오른 종대는 열림 버튼에서 막 손을 떼고 있는 남자에게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5층 버튼을 누르려다 이미 빨간 불이 들어와있어 그만 두었다.  키 크다, 옆 집 사람인가?  남자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갑자기 몸을 떨며 품으로 파고드는 강아지를 고쳐 안았다.




“왜 그래? 다 왔어~”




가운 위에 수놓아져 있는 ‘동물 친구 김종대’라는 이름.  걱정스러운 눈길로 강아지의 목덜미에 턱을 비비고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앞서는 종대를 끝까지 날카로운 눈으로 쫓았다.  문이 닫히는 502호를 지나면서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냥감을 포착한 눈동자가 사나운 빛을 띤다.












“저기.. 앉아도 될까요?”




종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우물주물 얼굴을 들이민 저에게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행이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이다.  고맙습니다, 하고 맞은 편에 앉았다.  저희 빌라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편의점의 테이블은 하나뿐이다.  예상대로 어색했지만 인스턴트 김밥을 가지고 집에 들어가봤자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견뎌보기로 했다.  뒤처리도 귀찮고, 오늘 달이 예쁘기도 하고.  그는 입 꼬리를 실룩거리면서 취기 어린 뺨을 손바닥으로 눌러 보았다.  뜨거워.  앞에 앉은 모델 같은 남자를 힐끔거리다가 눈이 마주쳤다.  종대는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 고민하며.




“마셔요.”




불편한 의자에 기대서 캔 맥주를 마시고 있던 남자가 앞에 놓여있는 몇 개 중 가까운 새 것을 종대에게 슥- 밀었다.  많이 마시고 왔는데에, 하면서 종대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망설이지 않고 캔을 딴 그는 이웃 남자의 손에 들린 캔에 짠, 홀로 건배를 했다.  제 발로 기어들어왔네.  픽- 웃어버린 남자는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꿀꺽꿀꺽 맥주를 마시는 그를 쳐다봤다.  아니, 관찰했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발그레한 뺨에 흐트러진 머리카락.  선선한 밤 바람에 그의 냄새가 실려온다.  그에게는 익숙한 것이 베여있다.  증오하는 만큼 안락해져 버리는 그런.




“캬.. 고마워요, 오늘 제가 엄! 청! 우울하거든요..”


“왜요?”


“그 때 제가 안고 있던 멍멍이 보셨죠? 걔도 가고..”




말 끝을 흐리는 그를 빤히 쳐다보자 기다리는 것으로 여겼는지 곧,




“애인이랑도 헤어지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담담한 척 크게 웃어버린 그는 맥주를 홀짝거렸다.  이 수의사, 아무래도 경계심이 전혀 없는 편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 말을 섞는 사람에게 이렇게 시련을 떠벌릴 리가 없다.  술이 한 몫 한 것 같지만, 어쨌든 이건 마이너스 요소.




“.. 우울할 만 하네요.”


“네, 혼자 있으면 울지도 몰라요. 하하..”




그렇게 말하는 눈에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솔직한 편인가?




“김종대에요.”


“아.. 전 오세훈입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오늘 술 친구해요. 네? 제가 살게요오!”




친화력이 좋네. 우린 여럿이니까 친해질수록 좋겠지, 여러 모로.  신뢰하기에도 그렇고.




“이미 많이 취하신..”


“쉿. 하나도.. 하나도 안 취했어요!”




입술을 꾹- 누르는 손가락이 코에 닿아 당황한 나머지, 세훈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어 그걸 핥아버렸다.  종대의 풀려있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세훈의 몸이 바짝 긴장하여 앞으로 굽는다.  타인이 코를 만진 것은 처음이라 반사적으로 혀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차! 싶어 변명을 하려는데,




“이, 이건..”


“세훈씨, 남자 좋아해요?”




엉뚱한 질문이 돌아왔다.




“아니요, 양쪽 다.. 가 아니라.. 네?”


“세상에.. 이거 운명.. 운명 아닐까요? 저도 다 돼요!”




네?  두 손으로 감격한 듯 턱을 감싸 쥔 종대를 보며 그는 애꿎은 이마를 문질렀다.  반짝거리는 취한 수의사의 눈을 마주하고 있기가 힘겨워 고개를 숙이자 바닥에 늘러 붙은 껌 딱지들이 보인다.  세모꼴이 된 세훈의 눈매 끝에 짜증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내가 하려던 건 이 작업이 아니라고, 젠장.  거기다가 당신은 내 취향 아니야!  다, 다, 다 된다니, 뭐가 된다는 거야?  끝이다, 끝.




“죄송하지만 저는..”


“오늘 같이 있어.. 줘요.. 너무 외로워.”




‘쿵-‘




주정뱅이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버렸다.




“으.. 가지가지 하네, 이 인간.”




아연실색한 세훈이 작게 욕지거리를 뱉는다.  허연 뺨을 두드리고 귀에 대고 소리를 쳐도 꿈쩍 않는다.  깨우는 것을 포기하고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기다란 손가락 끝에 매달린 것을 입술로, 종대를 눈동자로 탐한다.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꽁초를 지지고 몸을 일으켰다.  담긴 것이 없는 매몰찬 얼굴이었지만 속은 다른 모양.  옆에 세워져 있던 박스 중 가장 큰 것을 찢어 쓰러져 있는 몸 위로 덮어준다.  그리고 긴 다리로 휘적휘적- 빠른 속도로 그 곳을 벗어났다.  탈락.  고개를 저으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지만 그게 끝인 것 같았다.




“하아.. 평범한 주제에..”




우리처럼 말하지 마.  너무 외로워, 눈물 섞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되감기 된다.  마침 진동한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검은 화면에 ‘진통제 더 필요해.’ 라는 말 풍선이 떠오른다.




"쳇.."




이판사판이다.  박스 아래 얌전히 잠들어있는 이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세훈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긴 속눈썹 끝에 고인 눈물.  그걸 혀로 할짝거리고는 두 팔로 거뜬히 종대를 안아 들었다.  불안하지만 지금 당신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해.  일단 수의사라는 것만으로 99%는 합격이잖아?  1%는 나의 어리석은 믿음으로 채워볼게. 











목 말라, 천천히 눈을 뜨니 어슴푸레한 어둠이 다가온다.  종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습관적으로 이불 머리맡에 있는 전등으로 손을 뻗는다.  응?  아무것도 없네.  그제서야 주변을 살폈다.




“으.. 으아아악!”




푸른 섬광을 품은 눈동자는 가뿐하게 그의 몸 위로 올랐다.  가슴을 짓누르는 손, 아니 발이다.  두터운 짐승의 발.  한 눈에 봐도 위협적인 발톱이 종대의 티셔츠를 움킨다.




“윽.. 무거.. 워! 집 안으로 어떻게 들어온 거야!”




바보 아냐?  지금 이 상황에 내가 어떻게 들어온 건지가 궁금해?  그리고 여긴 내 집이야.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보내려다 그만 두었다.  제 집에서 누군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바보는 안 되겠어, 아직 되돌릴 수..




“세훈.. 씨?”




심장마비로 사망할 뻔한 이는 반대로 세훈이 되었다.  아래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순진무구한 얼굴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난 줄 어, 어떻게 알았어요?”


“.. 와.. 우와.. 우와아아! 말도 한다!”




순식간에 팔을 뻗어 오는 바람에 놀란 늑대가 끙- 소리를 내며 뒤로 펄쩍 물러났다.  종대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 저를 노려보는 거대한 짐승을 바라보았다.  초점을 잃은 눈빛과 살짝 벌어진 입술.  꿈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인간은 한 손을 뻗어 닿지 않는 것을 쓰다듬는 것처럼 움직였다.  빳빳해 보이는 어두운 잿빛 사이로 섞인 흰 털들이 달빛이 받아 빛난다.  자세를 한껏 낮추고 경계하는 모습이 위협적이었지만,




“왜, 왜, 왜? 다가오지마!”




서슴없이 바닥으로 디뎌지는 발을 보며 짐승의 네 발이 총총거린다.  우스운 꼴이었다.  꼬리 끝이 벽에 닿아 소름이 돋았다.  인간의 두 발은 아랑곳 않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선다.




“그르릉..”




오히려 위협을 받고 있는 쪽은 세훈이라 잔뜩 날을 세우고 으르렁-   하지만, 종대는 굽힌 등을 움찔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늑대는 몸을 더 낮추며 저를 향해 다가오는 작은 인간을 무참히 찢어 죽이는 상상을 하고 있다.  여전히 뻗어 있는 손 끝의 떨림이 고스란히 세훈의 시야에 담긴다.  그만 둬.  섣부른 결정으로 모든 것을 그르치게 생겼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몰려온다.  협박을 하고 각서를 받기도 전에 정체를 들켜버렸다.  이 사실을 알면 나머지에게 평생 조롱거리가 될 게 뻔하다는 생각에 미치자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눈 앞에 일렁거리는 하얀 인간은 겁이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후자에 가깝군.  저를 붙잡을 생각인 모양이다.  팔을 뻗은 채 살금살금-




“계속 다가오면 죽일 수도 있어요.”


“.. 진짜요? 살려주세요..”


“그럼 멈춰요, 김종대씨.”




멈칫- 이제야 말이 통하네, 하고 다행이라 여겼다.  코 앞에서 멈춘 손 끝 위로 짐승의 주둥이에서 흘러나온 한숨 같은 숨결이 닿은 순간,




‘콰직-‘




“아아! 아파!”




순식간에 세훈의 목을 끌어안았다가 어깨를 물린 종대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케, 켁! 이런, 미친!"




피의 감칠맛에 진저리를 치며 짐승은 아가리에 힘을 풀고 몸을 뒤로 뺐다.




“아아아..”


“젠장! 이것 좀 놔봐요!”


“미안해요. 아아, 너무 아프다.. 힝.."




여전히 제 목에 매달린 채 턱 아래에 얼굴을 비비는 인간에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니까 놓으라고, 좀! 앞 발등으로-더 이상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조심스러워야 했다.- 배를 밀다가 종대의 티셔츠 어깨가 이빨 자국으로 찢긴 것을 보고 온 몸이 굳어버렸다.  드디어 종대가 원하는 대로 얌전해졌다.




“.. 도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너무 신기해서요, 진짜 물 줄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헤에.. 생각보다 되게 부드럽네요, 털이.”




이 인간, 아직 취해있는 게 분명해.  인상을 찌푸렸지만 짐승은 천천히 뒷다리를 굽혀 앉았다.  덕분에 매달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세훈 씨,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거절하시면 죽일 수밖에 없고요.”




저기 늑대 양반, 방금 긴장해서 삑사리 냈는데요?  종대는 살짝 웃음 소리를 흘렸다.  세훈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지만 그치지 않고 털에 파묻은 손을 움직여 쓰다듬는다.




“할게요, 죽기 싫어요.”




어떤 부탁인지 듣기도 전에 대답한 그에게 불만스러운 대꾸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 이렇게 쉬워도 됩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우린 운명이라고.  종대는 피부로 잦아드는 짐승의 떨림을 더 깊이 끌어안았다.  힘껏 으르렁거리는 게 왜 애원하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모습이 변해도 그가 가진 시원한 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아서, 그래서 무섭지 않았다.  제멋대로 굴다가 물려버린 어깨는 너무 아프지만.  진짜 아파.  솔직히 지금 응급실 가야 될 것 같아.  늑대 등에 실려가면 모두 놀라겠지?  홀로 키득거린 인간은 고개를 들어 버릇처럼 짐승의 콧잔등에 입을 맞추었다.  세훈의 까슬까슬한 혀가 그의 뺨을 길게 핥아 올렸다.  이건 종대가 처음으로 발견한 세훈의 습관이 되었다.




“김종대씨, 동물 취급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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