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녈! 찬열아아!”




아무렇게나 노란 캔버스를 벗어 던진 종대가 현관 바닥에 드러눕는다.  창백한 얼굴.  개강 파티에서 몰래 빠져나가려다 들키는 바람에 병아리 같은 후배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일렁거리는 천장 때문에 찌푸려진 인상이 풀릴 줄을 모른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입술 새로 뜨거운 숨이 들락거린다.




“얼마나 마신 거야?”




엄마처럼 팔짱을 낀 채 도끼눈을 한 찬열이 그 머리맡에 섰다.  아마 저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어쩌면 화가 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메시지에 답장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으니까.  코 끝으로 끼치는 술 냄새가 지독하다는 생각을 하며 찬열이 드러누운 머리통을 발로 툭- 건드렸다.  종대는 반쯤 풀린 눈으로 고개를 젖히더니 헤헤, 하고 웃는다.  팔을 뻗기에 잡아 끌어당기자 힘없이 끌려오는 작은 몸.  똑바로 서, 휘청거리는 그를 어깨에 들쳐 업었다.




“놔아아아, 놔아!”


“아! 가만히 있어!”




등을 꼬집힌 찬열이 주정뱅이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지만 그치지 않는 손가락.  걸음을 서둘러 이부자리 위에다 내려놓는 것이 찬열로서는 최선이다.  확 던져버릴라, 으르렁거리면서 행동거지는 조심스럽기 그지 없다.  종대의 등허리를 두 손으로 받쳐 안고 있다.




“머리 아파 죽겠어어.. 히잉..”




익숙한 냄새가 베인 이불을 한껏 끌어안아 얼굴을 비빈다.  귀엽긴.




“그러게, 누가 이렇게 많이 마시래?”


“나 죽어어.. 웅.. 죽을 것 같다고..”


“전화도 안 받고, 나쁜 새끼.”




뻘건 국물이 튄 티셔츠를 걷어 올리니 안주거리처럼 빨갛게 익은 몸이 찬열의 시야를 메운다.  워낙 술이 안 받는 몸인지라 조금이라도 과음을 했다 하면, 이렇게 몸이 빨개졌다 하얘졌다 하면서 밤새 끙끙거린다.  어지러운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 두 주먹.  이를 짝사랑 하는 찬열은 안쓰러운 마음에 그의 이마에 살살 꿀밤을 내렸다.  몸을 돌리자 어디 가, 하고 칭얼거린다.  작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종대가 좋아하는 긴 컵에 따랐다.  새벽 두 시를 가리키는 시침.




“물 마셔.”




싫어.  고개를 젓는 걸 무시하고 어깨를 안아 일으켜주었다.  싫다고 할 땐 언제고, 컵을 입에 대주니까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하여튼 청개구리.  뺨으로 컵을 밀면서 물방울이 매달린 입술에 입을 맞추자,




“하지마아! 변태.”


“한 번만 더.”


“하기만 해봐아아.. 죽어어!”




에잇, 나도 몰라.  아랑곳 않고 술에 취한 종대의 두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입술을 떨어뜨렸다.  열기를 띤 입술을 누른 채 가만히.  가만히.  꼬집히거나 한 대 얻어맞을 각오였는데 잠잠하다.  찬열은 두근두근 울리는 소리가 들릴까 봐 얼굴을 붉혔다.  캠퍼스를 물들이기 시작한 단풍 색.  하지 말라고 할 땐 언제고, 가만 있는 찬열의 입술 새로 종대의 혀가 메롱- 하고 도발을 해 온다.  잘게 떨리는 커다란 손이 뜨거운 뺨으로 오른다.  조심스럽게 맞물린 입술에서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살며시 눈을 뜨자 길게 감긴 속눈썹이 보이는데 그는 괴로워졌다.  질끈 감기는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난 것 같아 억울해졌다.  김종대,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언제까지 장난으로 넘길 셈이야?






양 발바닥에 물 티슈를 한 장씩 깔고 뒤뚱뒤뚱하던 종대가 힐끗- 시계를 훔쳐 보았다.  막 열두 시가 넘어가고 있다.  시간을 재촉하려 야밤에 청소까지 하고 있건만 현관문은 미동이 없다.  입술에 힘을 주어 삐죽거리더니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든다.  ♡박찬열 똥개♡ 연결 중입니다.




‘응.’




응?  이 놈 봐라, 아주 뻔뻔하네.




“뭐해?”


‘뭐하긴, 우리 카톡 하고 있었잖아.’


“학교 앞? 아직도 술 마셔? 언제 들어올 거야아! 피곤해.”


‘금방 안 끝날 것 같아.’


“아깐 일찍 들어온다며!”


‘한번만 봐줘, 메로나 사갈게. 먼저 자.’




다감하게 어르는 낮은 목소리.  또 반들거리는 눈을 하고 살짝 고개를 숙여 웃고 있겠지, 날 생각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발을 허공에 굴렀다.  발바닥에 달라붙었던 말라버린 흰색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걸 다시 한번 발로 밀어버리며 종대가 핸드폰에 사악하게 속삭였다.




“한 시간 안에 안 오면 집 간다.”


‘뭐?’


“내 집으로 갈 거라고.”


‘.. 갑자기 왜.. 이 시간에? 갔다 언제 올 건데?’




너 지금 안 들어오겠다는 소리지, 쌀쌀맞게 동문서답을 내뱉고는 전원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다급한 찬열의 목소리가 잔상으로 귓가에 흩어진다.  바보, 라는 중얼거림이 한숨처럼 흘러나왔고 곧 청 재킷에 무심하게 팔을 꿴 종대가 문 앞에 섰다.  지금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이유는,




“나도 몰라, 박찬열 똥개.”






이불 더미에 몸을 구르며 찬열이 포효한다.  아아악!  며칠째 텅 비어있는 제 자취방이 답답하다.  산소 1인분이 줄었는데 숨이 막힌다.  밥 먹듯이 봐도 모자란 종대를 볼 수가 없다.  그의 집은 이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돌아오는 길목 길목마다 서성거려 보았지만, 어디인지 몇 번이나 물었지만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20년 동안 소꿉친구로 붙어 있었기에 집을 따로 구했어도 서로의 집을 들락날락하던 끝에, 자연스럽게 살림을 합친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 어언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둘은 조금 더 넓은 찬열의 집에서 함께 살다시피 하고 있었으므로 종대의 자취방은 집이라기보다는 그들만의 별장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 별장으로 화를 끌어안고 휴가를 떠나버린 이.  도대체 왜 화가 난 거야?




“하아.. 짜증나.”




미간을 좁히고 머리카락을 벅벅 헤집더니,




“밥은 먹었나..”




풀 죽은 얼굴로 핸드폰을 마주한다.  매몰찬 답변에도 두 손으로 핸드폰을 소중하게 쥔 채 손가락을 움직인다.

“미친.. ㅇㅇ 보낸 거 봐, 나쁜 새끼.”




툴툴거리면서 괜히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보더니 시원한 입매에 금새 웃음을 그린다.




“귀엽고 지랄이야.. 언, 제, 올, 거, 야.”




한 자, 한 자 감춰지지 않는 마음을 찍어 보낸다.




“.. 오, 오예! 온대! 빼빼로 사러 가야지!”




애먼 이불에 발길질을 하며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영화 다운받아놔야겠다, 으하하하!  하지만,

 
 




“아아악! 씨발!”






짝사랑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종대에게 저는 항상 죄인이다.  두꺼운 전공 도서 두어 권을 팔에 얹는 그의 곁을 알짱거리면서 횡설수설.  드, 들고 갈 수 있겠어?  그 방은 춥지 않나?  저녁 뭐 먹었어?  맛 없었지?  찬열의 짝사랑 상대는 자비를 베푸는 법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묵묵히 돌아서는 종대를 앞에 두고 결국 죄인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지금까지 참은 것도 용하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나니 더 화가 났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인상을 구긴 채 김종대, 낮게 불렀다.




“왜 그러는 건데, 말은 해 줘야 될 거 아냐?”


“말하기 싫어.”


“그 날 늦게 들어와서 그래? 미리 말했잖아. 너는 술 마실 때 연락도 안 하면서, 내가 기다리든 말던 신경도 안 쓰잖아!”


“누가 기다리래?”


“.. 하.. 그래, 그건 내가 혼자 좋아서 지랄하는 거니까 됐다.”


“그럼 좋아하지 말든가.”




뭐?  우두커니 서서 모진 말을 하는 뒤에서 찬열은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오늘은 진짜 너무하네.  단단치 않은 어깨를 붙들어 돌려세웠다.  팔이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책들을 알아채자마자 얼른 종대를 끌어안았다.  발등이라도 찧을까 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 것이다.  사랑의 힘이란.  둔탁한 책 소리.  종대는 팔꿈치로 찬열의 옆구리를 밀어 그 품을 벗어났다.  천천히 몸을 숙여 책을 다시 집는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저를 빤히 쳐다본다.  보고 싶었던 보드라운 얼굴이 단숨에 화를 잠재운다.  그래, 다 내 잘못이야.  저 얼굴이 잘못을 했을 리가 없어.




“말해줘, 그래야.. 고치지. 이제 안 그럴게."


“.. 그거 은하 생일 파티였잖아.”




근데?  되물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그래서 싫었어. 예전에 걔가 너한테 고백했었잖아.”




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찬열의 머릿속에서 폭죽들이 꽃처럼 펑펑 피어 올랐다.  술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는데 종대의 뺨이 붉게 물드는 게 보인다.  정말이지, 찬열의 짝사랑 상대는 무자비하다.  숨이 끊어질 때쯤에야 인공호흡 실시.  이건 짝사랑을 그만둘 수도 없게 할 만큼 치명타다.  헤벌쭉하게 입매가 늘어진 그는 눈 앞에 꼼지락거리는 종대를 아무렇게나 안아 버렸다.  책 모서리가 가슴팍을 찔러 아팠지만 이에 굴할 쏘냐, 여러 번 팔을 고쳐 세게 끌어 안았다.




“질투한 거였어?”


“미친 놈.”


“아니, 질투 맞아. 무조건 질투야.”


“놔아! 갈 거야!”


“못 놔! 이제 걔랑 술 안 마실게, 말도 안 할게!”


“어쩌라고! 마음대로 해, 으앗! 숨 막혀어어!”




죄인은 사랑스러운 소꿉친구를 끌어안은 채 포근한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비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눈썹 끝과 이마, 콧잔등에 뽀뽀 세례를 퍼붓자 작은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프지 않게 귓바퀴를 깨물면서 가지 말라고 소곤거린다.  종대는 목을 움츠리며 손바닥으로 무지막지한 덩치의 얼굴을 밀어버렸다.  바보같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창피해.




“과제 하다 말았어어, 오늘은 가야 돼.”




종대는 키들거리면서 저를 놓지 않는 팔에 몸을 기댔다.  열려있던 창문 틈으로 선선한 가을 바람이 둘을 감싼다.  코를 찡긋거리자 찬열이 추워? 추워? 호들갑을 떨더니 그러면, 하고 잠시 뒷말을 망설인다.  큰 눈망울이 가늘게 늘어졌다.




“라면 먹고 갈래?”




그럼 따뜻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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