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rmuring Room 번외 1. 쉿, 비밀이야!

 




 
 



 

체육관 한 켠 바닥에 드러누워있는 남자가 홀로 키득거린다.  높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옆으로 내리더니 천장에 의미 없는 시선을 던진 채 생각에 잠긴다.  어느 겨울날 한 포장마차에서의 저희들 이야기.

 


웬일인지 둘러앉은 넷은 말이 없다.  그저 빠르게 비워지는 서로의 소주 잔을 채울 뿐이다.  세훈이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무심코 젓가락질을 하다가 닭똥집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가 좋아하지 않는 안주다.

 



“아이씨, 퉤- 닭똥집 누가 시켰어? 나 이거 못 먹어!”


“병신.. 근데 왜 입에 처넣고 지랄이야?”


“하.. 오늘따라 술이 잘 받네.”

 



백현이 얼마 전 함께 만났던 종대와 종인을 떠올리며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  저의 의심이 확신이 된 날이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듣지도 못했지만 그 동안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던 자리.  둘은 참 애틋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하지만 저가 앞에 있으니 자꾸 그걸 숨기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게 조금, 아주 조금 서글펐다.  앞으로 그들에게 들이닥칠 수많은 시련들이 앞선 걱정으로 몰아친다.  그런데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그 시련들 중에 저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괜찮다고 한들, 그들에게는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닐 것이다.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겠지, 병신들.  왜 하필 너희야?

 



“씨발..”

 



장난기를 지운 백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경수가 어깨를 툭- 건드린다.

 



“넌 알고 있었어?”


“뭘?”

 



어떤 생각이 담겨있는지 모를 눈동자가 고개를 돌리는 백현을 응시한다.  됐다, 너한테 들을 얘기는 아니지.  경수가 시선을 거둔다.

 



“너네 둘이 비밀 얘기하냐? 뭔데, 뭔데?”


“박찬열, 소주 한 병 더 시켜.”

 



경수는 몇 달 전 종대가 참여한 공연에 갔었다, 지금도 옆에 있는 백현과 함께.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인터넷으로 예매까지하고 몰래 간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갑작스러운 종대의 프로포즈.  처음에는 단순히 놀란 것뿐이었다.  우리 몰래 연애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하고.  왠지 모르게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백현이 이상했지만 그도 놀라서 그렇다고 여겼다.  하지만, 무대 위의 환하게 웃고 있는 종대가 자꾸 시선을 뺏기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충격으로 몸이 굳어 버렸다.  거기에는 저희가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무대 위 연인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김종인?

 



“으.. 미쳐, 진짜..”

 



백현이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욕을 읊조렸다.  그는 눈치 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묻고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 공연이 끝날 때까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언제부터지?  저는 종인에게 저희가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품은 사람들인지 알고 있다.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아도, 상처로 가득했던 어린 날을 따뜻하게 덮어주어서 고맙다고 그는 늘 눈으로 전했으니까.  특히, 그의 마음을 연 데에는 룸메이트였던 종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특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친구로서의 우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변이를 일으킨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저히, 그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공연이 끝나자마자 백현과 그 곳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사랑의 조력자가 되어야 할지 미래의 조언자가 되어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당연히 조력자를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일었다.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마음이 없는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근데, 오세훈 너 오랜만에 나왔다? 맨날 지만 바쁘다고 내빼더니.”


“어어? 어.. 오늘은 스케줄이 비었어.”


“스케줄이래, 크큭.. 아주 모델 다 됐어.”


“이래서 인생은 모르는 거라니까, 대학 잡지 사진몇 번 찍었다가 캐스팅이라니.”


“맞아, 평생 박찬열 서포터만 하다 늙어 뒤질 줄 알았는데.”


“개소리.”

 



종인과 종대가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기어 나온 거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세훈이 쓰게 웃으며 먹지 못하는 닭똥집을 젓가락으로 쑤셨다.  그들이 커밍아웃이라도 할까 봐 겁이 나서 피했다는 건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갑자기 정장을 입어야 될 일이 생겨서 집이 가까운 종인에게 빌리기로 했었다.  늦은 시간에 만나 편의점 앞에서 캔 맥주를두어 개 마시고 저와 기종이 같은 종인의 핸드폰을 정장과 함께 들고 온 게 잘못이었다.  집으로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종대♥  화면에 뜬 익숙한 이름 뒤에 붙은 하트가 징그럽긴 했지만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손에 들린 종인의 핸드폰에 호기심을 품은 게 잘못이었다.  핸드폰으로 딱히 하는 게 없는 그답게 별로 볼만한 게 없었다.  ‘김종대’라는 사람에 대한 것을 빼고.  장난기가 베여있던 얼굴이 차츰 어두워진다.  하루에도 주고 받은 전화가 여러 번, 도저히 친구 사이로 보여지지 않는 애정 어린 대화들.  그리고, 사진첩 한 켠에 비밀번호가 걸린 앨범 하나.  세훈은 이 비밀번호 네 자리가 기본 설정되어 있는 ‘0000’이라는 것을 확신한 채 저도 모르게 이미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헐..”

 



수많은 사진에 그들만의 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현실과는 이질적으로, 저희 모르게 함께하고 있던 둘의 일상은 눈부시게 행복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유난히 사이가 좋은 그들을 엮어 놀린 적이 있었지만,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미친 놈들, 진짜 미쳤어.  손톱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을 되돌릴 수 있을지 안타까워하다 보니 동이 터올라 어둠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반대로 새까맣게 타 들어가 있었다.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벗들에게 제각각 괴로움을 꺼내놓지 못하고 연거푸 술을 들이키던 셋의 사이에서 찬열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고된 훈련을 끝내고 온 참이어서 평소보다 빨리 취기가 오른 듯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야, 어떡하냐고! 이제 우리, 어떡해! 끄윽.. 불쌍한 새끼들..”


“뭐래, 저 새끼. 오세훈, 네가 데려갈 거지?”


“안돼, 토해. 택시 태워 보낼 거야.”


“다 닥치리! 너네 못 봤잖아, 띠불! 미친, 그 종..”


“시끄러워, 앉아서 얘기해.”

 



경수가 찬열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순순히 자리에 앉은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셋은 질린 얼굴로 절레절레-   큰 덩치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옆에 있던 경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기울인다.

 



“야, 야.. 너 뭐하냐?”


“미친, 왜 울어! 크크큭, 박찬열 우는데?”

 



셋도 어깨를 들썩인다.  찬열을 향해 이죽거리면서 크게 웃고 있다.

 



“흑.. 이 나쁜 새끼들아, 내 마음을 아냐? 난 봤다고오..두 눈으로 똑똑히.. 끅.. 봤다고!”


“뭘 봤는데?”


“만취 동영상 찍어서 뿌리자, 졸라 인기 떨어지게.”


“반지 말이야, 반지! 커플링! 커플링 아냐? 병쉰드라.. 커플링을 봤다고, 내가..”

 



천천히 세훈의 핸드폰이 아래로 내려간다. 이거 설마?  나머지 셋은 저희도 모르게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김종대, 김종인! 불러와! 야, 내가 못 본 척 해주니까 호구로 보이냐? 씨펄.. 불쌍한 새끼들.. 흐..”

 



꿀꺽- 동시에 셋의 울대가 움직인다.

 



“뭐, 뭐야.. 너네도 알고 있었어?”


“무슨 얘기 하는 건데?”


“넌 뭔데?”


“개새들아, 무슨 얘기 하는 거냐고!”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으어엉, 닥쳐! 소리 지른다아.. 씹..”


“셋 세면 동시에 말하자.”

 



하나, 둘, 셋.

 



“김종대, 김종..”


“김종인.”


“사귄대.”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덧붙였다.

 



“씨발, 좆됐다.”

 

 


이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우리는 그들 몰래 만든 비밀을 잘 지켜오고 있는 중이다.  워낙 꾸밈 없는 놈들이라 형들에게도 이미 들킨 것 같지만, 모두 입에 자물쇠를 채운 채 말이 없다.  가끔 다 아는 비밀을 숨기려 전전긍긍인 형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 어쩌면 그들도 저희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보고 있을 수도 있기에 바보 같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때로 각자 하나의 비밀을 지키고 있는 우리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정작, 당사자들은 골칫거리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저희는 기다림을 택하기로 했다.  종인과 종대는 잘못이 없다.  설사, 잘못이라고 해도 그들이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아주 오래, 어쩌면 영원히.  둘이 두려움으로 쌓았을 벽이 사라지길 원할 때,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 벽을 깨뜨리는 것을 도울 것이다.  그게 우리가 두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근데, 지금 내가 여러분한테 다 까발려버렸어요.  도경수가 또 졸라 지랄하겠네.  

 
 

다들 아시죠?  쉿, 비밀이야!

 

 

 



- 5년 후 -

 

상자에 기대있는 종인에게 살금살금 다가오는 그림자.



 

"나머지는 내일 하자, 응?”

 



픽- 웃으면서 제 옆에 앉는 이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말려 올라가는 입 꼬리,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앞으로는 매일 그와 함께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다.  아, 행복해.  지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종인이 독립을 하기로 한 것이다-지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의 애인은 못 생겼지만 착하고 부자인 팔불출-  이런 결정이 나자마자 종대에게 같이 살자고 밤낮으로 조르고 졸라서 결국은, 오늘 이사를  했다.  새 집에 하루 종일 짐을 채우느라 저도 지쳤는지 종대가 끙끙거리며 어깨에 얼굴을 비빈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지금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데, 물론 체력도.

 



“아까 엄마한테 전화 왔었어, 아저씨랑 같이 있더라고.”


“너무 귀여운 것 같아, 지수. 그렇게 못생겨서 싫다더니, 결국 결혼하시네.”


“계속 엄마 혼자라서 신경 쓰였는데,다행이지.”


“응, 아저씨 인상이 정말.. 푸짐해!”

 



지수와는 영 상반되는 둥근 얼굴을 떠올리며 종대가 빙긋- 웃는다.  

 



“아, 맞다! 이거 보낼 건데, 한 번 봐.”

 



그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여다본 종인의 얼굴에 포근한 미소가 내려앉는다.

 



“잘 만들었다.”


“잘했어? 뽀뽀해.”

 



고개를 돌려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어깨를 꼬옥 끌어안는다.

 



“이거 받으면 박찬열 또 바로 전화해서 지랄할 걸?”


“응, 변백현도.”


“씽이 형은 좋아할 거야, 아마.”


“빨리 보내봐.”


“전송! 괜히 떨린다, 힛..”

 



 
 

둘이 머리를 맞대고 그 종이 위에 속삭임을 불어넣는다.  아주 따뜻하고 달콤한 속삭임.

 



“빔 프로젝터 어디 있어? 내 방에 놓을래.”


“아이씨.. 네 방, 내 방 나누지 말랬지?”


“아, 싫어어! 헐크 인형은 네 방에 놔!”

 



얄밉다는 듯 종대를 흘기지만 곧 뺨을 안 아프게 깨물면서 마음대로 해라, 중얼거린다.  방이 나뉘어도 어차피 그 방이나 저 방이나 둘은 붙어 있을 게 뻔하니까.  늘, 그랬듯이.

 

 

그 시각,

 
 

장이씽 (33세, 중국 S그룹 한국 사업부 팀장)

 

회의실에 있던 그가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잠시만, 실례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급히 빠져나간다.  차갑게 보였던 인상이 변했다.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헤헤헤헤 소리 내어 웃더니,

 

“초대장이다, 한쿡 간다~”

 



 
 

도경수 (32세, D 출판사편집자)

 

“지금까지 속 썩이더니, 이렇게 쉽게 간다는 거지.. 죽었어..”

 



 
 

김민석 (33세, S대 소속연구원/대학원생)

 

지금 내 눈이 이상한 거 맞지?  이거 진짜야?  대단하다, 대단해..

 

 


 
 

김준면 (33세, C 카페사장)

 

“미친 놈들, 난 아사히 주문!”

 



 
 

박찬열 (32세, H 배구팀센터)

 

“야, 박찬열! 안 가?”


“네? 네.. 금방 갈게요..”

 

핸드폰을 쥔 찬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시합을 앞두지만 않았어도 당장 쳐들어 가는 건데!

 

“으아아아악! 이 게(이)새끼들! 이렇게 엿을 먹여? 다 뒤졌어!”


“저 새끼, 왜 저래?”


“원래 저러잖아요.”

 

 


 
 
 
 

오세훈 (32세, 모델) / 변백현 (32세, 프리랜서심리 강사/첼리스트)

 

“변백현! 초대장 봤어?”


“응, 졸라 빡침.”


“.. 난 좀 감동 받았는데, 이거 병이냐?”


“미친.. 도대체 뭐에 감동 받았는데?”


“그냥.. 뭔가.. 엄청 우울하게 말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밝은 거 보니까..”


“얼씨구? 울겠다? 여기나 저기나 병신들 천지야.”


“닥쳐, 끼리끼리라는 말 모르냐? 너도 좆병신이야.”


“킥.. 근데 종종이들 왜 안 헤어져?”


“개소리 하지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하긴~ 김종인 눈에서 또 꿀 떨어지겠네, 재수 없어.”


“그거 따다가 양봉 사업 할래?”


“미친.. 콜.”

 



그들의 사랑처럼, 우리도 여전합니다.

 

 




Murmuring Room 번외 2 : 누구 편? 내 편!

 

 


트인 유리창으로 꽉 막힌 도로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단정하게 매여있던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한 손에는 수 분째 통화 연결 음만 흘러나오는 핸드폰을 든 채.  짙은 눈썹이 근심으로 처져있다.

 



‘여보세요.’


“뭐해?”


‘깜짝이야, 방에 누워 있었어.’


“보고 싶어.”


‘음.. 네가 출근한 지 5시간 넘었으니까.. 그럴 만 하네.’

 



키들거리는 웃음 소리를 들으니까 좀 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종인은 이마를 문질렀다.

 



“밥은?”


‘생각 없어.’

 



밥통-찬열이 부르길- 김종대가 밥 생각이 없다니,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따끈따끈한 밥에 김치 얹고 불고기 얹고, 있는 건 모두 얹어서 먹이고 싶다.  구둣발이 동동거리며 매끈한 바닥에 마찰음을 만들었다.

 



“그래도.. 먹어야지, 오늘은 변백현 안 온데?”


‘강의 있나 봐. 오면 귀찮기만 해, 계속 부려먹어.’


“일찍 들어갈게, 맛있는거 먹으러 갈까?”


‘아니, 나가기 싫어.’


“그럼 초밥 사갈게.”


‘싫어어, 그냥 와. 밥 할래.’


“치즈 케이크는?”


‘김, 종, 인! 싫어!’


“큭.. 알았어.. 싫다고 하지마.”


‘얼른 일이나 해요, 김대리.’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가 더 안타깝게 느껴져서 종인은 네, 대답하면서 절박하게 카톡해! 하고 덧붙였다.  아마 오늘도 저가 보내는 것에 늦은 답장을 하는 게 다일 테지만.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종인은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종대가 뭘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살피는 것이 그의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집에 꼼짝 않고 숨어버린 애인의 풀 죽은 얼굴과 그 몸에 베인 독한 담배 냄새를 떠올리자 가슴이 콕콕- 따가워서 그는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겼다.

 



“젠장..”

 



최근 저희는 불행한 일에 휩쓸려 버렸다.  종대의 T SNS에 누군가 우리를 몰래 촬영한 사진과 함께 목격담-둘이 사귀는 것처럼 보였다는 내용-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글을 올린 장본인은 악의 없이 올린 것이었지만 그게 개구리 맞춰 죽이는 돌이 된 것이다.  몇몇의 익명 사용자들이 그 글을 먹잇감 삼아 갑자기 입에 담기도 힘든 악성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논리가 전혀 없는 욕설부터 거짓말, 지인들에 대한 비난까지.  그걸 가감 없이 들여다 본 종대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사자가 사실인지 아닌지 밝히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타인의 저로 인해 고통 받는 것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입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글을 올린 이가 종대에게 개인적으로 사과를 전하고 글이 삭제되어 일단락되었지만 이후로 종대가 집 밖으로 나가길 꺼리게 되었다.  ‘나 유명하잖아, 또 찍히면 어떡해~’ 라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얼굴에 상처받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마주 웃어줄 수가 없었다.  기분 전환이 될만한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한사코 거절해서 종인은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이다.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이렇게 함부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걸 막아줄 수 없던 자신에게도.

 

 

시침이 숫자 12 를 가리키자 아파트를 수놓던 불빛이 연달아 꺼지기 시작한다.  주차장으로 들어선 검은 차 한대가 성급하게 멈추더니 거기서 헐레벌떡 주인이 튀어나와 내달린다.  들고 있던 자켓을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가 휑해진 팔을 내려다보고는 아이씨.  바보.  혹여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 몸짓이 조심스럽다.  종인은 까치발로 소파에 가방과 자켓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흰 색 방문 앞에 섰다.  숨을 한번 들이쉬고,

 



‘똑- 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 위에, 만화책을 쌓아두고 그 속에 파묻혀 있던 종대가 고개를 든다.  왔어? 묻는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  그에게로 다가선 종인이 팔을 내밀자 그제서야 씨익- 웃으면서 목에 원숭이처럼 매달렸다.  두 팔로 그 허리를 꽉 끌어안은 종인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늦어서 미안해.. 일찍 오고 싶었는데, 갑자기 회의가 생겨서.”


“밥은 먹었어?”


“아니.”


“거짓말.”


“더 먹을래.”


“그래, 밥 먹자.”


“너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


“.. 빵 먹었어.”


“쓰레기통 뒤져본다?”

 



형사냐? 혀를 내어 웃더니 괜스레 종인의 볼에 입술을 대고 쪽쪽 소리를 낸다.  끼니 거르는 애인에게 사나운 불만이 일었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한 채 종대에게 입술을 내미는 것 뿐이다.  뽀뽀해.  식탁 의자에 앉히자 무릎을 끌어안고는 손가락질을 한다.

 



“밥통에 밥 있고, 찌개는 냉장고.”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계란 프라이 해줘.”


“몇 개?”


“한 개.”


“두 개만 먹어, 그럼.”

 



그럴 거면 왜 물어봤어, 중얼거리더니 식탁에 엎드려버렸다.  셔츠 소매를 걷었다.  가스레인지에 찌개를 올리고 프라이팬을올리면서 계속 안쓰러운 뒷모습을 힐끔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내일은 뭐 할까? 드라이브 갈까?”

 



꾸역꾸역 맨밥만 올라가있는 종대의 숟가락에 멸치볶음을 올려주면서 종인이 넌지시 물었지만,

 



“혼자 나가, 그만 먹을래.”

 



매정한 대꾸가 돌아왔다.  저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맞은편에도 숟가락이 놓여졌다.  저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쉰 종인이 몸을 일으킨다.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식탁을 닦고 싱크대에 서자 종대가 엉거주춤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처진 입꼬리.

 



“내가 치울게.”


“됐어, 과일 먹을래?”

 



고개를 젓자 애써 웃으면서 저를 민다.  씻고 TV 보고 있어, 하고.  양치를 하고 나온 종대는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소파로 몸을 던져버렸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다.  평일 동안 일하느라 힘들었을 종인에게 걱정거리로 또 다른 짐이 되기는 싫단 말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무기력하고 의욕도 없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무서워.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자 영화 채널에서 낮에 봤던 아이언맨 1이 또 시작되고 있다.  멍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종대의 머리맡으로 다가온 종인이 물기 어린 차가운 손을 내려 두 뺨을 감싸곤 입을 맞춘다.  함께 있으면 늘 빨라지고 마는 시간.  또 아이언맨이야?  소파에 몸을 기댄 종인이 하품을 하며 수십 번은 본 것 같은 영화 대사를 되짚으며 제 허벅다리를 베고 누운 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종인아.”


“응.”


“졸리면 가서 자.”


“같이.”


“난 이거 다 보고 잘거야아, 얼른 들어가.”


“그럼 슬픈 거 나오면 들어와.”

 



아이언맨에 슬픈 장면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종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종인이 제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잠을 자는 시간을 달리 하는 건 퍽 오랜만이라 오늘은 내 방에서 잘까? 하고 생각했지만 잠시뿐이다.  저가 잔뜩 어질러둔 방을 치우고 자느니 소파에서 자는 게 나을 것 같다.  새벽 2시 31분, 환하게 불 켜진 거실 소파에 젤리처럼 달라붙어있는 남자는 TV를 보고 있는 건지 깊은 생각에 잠긴 건지.  그저 시무룩한 표정으로 뺨이 눌린 채 가만히.  하지만 곧 입 꼬리를 실룩거리더니 또렷한 눈망울이 눈물에 잠겨 든다.  영화는 화려한 전투를 시작했는데 졸지에 슬픈 장면이 되어 버렸다.  종대가 급하게 몸을 일으켜 눈물 한 방울이 소파에 뚝- 떨어졌다.  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감고 있던 종인이 이불을 들추곤 얼른 와, 말한다.  그 속으로 파고든 종대가 그의 가슴팍에 세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혼자 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른 허리를 끌어 안는다.  감성이 진해지는 이 시간에 제게 모든 걸 털어놓고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조금 훌쩍이더니,

 



“너무 무서워졌어.”

 



속삭인다.

 



“뭐가.”


“널 좋아하는 게.”

 



종인은 말없이 턱에 닿아있는 머리카락에 입술을 댄다.

 



“어릴 때는 그냥 내가 비정상 같아서, 그건 내 문제라서.. 무서웠는데..그래도 네가 좋으니까 괜찮았어.”

 



종대는 괴롭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울먹이는 목소리에 덩달아 울고 싶어진 종인이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애들이랑 형들한테 말할 때도 무서웠는데 헤.. 근데 너랑 같이고,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응, 응.  언어와 숨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마음을 한 톨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 저가 할 일이다.  지금은, 그게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이번 일은.. 너무, 너무.. 나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우리 엄마.. 흐윽.. 내가 널 사랑하는 게 민폐가 됐어.”

 



우리는 행복한데, 우리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지마, 그건 그냥 할 일 없는 놈들이 한 짓이었어.”


“아니야.. 내가 인정했으면 어땠을 것 같아? 아마 모든 사람들이 똑같았겠지.”


“종대야.”


“가만히 있었는데도, 그사람들은 우리가 그냥 친구였어도 그렇게 심하게 했잖아! 욕하고 거짓말하고.. 그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어. 하.. 근데 사실이잖아, 너랑 나랑..진짜잖아.”

 



울렁거리는 가슴이 종대의 눈물로 뜨거워졌다.

 



“우리가 사랑하는 게 비극이야. 손가락질 받고 비난 받을 짓이야”


“중요한 건 우리잖아.”


“아니, 중요한 건 우리도 아니고 남도 아니야.”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아파.  종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감정들이 한 데 뒤섞여 고통으로 변한다.  그 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하나뿐인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무던히 인내하고 애쓰는 어머니, 신을 저버린 안나 수녀님, 저희를 지켜주려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친구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언제나 절 반겨주시는 종대의 부모님.  종대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우리의 사랑은 비극이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 곁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애석하게도, 이렇게 슬픈데도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둘은 한참 동안 서로의 품에서 괴로워했다.

 

 





 
 




진짜 싫은데, 투덜거리면서 서둘러 차에 오른 종대가 타자마자 조수석 시트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는 몸을 누인다.  종인은 그런 그의 뺨을 손가락으로 달래듯 두드렸다.  도대체 어디 가는 거냐고 묻지만 종인은 살며시 웃을 뿐이다.

 



“피곤해? 잘 거야?”


“딴소리 하기는. 숨은 거거든? 사진 찍힐까봐.”


“아이씨.. 진짜.”

 



아이씨? 고개를 휙- 돌리더니 저를 째려본다.

 



“이리와, 귀여워 죽겠어.”


“싫어! 뽀뽀하지마, 우린 친구야아!”


“뭐?”


“밖에선 친구인 척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마.”

 



기어코 꿀밤을 맞은 종대가 입술을 내민다.  종인은 핸들을 꺾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릴 뿐.

 

 




흰 종이를 들여다보며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는 민석에게 다가온 장이씽.  반가운 마음에 어깨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민석의 손바닥이 그의 이마를 미는 게 먼저다.

 



“씽, 내가 사오라는 거 사왔어?”


“케이크?”


“아니, 내가 사탕..!”

 



씨익- 웃은 그가 내민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체리 맛 사탕.  긴장 풀어.

 



“어? 씽이 형 왔다! 형, 비행기 안 밀려?”


“응~ 안 밀렸어~”


“미친 놈들.”

 

민석은 사탕을 입으로 쏙 넣으면서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한 손으로 의자 두 개를 들고 지나가던 찬열이 ‘김민석 파이팅!’ 하고 이죽거리다가 엉덩이를 차인다.  종인과 종대를 제외하고 모인 모두가 언제나처럼 시끄럽다.

 



“으아아악! 어떤 새끼가 장어 꼬리 다 먹었어!”


“장어도 사왔어?”


“내가 맨 밑에 숨겨놨는데 없어졌어.”


“누구냐?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오세훈 너냐?”


“니은.”

“미친.. 변백현 너지!”


“난 구슬 아이스크림 먹었어.”


“야, 내가 파는 거 꺼내먹지 말랬지!”


“얼만데요, 돈 낼게요~”


“만원만 줘, 너니까 깎아준다.”


“와.. 신고해도 돼요?”


“누구냐고, 장어 꼬리!”


“나 아냐~ 난 밍쏘기한테 뽀뽀했어.”


“이 중국인 좀 치워줘.”


“너 편지 잘 썼더라? 작문 실력이 늘었어, 아직 안 읽은 사람?”


“다 읽었어, 내놔!”


“장어!”

 



한쪽에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던 경수의 울대가 꿀꺽- 하고 움직였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병신들아, 시끄러워! 빨리 음식이나 날라!”

 



옛 말은 역시 틀리는 법이 없다.  뭐 뀐 놈이 성낸다.

 


여기였어?  준면의 카페가 있는 곳은 비교적 한적한 곳이었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몸을 움츠린 채 홀로 우당탕 뛰어 들어가 버리는 다람쥐의 뒷모습을 보며 종인이 웃으며 따른다.

 



“뭐야, 우리 집으로 오면 되지! 왜 여.. 기서..”

 



빽-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섰다가 우뚝 멈춰 선다.  뒤따라온 종인이 종대의 등을 부드럽게 밀었다.

 



“이게 뭐야?”

 



‘김종댕 청문회’이라는작은 현수막이 펼쳐지는 걸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며 다가온 세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김종대씨,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이것을 시작으로 여섯 명의 장정이 그를 덮쳤다.

 



“네? 아니, 뭐 하는..”


“여기요, 여기! 여기 봐 주세요!”


“밥을 굶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구충제 드셨어요?”


“김종인 군의 모친인 김지수님이 변호해주신다고 합니다, 고소하시겠어요?”


“욕을 먹은 기분은요?”


“인정하시나요?”


“솔직히 집에 있는 거 심심하시죠?”

 



얼떨떨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치는 종대에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들을 보며 민석이 크게 웃으며 저에게 알은 체를 하는 종인에게 손을 흔든다.

 



“이 미친 놈들! 왜 이래애애!”

 



저도 모르게 당황해서 종인의 팔을 붙잡은 종대의 표정이 다급하다.

 



“질문은 천천히 받겠습니다.”


“보디가드입니까?”

 



네, 라고 대답하며 막아서는 까무잡잡한 얼굴이 백현의 핸드폰 끄트머리에 눌렸다.



 

“병신.”


“아, 이 미친 새끼들 존나 웃겨! 깜종은 뭔데, 받아주고 지랄이야!”


“김종대, 넌 저 위에 올라가서 앉아. 이거 기자회견이야.”


“싫어어! 히힛.. 진짜 미쳤나 봐..”

 



다들 너무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나버렸다.  종대는 따라오는 경수와 백현을 피해 얼른 민석의 옆에 앉아버린다.  나때문에 모인 거에요? 묻자, 여기저기서 다른 목소리들이 흘러나와서 귀가 따갑다.

 



“자자, 조용히 하세요!”

 



준면이 법봉을 두어번 두드렸다.

 



“저 형, 저건 어디서 났대?”


“샀겠지, 설정하는 거 좋아하잖아.”


“다 들려. 흠, 오늘은 김종대 청문회다. 질문 시작.”


“뭐야, 저 형. 청문회 본 적 없나 봐.”


“나 말고 김종대한테 하라고!”

 



종대는 이들이 지금 이렇게 저 앞에서 우스운 행동을 하는 이유를 너무 잘 알아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하게 말려 올라간 입 꼬리는 오랜만에 보는 것이어서 맞은 편에서 그의 얼굴만 살피고 있던 종인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백현이 팔을 들고는 ‘질문이요~’ 말하자 준면이 법봉을 한 번 더 두드린다.  민석은 ‘우리 서른 넘었어, 얘들아.’ 말하며 이마를 문질렀지만 소용이 있으랴, 모이기만 하면 18세 소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저희의 법칙이자 자연스러운 섭리인 것을.

 



“김종대, 김종인 사랑합니까?”

 



다 대답해야 돼? 괜히 투덜거렸지만 종대는 곧 앞에 있는 방울 토마토를 집어 먹으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네, 대답했다.

 



“헤어질 겁니까?”

 



세훈이 끼어든다.  족발 뼈다귀를 들이대고 있다.

 



“아, 치워어! 안 헤어져!”


“모르는 사람이 중요합니까?”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아, 근데..”


“지금 우는 겁니까?”


“죽을래!”


“고소하시죠?”


“역시 내 친구, 도경수.”

 



찬열의 손바닥을 외면하는 경수.  장이씽이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뻗어 민석의 무릎을 건드린다.

 



“크흠.. 조용히 해 봐.”


“와아, 민석이형이 우리 대표다! 김종대 잘 들어라.”


“하.. 내가 가위바위보만 잘 했어도..”


“빨리 읽어요, 크큭..”


“.. 종대에게..”


“크크..”


“.. 종대야, 요즘 힘들.. 아냐, 못 하겠어! 윽.. 그냥 읽어라.”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종이를 종대의 손에 쥐어준 민석이 애꿎은 찬열의 어깨에 주먹질을 한다.  나머지들은 그런 그를 흉내 내며 웃어대고.  시끄러운 와중에 종대만이 꾸깃꾸깃한 종이를 살짝 펴고는 고개를 숙인다.

 

종대에게.

종대야, 요즘 힘들지?  갑자기 너무 무섭기도 하고 이게 맞는 건지도 헷갈리고, 또 이번에는 가족들이나 우리한테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겠지.  하지만, 이건 너희가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성 소수자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야.  지금까지 수없이 지나갔던 안 좋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지.  그러니까 지지 말자.  우리가 손가락질을 받아도 그건 네 탓이 아니야.  난 스스로 선택했어, 너희를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자고.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들도 마찬가지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분명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그건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한테 미안하면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너를 믿는 우리를 위해 더 떳떳하고 행복하게 살아.  이번 일로 당연히 화가 났어, 근데 그건 내가 욕을 먹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너 때문이지.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차라리 평소처럼 찡찡거리면서 쟤네 혼내줘! 나 욕 먹었어!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마음껏 멋있는 척 하면서 너희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  아, 오글거려서 더 쓰면 내 손가락 없어지겠다!  그만.  사랑한다.

 

종대는 두 눈 가득 눈물을 그렁그렁해서는 고개를 들었다.  따뜻한 눈빛으로 저를 보고 있는 종인과 언제나처럼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친구들과 민석을 놀리고 있는 준면과 장이씽, 여전히 얼굴이 빨개진 채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민석.  맞아요, 내가 져버리면 이 사람들도 함께 지는 거에요.  그건 싫어, 이겨줄 거야!

 



“히잉.. 형, 나 욕 먹었어!”


“저 새낀, 저걸 또 한다.”


“푸하하하, 귀여운 자식. 그래쩌요~?”


“종대, 나 믿어. 나 중궈에도 가족 많아.”


“당장 고소하자, 쓰벌!”


“너 새끼 때문에 안돼, 너도 거기에 욕했잖아.”


“저 김종대한테 뽀뽀해도 돼요?”


“안돼! 니네 집 가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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