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Lost boy

 

 


‘지이잉- 지잉-‘

 



둘둘 말린 이불 속에서 하얀 손이 뻗어 나온다.  머리 맡을 휘젓다가 진동하는 핸드폰 위에서 멈추더니 곧 그것을 집어 들고다시 이불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김종대! 일어나! 너만 안 왔어!’


“..웅.. 뭐.. 방학이자낭.. 어딜 가..”


‘미친 새끼, 크큭.. 오늘 졸업식이잖아!’


“응? 졸업.. 으아악! 잠,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 나, 나 나가!”

‘벌써 교장 선생님 말씀 끝났다, 빨리 나와.’

 



이불을 헤집고 나온 그가 침대를 굴러 내려와 화장실로 향한다.  악!  짧은 비명이 울린 후, 둔탁한 소리가 나는 걸 들으니 또 허둥지둥 하다가 넘어졌거나 무언가 떨어뜨린 모양이다.  오늘은 우리의 졸업식이다.  다급하게 들어선 대강당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든 이들.  그 사이에서 종대는 너무 쉽게 가족들을 발견했다.  종대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린 엄마가 손을 들어 다가선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

 



“졸업식에 늦으면 어떡해, 빨리 가서 앉아!”


“헤헤.. 떨려서 늦게잤더니..”


“얼른 가!”

 



몸을 숙이고 익숙한 이들을 찾아 다가가자 정면을 향한 세훈의 옆, 제자리가 비어져 있다.  앉자마자 앞 자리의 찬열과 백현이 뒤로 돌아 이죽거려서 머리를 쥐어박았다가 몰매를 맞았다.  그리고 곧 담임 선생님의 찌릿한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와, 저런 거 다 언제 찍어놨냐?”

 



앞쪽에 설치된 큰 프로덕션 TV에 졸업하는 이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지나가고 있다.  입학식, 체육 대회, 수학 여행..  우리가 함께였던 3년의 이야기.  준면의 사진이 나왔을 때, 경수가 냉정하게 ‘저 형은 왜 있어?’ 혼잣말을 해서 웃음이 나왔다.  보고 싶은 얼굴들.  수많은 사진들 속에 간간이 우리가 잃어버린 종인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소란스럽던 이들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종대는 애써 눈가에 힘을 줬지만 결국 고개를 숙여 버렸다.  종인은 미국으로 가고 얼마 뒤,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우리는 그를 잃어버렸다.  돌아올게, 기다려.  단단한 매듭으로 엮어있던 그의 약속도 희미해진 지 오래다.

 



“아.. 김종인 저 새끼..”

 



종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오자 경수는 작게 욕을 읊조리며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러운 작별과 뒤이어 찾아 온 그의 부재는 저희들에게 메워지지 않는 큰 구멍을 남긴 채였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애써 이해하려 했지만 시간에 비례해서 커지는 서운함에 모든 것이 퇴색되었다.  특히, 경수는 종인의 이야기가 나오면 자리를 피할 정도로 배신감에 젖어 있다.  그가 소중했던 만큼, 더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알아서 아무도 경수를 말리거나 그 앞에서 종인을 두둔하는 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종인이 보고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던 찬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수록 그가 더 그리워진다는 걸 깨달았는지 경수의 ‘타도 김종인’에 동참했다.  그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체념하는 것을 택했다.  버려진 기분이 더러웠지만 그렇다고 그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종인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있던 준면, 민석 그리고 장이씽의 졸업식에서는 여덟이서 얼싸안고 대성통곡을 해 한동안 학생들 사이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백현이 저도 모르게 ‘김종인 있었으면 울었겠지?’ 한마디 했다고 벌어진 일이었다.  모든 게 똑같은데, 그가 없다는것 빼고는, 모든 게 달라졌다.  종인에 이어 3학년 셋을 떠나보내자 남은 이들은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고 흩어졌다.  모두가 함께였던 추억이 주는 타성에 젖은 탓이었다.  이기적인 상실로 인해 충족되지 않는 현실을 피하느라 예전처럼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줄어들었다.  마침 대학 입시와 수능도 그들 사이에 한 벽이 되었고.  멍-하니 상념에 빠져 있었더니 세훈이 저를 들여다보며 어깨에 팔을 올린다.

 



“보고 싶지?”


“응. 뭐 하나 몰라, 나쁜 놈.”


“오늘따라 생각나네.”

 



쓸쓸해 보이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저는 사정이 좀 나았다.  생각보다 너무 괜찮아서 스스로가 낯설 정도였다.  302호에 혼자 남은 이후에 종인 때문에 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하면 믿어질까?  하지만, 사실이었다.  형들 졸업식 때 다같이 운 일은 빼고.  오죽하면 거의 한달 동안 ‘너 왜 이렇게 말짱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종인이 두고 간 마음 때문에 괜찮았다.  그 애라면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늘 애쓸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해가 두 번 바뀔 때까지도 기다림이 이어지니 완전히 지쳐버렸다.  다행히도 모든 것들이 서서히 흐려져서 마음껏 슬퍼할 시간도 가질 수가 없었다.  계속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속삭이자 거짓말처럼 괜찮았다.  늘 살을 맞대고 자던 잠버릇을 고치기 위해 며칠 불면에 시달리고 앓아눕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그와 함께였던 시간에 비례하지 않게 너무 쉽고 가벼웠다.  비어있던 302호에는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종인과는 반대로 저처럼 시끄럽고 조심성이 없는 이었다.  문득문득 종인이 떠올라도 ‘그럴 때도 있었지.’ 웃어넘겼다.  저가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에 대한 마음이 어쩌면 그리 중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다정했던 손길이, 빨개지던 귀 끝의 사랑스러움이 그립지만 그 뿐이다.  그저 그리울 뿐이다.  잃어버린 것에 서린 추억일 뿐이다.  정말 괜찮았다.

 




 

다급하게 한 건물로 들어선 종대가 익숙하게 한 곳의 문을 연다.  무대 위 조명을 받은 검은 피아노.  그 옆에 서 있던 중년 여성이 다가오는 그의 어깨를 안으며 졸업 축하해, 인사했다.

 



“졸업식이라 늦을 줄 알았는데, 철들었네~”


“당장 데모 찍어야 되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힝.. 일찍 끝내고 갈 거에요, 애들이 기다려요!”


“그래, 뭐로 할래?”


“음.. 글쎄요.. 쌤은 생각해 두신 거 있으세요?”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뒤적거리다가 멈칫-  『달빛』이라는 글자가 두 눈동자에 담겨 일렁인다.

 



“오, 그래. 『달빛』어때? 저번에도 이걸로 바로 예선 패스했잖아.”


“아.. 그, 그럴까요? 헤..”


“손도 풀 겸, 한 번쳐봐.”

 



괜찮아.  이건 그냥 수많은 피아노 곡 중 하나야.  내가 좋아하는 곡.  종대가 부드럽게 흰 건반 위로 손가락을 얹었다.  입매에 살포시 내려앉은 미소를 보며 선생님이 살짝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제자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좀처럼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종대야?”

 



눈을 뜬 그녀는 피아노 앞에 고개 숙인 아이의 어깨로 손을 내렸다.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전.. 못 해요..”


“뭐? 왜 그래?”


“몰라요, 그냥.. 칠 수가 없어요.. 으윽.. 이건.. 흑..”

 



선생님이 영문을 모르고 놀란 채 서 있다.  하지만, 그녀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 동안 참아 왔던 마음이 피아노 위로 지체 없이 쏟아져 나왔다.  괜찮지 않다.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다.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아팠고 숨을 쉬는 것조차 슬펐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흐려지긴커녕 그리움은 더 진해지는데, 그를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를 혼자 둔 종인이 너무 미워서 눈에 닿는 모든 흔적을 지워버렸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가 없다.  마음에 새겨진 건 아무것도 지울 수가 없으니까.  이『달빛』처럼.  이건 종인이가 제일 좋아하던 곡이다.  우울한 일이 있을 때면 내 손을 잡고 피아노로 이끌어 들려달라고 졸랐던 그런, 이 곡을 들려주는 날 누구보다 애달픈 눈으로 바라봐주던 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나를 잃어버렸다.  상처로 얼룩져 거짓말만 늘어놓는 미아迷兒만이 남아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채로 어린 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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