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Love all

 


Love all : 심판 용어로 ‘0 대 0’의 뜻.  게임을 시작할 때 이렇게 외치고 시작한다.

 



코 앞으로 다가온 수능 때문에 3학년들의 방은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민석은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 준비와 수능 공부를 동시에 하느라 죽을 맛이라고 말하면서 사탕 한 봉지를 끌어 안는다.  그늘진 눈가만 보아도 그의 피곤이 느껴지는 것 같다.  늘 위기감이 없던 준면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곁에서 책을 떼놓지 않는다.  장이씽은 중국에도 수능이 있다며, ‘가오카오’ 라고 불리는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며칠째 붙잡고 있는 건 어째서 한국 판타지 소설인 걸까?  종종 저희와 세미나실에서 놀아주던 형들이 손을 흔들며 칸막이가 있는 개인 자습실로 발걸음 하는 걸 보고 302호의 둘은 조금 쓸쓸해진다.  늘 함께인 일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하자 벌써부터 마음이 허우룩-

 



“종인아, 나 돈 많이 벌어야 될 것 같아.”


“왜?”


“집 짓게.”

 



아아, 영혼 없는 추임새에 종대가 연필을 쥔 손을 손가락으로 퉁기며 항의한다.

 



“그냥 짓는다는 게 아니라아! 이층집 지어서 우리 다같이 살게, 히히.”


“.. 그 때도 우리 같은 방이고?”


“당근이지!”


“풋.. 월세 받을 거지?”


“아니!”


“진짜? 그럼 빨리 지었으면 좋겠다.”


“전세.”

 



싸게 해줄게, 덧붙인다.  종인은 어른이 되어서 진짜 그런 집에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며 교과서 한 귀퉁이에 낙서를 내린다.  집모양이다.  옆에 작게 나무도 그려넣었다.  강아지도 그리고 싶었지만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어 ‘멍멍’이라는 글씨로 대신한다.  눈을 반짝 거리며 종대는 그 집 지붕은 남색이고 1층 큰 방은 형들 방이고, 그 옆에 저와 종인의 방이 있다고 말했다.

 



“형들은 방 각자 쓰겠다고 할 것 같은데..”


“됐어어, 그냥 같이 쓰라고 해. 그리고 2층에는 나머지 놈들 알아서 들어가고, 거실엔 TV랑 역기랑 큰 냉장고 놓을 거야!”


“좋네..”


“냉장고에는.. 슈크림 단팥빵이랑 핫바랑 또 뭐 먹을래?”

 



머릿속에 그려지는 집 속에 이미 한 자리씩 차지한 저희의 모습이 빤해 두 얼굴에 웃음이 든다.  거실에 모여 언제나처럼 시끄럽게 굴다 보면 이웃집에서 한번쯤은 신고가 들어오지 않을까?

 



“퇴근하고 막 맥주도 마시구우..”

 



말 꼬리를 늘이며 힐끔- 저를 보는 눈 아래가 붉어진다.  종인은 근질거리는 얼굴에 애써 힘을 주며 모르는 척 교과서로 시선을 내렸다.  저를 향한 애정에 달콤한 소스를 뿌리는 이 앞에서 비겁해지는 것에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애정에 가담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관대해지고.  참으로 곤란한 일이지만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이 불가항력, 이 애의 앞에서는.

 



“또 취해서 주정부리려고.”


“뭐, 뭐. 누가 뽀뽀해준대?”

“.. 뽀뽀라는 말.. 안 했는데..”


“어? 어.. 아니, 뽀뽀가 아니라아! 내, 내가 지금 무슨 말 했지?”

 



못 살겠다, 라는 말 대신 이마를 짚었다.  그런 그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린 종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속으로 ‘거기서 뽀뽀가 왜 나와, 멍청이!’ 외쳤다.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의 열기가 고스란히 마음에 전달된다.  자꾸 떠오르려고 하는 보드라운 종인의 입술 때문에 머리에 얼음물이라도 끼얹고 싶어졌다.  마음을 들키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쓸모 없다는 것을 종대는 모를 것이다.  그는 종인을 담는 제 눈동자가 어떤 빛을 띠는지 볼 수 없을 테니까.

 



“어? 잠깐만..”

 



진동하는 핸드폰을 집어 든 종인이 얼른 화면을 누른다.

 



“네, 여보세요.”


‘웅.. 종인아.. 뭐해..’


“또 일부러 일어났죠?”


‘아아..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잔소리가 심한 거야? 보고 싶은 걸 어떡하라고.. 하암..’


“.. 그런 말 좀..”

 



베시시 웃는 룸메이트를 보며 종대의 입 꼬리에도 진한 웃음이 걸린다.  표정만 봐도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달에 종인이는 엄마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를 보내놓고 여덟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쓸데없는 걱정으로 주말의 황금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우려와 달리, 아주 편안한 얼굴로 돌아왔다.  모두 말없이 대견스러운 이의 기쁨을 기꺼이 나누었다.  종대는 그 날, 교문까지 마중 나간 저를 와락 끌어안은 종인 때문에 심장이 튀어 나가는 줄 알았지만.

 



“으아.. 왜, 왜 이래?”


“.. 솔직하게 말했어. 네 덕분이야.”

 



어깨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린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종인이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전 날 밤,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설렘 때문인지 잠에 못 들고 뒤척거리기에 손을 툭- 건드렸더니 아기처럼 손가락을 꼬옥 쥐었다.  새삼스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곧 새근새근-  물끄러미 잠든 얼굴을 들여다 보다가 창가로 해의 돋을 볕이 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몇 번이나 꼬옥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싶어 다가갔지만 심장 소리에 깰까 봐 코 앞에서 물러나야 했다.  종인에 대한 그의 마음은 ‘0’에서 시작해서 커지면 커질수록 음수로 향하는 애정이다.  그래서 점점 더 심해지는 갈증에 시달린다.  지금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0’을 넘을 수 없다.

 



“.. 야! 안 들려?”


“으응? 뭐?”


“지수가 치즈케이크 먹을 건지 물어보는데 어떡할래?”


“먹을래애! 먹을거야!”

 



금새 신이 나서 고개를 까딱거린다.  종인은 얕게 웃으며 다시 핸드폰으로 귀를 가져간다.



 

“보내주세요.”


‘으.. 너희 너무 귀엽다. 그런 걸 룸메이트한테 허락 받니?’


“아.. 그냥.. 얘가 단 걸 좋아해서요.”

 



귀엽다는 말을 반복하며 키득거리는 그녀 때문에 종인의 귀가 빨개진다.  영문을 모르는 종대는 왜 그래? 중얼거리면서 바싹 다가와 그 귀를 문질러 본다.  종인이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양쪽 귀로 애정을 쏟아 붓는 이들 때문에 난감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해도 되는 걸까, 싶은 나날이다.  이 애정의 샘은 마르는 일이 없어 곧 익숙해지겠지만.

 



“보고 싶겠다, 기껏 만났는데..”

 



통화가 끝나 핸드폰을내려놓은 종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처진 속눈썹.  지수는 회사를 오래 비울 수 없어 2주만에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한국에머문 동안 주말마다 그녀가 학교 근처까지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18년의 빈 곳을 메우기엔 턱없이부족한 시간.  지수가 가고 홀로학교로 돌아오는 길이 쓸쓸하지 않았다면 거짓이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언제나 종대가 교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네가 있잖아.”


“쳇..”

 



종대는 묘하게 능청스러워진 종인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팔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그렇게 ‘나도 널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웃지 말란 말이야, 나쁜 곰탱이.  가슴이 따끔했다.  문 앞이 시끌시끌하더니 곧 똘똘 뭉친 이들이 방 안을 채운다.

 



“형, 아까 자습실 들어가지 않았어요?”


“내가 자꼬 웃어서 꺼지래, 밍서기가.“


“야, 야. 맞네, 이거 읽어봐. 걔가 너 좋아한다니까!”


“그냥 친구라고.”


“미친, 이거 읽어보라고! 계속 쳐다본다,안 웃겨도 웃어준다.. 이거 대박, 은근슬쩍 몸을 부딪힌다!”


“.. 줘 봐.”


“왜 그러는데?”


“우리 반 부반장이 도경수 좋아하는 것 같아!”

 



백현이 부드러운 발음의 여자애 이름을 말하자 종대가 동그래진 눈으로 ‘헐! 걔가?’ 놀라더니 종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작년에 내 짝꿍기억나? 걔 말하는 거야.”


“아아.. 그 털털하고 머리 긴..?”


“웬일이야, 기억하고 있네.”


“네가 말한 적 있잖아.”

 



경수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백현에게 내민다.  나도 볼래, 백현 대신 종대가 그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화면에 ‘좋아할 때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제목의 글이 떠 있다.

 



“진짜 나 좋아하면 어떡하지?”


“내가 계속 말했잖아~ 그 놈의 기지배가 너 쳐다보다가 나랑 맨날 눈 마주친다니까!”


“너 보는 거 아냐? 너무 또라이 같아서.”


“개새끼.. 인기 있다고 째냐?”


“와, 경수 여자친구 생겨? 그러묜 예뻐?”


“귀엽긴 한데, 여자친구는 아니에요.”


“미, 미친! 귀엽냐? 그게 귀여워? 졸라 천방지축.”


“쪼끄맣잖아, 착하고.”


“얼씨구? 사귀겠네, 사귀겠어~ 내일부터 1일해, 100원 줄게.”


“아, 좀.. 닥쳐, 크큭..”


“야, 김종대! 네가 말 좀 해 봐, 부반장 귀엽다잖아!”


“.. 어어? 귀엽지..”


“뭐야, 왜 넋이 나갔냐? 너 걔 좋아했냐?”


“뭐래애! 아니야..”

 



무의식 중에 종인에게 눈을 돌렸다가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다.  빤히 쳐다보고 있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소리 없이 ‘왜?’ 물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들고 있던 백현의 핸드폰과 종인을 번갈아보며 머리를 긁적거린다.  

 
 

좋아할 때 나타나는 행동들이 마치 제 이야기를 써놓은 것처럼 딱 맞아 떨어져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읽어 내려 갈수록 왜 머릿속에 지난 날의 종인이가 그려지는 걸까?  날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는데, 김종인은 왜 나랑 똑같은 거지?  먹는 걸 챙긴다, 이거 맨날 챙겨줘.  밥이라도 안 먹는 날이면 어디 아프냐면서 하루 종일 귀찮게 하잖아.  사소한 행동에도 웃는다?  음, 이건 글쎄.  나한테만 웃어주는 건 아니니까.  귀여워하고 편을 들어준다, 맞아!  특히, 박찬열이 지랄할 때!  귀엽다는 말도 자주 하고(이 생각을 할 때 저도 모르게 화끈거렸다).  자꾸 뭘 해주려고 한다, 이거 정말 심하지.  팔 다쳤을 때, 업고 다닐 기세였어.  나도 모르는 습관을 알고 있다, 이건 잘 모르겠네.  지나가듯이 한 말도 기억한다, 이것도 자주..  에이, 그럴 리가.  종대가 애꿎은 화면을 문지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다.  종인의 애정에 목마른 저의 비약으로 치부하려 해봐도 자꾸 기억들이 꼬리를 문다.  지난 날에 새겨진 다정한 이의 말과 행동이 새삼 의미를 가지려 한다.  만약에, 어쩌면..  너도?

 



“나 자습실 간다, 이따 봐.”


“어? 응..”


“아까부터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냐!”


“간다.”

 



손가락이 가볍게 뺨을 건드린 것뿐인데,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그 손길이 닿은 곳이 데인 듯 뜨겁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발을 동동 구르던 종대가 앞에 있는 장이씽의 팔을 흔든다.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백현과 경수를 흐뭇한 표정으로 구경하던 그가 고개를 갸우뚱-

 



“형, 만약에 친구가 취, 취해서 형한테 뽀뽀하면 어떡할 거에요?”


“남자? 뽀뽀? 괜차나.”


“볼 말고 입술에!”


“.. 우엑.. 그건 안돼, 존대야.”


“야, 변백현! 너는, 너는?”


“졸라 입술 패버릴거야.”


“미친 놈.. 도갱, 넌? 만약, 음.. 만약에 변백현이..”


“닥쳐, 더 이상 말하지마.”

 



왜 다른 거야?  술 기운을 빌어 했던 일방적인 입맞춤에 종인은 화를 내거나 욕을 하지 않았다.  그건 일반적이지 않다.  앞에 세 명만 해도 말만으로도 길길이 날뛰는데, 그 애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해버린 저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어버렸을 뿐.  거기다가 세 번째 입맞춤은 저가 아닌 종인이 한 거였다.  그 때는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는 술 기운 때문이라고 했지만 겨우 맥주 한 캔이었으니 거짓말이었던 게 뻔하고.  종대의 밤색 눈동자에 혼란이 휘몰아친다.  하지만, 그 혼란은 뜻밖의 빛을 띠고 있었다.

 

 




레슨이 끝나고 기숙사로가는 어두운 길을 단숨에 달려 벗어났다.  달밤의 전력질주.  우이씨!  빈 공간에 종대의 숨소리가 가쁘게 울린다.  오늘따라 어둡네, 하고 돌아보니 중간에 있는 가로등이 나가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  갑자기 깜빡- 불이 켜졌다 꺼지자 그는 기겁을 하며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겁 많은 걸로는 전교 1등이다.

 



“쫑, 왜 혼자 오냐?”

 



계단에서 마주친 세훈이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자습실에서 오는 길인지 안경을 쓰고 있다.

 



“왜- 누가 같이 와야 돼?”


“깜종이 너 데리러갔는데, 엇갈렸나 보네.”


“잉? 갑자기 왜?”


“뒷길 가로등 나갔지?”


“응!”


“그거 보더니 너 무서워서 못 올 거라면서 나갔어.”


“아씨, 뛰어왔단 말이야!”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지만 아차! 저녁을 먹으면서 배터리가 없어 핸드폰이 꺼졌다고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곧바로 등을 돌린 종대의 뒤통수로 세훈이 크게 웃으며 이죽거린다.  그냥 둘이 사겨라, 새끼들아! 하고.  저건 사람 속도 모르고!  그게 내 소원이다, 이 놈아!  단숨에 계단을 뛰어내려와 유리 문을 열고 나가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인영이 눈에 들어온다.  바보야, 핀잔하며 다가가자 멋쩍게 웃으면서,

 



“네가 데리러 오라고 할 것 같은데.. 핸드폰이 꺼져서.”

 



등이 나간 걸 미리 알았다면 그랬을 확률이 100% 라서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둠 속 희미한 불빛에 그림자가 진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그 그림자 때문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에 백현의 핸드폰에서 읽었던 것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습관을 알고 있다.  종대는 갑자기 크게 울리는 심장박동에 저도 모르게 손을 가슴 위로 얹었다.  늘 음수에 머물던 그의 애정 전선 위 화살표가 ‘0’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와락-‘

 



종인은 갑자기 제품에 덥석 뛰어든 룸메이트를 어리둥절하게 내려다 본다.  갑작스러워서 팔이 어정쩡하게 들려 있다.  종대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 번만 더 그를, 아니 스스로를 시험하기로 했다.  그의 몸을 더 꼬옥 끌어안았다.  나랑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어서 날 밀쳐버려! 아니면, 싫다던가 징그럽다던가 그런 말이라도 해 줘.  왜 이러냐는 말이라도 하라고, 어서!  안 그러면 확 고백해 버릴지도 몰라.  나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  두 눈이 질끈 감겨있었다.

 



“뭐야.”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종대는 맥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종인의 단단한 팔이 그의 등에 닿아 있다.  익숙한 냄새가 베여 있는 셔츠에 얼굴을 묻었다.  고삐 풀린 감정이 무서워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등을 감싼 팔의 무게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빈틈없이 맞물린 둘의 그림자.  종대가 말없이 가만히 있자 종인이 안고 있는 몸을 장난스럽게 옆으로 흔들거린다.  남의 속도 모르고, 티없는 얼굴이다.

 



“무서워서 그래? 아님.. 무슨 일 있었어?”


“.. 이제 괜찮아.”


“우리 치즈 케이크랑 같이 먹을 우유 사 갖고 들어가자.”


“그래. 내가 사줄게.”

 



내달리던 화살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0’을 가리켰다.  Love all.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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