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뜨거운 냉점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느끼는 감각점을 ‘냉점’이라고 한다.  문득 우리 사이에 냉점을 느낄 때가 있다.  네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닐 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얼어붙지 않는 까닭은 언제라도 스스로에게 당연한 것을 너를 위해 버릴 수 있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우리의 냉점은 언제나 뜨겁다.

 

 

한 여름 중에 방학이 끝나자 마음의 무게를 더하라는 채찍질처럼 진로 상담 주간이 다가왔다.  1학년 때에는 그저 담임 선생님께 ‘열심히 공부할게요.’하고 넘어갔던 것이었는데 2학년이 되자 부모님 동반의 진중한 상담이 되어 있다.  못 오시는 부모님들도 많기에 종대는 엄마에게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들켜 전화로 30분 동안 꾸지람-80%가 서운하다는 내용-을 들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말씀을 드렸겠지만 이번에는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종인에게 엄마와 있는 저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복도가 며칠째 누군가의 부모들로 북적거렸다.  룸메이트와 복도 끝 자판기로 걸음하고 있던 종대가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저마저 서글프게 물들여 버린다.




“무슨 생각해애?”


“아무것도. 오늘 상담이지, 몇 시야?”


“어떻게 알았어? 너한테 말 안 했는데! 헙, 아니, 그러니까..”

 



잠시 무심한 눈길이 내려졌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며,

 



“애들이 얘기하는거 들었어. 난 사이다, 넌?”

“어어, 제티.”

 



건네진 캔이 차갑다.  왠지 종인의 표정도 묘하게 차가워진 것같아 입맛이 썼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처진 입 꼬리가 쉬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둘은 복도를 되돌아 가면서 아무 말이 없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언제나처럼 종인을 반 앞까지 바래다준 종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다가 씁쓸히 발을 돌린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는 종인의 마음에 메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종종 오는 전화에 ‘수녀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성이 다른 여자 아이를 여동생이라고 이야기하거나 핸드폰 전화 번호부에 엄마나 아빠가 없는 건 어떤 의미로는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줄곧 기다려왔다.  그 빈 공간을 채워줄 순 없겠지만 제 온기로 덮어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종인이 좋아질수록 더 좋아질수록 그러고 싶다는 욕망은 더 더 커졌다.  하지만 그런 욕망의 이면에는 사람을 마르게 하는 갈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도대체 언제쯤 나에게 온 마음을 기대줄까?  언제쯤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담실에 앉아있는 종인의 앞으로 흰 종이가 건네졌다.  대학교들이 나열된 명단.  담임 선생님은 학생 기록부를 넘기며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혹시 봐둔 곳 있니? 전공은?”


“그런 데 없어요.. 전 취업 잘 되는 쪽으로..”

 



하필 ‘김종인’이라는 이름 외에는 공백뿐인 가족관계증명서를 펼쳐놓았던 선생님은 서둘러 종이를 넘긴다.

 



“그럼 공대가 좋지 않을까? 마침 이과이기도 하고, 종인이는 성적도 좋으니까.”


“저.. 선생님..”


“응, 말해~”


“무조건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봐주시면 좋겠는데.”


“아아, 그렇지. 그, 그건 내가 확인해서 알려줄게.”

 



종인은 제 앞에서 당황해버린 신입교사에게 애꿎은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하향 지원하겠다는 학생에게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우리 열심히 해보자.’ 격려한다.  그는 답답한 명치를 누르며 쓴 웃음을 짓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돌아오니 세훈이 의자를 당겨주고는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내려놓는다.

 



“뭐래? 고르기만 하래?”


“아니. 더 알아봐주신대, 내가 잘 몰라서..”


“네 성적이면 다가, 걱정 마.”

 



굳이 등록금 때문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니까.  너무 어린 나이에 종인은 제 앞으로 얼마나 더 길지 모르는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이 학교의 다른 애들처럼 막연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따위의 고민은 그에게는 환상 같은 것이다.  늘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속물이 된 기분을 견디며 저울에 오른다.  좋은 대학에 붙는다고 해도 장학금을 받지 않는 한 갈 수 없을 것이다.  안나 수녀님이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해 주실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곳으로는 갈 수 없다.  지금까지도 그녀가 짊어진 저의 무게가 과하다.  그건 지수에게도 마찬가지.  스무 살에 무조건 경제적인 독립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하향 지원을 해야겠지, 역시.  기숙사가 있는 학교여야 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 모든 조건이 맞는 학교가 없다면, 취업을 해야 되는데.  취업이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또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종인아, 만나서 이야기하자.>  빛나던 머리카락이 그대로일까?  여전히 나와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할까?  만나서 하고 싶다는 얘기가 ‘우리의 끝’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 ‘시작’?  불순하고 각박한 이유들 때문에 지금이라면 기껏 놓아준 그 손을 망설임 없이 잡아버릴 것 같아서 괴로웠다.  하지만, 제 자리로 돌아간다면.. 아니, 거긴 제 자리가 아니야.

 



“체한 건 괜찮아?”

 



고개를 저으며 팔을 괴고 엎드리는 그의 등으로 세훈의 손길이 떨어진다.  따뜻한 손도 지금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며칠째 체기가 가시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어둠이 밀려드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너무 무겁고 무섭다.  어둠을 허우적거리는 저의 앞날이 무서웠다.

 




 

“종인! 어? 없네..”

 



레슨 중 쉬는 시간에 들여다본 핸드폰에 ‘깜종 야자 빼고 들어감’이라는 말풍선이 떠오른 걸 본 종대는 레슨이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척 없이 불이 꺼져있다.  체했다고?  웬일로 제티가 아니라 사이다를 마실 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데, 입술이 삐죽거렸다.  아픈 애가 어디 간 거야?  가방을 내려놓는데 핸드폰 진동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침대 위에 있는 종인의 핸드폰.  발신인은 ‘지수’.  종대는 저도 모르게 그 핸드폰으로 손을 가져갔다.  늘 종인을 낯설게 만드는 그 사람이다.  도대체 누구지?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자리한 욕망이 종대를 부추겼다.

 



“여보세요..”


‘.. 종인?’


“어.. 종인이 지금 없는데..”


‘친구?

 



날카로운 목소리, 이상한 발음, 여자..  무슨 사이지?

 



“네, 누구세요?”


‘난 음.. 지수라고 해. 종인이 연락이 안 되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라고 답하니 한참 말이 없었다.  죄를 저지르는 기분으로 종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 그럼 늦어도 답장달라고 전해줄래?’


“네? 아, 네.”


‘그럼..’


“저, 저기! 종인이랑 무슨 사이세요?”

 



핸드폰으로 얕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웃음이 꼭 ‘그것도 모르면서 그 애의 친구라고?’ 라는 말을 대신하는 것 같아서 순식간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자조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니 곧 여자가 대답했다.

 



‘종인이 엄마야.’

 



엄마라고?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종인의 비밀이 그의 품으로 숨어들었다.  곧 종인이 돌아왔다.  질린 얼굴로 힘없이 웃으며 들어온 그는그 자리에 서서 들고 온 알약과 물약을 마시더니 곧장 침대로 기어올라와 걸터앉아 있는 종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눈이 지긋이 감겨있는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조바심이 든다.  죄책감을 지울 수 있도록 그가 모든 걸저에게 털어놔줬으면 하는, 그런.

 



“많이 아픈 거야? 양호실 갔다 왔어?”


“응.. 머리 아파.”


“손 줘봐.”

 



순순히 내밀어진 큰 손을 주무르며 종대는 그를 시험한다.

 



“내가 체하면.. 우리 엄마는 이렇게 해주더라.”

 



갑자기 불편해진 공기에 종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는 저의 사랑스러운 룸메이트가 이러는 까닭을 알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다.  얼마 전부터 대꾸를 않는데도 계속 ‘집’이나 ‘부모’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으며 신경을 긁는다.  그러면서 눈치를 힐끔- 살피고 두 손은 애꿎은 핸드폰 액정을 문지르거나 입고 있는 옷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제 손을 세게 주무르고 있다.  ‘어때? 엄마 손은 약손~’ 소곤소곤.  일부러 이러는 걸 알아서 더 거슬린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 지수라는 사람이 답장해달라고..”


“.. 뭐?”

 



순식간에 종대의 손이 밀쳐졌다.  몸을 일으킨 종인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다.

 



“전화가 오길래..”


“너 그게 어떤 전화인지 알아? 하..”

 



처음 느껴보는 화기에 종대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난 그저..’ 하고 말꼬리가 늘어진다.  바닥을 향한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언제나 다정한 이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급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저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그저 그의 아픔을 헤아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너를 좋아했을 뿐인데.  302호에 가라앉은 정적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종인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종대를 내려다보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상처 받았을 거다, 그건 저의 몫인데.

 



“미안해..”

 



등으로 내려진 사과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늘 이런 식이다.

 



“왜, 왜 네가 사과해? 넌 뭘 잘못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맺힌 두 눈이 올곧게 종인의 눈동자를 붙잡았다.  종대는 울컥하는 목구멍을 힘겹게 억눌렀다.  너 또한 잘못이 없다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난감한 표정이 된 종인이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이러지 말자, 속삭였다.  그는 또 죄인이 되어 있었다.

 



“넌 맨날 그런 식이야, 옆에 있는 사람 눈치 보고 배려하고 혼자 뒤집어 쓰고.. 그럼 그 사람은 어떤 기분인지 알아? 편하고 좋을 것 같아?”

 



철렁 내려앉은 마음이 욱신거린다.

 



“너만큼 괴롭고 아파! 난 그저.. 그저 나한테 기대주길 바랬던 건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응, 말해준 적 없잖아. 네가 어떤지,얼마나 힘든지..”

 



저를 다그치는 종대를 보고 있는데, 머릿속으로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믿어주지 못한 사람들의 것.  늘 미안하다고 말했던 지수와 안나 수녀님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중학교 때의 그 친구까지도.  그들도 지금 제 앞에 울고 있는 이처럼 느끼고 있었을까?  슬픔이며, 고통이며, 상처까지 전부 함께 나누고 싶었을까?  사실은, 저가 그러고 싶었던 것처럼.  이런 생각에 미치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모든 것이 부서져 내렸다.  어쩌면 늘 이기적이었던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제멋대로 판단하고, 단정짓고.  상처받을까 봐 무서워 외면했던 것들이 제 곁에 더 큰 상처를 남기고 있는데도 바보처럼 몰랐다.

 



“난 몰라! 흑.. 그러니까 너도 모른 척 해봐.. 너무 아팠던 것만 생각하지 말고 다.. 말해줘.”

 



체기가 내려앉은 차가운 손이 데일 만큼 눈시울이 뜨거웠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종대가 팔로 눈물을 훔치는 게 보였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끝없이 가슴을 찌르는데, 이율배반적으로, 종인은 그의 뜨거운 위안으로 녹진해졌다.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종대가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한다.  종인은 급히 팔을 뻗었지만 주춤거렸을 뿐, 그의 이름을 부르지 못 했다.  운동화를 구겨 신은 그는 현관에 선 채,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거야..”

 



말했다.  쓸쓸한 뒷모습.  하지만, 지독하게 베인 두려움에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날 생각 없는 멍청이로 만든 건 너야.”

 



닫히는 문 소리가마치 커다란 자물쇠가 잠기는 것처럼 귀에 박혔다.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계단에 앉아 한참을 훌쩍이고 나니 배가 고프다.  부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종인을 생각한다.  서러운 마음에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쓰라렸다.  가뜩이나 체해서 아픈 애한테.  저 때문에 상처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랬을 확률 100%, 아니 120%.

 



“휴.. 난 정말 멍청이야..”

 



하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머리가 좋았다면 조금 더 따뜻하고 상냥하게 제 마음을 전했을 텐데, 라며 스스로 머리에 꿀밤을 내려본다.  ‘지수’라는 그 분도 분명 종인이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대는 302호가 아니라 306호로 향했다.  미안함을 동반한 복합적인 마음으로 지금은 종인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다가, 오랜만에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눈탱이는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냐?”


“몰라. 후.. 아, 맛 없어.”


“그럼 피지 마, 깜종이랑 쌍으로 담배 끊으라고 지랄하더니 이제 와서 개지랄이야.”


“아아아아, 안 들린다아- 이불이나 줘, 나 여기서 잘 거야.“


“뭐래, 병신이.”

 



찬열의 발길질을 피한 종대가 쓰게 웃으며 다시 하얀 개비를 입술로 가져간다.  저를 빤히 보고 있는 세훈의 눈이 ‘무슨 일 있는 거 알겠으니까 빨리 불던지 꺼지던지 해.’ 라고 말하고 있다.  창문 쪽으로 몸을 틀어 탁한 빛의 연기를 뱉었다.  뭐하고 있을까?  날 미워하지 말아줘.  그 때,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놨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가지마.   짧게 떠오른 메시지에 종대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나 칫솔 쓴다아! 파란색!”


“미친 새끼야, 그거 내 꺼야! 쓰기만 해, 죽여버릴.. 씨발..”

 



이미 활짝 웃고 있는 입에 물려진 파란 칫솔을 본 찬열의 주먹이 부들부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니 방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침대 위 불룩한 인영.  핸드폰 불빛에 의존한 채 재빨리 담배 냄새가 베였을 티셔츠를 갈아입는다.  천천히 이불을 들춰 그 옆에 누웠다.  무의미하게 천장만 바라보았다.  종인을 본다면 왠지 모르게 그가 가여워서, 모질게 말한 것이 미안해서 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으므로.  

종대는 이불 위로 놓여진 그의 손을 찾아 제 손을 얽었다.  손이 아직도 차갑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눌러주기 시작하자곧 어깨로 엷은 떨림이 느껴졌다.  옆으로 돌아누워 이불 위로 종인을 끌어 안았다.

 



“많이 아프지? 괜찮아, 내가 따뜻해질 때까지 주물러줄게.”

 



종대는 오래도록그 손을 놓지 않았다.  찬 손이 온기를 되찾을 때까지, 그리고 이불 속에서 새어 나오는 흐느낌이 멎을 때까지.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아?  얼마 뒤, 여덟의 핸드폰으로 뜻밖의 말풍선이 떠올랐다.  종인의 초대는 갑작스러웠지만 그만큼 기쁜 마음이 들게 했다.  저희는 조금 망설이는 등을 따라 두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한적한 시골길에 내렸다.  어디 가는 건지 묻는 백현에게 종인이 우리집, 하고 답해서 모두 한껏 들떠버렸다.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더 걸어 들어가자 장미꽃이 우거진 성당이 나타났다.  J 성당이라고 새겨진 기둥 옆에 작게 패인 ‘소망원’이라는 글자가 여러 눈동자에 읽힌다.  어리둥절한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보다 더 빠르게 그 곳으로 들어선 종인의 곁으로 연세 지긋한 수녀님 한 분이 다가섰다.

 



“제 친구들이에요, 말씀 드렸던..”


“.. 그래.. 나도 늙었나 봐, 주책 맞게 눈물이 나네.”

 



그녀는 애써 눈물을 지우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들에게 팔을 뻗는다.  막상 종인의 어둠과 마주하자 당황해버린 찬열의 어깨를 경수가 웃으며 두드렸다.

 



“가자.”


“누, 누가 안 간대? 깜종 새끼, 진짜.. 존나 때릴 거야.”


“크큭.. 여기선 안 될 것 같은데?”

 



준면은 어느새 수녀님과 악수를 나누며 ‘종인이가 착해서 친구가 좀 많아요.’ 넉살좋게 웃었고 민석에게 이 곳이 어떤 곳인지 낮게 설명을 들은 장이씽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래서 종인이가 천사 같구나, 라는 말에 민석이 부드럽게 그를 향해 웃어 주었다.  백현과 세훈은 멈칫했다가 눈이 마주쳐버렸다.

 



“너..”


“뭐.”


“애들 잘 보냐? 나 졸라 못 하는데 어떡하지? 배켜닝, 무서워~”


“미친.. 나도 못 해. 하, 어쩐지 깜종이 우리를 졸라 잘 다루더라..”


“우리가 뭔 상관이야?”


“뭔 상관이긴, 쟤에 비하면 우린 애새끼야.”

 



종대는 걸음을 멈춘 채, 종인만을 눈에 담았다.  어디선가 뛰어나온 작은 아이들이 종인의 다리를 끌어안고 있다.  그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 하나 쓰다듬는 손길.  그러다가 아이들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조그만 아이.  종대는 단번에 그 애가 소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종인이 아이를 번쩍 안아 들더니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닥거린다.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빠른 걸음으로 그 곁으로 다가갔다.

 



“나도 소개시켜줘.”

 



종인이 웃기에 따라웃었다.  종인아, 나 네가 더 좋아질 것 같아.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소중한 이의 집에서 여덟은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종인의 지도 아래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세훈이 상당히 버거워했지만- 성당의 벗겨진 외벽에 페인트 칠도 했다.  장정이 아홉이나 되니 웃고 떠드는 중에도 모든 일이 빠르게 끝났다.  저희가 없었으면 모두 종인이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부지런해졌다.

 



“깜종, 나한테 시집와라.”

 



무릎에 앉힌 아이에게 종인이 밥을 떠먹이는 걸 마주하고 있던 세훈이 대뜸 내뱉은 말에 종대가 샐쭉한다.

 



“웃기지 마아! 내가 예전부터 찜 했어!”


“지랄, 나 얘랑 같은 반이다.”


“난 같은 방이야, 미친!”


“씁, 애기 앞에서 이러면 걸란해. 조용히 있어라, 조큼.”

 



언제나처럼 소란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희는 종인을 따라 어둑어둑해진 꽃 길을 걸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  온기를 품은 공기.  그리고 내민 손을 꼭 잡아준 종인을 향한 기쁜 마음들.

 



“끄아악, 방금 개구리 봤어!”


“어디, 어디!”


“미친, 도경수가 잡아온다! 도망쳐!”


“개구리가 무섭냐, 새끼들아?”


“저거 보고 말해, 병신아!”


“으으.. 으아아악! 개구리 개 커! 오지마, 으아악! 미친 새끼야!”

 



앞에서 뛰어다니는 이들보다 조금 뒤처져 있던 민석과 종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형.. 괜찮으세요?”


“내가 물을 말 아닌가? 솔직히, 조금 홀가분한데. 네가 이렇게 해줘서.”

 



민석에게 물끄러미 시선이 닿는다.

 



“혼자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가끔 답답하기도 했고.”

 



너무 솔직했나? 웃으며 묻는 그에게 아니라고 답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비로소 불필요한 감정을 지운 채 이들을 똑바르게 바라볼 수 있어서, 다가갈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절 기다리는 사람이있어요.. 제가 너무 늦었으면 어쩌죠..?”

“또 미리 걱정한다. 그 사람이 어떤지는 그 사람만 알아, 부딪혀보지 않으면 몰라. 받아주면 감사하고, 화를 내면 사과하면 돼. 만약 받아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돌아오면 되고.”


“.. 쉽네요.. 수학보다 훨씬..”


“아, 너 때문에 생각나 버렸잖아! 수학 제일 싫어!”


“풉.. 형이야말로 일단 부딪혀 보세요.”


“이번에 합격하면 브라질이라고, 윽..”


“파이팅.”

 



허공에서 마주친 손바닥이 짝- 소리를 냈다.  꿈이라고 느껴질 만큼 평온한 주말 밤이다.

 

 




16-2. 외사랑 Ⅱ

 



긴장한 나머지, 시럽을 여섯 번이나 짜 버렸다.  붉은 립스틱이 짙게 발린 입술이 비틀린다.  테이블에 커피와 우유가 담긴 머그잔을 내려놓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가 살짝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바짝 마른 입을 달래려 자리에 앉자마자 우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Shit! 우엑..”

 



뜨겁고 달콤한 게 목구멍으로 직행해 사레가 들렸다.  낯을 가리는 손이 휴지를 내민다.

 



“흠, 고마워.”

 



입가에 앉은 휴지에서 아기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울렁거린다.  조심스럽게 커피를 홀짝거리며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이를 훔쳐보았다.  내리깐 속눈썹이 가지런하고 코 끝이 뭉툭한 게 귀엽다.  깨물면 화내겠지?  입술이 작네, 귀여워라.  피부가 까만 것이 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에 뭐가 들어간 척하며 눈가를 쓸었다.  어차피 이 쪽은 봐주지 않지만.

 



“8년 만인데 할 말 없니?”

 



놀랍게도, 평소처럼 뭐 같은 말투가 흘러 나갔다.  늘 그래왔지만, 마지막 통화를 한 것도 2년이 넘어서, 새삼스레 이 애가 퉁명스러운 제 말투를 어떻게 느꼈을지 신경이 쓰여 미칠 것 같다.  대본이라도 만들어 올 걸, 속으로 절규하며 긴 손톱으로 살을 꾹 눌렀다.  What the fuck!  난 정말 머저리야.  어제 지운다는 걸 깜빡 잊은 요란한 매니큐어가 손톱 위에 그대로다.  시선을 내리자 보인 구두는 미리 꺼내두었던 크림색 펌프스가 아닌 킬 힐.  애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양심에 털 난 엄마가 8년 만에 눈 앞에 나타났는데, 화장은 진하고 빨간 손톱에 킬 힐에..  미친년이 따로 없..  꺄아악!  립스틱도 레드야!  Piece of shit!  패닉에 빠진 그녀가 그 앞에서 긴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종인은 울상이 된 채 머리카락으로 테이블을 쓸고 있는 지수를 힐끔- 쳐다보았다.  역시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입 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을 들킨다면 쑥스러울 것이다.

 



“하하.. 한국은 여전히 교통 문제가 심각하네. 여기 오면서도 버스가 몇번이나 내가 탄 택시를 들이받을 뻔 했는지 아니?”

 



Oh, Silla!  아니, 김지수!  제발 입 좀 닥쳐..  고장 난 토스트 메이커처럼 아무것도 마음처럼 되는 게 없었다.  그녀가 놓쳐버린 시간만큼이나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무의미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

 



“서울은 많이 발전했더라, 어제 묵었던 호텔 디저트가 끝내줬어. 내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였는데..”

 



눈 앞에 총이 있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자살했을 거야.  흰우유가 담긴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는 손이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에 담겨 찰랑거린다.  종인아, 일부러 우유를 주문했어.  따뜻하게 데워달라고 했는데, 내가 먼저 확인해볼 걸.  이렇게라도 하면 네가 조금은 날 갸륵하게 여겨 구원해주지 않을까, 하고.

 



“아무 말이라도 좀해줄래? 답답해 돌아버리겠으니까.”

 



욕이라도 해준다면 달콤하게 들릴 거라고 생각하며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까부터 울컥- 하고 가슴이 울렁거려서 목소리가 엉망이었다.  최악이야.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내가 얼마나 한심할까?  훨씬 실망스러울 거야,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얼마나 싫..

 



“그냥..”

 



우리의 찰나,

 



“보고.. 싶었어요..”

 



천사 같은 나의 아기.  작고 낮은 목소리는 매일밤 꿈에서 흘러나오던 앳된 목소리와 달리 너무 어른스러운 것이어서 입술을 세게 깨물어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열다섯 살에 잠시 한국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큰 이모 안나(나의 영어 발음을 좋아해서 세례명으로 불리고 싶어하셨다.)는 엄마와 제일 사이가 좋은 자매였다.  엄마는 다른 이모들을 흉볼 때에 꼭 ‘안나가 있어서 다행이야.’ 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둘은 배다른 자매였는데도 그랬다.  아마 나이 터울이 커서 안나가 엄마를 키우다시피 보살피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녀의 곁에 있던 적에 언제나 보드랍게 머리카락을 빗어주며 나의 모든 것이 자신의 축복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게 안나가 아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가 몇몇의 조카들 중 날 유달리 사랑스러워한 이유는 내가 그럴만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난 얼굴도 잘 모르는 안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전화를 걸어 짝꿍인 마이크가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혀서 주먹으로 코를 뭉개주었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첫 키스를 하다가 남자애의 엄마에게 물벼락을 맞은 것 등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엄마가 시켜서 안부를 묻는 정도였지만 날이 갈수록 그녀와 통화하는 것이 당시 내 삶의 낙이 되었다.  엄마는 비싼 국제전화 비용 때문에 화를 내다가도 안나라는 이름이 나오면 입을 닫았다.  나에게 그녀는 단순히 이모나 대모라는 것을 뛰어넘어 소울메이트였다.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은 약 5600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으니.  그래서 난 미들 스쿨의 특별 미션을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가서 소울메이트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안나 이모는 내가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상냥함.  그녀가 사는 성당은 한적한 시골에 처박혀 있어 처음엔 날 퍽 실망시켰지만 그마저도 조금 지내다 보니 마음에 쏙 드는 점들을 몇 가지 찾을 수 있었다.  

 
 

따뜻한 정적에 따옴표처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새 울음이 새겨져 있고, 성당의 종소리가 그들을 보살피는 그런 곳.  거기서 한 소년을 만났다.  그는 성당 주변에 살던 평범한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이는 저보다 2살인가 3살이 많았던 것 같다.  18년이나 지나버려 사실 그에 대한 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굳이 내 아이의 아빠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마땅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네.  늘 들꽃을 꺾어다 주던 새하얀 얼굴.  그를 원망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내가 그에게 당연히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통보를 했을 때, 아무 말없이 빌어먹을 눈물만 뚝뚝 흘려댔지만.  아마 무서웠을 거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 때의 소녀와 마찬가지로.  그 때 곧바로 한국을 떠나온 것에 후회는 없지만 열다섯 나이에 할 수 있는 최대로 그를 사랑했던 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아이가 생긴 거다.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부모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중절을 시도했다.  너무 어린 나이였던지라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창피해, 나가 죽어라.  달리기, 트램펄린 뛰기, 탄산음료 마시기, 볼록하게 나온 아랫배 두드리기..  싸이코 같았네, 나.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중절 약을 발견했다.  400달러 정도였으니 어린 나에게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다.  거의 세 달 동안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금통에 넣었고 생전 처음으로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이 진심으로 대견스러워 하셔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맥도날드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튀기는 게 주 업무였는데, 고맙게도, 입덧을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이 직무가 원래 그래, 라고 격려해주었을 뿐.  매일 밤 어두운방 안에서 팽팽해지는 배를 쓰다듬으며 용서를 구했다.  미안해, 모든 게 잘될 거야.  넌 아직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 날 용서해 줘.

 



‘Ding Dong-‘

 



“제가 나갈게요!”

 



모든 게 날 도와주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밥을 더 먹으라는 아빠에게 피곤하다고 소리치며 방으로 뛰어 올라와 문을 잠갔다.  철컥, 하는 소리가 아기에게는 총구를 겨누는 소리처럼 느껴질 것 같아 오한이 들었지만 난 망설이지 않았다.  연보라 빛이 나는 물약.  지금 생각하니 그런 걸 진짜 중절 약이라고 믿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나 순진했던 건지.. 하긴, 그 만큼 절박하기도 했고.  인공적이고 달큼한 맛이 났다.  안락한 이불 속에서 잠에 빠지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방에서 CD 플레이어를 꺼내왔다.  이어폰을 꽂자 섬세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 나와 귀를 쓰다듬는다.  꼴에 잠시라도 아기를 위해주겠다고 클래식 피아노 CD를 들었던 것이다.  역겨울 정도로 위선적이지만 그 때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도로 죄책감에 떨었으니까, 나라도 이해해 줘야지, 철부지 지수를.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깨어나면 일어나있을 일들에 겁이 나서 시시각각 정신은 말짱해진다.  아기가, 핏덩이가 쏟아질까?  나는 살인자야, 멍청하고 이기적이고 미친 악마야.  지옥으로 떨어져야 돼.  멈추지 않고 흘러 내리는 눈물 때문에 온 얼굴이 따가웠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는 여전히 볼록했고 어떤 때는 안에서 물방울이 퍼지는 것처럼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실패가 하나도 슬프지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난 단순한 아이였다.  아니,단순하다기 보다는 지나친 흑백 논리주의자였다.  흑 아니면 백, 내 인생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아기를 죽이거나 죽이지 않거나.  죽이지 않기로했다.  그렇다면 난 아기를 낳아야한다.  하지만 키우거나 키우지않거나, 라는 선택지에서는 후자를 택했다.  왜냐하면 난 거렁뱅이-부모님은 내가 아니잖아-에다가 너무 어리고 아기에 대한 애정도 없다고!  그렇게 떼를 쓰다가 문득 안나의 소망원을 떠올렸다.  길 잃은 아이들의 둥지, 그 곳이라면.  내 영혼의 안식처, 안나라면.  그녀에게는 몹쓸 짓을 했다.  죄악과 어울리지 않는 그녀는 날 위해 신을 저버렸다.  엄마,아빠에게는 차마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힘겹게 얻은 딸이 패악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난 엄마가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소중한 아기였다.  그마저도 미숙아로 태어나 반 년 동안병원 신세였다고 하니, 부모님이 날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을지는 안 봐도 눈에 훤할 것이다.  이런 점이 도움이 되었다.  몸이 안 좋다며 휴학을 하고 무작정 한국에 가겠다고 떼쓰는 딸을 이길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 뒤로는 지나칠 정도로 순탄했다.  4개월 동안 신의 가호 아래, 나는 놀고 자고 먹고를 반복하며 뱃속의 아기와 지냈다.  꿈같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모, 방금 봤어요?”


“와.. 정말 배가.. 튀어나오잖아!”


“아하하하- 내가 미운가 봐요, 자꾸 발로 차는 걸 보니.”

 



그리고 죽음(너무 아파서 죽을 뻔 했다.) 끝에서 종인이를 낳았다.  그리고 행복도 끝이 났다.  조그만 원숭이 같은 갓난아기를 안고 있을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뱃속에서 나오면 끝일 거라고 생각한 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식욕이 떨어져서 성당은 의도치 않게 단식원이 되었다.  안나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먹은 것들은 다 토해 버렸다.  잠도 거의 못 잤다.  잠에 들면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서 밤새 곁에 곤히 잠든 아기만을 눈에 담았다.  이러다가 정말 죽겠구나, 생각이 들자 절절 들끓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곧 아기와 안나를 두고 매정히 내 인생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때를 떠올리면 스스로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괴롭다.  왜 몰랐을까?  그 때의 정신병이 도망치라는 게 아니라 아기의 곁에 남으라는 신의 묵시였다는 걸.

 



‘지수야, 종인이는 내가 데리고 있다가..’


“안나! 그만 해요, 그럼 아기와 내가 가족이 된다구요! 날더러 평생 괴로워하며 살라는 말이에요?’”


‘하지만..’


“제발.. 하루라도 빨리 입양할 사람을 찾아요.”

 



한동안 정신과를 들락날락해야 했다.  수면 유도제를 맞고 우울증 약을 먹었다.  유쾌했던 딸이 정신 나간 해골바가지가 되어 한국에서 돌아오자 부모님은 충격에 빠져버렸다.  아빠는 날 웃기기 위해 동물 가면을 쓴 채 밥을 드셨다.  하나도 안 웃겼다.  종인이를 본인 호적에 올린다느니, 언제라도 내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느니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던 안나 이모는 엄마에게 내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어느 순간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예 아기에 대한 소식이 차단되자 잊고 사는 것이 수월했다.  복학을 했고 평범한 말괄량이 소녀로 되돌아갔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다.  조금 늦은 23살에 법대에 입학했다.

 



“엄마, 안나 이모.. 잘 지낸대?”


“언니? 잘 지내겠지. 연락하기 힘들어 죽겠어, 숨겨둔 애인이라도 생긴 건지.”


“.. 그 말, 이모가 들으면 기절할 거야.”


“좀 그랬지? 그나저나, 너 파트타이머 계속 할거야?”


“응, 재미있어.”


“공부를 해야지, 법조인 되기가 쉬운 줄 아니?”

 



이후로 엄마에게서 받은 안나의 주소로 가끔 아기 용품이나 장난감 따위를 보냈다.  수신인에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쓴 것은 그 애가 분명 안나 곁에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때까지 이런 확신 때문에 마음껏 까불었던 것 같다.  열 번쯤 선물을 보냈을 때, 안나로부터 작은 소포가 도착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꺼낸 나는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커버린 아이 사진 몇 장과 ‘선물 고맙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많이 좋아해요.’ 삐뚤빼뚤 쓰여진 메모 한 장.  가슴이 벅찼다.  너무 기쁜데 슬픔의 눈물이 흘렀다.  행복해지려고 아기까지 버렸는데 지금까지 왜 이렇게 불행했던 건지 그제야알 것 같았다.  너무 어리석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 잊은 척 거짓으로 얼룩진 9년은 스스로가 집행한 벌이 되었다.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얼마 뒤, 이른 새벽에 안나의 전화를 받았다.

 



“네?.. 아, 입양이요..”


‘.. 솔직히 난 보내기 싫은데.. 종인이가 그러고 싶어해..’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 뒤로 깊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떤 사람들인데요? 돈은 많대요? 자식은요? 자식이 없어야..”


‘누구든 너와 나보단 낫겠지.’


“맞아요.. 하하.. 근데, 한번만. 한번만! 보고 싶어요.. 그때까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구나.’

 



안돼.. 내 아기야.  이대로 보내면 안돼.

 



‘.. 그럼..’


“잠깐만요, 안나! 안돼요, 종인이를 보내지 말아요.. 흐윽.. 제가 당장 갈게요! 제발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기와의 미래만을 생각했다.  10년 만에 만난 아이는 순순히 나를 용서해주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곧 데리러 오겠다는 내 언약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전화도 안 받아주고 몰래 찾아가자 도망쳐버려서 결국 초등학교 졸업을 직접 축하해주지 못 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사흘에 한 번 꼴로 새벽 5시에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그럼 한국은 저녁 9시.  예상한 것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거의 반년 만에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불을 뻥뻥 차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추운 곳에서 떨다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을 때처럼 녹녹해지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1년 즈음이 지나자 우린 아팠던 날이 없던 이들처럼 굴고 있었다.  종인이는 모르겠지만,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을 해야 된다는 압박 때문에 학교 생활과 변호사 시험 준비를 하느라 밥 먹듯이 코피를 쏟았고, 조금이나마 안나와 종인의 생활비를 보태주려고 파트타이머까지 병행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으니까.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제일 쉬운 일이라고 여겨질 만큼 모든 게 나를 달달 볶았다.  그나마 종인과 통화할 때는 숨통이 트였다.  그 때만 진짜 웃음이 나왔다.

 



“Hello~ 잘 지냈어? 밥은?”


‘네, 먹었어요.. 음..’


“왜 힘이 없어? 어디 아파?”


‘저기.. 바빴어요?’


“아.. 풉.. 내 전화 기다렸구나?”


‘뭐, 그냥.. 갑자기 안 와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요.’


“솔직하지가 않네.  어쨌든 기다리게 해서 미안, 일이 좀 있었어.”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한 저녁 식사에서 종인이의 존재를 고백했다.  그리고 아빠가 거품 물고 기절하셨다.  거품 문 건 과장이고 기절하신 건 사실.  원래 혈압이 조금 높으셨는데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건강은 금방 회복하셨지만, 그 때 내가 그들 마음에 박아버린 대못은 평생 사라지지 않겠지.  거의 2주 동안 부모님은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하셨다.  그들은 화가 난 것보다 두려운 것처럼 보였다.  저희가 몰랐던 딸의 잔혹함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

 



“조금 있으면 시험이지? 내가 가서 데려오마.”


“아뇨, 아직은 아니에요! 제가 독립해서..”


“지금까지 버린 시간으로도 부족한 게냐?”


“아빠,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적어도 합격한 후에 직접 책임을..”


“너무 이기적이구나. 그건 책임이 아니라 체면치레일 뿐이야.”

 



아빠는 나의 그릇된 거짓들이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종인에게 우리 모두가 죄인이었다.  어리석은 나 하나 때문에,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생애 처음 겪는 부모와는 불협화음 속에서 시험에 불합격했고 설상가상으로, 종인에게 문제가 생겼다.  나만을 기다리던 아이가 갑자기 등을 보이며 달아나버린 것이다.  안나에게 들은 바로는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을 겪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에 난 상처 얘기를 들었을 땐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지만 탓할 이가 없었다.  30살에 알코올 중독(초기였지만, 그래도 이건 비밀)이라니,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철없는 엄마에게 마음을 열어준 착한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가늠하면 맨 정신으로 있기가 힘들어 술을 마셨다.  그래도 불행에 스스로를 묶어버린 아기 새를 생각하며 버틴 끝에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과 두 번의 불합격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  종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났을 때쯤 종인으로부터 한 번 더 벌을 받았다.  영원히 날 저버리겠다는 말이 또박또박 쓰여진 편지.  내용과 모순적으로 마지막에는 절 잊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추신이 덧붙여져 있었다.  이토록 단단해지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자기 학대를 반복했을지.

 



“하.. 쪼끄만 게 까불기는..”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돌아와.  데리러 갈게, 이제 그만 날 용서해 줘.  종인이를 가졌을 때 사용했던 낡은 CD 플레이어와클래식 피아노 CD를 선물로, 그에게 답했다.  ‘이렇게 보내는 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라는 쪽지를 써 내렸다.  내가 직접 갈 테니까.

 

 




종인은 여전히 훌쩍거리는 지수 앞에서 콧등을 긁적거렸다.  그녀는 한 시간이 넘도록 펑펑 울면서 알아듣기 힘든 말을 쏟아내었다.  미친 년, 철부지, 사탄, 천사, 약속 등의 단어들만 뚜렷이 들렸다.  지금껏 저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속 깊이 숨어있던 그녀에 대한 원망마저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니까.”


“걸어서 20분이에요, 성당까지는 2시간 걸려요.”


“어, 언제 또 볼 수 있어?”


“음.. 평일에는 늦게 끝나는데..”


“주말? 그럼 내일이 일요일이니까.. 내일 아침에 또 올게!”

 



피곤할 텐데, 라는 걱정의 말은 단호한 눈빛에 가로막혔다.  꼭 올 거야!  지수는 머뭇거리다가 종인의 손등으로 손을 뻗는다.  어느새 엄마의 손보다 커진 아기의 두터운 손.  눈물이 어린 그녀의 눈동자에 간절함이 깃들어 있어 똑바로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나한테.. 기회를 줘. 조니니..”


“.. 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힛.. 귀엽잖아? 전화할게, 방에서 밤새 통화해도 되니?”


“참아요, 룸메이트가 있어요.”


“아하, 걔? 목소리가 예쁘더라.”


“그 애가 들었으면 화냈을 거에요.”


“어머, 사이가 좋네.”

 



쑥스러운 듯 그냥, 이라고 얼버무리는 아이를 보며 지수는 엄마답게 미소 지었다.  비로소 그들의 시간이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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