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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첸] Murmuring Room 13

속삭이는 방

 


 
 






13. ÷ 사이

 



어느 책에, ‘똑똑한 거리 두기가 건강한 인간 관계를 만든다.’라는 구절이 있다.  맞는 말이다.  거리를 둘수록 상처받을 확률이 줄어든다.  하지만, 거리 두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몇몇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친구 사이’라는 것이다.

 

 


“웅.. 더워..”

 



얇은 이불을 발로 차 내린 종대가 입고 있던 티셔츠의 목을 잡아당기며 미간을 찌푸린다.  마땅히 평화로워야 할 주말의 늦잠을 방해하는 초여름 무더위에 짜증을 옹알거리더니, 옆에 죽은 듯이 조용한 룸메이트의 몸을 발로 밀기 시작한다.  꾸욱-  꾸우욱-

 



“.. 씨.. 왜..”


“에어컨.. 에어컨..”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었더니 옆구리를 다시 밀어온다.  부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  결국은 제가 하게 될 거라는 지혜를 진즉 터득한 종인은 군말 없이 이불을 걷고 나와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누른다.  잠이 깨버렸다.  바닥에 있어야 할 찬열이 없다.  훈련 갔나 보네.  느릿하게 침대로 시선을 돌리니 배까지 내놓고 두 팔을 위로 올린 채 나비잠에 빠져있는 룸메이트가 보인다.  몸을 숙여 아래에 있는 이불을 잡아 배꼽에 바람이라도 들까 덮어주니 1초도 안 되어 휙-  한쪽만 실눈을 뜨고 절 보더니 팔로 옆을 두드리며 이제 다시 누워어어, 이래라 저래라 누가 보면 노비인 줄 알겠네.  대답 없이 빈 물통을 들고 슬리퍼를 신는 뒤통수에 또 명령이 떨어진다.

 



“차갑게.”

 



예, 예.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며 복도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 득템 중, 306호에서 나오는 세훈이 보였다.  안경을 쓰고 책 몇 권을 든 채다.

 



“이제 일어났냐? 빠져가지고~”


“어디 가?”


“세미나실.”

 



손을 흔드는 뒷모습을 보며 종인은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어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한창 훈련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배구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아 한 달 전부터 주말까지 쉬지 않고 더위에 나가 있는 그들이었다.  하지만,어제 부로 ‘그들’에 세훈이 제외되었다.

 

 

불이 켜져 있는 몇 몇의 세미나실을 들여다 보며 지나치던 종인이 드디어 한 군데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오, 이 껌딱지 새끼.”

 



인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민석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는 그를 향해 준면이 발길질을 한다.  콧잔등을 긁적거리며 순한 곰처럼 웃더니,

 



“형, 저쪽으로 가면 안 돼요? 저 씽이 형한테도 물어볼 거 있는데..”


“개새.”

 



민석과 장이씽 사이에서 비로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책을 꺼내는 종인과 구시렁구시렁 옆으로 밀려난 체육복 차림의 준면.  셋 다 시험 망해라, 라고 한 마디를 더 보탰다가 ‘그로케 말한 사람이 망하더라.’ 장이씽에게 한 방 먹고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한다.  줄곧 책에 시선을 내리고 있던 세훈이 살짝 고개를 들어 조소를 띠더니 금새 다시 고개를 숙였다.

 



“김종대는?”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백현이 물어온다.

 



“더위 먹어서 못 일어나겠대.”


“지랄도 병이야.”


“냉정 보스, 내가 이래서 우리 뚜뚜를 좋아해~”


“지랄도 병이라고.”


“어, 그래.”

 



쉬지 않고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따뜻한 눈길로 쓸며 웃고 있던 민석이 종인의 노트 한 귀퉁이에 연필을 내린다.  ‘찬열이는?’  종인이 얼른 옆에 훈련, 이라는 단어로 답한다.  민석의 눈이 세훈에게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책에 코를 박은 채다.  그의 것을 뺀 나머지 눈동자들이 허공에서 모두 만났다.  다들 같은 생각.  아니, 같은 걱정이구나.

 



“세훈아, 형이랑 게임 한 판만 하자. 응?”


“아, 맞다. 그거 지울 건데, 형한테 아이템 다 선물해야겠다!”


“오예, 땡큐! ..가 아니지. 안돼, 나 친구 너밖에 없단 말이야!”


“저 이제 공부할 거에요, 형도 이 참에 게임 좀 끊어요.”


“아아! 안 돼!”

 



오두방정을 떠는 준면을 보며 평소처럼 까르르 웃는 세훈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종인이 한껏 어색하게 허공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헛기침을 하는데, 그 소리가 몇 개 겹쳤다.  서로 힐끔-  장이씽은 차마 눈을 피하지 못하고 세훈에게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양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민석이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마를 짚는다.

 



“뭐야, 나 괜찮은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지가 않아.  종인은 지금 그의 입가에 걸려 있는 어른 흉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진동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찬열이다.  세훈의 상처에 대해 묻고 있다.  찬열과 말풍선을 주고 받던 중,

 



“박찬열은? 훈련 갔어?”

 



괜히 뜨끔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별 일도 아닌데 지랄이야, 그 새끼는.

 



그러면서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삐죽거린다. 어젯밤 그의 배구부 탈퇴 선언을 뒤늦게 안 찬열이 날린 주먹에 맞아 생긴 상처였다.  세훈이 지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어 기숙사 복도에서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었다.

 



“난 박찬열 이해되는데?”

“나도, 근데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린 건 박찬열만 할 수 있는 무식한 방법이지.”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나도 좀 그렇다? 맨날 사랑하는 준면이 형~ 하면서 이런 건 말도 안 하냐?”


“다들 왜 이러실까~ 저도 대학 가야 할 거 아닙니까?”

 



세훈은 장난스럽게 넘기려고 해보지만 잘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뿐더러 애잔 범벅인 속내를 들여다보기까지 하고 있으니.

 



“그래도.. 아예 그만둘 것 까지야..”


“지금까지 한 것도 욕심이었지, 뭐. 박찬열 같은 재능도 없고 부모님도 그렇고.. 어제 배구부 관뒀다니까 그거 아직도 하고 있었냐고 하시더라고요, 힛..”

 



그는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라는 반 거짓말을 덧붙ㄴ다.  담담히 얘기하는 목소리에 저희는 묵묵히 귀를 기울여줄 뿐이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밤을 고뇌로 헤아렸을 것이다.  어쩌면 꿈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현실에 좌절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눈물은 짠 맛이 아니라 아주 쓰디쓴 것이었을 거다.  장이씽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토닥토닥-

 



“그러면, 잘했어. 세훈이 다 괜찮아.”


“고마워요, 형.”

 

 




양치를 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비비며 나오다가 낯선 방의 모습에 흠칫-또 놀라고 만다.  이틀째 제 방으로 돌아가지 못한 찬열이 바닥에 대자로 널브러진 채 종대와 쉴 새 없이 쫑알거리고 있다.  오세훈 꼴도 보기 싫어! 저 소리만 100번 째인 듯.

 



“아니, 탈퇴가 말이 되냐고!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네가 이렇게 난리일 줄 알았겠지.”


“내가 괜히 이래? 난 옆에서 다 봤단 말이야.. 그 새끼가 얼마나,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찬열이 이불을 휙- 뒤집어 쓰자 침대 위에서 고개를 빼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종대가 고개를 돌린다.  입 모양으로 우는 건가? 묻는데 속삭임이라고 하기엔 참을성없이 큰 목소리다.  안 울어!  우렁찬 외침에 훌쩍거림이 따라붙어 종인은 풉,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귀여운 자식들.

 



“우네, 울어. 오세훈 불러온다아.”


“미쳤냐? 띠불..”

 



답답한 이불 속에서 찔끔 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지워버린 찬열의 머릿속에 세훈이 떠올랐다.  늘 배구 경기를 모니터하며 눈을 반짝이곤 했다.  ‘저렇게 공을 치면 어떤 느낌일까?’ 들뜬 목소리가 생생하다.  큰 대회가 있기 전이면 훈련이 끝난 뒤에도 남아서 연습을 하고 또 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좋다고 그랬다.  그걸 기다리던 저가 왜 나대냐고 투덜거리면 시원하게 웃으며 너한테 민폐는 되지 말아야지, 라고 말했다.  세훈은 조카가 생길 예정이라서, 라는 이유를 말했지만 갑자기 담배를 완전히 끊어버린 것도 사실은 지구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담배 때문은 아닐까? 혼잣말을 한 이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배구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느껴온 저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절절 들끓었다.

 



“박찬열 저러다 잠든다에 한 표! 종인아, 다음주에 집 간다고 했지?”


“응, 이제 시험이니까 갈 시간 없잖아.”


“그럼 나도 집이나 가야겠다~ 경수도 간대?”

 



종인의 대답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묻혔다.  손잡이를 돌리자 세훈이 쭈뼛쭈뼛 들어와 현관에 섰다.  종대와 종인이 동시에 서로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 없이 웃음을 띤다.  종대가 손으로 올록볼록한 이불을 누르며 ‘오세훈이 졌대! 너한테 사과하러 왔다아!’ 말하자 이불 더미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박찬열, 딱 셋 센다. 하나..!”

 



셋은 쌩-하니 일어나 저들을 지나쳐 나가는 큰 이불 덩어리를 눈 앞에서 놓쳐 버렸다.  종대가 돌아 누워 침대를 두드리며 깔깔거렸다.  종인도 그를 따라 웃고 세훈만 잠시 어리둥절해있다가 피식- 뒤늦게 웃음을 보였다.

 



“가서 잘 달래.”


“어이 없네, 내가 위로 받을 타이밍 아니었냐?”


“박찬열 울었다고! 으하하항-.”


“미친..”

 



곧 잘 자, 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던 세훈이 다시 돌아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 속삭였다.  302호의 두 주인은 시끄러운 이웃이 남기고 떠난 적막감을 다시 둘만의 공기로 채우기 시작한다.

 



“말려줄까?”

 



음.  고민하는 새에 하얀 팔에 당겨져 바닥에 앉혀졌다.  여전히 서툰 손길로 머리카락을 말려주는 건지 머리를 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그의 소꿉 놀이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늘 저에겐 소소한 즐거움이다.

 



“오세훈, 괜찮나? 우울하겠다, 내일 빵또아 사 먹여야지.”


“우울하겠지, 솔직히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지만.”

 



종인이 바닥을 쳐다본다.  온 마음을 쏟고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게 없다.  종대의 ‘피아노’나 세훈의 ‘배구’처럼.  타인의 눈에는 종인에게 공부라는 것이 그런 존재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건 ‘어쩔 수밖에 없는’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유일한 선택지일 뿐이다.  그래서 세훈에게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어려움이 따랐다.  아까 함께 있을 때도 뭐가 되었든 ‘냉방중’일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훈풍을 불어넣어주고 싶었지만 꼴랑 할 수 있었던 행동이라곤, 급히 검색한 명언을 그의 노트에 적어 놓은 것뿐.

 



“어쨌든 화해해서 다행이다, 박찬열 있어서 불편했어.”


“뭐가? 둘이 맨날 붙어있으면서.”


“헤헤, 이런 거 하면 걔가 욕하잖아~”

 



뒤에서 제 머리통을 끌어안는 바람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방으로 들어온 세훈은 침대에 누워 있는 이불 더미를 보며 소리 없이 웃는다.

 



“계속 콤비 해.”


“알았어.”


“배구도 같이 봐.”


“알았다고.”


“경기 무조건 보러 와야 돼, 빼면 100만원.”


“안 자냐?”


“공부하다 뒤져라.”

 



이불 밖에서 들려오는 세훈의 키득거림을 들으면서 찬열은 저만의 다짐을 삼켰다.  좋은 선수가 될 거야, 날 보면서 네가 계속 배구를 좋아할 수 있도록. 

 
 

친구 사이에 거리 두기가 어려운 이유는 함께했던 시절 너와 내가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이 보고 느끼고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추억을 돌아보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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