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Pit a pat(두근두근)

 


 

306호로 모여.  조금 늦게 방으로 돌아온 종인이 핸드폰을 만지며 저를 기다리던 종대에게 묻는다.

 



“뭐 들은 거 있어?”


“아니, 내일 주말이니까 그냥 놀.. 으아, 너, 너, 뭐해..”

 



대답을 하며 고개를 돌렸던 종대가 펄쩍 뛰며 두 손으로 제 시야를 가린다.  손바닥으로 옮겨 붙는 얼굴의 열기.  옷을 갈아입던 종인은 고개를 갸웃-  뭐하긴, 옷 갈아입는데.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덩달아 민망해져서 빠르게 바지를 추켜올렸다.  등을 돌리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옷을 이상하게 갈아입는다느니 말도 안 되는 타박을 내리는 뒤통수.  바보 아냐?  그 귀여운 뒷모습에 종인이 살짝 웃으며 엉덩이를 툭툭- 건드린다.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앞서 문을 여는 종인의 등을 힐끔- 돌아본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일으킨다.  진짜 제 정신 아닌가 봐, 난 미친 놈이야.  맨날 보는 거에 왜 얼굴이 빨개진 거야, 변태야?  제발, 그만해.  힘껏 다그치지만 듣는 마음은 들은 체도 않고.  피곤이 밀려온다.  급한 물살을 탄 봄이 안겨주는 두근거림은 종대에게는 영 마뜩잖은 것이었다.  그것은 외면하려 들수록 그를 더 달달 볶았다.  종인과 붙어있는 것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기처럼 편안하다가도 갑자기 달아오르는 마음 때문에 허둥지둥 곁에서 떨어져야 했다.  그의 단단한 팔에 제 팔을 겹치면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그게 종대의 잠버릇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근래 며칠을 아예 등을 지고 잤다가 종인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혹시 저가 잘못한 게 있는지 물어와서 다시 처음처럼.  매일 밤, 곤히 잠든 종인이 복잡한 눈에 가득 담겼다.  어지러운 봄의 밤이었다.

 


306호에 들어선 종인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서 있다가 찬열의 손에 의해 앉혀졌고 종대는 얼른 문부터 잠갔다.  이게다 뭐야?, 아주 신난 표정이다.

 



“이 형님이 힘 좀 썼지, 으하하하.”


“짱이다아아! 박찬열 짱짱!”

 



바닥에 늘어져 있는 맥주 캔과 치킨.  이미 그것들을 양손에 들고 환영하는 저희를 보고 종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 민석의 이름을 꺼냈지만 입에 물려진 닭다리에 다른 말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형들 졸업여행 갔잖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래 보겠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허허.”

 



2학년이 된 우리는 문과와 이과로, 또 제 2 외국어에 따라 반이 나뉘었다.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이과를 선택한 종인과 세훈이 10반으로 같은 반이 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문과였는데 같은 반이 되겠다고 다같이 제 2 외국어로 불어를 선택해 같은, 5반이 되었다.  시끄럽고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 하는 셋 사이에 낀 경수가 핏대 세우는 일이 많아진 건 당연지사.  복도에 나오면 셋을 앞에 세워두고 혼내고 있는 걸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짠, 건배를 하는 이들은 벌써 취기가 오른 듯 흥이 나 있다.  찬열의 친구네가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편의점을 하는데, 아버지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 친구들에게 몰래 담배와 술을 파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맥주 캔을 조달하면서 얼마나 심장이 떨렸는지의 모험담을 늘어놓자 종대가 박수를 치면서 ‘잘했다, 잘했다’ 노래를 불러준다.  사춘기 소년들에게 이런 일탈은 상상 이상으로 짜릿하고 유쾌하다.  경수도 이번만은 찬열의 머리를 쓰담쓰담-

 



“캬, 시원해!”


“오오, 김종대. 아주 쭉쭉 들이키네~”


“요즘 스트레스 쩔어어!”


“왜?”

 



무심코 던진 말에 종인이 ‘궁금해 X 100’ 표정으로 물어와서 종대는 뜨끔-하고 말았다.  죽어도 그 때문이라곤 말할 수 없어 중간고사 때문이지, 라고 얼버무렸더니 경수가 한쪽 입 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종인은 수긍하듯 더 묻지 않았지만 종대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요즘 그의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가만히 있다가 제 머리를 때리며 쳐다보지 말라고 하거나 얼굴을 붉히며 방을 뛰쳐나가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무언가 도와주거나 해주려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싫어, 소리를 질렀다.  예전에는 해달라고 찡찡거리더니.  무슨 일인지 물어도 아무 일도 아닌 척, 어깨를 으쓱거리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더 이상의 대화를 차단해 버리고.  방에 늦게 돌아오는 날이 늘어났다.  도대체 뭐 때문일까?  그래서, 요즘 종인은 조금쓸쓸했다.  저를 피하는 것 같아 야속했다.  들고 있던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302호가 달리는데? 우리도 질 수 없다, 오세훈!”


“이까짓 맥주로 뭘. 소주도 사오지 그랬냐?”


“오세후니 양애취.”


“꺼져, 찐따 새끼야. 크큭, 변백현 얼굴 빨개진 거 봐.”

 



얼굴로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는데도 후라이드 치킨을 뜯으면서 맵다고 난리다.  꼴랑 한 캔에 취기가 오른 백현의 옆에 앉아있던 경수가 슬그머니 옆으로 떨어져 앉았다.

 



“그만 마셔.”

 



순식간에 네 번째 캔을 따는 손을 막았다.  그 앞에 빈 캔이 나동그라졌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치킨에는 손도 안 대고 연거푸 맥주를 홀짝거렸다.  진짜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

 



“뭐야, 김종대! 언제 저렇게 마셨어?”


“졸라 빠르네, 저 새끼가 진정한 양아치다.”

 



괜찮다며 웃는 게 멀쩡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정확히 10분 뒤 종인은 종대를 들춰 업고 302호로 쫓겨나야 했다.  갑자기 눈이 풀린 종대가 옆에 있는 경수에게 들러붙더니 ‘경뚜야, 우리 뚜뚜.’로 시작해서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보고 싶어 등 모든 감정 동사들을 쏟아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옆으로 지나가던 찬열의 다리를 끌어안더니 대왕 닭다리다! 앙-  찬열이 비명을 지르며 사정없이 종대의 머리와 어깨를 내려쳤지만 거의 반은 종인이 맞았으므로 소용이 없었다.

 



“맛이 없네, 퉤..”


“저, 저 미친 새끼! 아악, 존나 아파! 으헝, 엄마아! 자국 난 거 봐, 헝..”


“맛탱이 갔어, 저 새끼!”

 



아까의 난리를 생각하며 웃고 있던 종인은 어느새 침대 앞에 섰다.  얌전히 목을 끌어안고 있는 팔이 가늘다.  오랜만에 살을 붙인 것 같아 잠시 서있다가 몸을 틀어 내려 놓으려는데,

 



“어어어..!”

 



팔을 풀지 않아 그대로 같이 침대로 나뒹굴었다.  풀린 눈으로 꿈뻑 꿈뻑 쳐다보길래 바보, 하며 웃었더니 헤헤- 따라 웃는다.

 



“김종이인? 너, 이 자식..”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너 뽀뽀도 못 해봐찌이이!”

 



갑자기 무슨 뽀뽀?  종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종대의 입술로 옮겨졌다.  말려 올라간 입 꼬리가 어여쁜 입술.

 



“일루와, 내가 뽀뽀 해줄게!”


“됐어, 정신 좀 차려.”


“됐어? 됐다구우? 지금 나 싫다는 거야?”

 



키득거리며 얼굴을 밀어버렸더니 씩씩거리며 목에 걸린 팔에 힘을 준다.

 



“나 싫어, 좋아?”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물어와서 놀란 그가 웃음을 그쳤다.  또렷해진 까만 눈동자.  벌써 술이 깼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싫어?”

 



다시 물어왔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좋아?”

 



이 바보.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종대는 무표정이다.  반들반들한 눈동자만 보고는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둘 사이의 침묵은 아주 짧았다.

 



“그럼, 할게.”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입술에 닿은 입술이 따뜻하다.  종인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얼어있었고 종대는 그의 목에 감겨있던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부드럽다.  종인이 말랑말랑해.  두근거려.  종인이..  응?  종인이..  김종인?  말랑말랑?

 



“으, 으아아! 끄악!”

 



반짝 눈을 뜬 종대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얼음 땡-  뒤늦게 입술로 손을 가져갔다.

 



“무, 무, 무슨 짓이야!”

 



이 말을 한 건 종대였다.  느닷없는 첫 뽀뽀의 감상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종인은 어이가 없어졌다.

 



“.. 네가 했잖..”


“미쳤어, 미쳤어! 진짜 하면 어떡해, 으악! 나가 죽어, 죽어어!”

 



저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종대를 보고 있던 종인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스스로 혼내고 때리고 하더니 그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봤다.  눈물이라도 흘릴 듯, 눈동자가 젖어 있었다.  장미처럼 새빨개진 얼굴.  미안해,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앞으로 술 마시지 마라, 변태야.”


“힉?”

 



딸꾹질까지 하고 있다.  

 
 

종인은 그답지 않게 배를 쥐고 깔깔거렸다.  주정뱅이 룸메이트를 뽀뽀 도둑으로 몰아 다그치기엔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웃지 말아, 히익.. 봐.. 진짜 심각..힉!”

 



진짜 심각하단 말이야, 종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종인은 그 날의 입맞춤을 종대의 술 주정으로 치부해 버렸다.  상황이 상황이었거니와 실수가 아니라면 마땅히 대체할 만한 이유가 없었으므로.  하지만 종대는 달랐다.  그는 그 날 새벽, 종인이 잠들자 그 곁에서 빠져 나와 침대 벽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음 소리가 날까, 몸의 떨림이 느껴질까 두려움에 질린 채.  어떡해, 나 종인이 좋아하나 봐.  아니, 정말 좋아해.  좋아해.

 

 




“그럼 이틀 후에 오는 거야?”

 



지방에서 열리는 콩쿠르 때문에 새벽에 나가게 된 종대가 가방을 꾸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구우-“


“응, 몇 시에 알람 해놔야 돼?”


“5시, 내가 할게. 진동으로 해놓고 머리 옆에 두지, 뭐.”

 



다음 날 아침, 종인은 잠결에 종대가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용히 한다고 꽤나 애를 쓰는 것 같기는 한데 그의 조심성보다 종인의 예민함이 더 컸다.  부러 일어나서 배웅하면 깨운 것에 미안해할 게 뻔해 그냥 조용히 자는 척을 하고 누워 있다.  뭘 떨어뜨려 발등을 찍혔는지 탁- 소리가 난 후에 ‘아, 내 발.. 으..’ 하는 소곤거림이 들려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잠시 조용하더니 바로 옆까지 그의 기척이 다가왔다.  얼마나 가까이 온 건지 얕은 치약 냄새가 ㄴ다.  그리고 곧,

 



‘촉-‘

 



입술로 떨어진 가벼운 것.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종인은 눈을 번쩍 떴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입술을 쓸었다.

 



“뭐한 거야, 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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