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카첸] Murmuring Room 8

속삭이는 방

 


 






8-1. 수학 여행

 

 


 

오색 선선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그런 계절이 흘러왔다.  노랗고 빨간 별들이 매달린 나무들과 대지 곳곳에 여름의 흔적들이 과실로 남아 우리를 배 불리는 가을.  낮은 학교 담장을 가로지르는 다람쥐가 겨울 날 준비로 아주 바쁜 10월의 어느 날, 우리는 경주로 떠납니다.

 

 

빳빳한 긴 소매 셔츠를 꺼내 입으며 종인은 가슴께를 엄지로 문질러 보았다.  처음 기숙사를 들어올 때와 비슷한 두려움 반, 설렘 반.  처음 가게 된 수학 여행이라는 것, 저희들의 여행.  왜 수학 여행일까?  수학 잘 하고싶다, 쓸데없는 생각을 꺼내보지만 좀처럼 들뜬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그 뒤로는 종대의 콧노래가 들려왔다.  그는 일주일 전부터 ‘신난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쪽지 시험에서 답을 밀려 써 7점(100점 만점이었다)을 받았을 때도 배를 쥐고 깔깔거리는 저희를 보며 입술을 쭉 내민 채 그래도 신나긴 신나.

 



“초코 송이 몇 개 가져갈까?”


“음.. 두 개?”


“콜~”

 



과자를 얼마나 많이 가져가려는지 일일이 과자 겉 포장지까지 뜯고 있다.  부피를 줄여야 돼!, 저럴 때만 두뇌 회전이 참 빠르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과자 봉지 속 질소까지 줄이겠다며 가위까지 동원하더니 너무 많이 잘라 바닥으로 과자들이 후두둑-  토끼 눈으로 종인의 눈치를 보더니 다른 말 없이 혀를 내밀어 헤헤 웃는다.  종인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못 살아, 이마를 짚지만 곧 그를 따라 웃어버리고 만다.  복도로 나오자 306호 앞에 이미 ‘신났어요~’ 꼬리표를 붙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종이 새끼들아, 빨랑 빨랑 안나오냐?”


“멀미 약 드실 분~?”


“박찬열 줘, 저 새끼 졸라 심해.”


“나, 나! 김종인, 너도 먹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 종인의 등을 퍽퍽- 때리더니 기어코 손에 쥐어준다.  먹기 싫은데, 삐죽-  경수는 6개니까 그냥 다 하나씩 까, 라며 작은 병 속 약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터프한 새끼.  복도가 금새 소란해진다.  즐거움 묻은 재잘거림들.  설렘으로 반들거리는 눈동자들.  종인은 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이들을 둘러보며, 그리고 팔에 걸쳐지는 종대의 손에 따라 발을 내딛는다.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한 켠의 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줄지어 늘어선 버스들.

 



“어? 형들이다~”


“재미있게 놀다 와라.”


“Bye, bye~ 밍쏘기랑 한가하게 즐길 거야, 우리.”

 



일부러 배웅 나온 거냐고 묻자 준면은 끄덕끄덕, 장이씽은 절레절레-  김밥 도둑 으앗, 입을 막은 채끌고 가는 준면에 의해 그는 여기까지만 내뱉을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자 저희를 앞질러 가버린 세훈이 맨 뒷자리에서 거만한 자세로 손짓을 해왔다.

 



“자리 때문에 먼저 갔냐?”


“여기 앉아야 삽자루(담임 선생님)랑 제일 멀어.”


“천잰데?”

 



11반의 셋은 가는 내내 머리를 맞대고 자갈자갈 작은 소란을 만들었다.  시시콜콜한 게임을 주구장창 꺼내놓아 서로의 이마에 꿀밤을 내리기도 하고-도경수에게 걸리면 죽음이다- 창 밖을 내다보며 별 것도 아닌 것에 우와, 하며 동조했다.  엽기적인 사진을 찍기로 했을 때는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크게 푸하하 웃었다가 맨 앞자리에 삽자루 선생님이 가자미 눈으로 고개를 돌려 재빨리 자는 척을 해야 했다.  종인이 실눈을 떠 내다본 창 밖 풍경이, 그리고 저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아주 작게 좋다, 하고 중얼거렸다.

 



“미친, 크크큭.. 저기 봐, 개웃겨.”

 



세훈이 자지러지며 가리킨 곳에는 옆으로 마주한 버스 앞쪽 창문에 눌러 붙여진 찬열의 얼굴이 있다.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꼴이 가관이었다.  창문으로 핸드폰부터 들이민 세훈이 ‘쟤 원래 멀미할까 봐 버스에선 무조건 자, 안 그럼 토해.’ 설명을하는데, 마치 찬열이 동물원 원숭이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경수가 혀를 찬다.

 

 

가는 곳곳마다 반별로 움직였기 때문에 앞 반인 종대, 백현, 찬열과는 생각보다 자주 마주칠 수가 없었다.  과학관, 박물관 같은 곳의 먼 앞 쪽에서 간간히 셋의 목소리-닥쳐, 꺼져, 무식한 새끼, 신라의 달~밤 등이었다-가 들려왔지만 그럴 때마다 세훈은 무심한 표정으로 쌩까자, 경수는 당연하지.  종인은 그 곳에서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가 둘의 비웃음을 받았다.

 이런 거 가져가랬는데, 콧등을 긁적-

 



“초딩이냐? 수첩은 왜 또 개구리 모양이야! 졸라 웃겨, 크큭.”

 



키득거리는 둘 사이에서 종인은 ‘그만 웃어, 죽는다.’ 투덜거리지만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세훈이 수첩을 뺏더니 어느새 핸드폰으로 찍고 있다.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더니, 곧 모두에게 보내져서 놀림거리가 되었다.  4시쯤이 되어서야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를 오래 타서 좀이 쑤셨던 애들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활기를 띠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너른 잔디밭에 오롯이 서 있는 선인들의 지혜, 첨성대.  종인은 그 곁으로 가 설명문을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거려본다.  별을 보는 거였구나, 커다란 물병 같은데.  경수와 세훈은 아이스크림을 사온다더니 함흥차사, 왠지 아이스크림 옆에 있던 빵집을 기웃거리며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아 어디냐고 묻자 빵사진을 보내왔다.

 



“김종이인! 김종인!”

 



고개를 돌리니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종대가 보였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오길래 저렇게 뛰다 넘어지지, 생각하기가 무섭게 꽈당-  바보 아냐?  창피해서 허둥지둥 일어나는 얼굴이 빨갛다.  주변에서 그의 반 친구들이 놀리는 소리가 한껏 터져 나왔다.  저도 고개를 숙여 웃으며 그 쪽으로 막 발길을 돌리는데,

 



“안녕, 나 알지?”

 



체육대회 때 미션 달리기를 같이 했던 여자애가 종인의 셔츠 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종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첨성대 그늘 아래 제 룸메이트와 긴 머리 여자애를 보았다.  곁으로 다가온 반 애들이 깔깔대며 놀리는데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것도 늘리지 않고 첨성대만 눈에 가득 찼다.  아니, 그 앞에 있는 종인만.  종인은 손가락을 손톱으로 꾹- 눌렀다.  작게 일그러진 얼굴에 불편함이 어린다.  아에 웃고 있는 여자애의 긴 머리카락이 얕은 바람에 나부꼈다.

 



“난 7반이야, 이름은..”


“저기, 미안한데 나 친구가 기다려서.. 저기, 아..”

 



종인이 가리킨 곳에 있어야 할 종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를 찾아 두리번두리번거리는 앞으로 핸드폰이 내밀어졌다.  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소녀의 얼굴이 단풍잎처럼 물들어 있었다.  종인은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을 의식하며 우물쭈물 핸드폰이 없다고 말하면 믿어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이 애가 상처 받진 않을까, 하는 생각.

 

 


“저 미친 놈, 어떡하지? 쪽팔려.”


“음악 신동이잖아, 쌩까.”

 



고즈넉한 풍경을 더 아름답게 수놓던 전통 악기 연주단 사이에 끼어있는 백현을 보자마자 세훈과 경수가 몸을 돌려 종인을 잡아 끌었다.  바이올린이랑 현이 비슷하게 생긴 것을 연주하고 있는데 다른 아저씨들과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혼자 광대처럼 흥이 나 있다.  그 앞 땅바닥에 주저앉아 박수를 치고 있는 종대가 보였다.  나 잠깐 갔다 올게, 종인은 애들에게서 떨어져 그 쪽으로 향했다.  헤벌레-한 걸 보니 저들끼리는 음악으로 무언가 통하는 게 있나 보다.  교복바지 다 더러워졌겠네.

 



“야.”


“어? 종인아~ 저 또라이 봐, 짱 웃겨!”

 



음악끼리 통하는 게 아니었구나, 까르르 웃는 그에게 팔을 뻗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잡더니 종인이 힘을 주는 대로 끌려 몸을 일으킨다.

 



“흙 다 묻었잖아, 바보야.”

 



교복 바지를 털어주자 엉덩이를 씰룩씰룩, 종인이 웃으며 그 귀여운 엉덩이를 밀어버린다.

 



“아!”


“왜 그래?”


“아까 까졌어, 교복에 쓸릴 때마다 아프다.. 힝..”

 



봐봐,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교복 바지를 걷어 올려보니 피딱지 앉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가자, 선생님께 상비약 있을 거야.”


“싫어어, 이까짓 거 하나도 안 아프.. 으앗!”

 



상처 위로 손을 대자 종대는 소리를 지르며 냅다 종인의 머리를 내려쳤다.  종인이 맞은 곳을 부여잡으며 인상을 쓰자 엄마야, 제 입을 막으며 내려다 보고 있다.  또 토끼 눈.

 



“네가 누르니까 그렇지이..”


“그럼 저기 앉아있자, 변백현 연주회 끝낼 때까지.”

 



 

알록달록 잉어들이 입을 뻐끔거리는 호수를 바라보는 벤치에 앉은 둘은 두 눈에 생소한 풍경을 담으며 잠시 아무 말이 없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향기가 날 것만 같은 낙엽들, 오랜 세월에 더 깊은 정적을 가지게 된 동궁.  저들의 여유가 그들에게 손을 미친다.

 



“좋다.”


“좋아? 뭐가?”


“그냥.. 이렇게 있는 거.”

 



종대는 그의 입가에 맺힌 부드러운 미소를 힐끔 훔쳐 보았다.  혹시 아까 그 여자애 때문인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면 될 것을, 생각하는 머리와 달리 굳어버린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첨성대에서 자기도 모르게 도망쳐 버린 것이 떠올랐다.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왜? 스스로에게 고개를 갸우뚱 해보지만 언제나처럼 답이 없다.

 



“아까 왜 그냥 갔어? 너 때문에 이씨..”


“어? 아까? 왜..?”

 



됐어, 아프지 않게 꿀밤을 내리더니 초코 송이는 어디 있어? 묻는다.  이 곰돌이 새끼.

 



“초코 송이 먹고 싶으면 다 말해, 빨리.”


“뭘?”


“아까 걔.. 그 때 달리기지? 뭐, 뭐, 뭐래?”

 



힘차게 말을 더듬고 왜 이래, 라며 제 입을 때렸더니 그는 벤치에 등을 기대며 크게 웃었다.  그러더니 밤색 눈동자로 눈을 맞춰온다.  ‘그렇게 쳐다보지마, 이상해.’라는 말이 튀어나갈 뻔 했다.  왠지 종인의 눈동자가 제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종대는 눈을 피했다.  오늘 무덤 많이 가서 귀신이라도 들린 거 아냐?  정신 차려, 김종대!

 



“그냥.. 오랜만이라는 게 다였어.”


“.. 진짜?”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종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던 소녀를 떠올렸다.  갑자기 종대가 실실 웃으며 그 곁으로 다가앉아 그 생각은 아주 잠시 뿐이었다.  이거 봐, 손바닥을 내밀어 들여다보니 거기에도 모래 알갱이에 긁힌 자잘한 상처들이 나 있다.  종인에게 보여주고 다시 저가 들여다 보면서 혼잣말로 진짜 아프다, 찡찡거린다.

 



“호 해줘?”


“응?”


“소윤이는 그렇게 해주면 하나도 안 아프대.”

 



얼굴도 모르는 그의 여동생을 귀엽다고 생각하고는 제 앞에서 순진무구하게 묻고있는 종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내려앉는 간지러운 바람.  종인이 숨이 눈에 보였다면 엄청 따뜻한 색이었을 거야, 그의 눈이 손톱달 마냥 휘어진다.  아, 낮잠 자고 싶다.

 



“어때?”


“아직도 아파아! 더 해줘.”


“호-”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이 지랄 안 본 눈 삽니다~”

 



멀미 때문에 차에 널브러져 있던 찬열이 잔뜩 부은 얼굴로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종인이 괜찮냐고 묻자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우면서 발로 종대를 밀어버려 또 한바탕 난리가 시작된다.  어디서 난 건지 모를 피리를 불며 다가온 백현까지 합세. 

어쩐지 오늘은 너무 평화롭다, 싶었다.

 



“일어나, 꺼져! 또라이들아, 왜 여기 와서 난리야아!”


“변백현 닥쳐, 뱀 나와! 미친 새끼야, 피리 부셔버린다!”


“내 음악을 모욕하다니, 받아랏!”


“아, 너네 다 입 좀 다물..”

 



셋이 동시에 ‘너나 닥쳐!’라고 소리쳐서 도리어 종인이 입을 다물었다.  절레절레-  마침 시선을 둔 뒤쪽으로 앞만 보고 지나쳐 가는 세훈이와 경수가 보였다.  종인의 입 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오세훈, 도경수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돌아본 그들에게달려가는 셋을 따라 종인도 몸을 일으켰다.  경주든 수학여행이든, 아니면 저희의 기숙사일지라도 이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즐거울 거다.

 

 

저녁을 먹고는 리조트 내 강당에 모여 등불을 만들었다.  ‘소원 적어서 등불에 붙일 거에요, 언젠가는 꼭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진지하게 써 보세요!’ 선생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펜을 든 아이들.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저들이 갖고 있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손에 들린 얇은 종이에 써내려 본다.  종인은 이런 걸 적으라고 할 때마다 별로 달갑지가 않다.  그는 희망이나 소망 따위가 가지는 무게의 의미를 티끌 없이 맑은 또래보다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무게가 크면 클수록 절망도 커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바라는 것 없이 흘러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바라는 것이 있어도 모르는 척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어느새 제 등불을 완성한 아이들이 그것을 던지거나 품에 안은 채 소란스럽다.

 



“아직도 안 썼어?”

 



종대의 물음에 그는 그냥, 얼버무리며 콧등을 긁적거렸다.  등불을 걸러나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삼삼오오 빠져나가는 애들이 보였다.  그들과 거슬러 찬열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서둘러야 할 것 같아 빈 종이라도 붙이려고 풀을 들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등신 같다니까, 그냥 쓰면 되잖아아! 난 키 썼다, 키. 헤헤-”

 



펜을 들더니 장난끼 서린 웃음을 지은 채,그의 종이를 채워 나간다.  ‘종대랑 사이 좋게 지내기’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쉬운 것 아니냐며 투덜거렸더니 ‘우리 종이니, 쉬워쩌요?’ 혀짧은 소리를 내며 두 볼을 조물조물-

 



“뭐해? 가자~”

 


 

다가온 백현이 종대가 들고 있는 종이를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 말 없이 펜을 들어 이름표처럼 제 이름을 써 넣었다.  그것도파란색으로 엄청 크게.  가만히 보고 있던 종대가 질서가 없다고 핀잔을 주었다.

 



“뭔데? 뭔데? 아.”

 



경수와 세훈이도 그걸 내려다 보더니 동시에 제 이름들을 써 내렸다.  뭐 하는 거야, 종인의 투정은 안중에도 없다.  다섯이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보고 찬열이 큰 소리를 내며 한 달음에 오더니 진하게 ‘잘생긴 찬열이’까지 써 넣어 종인의 소망은 그들의 방명록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종대는 뿌듯하게 웃으며 그걸 종인의 눈 앞에 흔들더니 풀을 발라 흰 등불안쪽에 정성껏 붙인다.  등불을 매달 때에는 모두 염원을 불어넣듯 조금 진지해졌다.  

 

어둠 속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소망들.  종인은 그 중 자신의 것을 눈에 깊이 담았다.  저 등불에 담긴 것은 왠지 꼭 이루어질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는 레크레이션 시간이 있었는데 즉석에서 진행된 댄스 경연에서 백현이 가장 큰 환호성을 받아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고작 만원인데 전교생에게 편의점을 쏘겠다며 윙크를 날려댔다.  신났네.

 



“뚜뚜, 피해?”

 



백현은 기대오는 경수를 위해 어깨를 세운다.  그런 그의 귀에 속닥속닥-

 



“밤에 갈게, 문 열어줘.”


“깜종한테 말했어?”


“뭘 말해, 그냥 끌고 갈 거야.”


“와, 역시 존나 쎄.”

 



그 날 밤, 4반 종대와 백현이 있는 방에 가기 위해 몰래 빠져 나온 그들은 채 열 걸음도 못 가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리조트 로비에서 한 시간 동안 손을 올린 채 벌을 받았다.  셋은 주머니에서 계속 울리는 진동 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담임 선생님은 모르는 척 하시는 건지 진짜 모르시는 건지 별 다른 추궁은 없으셨다.  그들처럼 걸려서 벌 받으러 온 학생들은 점점 숫자가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귓속말들이 모여 큰 웅성거림이 된다.

 



“아, 박찬열은 성공했나 봐.”


“그 새낀 가깝잖아.”


“팔 아파..”


“스릴 쩔어, 존잼.”

 



난생 처음 해보는 경험에 종인은 처음엔 조금 긴장해 버렸다.  그는 벌을 받을만한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전혀.  경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종인을 보며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옆에 있던 세훈도 쫄았네, 이죽거리며 웃어댔다.

 



“조용히 안 해!”

 



선생님 불호령에 종인은 웃지 않으려 입술에 힘을 꼭- 주었지만 눈가에 이미 웃음이 앉아 있었다.  첫 수학여행, 처음 디딘 새로운 곳에서 친구들과의 오롯한 시간.  그들의 가슴에 언제까지고 남아있을 이야기.

 




 

8-2. 해로운 것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책상을비추는 불빛 아래 쌓여 있는 노란 껍질들.  ‘바나나 맛’이라고 쓰여 있는 또 하나가 부스럭부스럭 짓이겨진다.  둥근 입 속으로 알맹이를 쏙, 오물오물-  펼쳐진 책 속 수학 문제는 명확하기 짝이 없는데 제 머릿속은 흐리멍덩하다.  민석은 오후에 있었던 학부모 동반 진로 상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말랑카우를 세게 깨물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그는 풉, 웃음이터지고 말았다.  ‘멋 부리셨네, 우리 엄마.’하며 처음 보는 상아색 구두로 시선을 내리자 그녀는 쑥스러운 미소로 주책 바가지 같니? 물으셨다.  아니, 예뻐요.

 



“좀 대단한 아들이어야 말이지~”


“엄마, 충격이나 받지 마요.. 알죠? 나 수학만 잘하는 거.”


“어머, 수학 천재가 못 가면 도대체 누가 대학 간다니?”


“아, 제발.. 그 수학 천재라는 말 좀~”

 



힘껏 투덜거리자 엉덩이를 두드리며 알았다고 하시지만 그 말씀에 1%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제 2 상담실에서 이루어진 담임선생님과의 3자 대면 중, 그녀는 역시나.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한다, 라는 옛 어른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아 본다.  고슴도치 가시가 얼마나 뾰족한지 모르시는,아니 알고 싶은 생각도 없으신 우리 엄마.  방금 ‘수학 천재’라는 말이 그녀의 주홍빛 입술에서 아홉 번째로 흘러 나왔다.  다행이 담임 선생님은 유쾌하게 웃고 계시지만, 민석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여버렸다. 아, 엄마 너무해.

 



“그리고 선생님~ 우리 민석이, 기숙사장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죠? 수학 천재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다..”


“아, 엄마! 그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란 말이야..”

 



민석이 기숙사장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살뜰히 챙겨주셨던 담임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빽- 소리를 쳤지만 눈길조차 받을 수 없었다.

 



“얘가 이번 달에도 올림피아드 2차시험이 있어요, 붙으면 방학 때 또 겨울 학교에 들어가야 될 텐데.”


“예, 그건 제가 민석이랑 잘 얘기해보겠습니다.  민석이가 워낙 잘챙기고 애들이 잘 따라서 당장은 어려울 것 같고..”


“아니에요, 선생님!  저 졸업할 때까지 할 수 있는데.. 아야!”

 



팔을 꼬집는 엄마의 손이 매서웠다.  민석이 오리 부리 마냥 입술을 내밀고는 투덜거렸지만 그녀는 들은 체도안 하고 말을 이어간다.  난감한 표정이 된 담임 선생님이 저와 엄마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게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말마따나 애들도 계속 자리 비우는 기숙사장 바라겠어요? 우리 민석이가 잔정이 많아서 애들이랑 잘 지내도 누굴 보살피거나 하는 건 영 아닐 텐데.”


“아닙니다, 어머님~ 민석이가 얼마나 잘하는데요~”

 



민석의 둥근 이마에 근심이 새겨졌다.  그건 자식 자랑 하기에 여념 없는 엄마 때문도 아니요, 그 장단에 맞춰 그녀를 더 신나게 만드는 선생님 때문도 아닌 갑자기 제 앞에 놓여진 미지수 문제 때문이었다.  한 번도 고려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기숙사장이 된 것도, 끝까지 해낼 거라는 생각도 오직 저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타인의 의견은 1%도 개입되지 않은 그런 이기적인 의지로.  집에 좀 와, 엄마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을 흔드는 얼굴에 힘이 없다.  ‘말마따나 애들도 계속 자리 비우는 기숙사장 바라겠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여름 방학에도 올림피아드 여름 학교에 들어가느라 준면에게 폐를 끼쳤던 것이 생각났다.  2주 동안 집도 안 가고 묵묵히 제 자리를 대신해 주었다.  학교 일도 많았을 텐데.  저 대신 장이씽도 살뜰히 챙겨주고-그가 오기 전, 빈 방을 준면이 깨끗하게 치워줬다는 얘기를 듣고 해가 서쪽에서 뜬 줄 알았다- 기숙사 일도 많이 챙겨주고, 기숙사 일보 원고도 검사해 주고..  사감 선생님도 항상 저를 배려해 퇴근 시간을 조정해 주시는데..  도대체 난 기숙사장으로서 하는 게 뭐더라?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어 교실로 들어서자 제 자리에 앉아 장이씽과 소근거리는 준면이 보였다.  다가가니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길래 됐다고 하며 그 앞 자리에 앉아 엎드려 버렸다.  등을 콕콕- 찌르는 손가락들이 느껴졌지만 상대해 줄 기분이 아니다.

 



“밍쏙, 왜 그래? 대학교 못 가?”


“장이씽, 돌직구 날리지 마.”


“돌지꾸? 돌로 찍어다는 뜻이야?”


“응, 돌로 마음을 찍는 거야.”


“아아~ 그러면 나 돌지꾸 안 해, 미안.”

 



저 얼간이들, 내 마음도 모르고.  만약 이번 시험 붙으면 기숙사장 그만 두는 게 좋을까?  갑작스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릿속 세포들이 아우성이다, ‘우울해, 빨리 달달한 걸 입에 처넣어!’ 하고.

 

 




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핸드폰 게임 삼매경인 세훈.  요즘 하는 것은 전쟁하고 뭐 그런 것인데,지금 준면의 성 침탈 중.  211호에서 악에 받쳐 요란을 떨 그를 생각하며 키득키득거리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떨어진다.  들어오세요, 소리에 맞춰 작은 머리가 빼꼼-

 



“혼자 있어?”


“응, 박찬열은 옆 방.”

 



언제나 위를 향하는 입술 끝이 오늘은 반대인 것을 보고 세훈이 게임 종료 버튼을 누른다.  ‘오늘도 발표 안 났어?’ 묻자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안쓰러워 괜스레 침대 끝에 걸터앉은 엉덩이를 발로 건드려 본다.

 



“박찬열 언제 와?”


“침대 사이에 손 넣어 봐, 있을걸?”

 



그 말에 몸을 일으켜 반대쪽 침대와 매트 사이로 손을 넣어 뒤적거리더니 흰색을 꺼내 든다.  저를 보며 까르르 소리 내어 웃더니 이거 찾는지 어떻게 알았어? 묻는다.  찬열에게 어제도 왔었다는 걸 들었다고 했더니 ‘그랬구나아.’ 하면서 말 끝은 한숨으로 맺어졌다.  일본에서 열리는 콩쿠르 비디오 예선 결과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잘은 모르지만 그걸 들은 백현이 퍽 진지하게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던걸 생각해보면 저희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콩쿠르인가 보다.  저한테 배구대회가 그렇듯.  라이터는?  세훈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서 원하는 걸 모두 손에 넣은 종대가 문을 잠그고는 창가로 다가간다.  어려움 없이 불이 붙은 하얀 담배가 곧 얇은 입술 사이에 자리했다.  내려앉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세훈은 창가에 기대 서서 천천히 흩어지는 연기에 갇혀 있는 종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언제 봐도 익숙해질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작은 손가락 사이에 걸려있는 해악과 종대는 너무 이질적이어서 제 앞에서 찡찡거리던 이가 맞는지 의심해보게 된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아, 볼 때마다 적응 안 돼.”


“헤헤- 자주 안 피잖아아! 세 달에 한번 필까 말까다, 뭐.”


“이 번 달은 두 번이네요.”


“응.. 평소에는 생각 하나두 안 나는데, 좀 답답하면.. 생각나서.”

 



종대가 담배 피우는 걸 안 것은 5개월전쯤 여름, 그의 손가락이 부러졌던 때였다.  자습을 하고 돌아와 문고리를 돌렸는데 늘 열려있던 방문이 잠겨 있어 자연스럽게 ‘박찬열, 이 새끼 담배 피나보네.’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문을 열어준 것은 종대였다.  깁스한 손을 흔들며 왔어? 하는데 그 반대쪽 손에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의 것일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 그게 종대의 입술로 내려앉았을 때 세훈은 저도 모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소리를 질러 버렸다.  찬열은 4월에 알았다고 했으니 종대의 말대로 ‘3개월에 한번’이 그의 담배 주기, 즉 스트레스 주기인가 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는 건 306호의 둘 뿐.  어느새 창문을 열고 잔재를 머금은 종이를 고이 접고 있다.  그리고 찬열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공기탈취제를 여러 번 뿌리더니 그 옆 섬유탈취제로 커튼과 침대를 적신다.  산뜻한 향이 세훈에게까지 날아갔다.

 



“씻어야지~”

 



뒷주머니에서 칫솔을 꺼내 흔들면서 화장실로 가는 뒷모습을 보며 세훈은 생각해본다.  피울 때마다 저 지랄이니 자주 안 피우고 싶겠지.  종대는 306호에서 담배를 빌린 날에 환기와 양치질은 기본이고, 아예 샤워를 하고 난 후에야 제 방으로 돌아간다.  김종인한테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다나 뭐라나.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문지르며 나오더니 로션 냄새가 나는 제 몸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 맡아봐, 팔을 내민다.

 



“안 나. 넌 그냥 스트레스 받으면 과자나 먹어, 담배 피는 게 더 스트레스겠다.”


“에휴.. 나 그거 떨어지면 막막하단 말이야, 거기서 입상하면 H대 음대는 프리 패스인데.. 스트레스 받아, 힝..”

 



떨어지면 공부만 해야 된다고, 당연한 소리를 당연하지 않게 하며 울상인 그를 보며 세훈은 키득거린다.  떨어진 것도 아니잖아, 조금만더 기다려봐.  종대가 돌아간 이후 들어온 찬열이 제 방에서 나는 향기를 눈치채자마자 ‘김종대 또 왔냐?’ 묻는다.

 



“완전 우울한가 보네, 새끼.”


“그런가 봐, 내일은 안 왔으면 좋겠네.”

 



향기 나는 방이 되는 건 좋지만 친구의 깊은 우울은 싫다고 생각해보는 둘이다.

 



“망할 새끼, 돛대 먹고 토꼈어!”

 



줄어드는 담배도 싫고.

 





장이씽은 빠른 속도로 쌓여 가는 사탕 껍질과 민석을 번갈아 보다가 침대 위 준면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어떻게 좀 해봐, 입 모양으로 말해보지만 그는 어깨만 으쓱-

 



“크흠, 밍밍? 그만 먹는 거 좋지 않으까?”


“뭘.”


“지금 이, 사탕이 이~만큼이나 먹어써.”


“어? 진짜.. 더 사와야겠다.”


“No, no. 잠깐만. 이거 모야?”

 



민석은 그가 가리킨 사탕 껍질들에게 무심한 눈길을 주며 쓰레기, 라고 태연히 대답한다.  그러자 장이씽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아니야.  뒤쪽에 있던 준면이 ‘옳지, 잘한다.’ 추임새를 넣는 것을 보니 장이씽의 말을 파악하지 못한 건 그뿐인가 보다.  도대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두 볼이 사탕을 머금어 볼록하다.

 



“이거 사탕 아니야, 민서기 고민이야. 난 알아.”


“그럼, 그럼. 좋은 말로 할 때 얘기해라.”

 



평소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들에 민석은 조금 민망해졌다.  그렇게 티가 났나 싶어, 정신을차리고 앞에 있는 사탕 껍질들을 헤아려보니 그 양이 지나치긴 하다.  달콤한 것들로도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이네들에게 털어놓는다고 사라질 리가없다.  하지만, 사탕도 다 떨어졌으니 조금만 내 얘기를 들어줄래?

 



“.. 그래서, 기숙사장 그만 둬야 하나.. 하고.. 내가 딱히 하는 것도 없고, 애들도..”


“뭐야, 난 또 뭐라고.”

 



제 고민을 폄하하는 말투에 눈을 흘기자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그런 걸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하는 거야, 하더니 장이씽의 동의까지 구한다.  그렇지?  끄덕끄덕-

 



“네가 하는 게 왜 없어? 애들방에 형광등 나간 것까지 지가 갈러 다니는 호구 주제에.”

 



풀이 죽어 사탕에 의존하는 그의 모습은 귀엽지만 하루 이상 지켜볼 만큼 유쾌한 것은 아니다.

 



“맞아, 호구!”


“넌 닥쳐, 호구가 뭔지나 아냐?”


“알아, 민석처럼 하는 거.”

 



죽을래? 빽- 소리를 질러도 둘은 저희들에게 더 신경 써 주고 싶어 어쩔 줄 모르고 있던 기숙사장을 그저 귀엽다는 듯 바라본다.  어쩌면 어젯밤 오래도록 꺼지지 않던 책상 등불 아래에서 그는 미래와 기숙사장을 저울질 했을 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준면은 그의 부어 있는 볼을 세게 꼬집고 싶어 손이 간지럽다.

 



“민석이 훌륭한 사람이야. 나 오기전부터 계속 챙겨줬자나, 너무 고마워.”


“그래, 기숙사장이라고 너처럼 하는애가 어디 있겠냐? 애들 이름 다 외우겠다고 점호도 직접 돌고 비품 일일이 사러 다니고.”


“맞아, 민석 기숙사장 아니면 나 중궈로 돌아갈꼬야.”

 



진짜? 라고 묻는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사탕보다 달콤한 위로.  얼마 뒤, 그는 스트레스를 과다 섭취한 대가로 치과에 다녀와야 했다.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내려진 ‘사탕 금지령’에 군말 없이 따라야만 했다.  우리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으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 때가 있다.  이것은 아주 해롭지만 어쩌면 달콤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마음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306 갔다 올게.”

 



종인은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대어 그 뒷모습이 사라지고 문이 닫히는 걸 바라보았다.  바지 주머니에 꽂혀있던 칫솔, 어제도마찬가지였다.  콩쿠르 예선 결과가 안 나와 풀이 죽은 게 신경 쓰인다.  괜찮은지 물으면 언제나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서 안심이 되다가도 잠들기 전 한참을 뒤척이는 걸 알기에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철컥-‘

 



평소에는 잘만 열리던 문이 굳게 닫혀있다.

 



“과자 사왔..!”

 



놀란 눈이 된 세훈이 뒤로 창가에 서 있는 종대가 보였다.  그의 입술 가에 닿아있는 하얀 막대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허공으로 흩어지는게 느리게 종인의 눈에 담긴다.  너무 놀란 나머지 종인의 입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재빨리 몸을 돌렸다.  눈 앞에 닥친 낯선 이에게 무슨 말을 붙여야 될지 전혀 떠오르기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 종인아.. 아, 앗! 뜨거워!”

 



종대는 룸메이트가 사라진 문을 허망하게 쳐다보며 재가 튀어 빨개진 발등을 문질렀다.  놀라서 담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재빨리 책상 위 공책을 찢어 담배 꽁초를 놓고 여러 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세훈이 웃으며 다가온다.

 



“야, 김종인 표정 봤어? 졸라 웃겨! 쟤 지금 도망간 거지?”


“어떡해.. 놀랐나 봐..”


“뭘 놀라, 박찬열 피우는 것도 알잖아. 그거랑 똑같지.”


“그거랑은 다르지이!”


“뭐가?”


“.. 몰라, 아무튼 좀 달라. 나 간다, 빠잉!”

 



종대는 문 앞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에게 실망했을까 걱정스러워 문고리에 올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있는 종인이 보인다.

 



“종인아, 그게 있지. 내가 맨날 그러는 게 아니라..”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응? 아, 그게.. 난.. 그냥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옆으로 다가가자 제 손을 잡아 내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응?  왜 이래?

 



“내가 왜 싫어해? 앞으로 나한테 말해, 그런 거 하지 말고.”

 



뭐야, 담배 얘기가 아니었어?  잔뜩 긴장했던 게 한 순간에 우스워져서 입 꼬리가 길어진다.  저가 나쁜 짓을 하는 것보다 그 이유를 더 중히 헤아려 주는 룸메이트.  다정한 눈빛이 오롯이 저에게 향해있다.  괜스레 놀려주고 싶어 말하면 어떻게 해줄 건데? 묻자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민에 빠진다.  담배가 주는 정신적 위안은 이 애의 따뜻한 위로에 전혀 비할 데가 못 된다.

 



“메로나 사다 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씻고 있어.”

 



벌떡- 일어나는 종인 때문에 종대는 목젖까지 내보이며 웃다가 ‘나도 같이 가!’ 하며 다급히 그를 따라 나선다.  어두운 길목, 가로등 불빛 아래 겹쳐진 두 인영의 그림자가 길다. 

 



“.. 담배 냄새나.”


“으앗, 진짜? 그냥 나와가지고.. 마, 많이 나? 미안..”


“몸에도 안 좋잖아.”


“맨날 피는 거 아냐아! 그게 언제냐면..”


“알아, 한 네 달에 한번? 이번 달만 두 번, 아니 오늘까지 세 번이네.”

“.. 알고 있었다고? 어, 언제부터?”

 



잠시 망설이더니 ‘내가 너 피아노 치는 거 처음 안 날’, 그리고 손가락 다쳤을 때도 피웠잖아, 덧붙인다.  놀란 종대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떻게 알았는데?

 



“냄새가 달라. 로션 냄새 나.”


“로션 냄새 좋잖아! 완전 개코네?”


“네 살 냄새가 더 좋아.”

 



어둠 속에 울그락불그락해진 종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편의점 쪽으로 무심한 발길을 내린다.  살 냄새라니, 저거 변태 아니야?  무,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는 화끈거리는 두 뺨을 손으로 감쌌다.  알싸한 담배 냄새가 났다.  다시는 종인에게 이런 냄새로 다가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앞서 가는 뒤를 따른다.

 



“꼭 붙을 거야, 걱정 마.”

 



얼마간 찬열과 종대는 종인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가 뜬금없이 보내오는 메시지에는 각종 금연 권장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테면 새까매진 폐 사진 따위.  찬열은 갑자기 지랄이라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마지막에는 줄이긴 할거야, 꼬리를 내렸고 종대는 힘들면 ‘담배가 아닌 저에게 말하기’에 새끼 손가락을 걸어야 했다.  우리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으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 때가 있다.  이것은 아주 해롭지만 어쩌면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마음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강나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3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