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우리의 방(정)식 ㉮

 

 


보충 수업이 끝나고 학교는 여름 잠에 들었다.  뜨거운 더위에도 텅 빈 교실들은 난 자리가 쓸쓸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다.  기숙사도 마찬가지.  집으로 돌아간 이들의 난 자리를 채운 적막함이 한껏 낯설다.  기숙사장의 부재로 211호에 남아있게 된 준면은 침대 위를 뒹굴뒹굴-  종대가 두고 간 만화책을 읽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다만, 매일 귓가를 맴돌던 잔소리가 없어 조금 허전할 뿐.  잠시 쓰레기로 가득 차버린 방바닥을 내려다 보았다가 걱정만 늘어났다.  바퀴벌레가 안 나온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지저분하다.  부스러기가 남은 과자 봉지들과 초록색 유리 병들, 비어있거나 그렇지 않은 형형색색의 캔.  그리고 어제 쏟아버린 해바라기 초코볼.  저건 주워먹어야지.  내일 온다고 했는데,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더니 곧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똑, 똑-‘

 



“형, 민석이 형 언제 와요?”

 



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묻더니 방바닥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기숙사장 껌딱지 1은 난감해진 표정으로 저와 방바닥을 번갈아 본다.

 



“말 안 해도 알아, 내 장례식은 내일 있을 예정.”


“미리 치우면 안 죽어도 될 텐데.”


“치워줄 거 아니면 꺼져줄래?”


“치워드려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주지 않는 그다운 반응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끅끅거리며 웃고 있자 슬그머니 허리를 굽혀 빈 병으로 손을 내리길래 얼른 아냐, 외친다.

 



“야, 됐고 우리 방에서 공부해라~ 나 심심해.”

 



냉큼 네, 라고 대답하더니 나가버렸다.  티는 안 내지만 저도 퍽 심심했을 거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재잘대는 참새 같은 룸메이트와 얼간이 같은 친구들이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쟤는 집에 잘 안 가더라.  책 몇 권을 들고 문을 열더니 까치발로 쓰레기들 사이를 건너 민석의 침대로 올라간다.

 



“김민석 껌딱지 아니랄까 봐 거기로 가냐?”


“형 옆은 좁아 보여서요.”

 



살짝 웃는 모습이 무표정일 때와는 달리 순하기 짝이 없다.  역시 내 라이벌이야, 혼자 생각해본다.  단 둘이 있을 때는 많지 않아서 조금 어색할 줄 알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물론, 두루 어울려 지낸 시간때문이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김민석’이라는 뚜렷한 공통분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종인에 대해 생각해 보던 준면에게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그는 낯도 많이 가리고 친해지기 어려운편인데 민석에게만큼은 먼저 다가왔던 것 같다.  바로 고개를 돌려 이유를 물었다.

 



“민석이 형은 생각이 얼굴에 다 보여서 편해요.”

 



고개를 갸웃거리자 말을 이어가며 책장을 넘긴다.

 



“싫은지 좋은지 다 표정에 나타나서 맞춰드리기가 편해요, 그러니까..”


“아, 뭔지 알 것 같아.”


“그죠? 싫은 표정이 되면 바로 안 할 수 있고 좋아하면 더 해드릴 수 있는 그런 거요.”

 



종인의 사려 깊은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유여서 준면은 잠시 멍-해졌다가 표정관리 못 하는 룸메이트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맞장구를 친다.

 



“맞아, 김민석 표정 관리 절대안 돼. 크큭, 너 그런 애들 좋아하는 구나? 김종대도 그렇고.”

 



종대라는 이름에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김종대요? 걔가.. 그런가?”


“응, 종대도 표정에 다 나타나잖아~ 거기다 걘 말투도 달라져.”


“그런가..”

 



종인은 책으로 시선을 내려 잠시 종대를 떠올렸다.  지금쯤 뭐 하려나?  그런 그를 쳐다보며 준면은 조금 의아해졌다.  저렇게 타인을 의식하는 애가 종대에게만은 무딘 것이 조금 유별나 보였다.  아, 혹시?  302호에서는 반대인가?  준면의 눈이 반짝거린다.  Nice Catch~  그의 생각을 이론화 하자면 이런 것이다.  김민석 껌딱지=김종인 / 김종인 껌딱지=김종대.  고로 302호에서는 상대적으로 종대가 종인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군.  준면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종인은 저가 어떤지 말하고 표현하는 것보다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을 훨씬 편하게 여긴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자신’은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남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지 특히, 저를 어떻게 보아줄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미 습관을 지나쳐 그의 한 부분으로 뿌리내려 얽혀있는 것.  하지만 종대에게만은 다르다.  그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저가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냥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종대가 좋아하면 저도 좋아져서.  자신이 좋아지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런데, 누군가의 애정을 받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종인만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제 룸메이트가 그의 솜털 하나까지 헤아리려 전전긍긍 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하면 종인이가 좋아할까? 오늘 기분은 어떨까? 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서로를 맞추다 보니 그렇게 당연해졌다.  둘은 매일 같은 것을 생각한다.  널 기분 좋게 하고 싶어.

 



“야, 전화 받아.”

 



제 품으로 던져진 핸드폰에 종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귀를 붙인다.

 



“여보세..”


‘종인아아, 뭐해!? 혹시나 하고 해본 건데 딱 같이 있네, 힛.. 텔레파시 보냈냐~’


“아닌데, 바보. 어디야?”


‘나 엄마랑 나왔어, 오늘 날씨 진짜 좋아. 밥은 먹었어?’


“응, 너는?”

 



 
 

맞은편 침대의 준면이 ‘응, 응..’ 통화하는 그를 보며 웃어 버린다.  웃기는 짜장이네, 저것들.

 

 

벌컥, 열린 방문에 졸고 있던 준면과 영어 문제를 풀고 있던 종인의 눈이 번쩍 뜨인다.

 



“이짜나, 민서기 언제 와? 어? 종인이, 안녕~”


“왜 안 오나 했다. 너 뭐했냐, 지금까지?”


“요리해써, 사감 선생님 생선 요리.”

 



안 쪽으로 웃으며 들어서는 뺨에 보조개가 찡긋-  김민석 껌딱지 2 등장이요.

 
 

방학이 끝나기 전, 그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찾아왔다.  오자마자 올림피아드 여름학교에 간 민석만 찾아대서 준면이 달달 볶아졌다.  두 명이나 떨어진 I 고 입시를 통과하고 중국의 장사라는 곳에서 건너온 교환 학생.  생각보다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것만으로 이미 준면의 마음에 쏙 들어 버렸다.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  라이벌이 늘었어, 젠장.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 더미를 발로 헤치더니 자연스럽게 종인의 옆으로 가서 엎드린다.  쟤는 왜 또 저기로 가냐?  종인이 약간 경직된 얼굴로 곁을 내주는 걸 보며 준면은 웃음이 터졌다.

 



“장이씽! 왜 거기로 가, 이리 와!”


“난 여기가 좋은 걸.  준면 초큼 더러워.”

 



죽일까, 잠시 고민.  씽이-벌써 애칭이 생겼다기 보다 얘 이름 어려워-는 살갑게 종인에게 뭐 하는 거냐 물으며 발을 까딱거리는데 종인은 어, 음, 그러니까.. 아직 낯가리는 중.  그게 웃겨서 준면이 큭큭거리자 종인이 살짝 고개를 들어 째려본다.

 



“하나만 알려줄게. 요거 이거다.”


“어? 영어 잘하세요..?”


“응! 잘 해, 한국어보다 내가. 요즘 계속 해요.”

 



종인의 눈빛이 사르르 변한 것은 한 순간이었다.  뭐야, 쟤 그냥 공부 잘하면 좋아하는 거였어?  금새 이것도 풀어보시면 안돼요? 꼬리를 흔들더니 정답을 맞추자 ‘우와, 우와.’하며 그를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 모습을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면 준면이 문득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점점 커지는 달그락달그락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한 사람은 좌절을, 다른 두 사람은 환희에 찬 표정이 된다.  민석은 귀엽게 웃으며 반갑게 ‘얘들아, 나 왔다!’ 했다가 발 디딜 곳 없는 바닥을 보고 급격히 인상이 사나워진다.  으아악!

 



“김준면! 죽고 싶어!?”

 



준면은 ‘아무것도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주문을 중얼거리며 종인에게 어떻게 좀 해봐 눈짓을 보냈는데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는 민석을 잠재운 것은 씽이였다.

 



‘쪽-‘

 



지금 우리가 본 게 무엇인가요?

 



“민서기, 나 얼마나 보고 싶은지말해봐~”

 



 
 

자신을 안으며 간지럽게 말하는 낯선 이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린 민석에게 씽이가 한번 더 쪽- 입술을 내렸다.  민석은 돌아온 지 5분만에 영혼을 털린 채, 겨우 남아있는 의식으로 생각했다.  여기에 왜 제 정신인 애들은 없는 거죠?  하지만, 곧 그만의 애정 표현에 익숙해져 나중에는 그게 특별하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곁에 서 있는 사람의 애정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다.

 

 




7-1. 우리의 방(정)식 ㉯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종대가 302호로 돌아왔다.  고작 2주 동안 떨어져 있었을뿐이었지만 그들에겐 긴 시간이었는지 종일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붙어 앉아서 종대가 찍어온 여러 날의 사진을 보고 혼자 있을 땐 전혀 먹을 일이 없었던 과자와 슈크림 든 단팥빵을 먹었다.  전화로 보여주기로 했던 콩쿠르 예선에 보낸 동영상에는 『달빛』을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옆에 있는데도 종대가 그리워 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 속에 빛나는 이와 곁에 있는 종대가 달라 빛나는 이가 제 곁의 웃고 있는 이 애를 언제라도 데려갈 것이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  아마 며칠 전 312호에서 보았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때문일 것이다.  뭔가 무서운 영화였어, 생각해보는 종인이다.  그 얘기를 했더니 종대는 ‘그거 완전 감동적이었어!’라고 말해서 대꾸하지 않았다.  늦게까지 같이 늑장을 부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챙겨온 옷가지며 여러 가지를 정리하는 종대의 옆으로 이유도 없이 따라가는 종인.  바다에 갔다 왔다더니 조금 탄 것 같은 룸메이트의 뺨을 살살 문질러본다.

 



“때 같아.”

 



정리를 계속 하며 죽을래? 하는데 묻어있는 웃음기 때문에 위협이라곤 느낄 수가 없다.  도와주려고 새 책들로 손을 뻗었다가 그 사이 펼쳐진 악보 파일을 집어 든다.  어?  수많은 악보 사이에 사라졌던『May Be』 악보가 꽂혀있다.  그 날의 습기 때문인지 쭈글쭈글해진 종이.  가운데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삐뚤 빼뚤 써있는 ‘종인이가 줬다’라는 글씨.

 



“이거 여기 있었네..”


“아, 그거? 말렸는데도 그렇게 됐어. 코팅이라도 해볼까?”

 



힐끗 쳐다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데 그게 꼭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기분이 좋아진 종인이 콧등을 긁적거리더니 고개를 숙여 몰래 웃는다.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그래서 언제 들려줄 거냐고 묻자 나중에, 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김종인, 문 열어.”

 



문 앞에 세훈이 택배 박스 몇 개를 끌어 안은 채 서 있었다.  저의 택배를 찾다가 종인의 것도 찾았다며 가져온 것이다.  들고 오기 싫어서 제 짐을 다 택배로 부쳤다고 덧붙이더니 저녁 때 보자, 하고 쌩- 가버렸다.  306호도 2학기 준비로 바쁜 모양이다.  거기엔 아마 새 게임 팩이 들어와 있을거다.  그나저나 택배 보낼 사람이 없는데, 수녀님인가?  상자를 굴려본 종인의 몸이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발신인의 영어 주소 아래 쓰여있는 ‘김지수’라는 이름.  급격히 몰아친 소용돌이에 휩쓸린 듯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야? 김지수?”

 



어느새 다가온 종대가 뜯어도 돼? 물으며 상자를 채갔는데도 그의 머리는 정신 없이 돌아가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가려내느라 바빴다.

 



“우와! 핸드폰이다!”

 



종대가 멍-한 그를 끌어당겨 바닥에 앉히며 신나게 그것들을 뜯어 놓았다.  해맑게 웃으며 이것저것 설명해주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 카드다. 읽어 봐.”

 



이상한 동물 캐릭터들이 잔뜩 그려진 카드가 종인의 손에 쥐어졌다.  종대는 ‘김지수’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하다고 쓰여있는 얼굴로 여전히 제 정신이 아닌 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핸드폰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늦어서 미안.>  작게 휘갈겨진 악필.  카드의 여백처럼 공허해지는 눈동자.

 



“누가 보낸 건데? 나도..”

 



카드로 내려진 그의 손을 피해 종인이 얼른 등 뒤로 그것을 숨겼다.  그 행동에 멈칫하며 놀란 종대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지금 그걸 살필 여력이 없는 종인은 미약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려는듯 고개를 떨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종대는 머쓱해진 손으로 괜히 반짝거리는 새 핸드폰을 쥐었다.  그는 알았다.  지금 종인에게 저가 알 수 없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하얗게 질린 얼굴이 학기 초를 떠올리게 했다.  당혹감을 숨기며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갑게 말을 붙이는데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저 가만히, 가만히 있어 입술이 탄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몸을 일으켜 아무 말 없이 문으로 향했다.  아, 저도 모르게 뻗었던 손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맞춰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아예 저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종대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구는 것을 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무력감, 내팽개쳐진 그 기분을 종대는 무시해야 했다.  그래야 스스로 덜 상처받은 것처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종인은 한 밤 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잔뜩 주눅 든 얼굴로 제 얼굴을 살피는 그에게 종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은연 중 그런 것은 허락 받지 못 했다는 데에 상처받은 자존심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종대는 마음에서 울린 그 속삭임에 따랐다.  씻고 나와 불을 끈 종인이 이불을 들춘다.  오랜만에 함께 눕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그 곁이 조금 불편했다.

 



“핸드폰 개통도 다 되어 있더라, 그냥 쓰기만 하면 돼. 내일 가르쳐줄게, 짱 불편했는데 잘 됐다.”

 



웃으며 말하는 종대를 쳐다보던 종인은 그의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지난 날이 궁금하고 오늘 일이,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겠지.  무슨 말이든 해서 사과를 하고 싶은데 목 끝까지 차오른 말들은 끝내 내뱉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대로, 우리, 너희들 모두 너무 좋은데 굳이 그 사이에 불필요한 감정을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종인이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되풀이 되는 생각의 끝은 종인이 그러길 바랬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만약에, 너도, 너희들도 똑같다면 난 어떻게 될까?  종인은 어느새 조용해진 종대에게 시선을 던졌다.  몸을 뒤척이며 긴 속눈썹이 팔랑거리는 게 보여 그가 아직 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 될까?  

종인이 얇은 이불 속에서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종대의 손을 잡았다.  보드라운 작은 손.  그는 손을 맞잡아주지 않았지만 밀치지도 않았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7-2. 생일 축하해  [ 부제 : Dear. Me ]

 


 

한 풀 꺾인 더위에 제 활력을 되찾은 이들의 11반.  개학을 하고 한 동안 교실과 저희들 사이에 다시 익숙해지느라 또는 새로운 다짐을 새겨 넣느라 분위기가 바뀌었다, 싶었는데 채 일주일을 넘기지 못 한다.  책상을 한 데 몰아 놓고 팔씨름을 하고 있는데 쿵쾅거리는 것이 팔을 넘기는 건지 교실을 무너뜨리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종인은 이어폰을 낀 채 그들을 바라봤다.  흘러나오는 피아노 곡들과 상반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우습다.  가운데 웃고 있는 세훈이 저들의 심판이자 개최자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선수 역할에 열중해 있는 경수와 그를 응원하며 제 경기처럼 흥분한 찬열, 백현 그리고 종대가 있다.  저 셋은 왜 남의 반에서 저럴까.  바보들.  실컷 웃어서 힘이 빠진 종대가 다가오는 게 보여 이어폰을 빼자 생각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소음이 귀로 흘러 든다.  인상을 찌푸린 종인의 옆에 앉아 도경수 미쳤어, 키득거린다.

 



“오늘 레슨 있지?”

 



응, 이라고 대답하더니 손으로 강아지 모양을 만들어 눈 앞으로 들이민다.

 



“하기 싫어, 멍멍.”

 



뭐야, 라면서 귀여운 멍멍이를제 손 안에 가두는 그의 입술에는 웃음이 걸려있다.  종대는 또 다른 손으로 그의 손을 멍멍 물며 그 웃음을 더 크게 만든다.  그 날 이후 우리에게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저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을 종대가 그러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커서 종인도 입을 다물었다.

 

 

자습 시간,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자마자교실이 소란스러워진다.

 



“아, 깜종 핸드폰 생기니까 졸라 편해.”


“맞아.”


“왜?”

 

“뭐가 왜야? 너랑 연락 안 되면 답답하니까. 그리고 찡찡이 새끼가 겁나 귀찮게 함.”

 



종인과 같은 반인 세훈과 경수가 그 동안 종대에게 시달렸던 것을 후련하다는듯 꺼내놓는다.  때를 가리지 않고 김종인이랑 같이 있는지,어디 갔는지, 뭐 하는지 묻는 것은 새 발의 피.  ‘일찍 들어오라고 해.’라는 내용을 받을 때면 같은 방이기 때문이란 걸 알면서도 기분이 묘해졌던 둘이다.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다 큰 사내 자식들끼리 간질거리긴.  그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핸드폰이 울려 종인은 괜스레 민망해졌다.  종대일 게 뻔하다.

 



“그나저나 조금 있으면 김종대 생일이지?”


“응, 다음주 수요일이네. 302호 고고.”


“단톡방에 날려야겠다.”


“단톡방 졸라 시끄러워, 배구하고 보면 기본 200개.”


“크큭, 씽이형 한국어 너무 좋아.”

 




 

별다른 이유 없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아니, 무슨 이유를 갖다 붙여도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는 게 알맞은 것 같다.  시끄러운 알람을 끄지 않고 울리도록 놔뒀다고 종인이 신경질을 내며 제 엉덩이를 발로 밀어서, 숙제를 까먹어서 백현이 것을 베꼈는데 이름까지 ‘변백현’이라고 써서 제출해서, 체육 시간에 티를 거꾸로 입어 한바탕 놀림거리가 되어서, 하늘에 공장 굴뚝에서 나온 것 같은 색깔의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서 기분이 아주 아주 좋았다.  오늘은 종대의 귀 빠진 날이다.  이 세상에 난 것을 축하해주고 네가 너무 소중해, 라고 속삭여주는 그런 날.  스스로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날.

 

 

저녁 시간, 다른 애들은 밥을먹고 고작 20분 풋살을 하겠다고 몰려 나가 버렸다.  그리고 종인은 종대와 함께 과자 등이 들어있는 큰 박스 두 개, 케이크를 두 개나 302호로 운반하는 중.  가방 안에도 무언가 잔뜩 들어있는 것 같다.  종대가 받은 생일 선물들.  오늘 하루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잠들기 전 12시부터 그의 핸드폰은 생일 축하 문자들로 소란스러웠고 복도를 지나갈 때도 저가 모르는 종대의 친구들을 유난히 많이 마주쳤다.  종인이 계속 한 걸음 앞서 그를 기다려야 했다.  가끔 저가 모르는 이름들을 얘기하거나 따로 밥을 먹으러 가거나 한 일이 있었지만 막상 직접적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낯섦이 밀려와 입이 조금 썼다.  하지만, 그들에게 고맙다며 입꼬리를 늘여 웃어주는 걸 보면 어느새 저도 기분이 좋아졌다.  구름 다리에서 종대가 잠깐만, 하고 케이크 상자를 바닥에 내리더니 전화를 받는다.  종인은 다리에 매달린 꼬마 전구들을 보며 역시 유치해, 읊조린다.

 



“응, 엄마아!”


‘우리 애기, 생일 축하해~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나두, 나두. 엄마, 너무 고마워. 나 낳아주고 키워줘서 너무 너무.”


‘미역국도 못 먹이고, 지금이라도 네 아빠한테 데려오라고 할까 봐.’


“내일 다시 학교로 와야 되는데에? 히히, 이번 주에 가니까 그 때 해줘.”


‘빨리 오는 게 좋을 걸, 선물이 기다린다.’


“끄하항, 나 뭔지 알 것 같아!”

 



‘엄마’라는 저 언어를 내뱉을 때 입술은 어떤 느낌일까?  통화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옆에 있는 저에게까지 따뜻함이 번져온다.  지금 종대가 부럽다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그에게 크게 와 닿지가 않게 되었다.

 
 

그냥 저 애라면 저런 애정쯤은 충분히 받아도 될 만큼 사랑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아니고.  통화를 끝낸 종대가 바닥에 놓인 상자들을 들어 고쳐 안는다.

 



“당분간 과자 배터지게 먹겠다, 그치?”


“오래 가진 않을 걸, 박찬열이 이거 없어질 때까지 우리 방에서 파티래.”


“미쳤나 봐아, 누가 열어준대?”

 



작게 웃다가 갑자기 멈춰 서 저를 빤히 쳐다본다.  종인은 왜, 라고 물으며 고개를 갸우뚱-  아까보다 더 다가선 밤 때문에 구름 다리에 매달려 있는 꼬마 전구들의 반짝거림이 커졌다.  무언가 말하길 망설이는 건지 얇은 입술이 달싹거리는 게 보인다.  그러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종인아, 하고 이름을 한번 불러 주었다.  무슨 얘기를 꺼낼지 몰라 긴장해 버렸다.  혹시 그 이름에 대한 걸까?

 



“내가 생일을 좋아하는 건 남들한테 축하 받고 선물 받고 이런 것 때문이 아니야.”

 



제 룸메이트가 또렷한 눈동자로 내뱉는 뜬금없는 말을 전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생일은 내가 나를 축하해주는 날이야. 잘 태어났고 지금까지 잘했다고, 또 앞으로 더 잘하자고! 생일이 중요하지 않은 날이라는 건 말도 안 돼. 생일이 싫다는 건.. 꼭.. 네가 태어난 게 불행하다는 말 같잖아.”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여서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그러니까 생일 알려줘!’ 빽- 소리를 질러서 웃음이 나고 말았다.  그거 때문이었어?  저녁을 먹으며 우리가 나눈 생일에 대한 이야기.  종대가 받은 생크림 케이크 이야기가 생일 날 케이크로 얼굴을 맞아 열 받은 적이 있다는 찬열의 이야기로 넘어갔고 또 다른 이들의 생일 이야기로 넘어갔다.  종인은 생일에 대해서는 별로 꺼내놓을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러다가 경수가 종인의 생일만 모른다며 언제냐고 물어본 게 지금 이 사건의 발단.  과일 음료에 붙어있던 빨대를 접고 있던 종인은 대답은 않고 머쓱하게 웃어 버렸다.  종인은 모르겠지만 다섯은 미묘하게 굳어있는 그의 얼굴을 이미 수 분 전부터 의식하고 있었다.  특히, 오늘의 주인공이자 그의 룸메이트인 종대는 조바심이 나 일찍이 수저까지 내려놓은 채다.

 



“별로.. 난 생일 같은 건..”


“언젠데? 알려만 달라는 거지, 누가 축하해준대?”


“나, 나, 난 축하해줄거야아! 몇 월이야?”


“미친, 그럼 내가 뭐가 돼! 나도 해줄 거야, 나만 해줄 거야! 다 꺼져!”


“음력은 아니겠지?”

 



그들의 갖은 회유에도 그는 그저 쓰게 웃을 뿐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식판을 들고 일어날 때는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못 박듯 무심한 얼굴로 난 생일 같은 거 싫어.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앞서 나가는 그가 아니라 남아있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을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그의 얼굴이 아닌 마음을 살피는 사이였으므로.  그들은 종인의 마음에 큰 생채기가 나 있을 거라고 추측을 해 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을 우리가 조금 보듬어 줄 순 없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마, 알았어?”

 



가만히 있자 제법 사납게 미간을 좁히며 알았냐고! 되물어와서 종인은 살포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손 가득 안겨있는 상자들이 아니라면 저의 사소한 말 때문에 화가 난 룸메이트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을 싫어하는 이유가 단순히 큰 축하를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한 번 더 생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축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고 보니, 종대의 말도 일리가 있다.  종인은 한번도 태어나서 좋다거나 스스로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돌아오는 생일에는 그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윽, 낯간지러워.

 


9시, 종대는 레슨을 끝내고 자신을기다리는 이들에게로 걸음을 빨리 했다.  302호라고 쓰여진 문 앞에서 능청스레 ‘들어가도 돼애?’ 물었더니 찬열이 ‘지랄 말고 들어와라’ 소리쳤다.  벌써부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실 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여덟 명의 장정으로 가득 차버린 방.  그리고 환한 촛불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초콜릿 케이크.  각자 다른 음으로 저를 위해 불러주는 생일 노래.  노래 부르는 중 백현이 초콜릿을 하나 떼어 먹다가 경수에게 꼬집히는 게 보였다.  씽이는 뺨에 닿을 듯 말 듯 입술을 내리며 축하를 전해 종대의 얼굴을 익혀버렸다.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달디 단 초콜릿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그들은 언제나처럼 소중한 이의 생일을 축하했다.  모두 제 생일인 것처럼 기쁜 얼굴로.

 



“그러게, 왜 끼어들어어~ 네 생일이냐? 바보, 큭.”


“몰라, 버릇됐나 봐.”

 



종대의 손가락이 다쳤을 적 보디가드 역할이 길긴 길었는지 종인은 그에게 날아든 세훈의 초콜릿 범벅 손을 대신 맞아 버렸다.  모두가 돌아간 한 밤 중, 씻고 나온 종인을 다리 사이에 앉혀 머리를 말려주었다.  꽤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다.  저가 하겠다며 피하다가 내 생일이잖아, 라는 한 마디에 얌전해진다.  귀엽긴.

 



“응? 뭐야?”

 



뒤로 넘어온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받아 들자 반대 쪽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비슷한 하나를 더 넘겨 왔다.  종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 손 안에 들어온 것들을 내려다 본다.  생일 선물이야?  따로 준비한 거야?  저의 다급한 물음에도 묵묵부답.  핸드 크림과 연고.  괜히 바닥에 있는 먼지들을 꾹꾹 눌러 모으고 있는 그 손.

 



“고민했는데.. 그런 것 밖에 생각이 안 났어. 연고는 너 지문 있는 데만 자주 까지니까.”

 



제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덤덤히 말을 하는데 그 귀 끝이 빨갛다.  또다, 온 마음을 꽃일게 하는 종인이.  몇 날을 고민해서 골랐을 선물인 걸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이것들은 손이 아닌 마음에 발라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그 동안의 서운함조차 이 애가 내밀어온 마음 앞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사랑스러운 귀 끝에 닿고 싶어 그 목을 와락 끌어안아 버렸다.  저와 같은 사내 놈이 뒤에서 끌어안아 어깨에 얼굴을 묻는데도 가만히 웃고만 있다.

 



“넌 왜 맨날 가만히 있어? 징그럽지도 않냐..”


“별로.”


“고마워, 진짜 좋아.. 지인짜.”

 



다행이다, 중얼거린 종인을 오래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생일이었어.  Happy Birthday, Dear. Me.

 

 

오늘은 (나)의 귀 빠진 날이다.

(내가) 이 세상에 난 것을 축하해주고 네가 너무 소중해, 라고 속삭여주는 그런 날.

(내가) 스스로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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