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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첸] RESCUE ME 上

디스토피아 / 좀비 AU


















공포. 적막. 고독. 폐허가 된 도시를 형용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다. 적어도 김종대에게는 그렇다. 남 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티 없이 자랐다. 웃음이 많고 다감한 그에게 누군가 말했다. 너를 보면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노라.

아득히 멀어진 이야기지만.




“R구역에 도착했어.”




지지직거리는 무전기에 속삭인 그가 손등으로 따가운 피부를 쓸어낸다. 종일 햇볕에 노출되어 불그스름해진 데에서 진물이 배어 나온다. 이래서야 좀비와 다를 게 없다. 보얗고 부드러웠던 살결은 거칠어져 볼품이 없고, 연달아 화상을 입어 거무스름한 흉터로 뒤덮였다. 의료진은 이후 피부암에 걸릴 확률을 언급하며 난색을 표했지만 김종대는 이런 상황에 암이 대수냐며 해맑게 웃어버렸다. 옛날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외양을 단단한 전투복으로 가린 그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덜렁거리는 신호등 아래서 무거운 군장을 고쳐 멨다.




‘Copy that. 벙커 위치 확인했지?’


“응, 생체 신호는?”


‘전혀.’




여기에도 없는 건가. 검은 동공이 잠시 방황한다. 무너진 건물. 모래에 파묻힌 생명의 흔적. 색을 잃어버린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이 점멸할 듯 깜빡였다. 김종대! 저를 부르는 음성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코 닳은 전투화로 다가오던 실뱀이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 자욱한 먼지바람에 하릴없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 속에서 깔깔한 모래가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생리적으로 솟아난 눈물이 속눈썹에 엉기자 조금 나았다. 빨간 불빛이 번쩍거리는 무전기에서 잔소리가 쏟아진다. 벙커에 가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요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한 시간 이상 눈을 붙인 적이 없다.




“듣고 있어.”


‘잠들기 전에 주사하는 것도 잊지마.’


“알았어.”




김종대는 귀담아 듣는 눈치가 아니다. 고새 메마른 황무지에 억척스럽게 피어난 풀꽃을 발견해서 쪼그려 앉은 참. 해진 장갑을 낀 손이 스스럼없이 바닥을 문질러 숨구멍을 냈다. 물을 주면 타버릴 것이다. 지지 않는 인공 태양의 비호를 받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겨우 뿌리를 내린다 해도 짧은 우기가 끝남과 동시에 식물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김종대는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냈다.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길게 긋자 붉은 선을 따라 핏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꽃 머리가 내리는 피를 섬뜩하게 빨아들였다. 멸종을 앞둔 것들에의 애도. 그 나름대로의 방식이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 구역에도 없으면…… 작전은 종료한다.’




건조한 손바닥에 감긴 무기는 단단하고 무겁다. 생명을 거두는 물건답다고 자주 생각하곤 한다. 몸집이 작은 김종대는 저격총보다 전동 권총을 선호하는 편이다. 단시간에 상당한 파괴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사용법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는 군인이 아니다. 따라서 전투보다는 호신용으로 그것들을 이용했다. 좀비들이 인지할 수 없는 용액을 주사하므로 치명적인 위험에 놓인 적은 없다지만 폐쇄된 구역들, 다시 말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인간들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은 확실히 위험천만한 짓이다. 모두 수색대에 지원하겠다는 그를 말렸다. 하지만 김종대는 끝내 이곳에 발을 들였다. 그에게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벙커에 도착하기까지 아홉을 맞닥뜨렸고 두 명을 사살했다. 되도록이면 살려두지만 그 둘은 신원 확인이 늦어져 아주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문드러진 피부와 악취, 검은 자위가 사라진 눈알과 마주보는 일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살아있는 시체가 사정거리에 들 때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견디는 것도 매번 죽을 만큼 힘이 들고 파열음과 함께 거무죽죽한 피와 악취를 뒤집어쓰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등줄기 따라 흐르는 식은땀.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버텨내는 일촉즉발의 순간. 스쳐 지나가는 괴물이 혹시 저가 찾는 사람은 아닌지 정신 없이 살필 때마다 목전에 겨누어진 죽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네가 아니라는 안도감은 오래지 않아 원망으로 바뀌고 만다. 차라리 너였다면.

바이러스가 창궐해 인류의 절반이 고전 영화에 나오던 좀비로 변모한 지도 어느새 십여 년이 지났다. 인구 밀도가 높은 중심가와 근원지로 의심되는 곳곳에 무분별한 폭탄이 떨어졌고, 구역마다 거대한 자외선 조명이 설치되어 ‘태양’이라 불리며 지구에서 영원히 밤을 몰아냈다. 바이러스 감염자는 햇빛에 취약하다. 좀비화 중에 멜라닌을 포함한 일부 세포가 사라져 무방비해진 그들이 여과 없이 흡수한 자외선은 DNA을 변형시킨다.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이 변형 과정에서 대부분의 감염자가 급사한다. 하지만, 연구가 성과를 보이기 전에 인류는 이미 너무 큰 희생을 치른 뒤였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그저 살아있기만 한 사람에게도 절망만 남았다.

쿵! 벙커를 둘러싼 철창이 열린다. 김종대는 주머니에 보안 카드를 집어넣으며 낡은 건물 내부나 어둠 속에서 날뛰는 것들을 곁눈질했다. 몇몇이 갑작스러운 소음에 광분하여 뛰쳐나왔다가 기이한 비명과 함께 기어들어갔다. 급격한 피로가 몰려온다. 일순 의식을 놓고 비틀거린 그가 가까스로 계단을 붙들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짐을 풀고 한 몸이나 다름 없던 두꺼운 전투복을 벗자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볍다. 함박 웃은 김종대는 더운 물로 얼굴부터 씻어냈다. 검댕이 지워지고 드러나는 면면은 사뭇 다른 이 같다. 선이 얇은 얼굴에 날랜 콧대와 긴 속눈썹을 가진 남자. 마른 몸매도 바닥에 내팽개친 의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한쪽 팔에 권총을 칭칭 동여맨 끈을 절대 풀지 않는다는 점이 그가 오랫동안 암흑세계를 떠돌고 있는 장본인임을 여실히 증언했다.

두 그릇째다. 고기를 저미어 말린 포로 연명하다가 잃은 입맛이 돌아왔는지 인스턴트 수프라도 맛이 좋았다. 모래바람이 멈췄나. 먼지가 일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든다. 식사를 하면서도 작은 창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김종대는 문득 멀찍이서 펄럭이는 파란 깃발을 발견했다. 군용지를 나타내는 표시다. 지도를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하아......”




연한 살 위에 아무렇게나 주삿바늘을 꽂는다. 혈액이 타고 올라오는 관을 능숙한 솜씨로 주무른 김종대는 특수 용액이 담긴 팩을 위쪽으로 걸었다. 언제 또 안전한 장소를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 팩을 더 꺼내두었다. 주사 때문에 팔뚝이나 종아리에 멍이 가실 날 없다. 누가 봤다면 하염없는 눈물 떨구었겠다. 김종대가 드디어 침낭으로 엎어진다. 배도 부르고 잠자리는 안락하다. 천국에 견주어도 손색 없는 작금을 만끽하며 침구에 뺨을 비볐다. 그러고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 메뉴는 카레였다. 김종대는 친하지 않은 부엌에서 채소를 손질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앳된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심장 떨려서 못 보겠다.’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누군가가 그의 허리를 단단한 팔로 감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자다. 이리 줘. 김종대보다 신장이나 체격이 월등히 큰 남자는 손쉽게 식칼을 빼앗으며 핀잔을 늘어놓았다. 전문가를 옆에 두고 왜 사서 고생이냐 툴툴거리더니 기어코 김종대를 밀어냈다. 전문가라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는지 순식간에 감자나 당근 따위가 동강이 났다. 솜씨 좋은 칼질로 질긴 고기마저 부드러이 썰었다.




‘집에서라도 안 만지게 하고 싶어서.’




칼이나 총 말이다. 김종대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하자 그 남자는 침묵하다가 이내 미소 지었다. 키스해도 되는지 묻는다. 김종대는 대답 대신 그의 목에 걸린 은색 인식표를 잡아당겼다. ‘박찬열’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안표가 날카로이 살을 파고들었다. 박찬열은 힘 들어간 손아귀에 달래듯 가볍게 키스했다. 고개 숙인 그는 입을 맞추려 했으나 김종대가 이를 피했다.




‘이번에도 같이 가자고 안 하네.’




무덤덤한 듯 말했으나 그럴 리가 없었다. 서늘한 음성에 박찬열이 살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파병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김종대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없던 고집이 생겼다. 박찬열이 무릎에 총상을 입은 뒤로는 늘 함께 가겠다 떼를 쓰곤 했다. 어림 없는 소리. 은근슬쩍 허리를 안고 선율에 맞춰 뒤뚱거리자 결국 김종대는 웃어버렸다.




‘죽어도 같이 죽자며.’


‘거짓말이었어.’




네가 잘못되는 꼴은 절대 못 본다며 박찬열이 낑낑댔다. 세게 옥죄는 품 속에서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부서졌다.




‘나는 진심인데.’




올곧게 저를 바라보는 눈빛을 미처 피하지 못한 박찬열은 속수무책이었다. 까치발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은 김종대는 이번에는 날짜를 속이거나 자는 틈에 떠나는 비열한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온몸으로 일깨워주었다. 네가 지켜줘. 김종대가 속삭였고 그는 기꺼이 그러겠다 맹세했다.

그래서였을까? 박찬열은 죽음의 기로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하늘마저 거맸다. 혼란 속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는 길이 험난한데 박찬열은 꿋꿋이 김종대를 끌어당기기만 했다. 함부로 잡힌 어깻죽지가 아팠다. 그렁그렁 눈물바람을 봐줄 만도 한데 반쯤 넋이 나간 박찬열은 마치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처럼 앞만 보고 걸었다. 여기에서 내보내야 돼.




‘내 말 잘 들어, 대피소가 아니라 무조건 지하로 가는 거야, 알았지?’


‘싫어, 혼자는 안 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싫다는데 듣는 체도 않고 박찬열은 저 할 말만 했다. 지하 통로를 따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한다 반복했다. 김종대가 끌려가다시피 해서 그들의 발자국이 긴 밧줄처럼 이어졌다. 점점 인적이 드물어졌다. 박찬열은 버젓이 놓인 출입 금지 팻말에 발길질을 하고 철망으로 통제된 구역이 보이는 족족 열고 들어갔다. 상급 보안 카드를 훔친 거였다. 그리 중하던 군율이든 신념이든 스스로 망가뜨렸다. 축축한 나뭇잎이 밟히는 외딴 곳으로 짐짝처럼 딸려가던 김종대는 이내 서럽게 울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여서 안 울 수가 없었다. 기밀실에 다다라서야 돌아봤다. 박찬열은 억지로 웃으며 김종대의 젖은 얼굴을 쓱쓱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남의 얼굴이 박힌 보안 카드를 주머니에 손수 넣어주며 당부했다.




‘계속 통제 구역이라 이게 있어야 할 거야, 잃어버리지 말고.’


‘안 간다니까!’




김종대는 벌개진 눈으로 진저리를 쳤다.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네가 살아야 내가 사는 거야, 그래야지 나도…… 사는 거야, 종대야.’




밖에선 어떨지 몰라도 제 품에선 여리고 사분사분하기만 했는데 이 날은 아니었다. 초연한 얼굴빛이 낯설고 강한 의지가 고압적이었다. 김종대는 그런 박찬열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사랑이 두려웠다. 어떻게 이래? 박찬열은 주저 없이 김종대를 살렸다. 힘껏 버둥대는 몸을 대피용 포드에 태워 단단히 묶는 손길이 단호했다. 이리 험하게 다룬 적 없어 난처한 얼굴로 연신 미안하다고 중얼거렸었다. 김종대는 들이닥친 재앙보다 박찬열의 지켜주겠다는 맹세가 끔찍했다.




‘사랑해.’


‘차, 찬열아, 안 돼!’




소란이 가까워오자 그는 다급히 목적지를 설정하고 수송기 보닛을 닫았다. 두꺼운 방탄 창 너머로 인영이 너울거리다가 멀어졌다. 박찬열은 기어코 화염 속으로 스러져버렸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였던 곳에서 꿈이 끝났다. 김종대는 눈을 뜨자마자 다급히 총을 움켜쥐었다. 하아, 하아.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시계를 노려본다. 고작 두어 시간이 지났다. 퀭한 눈가를 따라 흐르는 무언가 느껴졌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무전기부터 찾았다. 꿈 속에서 파란 깃발을 보았다.




“지도 전송할 테니까 좌표 알아봐 줘, 근처일 거야.”




침착하자. 속으로 되뇌며 겹겹의 주머니를 뜯다시피 뒤졌다. 꾸깃꾸깃 접힌 종이뭉치 속에서 사진을 찾아낸 김종대는 잠시 멈칫했다. 시원스레 웃는 남자의 얼굴이 낯설다. 실은 전부 희미해졌다. 눈, 코, 입이 어떠했는지 어떤 냄새가 났는지 음성은 낮았는지 높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긴 했었나. 내가 널 찾을 수 있을까?




‘네 말대로야, 벙커 근처에 전前 군사 시설이 있어. 하지만 2차 폭파로 생명체 전멸, 수색대 보고에 의하면 일부 남아있던 좀비도 최근에 소탕되었어.’


“무기고에 관한 기록은 없던데, 거기가 숨바꼭질에 제격이잖아.”


‘지하 무기고는 1순위로 봉쇄됐다, 운 좋게 그곳에 은신했더라도 며칠 못 버티지. 괜한 짓 하지 말고 원래 경로로 움직여.’


“시체라도 찾을 거야.”


‘시체 찾다가 네가 죽어, 이러라고 박찬열이 널 살린 줄 알아?’




박찬열의 막역한 전우였던 이이는 김종대마저 잃고 싶지 않다는 뜻을 명확히 전했다. 공연한 농담을 단박에 잘라낸 동료가 박찬열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울분에 찬 목소리를 냈다. 눈물 맺힌 눈이 샐쭉 웃는다.




“하, 당연히…… 싫어하겠지.”




척박한 땅처럼 갈라진 손을, 짓무른 살갗을 본다면 어떨지 생각해보기란 쉽다. 박찬열은 아이처럼 벌개진 코랑 귀를 하고 매달려 오래도록 울음 그치지 않을 거다. 바보처럼 자기 탓만 하겠지. 늘 김종대를 애지중지 어루만지던 사람이다. 얼마나 소중히 여겨졌냐 하면 그가 곁에 없는데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다. 부재를 상기해내면 당장 죽고 싶을 만큼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니 찾아야지.






















혹시 무서운 좀비 기대하고 읽으신다면 실망하실 거예요ㅋㅋㅋㅋㅋ 

저 좀비 싫어요ㅠㅠ 무섬무섬

새로운 이야기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감사와 안부 겸사겸사 단편으로 인사 드립니다.

(티저 보고 급 오토바이씬 넣으려다가 실패...)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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