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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Love Ending

계간리에야쿠 12월호 참여작(http://ly113.tistory.com/45)














 

 


너의 날에도 눈이 내릴까? 겨울바람에 진눈깨비가 나부낀다. 찬 공기가 앉은 방, 신문을 뒤집어쓰고 종종걸음으로 시야를 벗어나는 사람, 유리에 닿아 사라지는 눈의 결정들.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던 야쿠가 크림색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부엌 선반의 가장 높은 곳에서 우연히 유통기한이 임박한 코코아 가루를 찾아냈다. 저가 사다 놓은 게 아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코코아. 달콤한 냄새가 작년 이맘때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 때는 이곳에 리에프가 있었다.




‘피곤하죠? 앉아 있어요, 코코아 타 올게요!’


‘잠깐, 안 먹어! 리에프! 그럼 내 건 시럽 넣지 마. 크림도 안 돼!’




그러겠다고 했지만 말을 듣는 법이 없다. 야쿠가 훈련에서 돌아오면 리에프는 늘 다디단 초콜릿에 시럽이나 꿀을 넣고 크림마저 얹어 내놓곤 했다. 겨울엔 코코아, 그 애의 엉터리 철학이다. 너무 달아. 투덜거리면서도 그가 덮어준 담요에 포옥 기대어 남김없이 마셨다. 어때요? 차가운 귀를 만지작대며 물으면 야쿠는 대답 대신 그에게 키스하고 얕게 혀를 내었다. 녹색 눈동자가 반드르르해졌다.




‘야쿠상, 달아요.’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리에프는 따뜻하고 달다. 그래서 써졌다.

고등학교 배구부의 선후배 사이치곤 미묘했다. 어깨를 끌어안거나 팔을 당기는 손길, 태양처럼 강렬한 눈씨를 모른 체 했더니 그는 야쿠더러 비겁하다고 했다.




‘이래도 비겁해?’




홧김에 반질거리는 코트에 밀어 눕혀 입을 맞추었다. 그 뒤로 툭하면 책임지라느니 겁쟁이니 시비를 걸며 귀찮게 굴더라. 귀여웠다. 살짝 붉어지는 뺨이 점점 어여쁘더니 애정이 스며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인이 되어 만난 지 5년이 넘어갈 즈음, 야쿠는 지금의 프로팀과 계약해 한 해의 반 이상을 폴란드에서 살게 되었다. 울고불고 난리일 줄 알았던 리에프가 의외로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였다면 믿어질까? 그는 단지 신중히 결정해 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워낙 좋은 기회라 차마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을 테고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따르겠다는 마음이었을 거다. 그 덕에 애달픈 마음 감추지 못한 건 야쿠다.




‘야쿠상이 맨날 만나서 지겹다고 하니까 벌 받았나 봐요.’


‘닥쳐…….’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계속 우울해할 거예요?’




끝을 모르고 처진 야쿠의 입 꼬리를 살살 문지르며,




‘그냥 우리를 지나가는 시간이에요.’




리에프는 말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싶게 씨익 웃는 얼굴이 듬직했다. 시라도 쓰는 거냐고 핀잔하면서도 야쿠는 그의 품에 안겨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가 지나온, 지나가는, 지나갈 시간에 비하면 짧을 거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랐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던 거리에서 최대로 멀어진 데에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불안하고 힘들었다. 자주 연락했지만 시차 때문에 서로에게 방해가 될까 조마조마해서 정작 하고픈 말을 못할 때가 많았고 야쿠의 리그 정규시즌에는 그마저도 녹록하지 않았다. 리에프는 한동안 말도 없고 넋 빠진 사람처럼 다녀서 인기가 많아졌었단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적응하고 마음껏 배구를 하는 것과 상관없이 야쿠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까불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두 다리 얽고 누워 밤새 우스갯소리를 하고 싶었다. 보고 싶어. 하염없이 그리워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몸이 멀어지니 마음이 여실했다. 제 사랑이 이렇게 큰 줄 알았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이었다. 그러다 불면증과 컨디션 난조가 훈련 중 부상으로 이어졌다. 인대가 늘어난 가벼운 부상이었지만 일본에 보도되는 바람에 모두에게 걱정을 끼쳤다. 폴란드에 간 지 채 반년이 넘지 않았을 때였다. 리에프는 괜찮다는 말이 듣기 싫다고 화를 낼 정도로 유난이었다.




‘정말?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린 거야, 가라고 하셔? 아니, 나랑 상의도 없이 휴학을 하면 어떡해! 시간 낭비야, 여기서 네가 뭘 한다고!’


‘할 거야 많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학교든 공부든 지금 너한테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다 포기하고 나를 따라오겠다는 거야? 그럼 내가 좋아할 것 같아?’


‘야쿠상이 제일 중요한가 보죠, 뭐.’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누군 쉽게 결정했대요?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요, 지금 같이 있고 싶어, 야쿠상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옆에 있게 해주세요.’




그는 끝내 야쿠의 곁으로 날아왔다. 어리석지만 지극히 어른스럽고 리에프다운 결정이었다. 금방 돌려보내겠다고 다짐했건만 야쿠는 그러지 못 했다. 이국에서 꼬박 반년을 함께 살았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손을 잡은 채 이 도시의 거리를 걸었다.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함께 밥을 먹는 평범한 일상도 여기에 단 둘이라는 것만으로 특별해졌다.

오랜 일인데 어제인 듯 선명한 기억이다. 혼자 있으면 옛 생각 하는 일이 잦다. 반이나 남은 코코아를 개수대에 쏟아버린 야쿠는 하얀 세상 차단하듯 블라인드를 쳐 안을 어둡게 했다. 오랜만에 한가로이 낮잠이나 잘 생각이다. 이번 시즌도 무사히 끝이 났다. 리그 준우승 포상으로 휴가까지 받았건만 그리 기쁘진 않다. 동료 하나가 당연하다는 듯이 일본에 다녀올 거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답했다. 느릿느릿 침대로 올랐다.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끌어당긴다. 갈색 머리카락 끝이 삐죽 나왔다. 폴란드의 겨울은 지독히도 춥다. 몸을 웅크린 야쿠가 푹신한 데에다가 볼을 마구 비볐다. 천에 스민 눈물이 흐린 자국을 만들어낸다. 처음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말이다. 리에프의 행방이 묘연해진 지 48시간이 지났다. 이런 적도 처음이다.

최근 우리는 부쩍 서먹했다.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지자 걷잡을 수 없이 골이 깊어졌다. 발단은 이렇다.




‘왜 얼굴 안 보여줘?’




잠에서 깨어난 제 얼굴 보는 게 낙이라며 줄곧 걸려오던 영상전화가 뜸하다 못해 뚝 끊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야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뭐든 속에 담아두지 않는 성정이라 곧바로 물은 거였다. 보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고.




‘딱히…… 그보다 이겼어요? 전화 안 받던데, 경기 때문이었죠?’




이럴 수가. 리에프는 그럴듯한 핑계를 댔어야 한다. 허나 어설프게 얼버무렸다. 다음날에도 영상전화는 거부당했다. 세수를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눈곱까지 떼 주는데 그런 걸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래도─ 맞다, 어제 밤 샜더니 오늘은 시험 잘 봤어요.’




그를 너무 잘 아는 게 탈이었다. 야쿠는 자꾸 말을 돌리는 리에프가 숨기는 게 있다고 확신했다. 그 날부터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시험을 보느라 답장이 늦었다는 말조차 믿어지지 않고 시간이 안 맞아 연락을 못 한 날에는 악몽에 시달렸다. 아무리 쫓아가도 리에프에게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깨어나면 무섭도록 쓸쓸해졌다. 야쿠는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과 조마조마한 속마음을 털어놓진 못 하고 종반엔 그를 피하게 되었다.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다투기도 싫거니와 듣고 싶지 않은 말이라도 나올까 무서워서 리에프를 견딜 수가 없었다.




[많이 바빠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시험 망쳤어요]


[야쿠 모리스케 바보]




아이러니하게도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쌓여갈수록 이별을 상상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혹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던 걸까? 더 이상 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 햇수로 1, 2, 3…… 8년을 만났으니까 질릴 때도 됐지. 게다가 2년 째 지구 반 바퀴 장거리 연애 중.




“망할……”




욕을 읊조린 야쿠는 빨개진 눈가를 문질렀다. 이런다고 리에프가 제 속앓이 알아줄 리 만무하다. 안 하던 짓으로 궁상을 떨고 있으니 미쳐버린 것 같다. 고작 며칠간 연락이 끊겼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힘든데 헤어질 수 있을 리가. 빈틈없어 어렵다고 했었지? 지금 이 꼴을 보면 넌 비웃을까?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기어이 그의 바짓가랑이 붙잡는 상상까지 했다가 눈물샘이 터졌다. 가슴 아픈 이 시간도 단지 우리를 스쳐 지나는 것일까? 아니면, 곧 멈추는 건가. 이 와중에 리에프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는 사실이 야쿠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나한테 맨날 잔소리 하면서 자기가 아프면 어쩌자는 거야, 약도 없고.”




구시렁구시렁하는 그림자가 잠든 위로 길게 늘어진다. 시끄러워. 찡그렸더니 눈썹 근처에 더운 숨결이 닿았다. 야쿠는 저도 모르게 팔을 들었다가 늘어뜨렸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움찔. 곧이어 서늘하고 축축한 감촉이 이마에 내려앉는다. 잠이 확 깼다. 다정하게 뺨을 쓰다듬는 손.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 없이 익숙한 향기를 따라 눈을 번쩍 떴다. 리에프? 야쿠가 다급하게 일어나는 걸 내려다보며 입을 삐죽거리는 게 화를 참으려는 건지 웃음을 참으려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어안이 벙벙한 낯을 지나 가슴께로 떨어진 물수건이 금세 웃옷을 적셨다. 코앞으로 왔다 갔다 하는 리에프의 몸짓을 쫓는 다갈색 눈동자가 분주하다. 물수건을 집어 든 그는 야쿠에게 젖은 옷 벗어두라는 말만 했다. 꿈이라기엔 선명하다. 말 붙일 틈도 주지 않고 쌀쌀맞게 부엌으로 가버리는 그가 고개를 숙여 낮아지는 천장 피하는 걸 야쿠는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야쿠상, 도대체 뭐에요? 저 되게 화났어요, 이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바빠도 메시지 한 통 없는 건 너무하잖아요! 또 어디 다쳤을까 봐 내가 얼마나…… 그런데 사람들이랑 웃으면서 장난이나 치고, 다 봤어요, 준우승한 거 하나도 축하 안 해요. 헹가래 할 때 잡아주던 사람은 누구에요? 친해요?”




정말 화가 난 모양이다. 이를 악문 리에프는 야쿠를 마주보지도 않았다. 날 선 음성이 갈수록 힘을 잃지만 평소와 달리 낮다. 그럴 만도 하다. 죽고 못 사는 오래된 연인과 별안간 연락이 두절됐는데 멀쩡할 리가 있나. 종강하자마자 부리나케 날아온 참이다. 은근슬쩍 돌아보니 야쿠는 나사 하나 빠진 얼굴로 눈만 끔뻑거리고 있다. 잔병치레는 없지만 시즌 같은 중대사 지나고 나면 긴장이 풀려 몸살이 나곤 한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저가 병원에 데려갔었다. 난데없이 멀어져 애간장 녹인 걸 생각하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는데 신열에 들떠 앓아누운 걸 보니 가여워서 화를 내기는커녕 얼른 이불에 돌돌 말아 옆에 재우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야쿠 딴에 왜 왔냐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닐 텐데 그렇게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옆으로 다가앉은 리에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싸우러 왔죠.”




냉정한 어투지만 어째 표정은 흐물흐물 풀어져서 히죽 웃기 직전이다. 원래가 야쿠의 조그만 머리 꼭대기에 뻗친 머리칼 보는 것만으로 녹아지는 그이다. 기다란 손가락이 살살 짧은 머리카락을 빗어 넘겼다. 이별 통보를 앞뒀다하긴 여전한 애정 어린 눈빛에 야쿠는 덜컥 안심해버리고 만다.




“이, 이 나쁜 새끼! 다 끝인 줄 알았잖아!”


“그게 무슨, 아아, 저 다쳤어요!”




습관처럼 리에프에게 주먹질을 하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으악! 팔이 왜 이래, 사고라도 난 거야? 골절이야? 어쩌다가!”




주춤한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야쿠에게 딱딱한 깁스로 감싸인 팔을 내놓는다. 아프다고 칭얼거리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계단에서 굴렀어요! 요리조리 다친 팔을 살피던 야쿠는 문득 알아차렸다.




“설마…… 이거 때문이냐? 영상전화 안 받은 거?”


“네, 전혀 몰랐죠? 헤헤─”




그렇단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허탈해진 야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당장 리에프의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어도 시원찮을 거라는 생각이다. 중요한 경기 앞두고 걱정 끼치기 싫어 숨긴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 오해가 생긴 줄은 전혀 모르는 눈치. 그럼 그렇지.




“며칠 동안 연락할 시간이 아예 없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혹시 일부러 그랬어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도리어 어떻게 잠수를 타냐며 한참 하소연을 하다가 뒤늦게 고개 숙인 야쿠가 눈에 들었다. 저 화났다니까요? 하고 팔을 잡아챘는데,




“헉!”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네 마음이 변했다고, 보내줄 생각까지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 울어요?”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마음이 놓이니까 더 참을 수도 없었다. 면역 없는 눈물바람에 리에프는 리에프대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야쿠상을 울리다니! 속으로 절규하며 다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눈높이가 내려가니 일그러진 눈가에서 흐르는 비가 더 잘 보인다. 가슴이 철렁한다. 어떡해! 허둥지둥 휴지를 찾다가 여의치 앉아 제 가슴팍으로 끌어안았다. 싸해진 등줄기로 식은땀이 난다. 가만히 딸려온 야쿠의 떨림이 고스란하다. 차마 달래지도 못 하고 흐느끼는 등을 안고 있기만 했다. 그의 슬픔이 잦아들 때까지.

침묵과 함께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긴장이 사라진 자리에 편안히 누그러진 공기가 찼다. 훌쩍거리는 야쿠를 안고 안절부절 못하는 리에프, 조용하고 어슴푸레한 공간 속 참 낯선 광경이다.




“다 울었어요?”


“응.”




에구에구 혀 짧은 소리하면서 아기한테 하듯 손등으로 야쿠의 젖은 뺨을 꾹꾹 누른다. 미안해요. 들릴락 말락 읊조리면서 리에프는 야쿠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가끔 펑펑 우는 게 보고 싶었는데 막상 벌어지니 후회스럽다. 들썩이는 몸 안고 있는 게 괴로웠다. 야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하긴 한데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민망해서 턱없이 부족한 손 너비로 리에프의 붕대나 문질렀다. 괜스레 혀를 차며 저가 다 아픈 표정으로.




“걱정할까 봐 말 안 한 건데, 그런 생각할 줄 몰랐어요.”


“너무 오래 떨어져있었나 봐.”




잠긴 목소리로 답하면서 결 좋은 은발에 머리를 기댔다. 아무래도 한계야.




“사랑해.”




뜬금없지만,




“어? 저, 저도요!”


“결혼하자.”


“……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리에프가 펄쩍 움직이는 바람에 침대가 삐걱거렸다. 얼빠진 표정이다. 방방 뛰며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는 많이 놀랐는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미동이 없다. 금세 자신이 없어진 야쿠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싫어?”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느니 하는 근사한 말은 덧붙이지 못 했다. 부드럽게 입술을 누르는 감촉에 눈을 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을 맞추는 양 오래도록 보듬었다. 리에프, 내가 돌아갈 곳이 언제나 너였으면 좋겠어. 감미로운 입맞춤을 따랐다.




“무르기 없어요.”




연약한 턱이랑 부은 눈가에까지 머무른 리에프가 웃음기 없이 답했다. 벅찬 감정을 억누르는 얼굴이 도로 다가와 틈을 지운다. 야쿠는 기꺼이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공항엔 언제나 사람이 많다니까. 차에 올라서야 뒤집어썼던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 던진 야쿠가 툴툴거린다. 비공식 귀국 시에는 과할 정도로 신분을 숨기는 편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모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내년으로 계획된 야쿠의 이적에 다들 관심이 커서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까부터 안달복달하던 리에프는 두꺼운 점퍼에 파묻혀있다시피 했던 야쿠의 얼굴이 빼꼼 나오자마자 급히 팔을 뻗었다. 두 손이 뺨을 감싸고도 남는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당겨 작은 입술이며 코에 쪽쪽거리는 데에 누가 보겠다며 야단하지만 소용이 없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눈이 저절로 떠져서 두 시간 전부터 와 있었다고요!”


“바보 아냐? 먼저 가있으라니까, 데리러 오긴.”


“처음이니까 같이 들어가고 싶어서, 신혼집이잖아요, 신혼집!”




야쿠는 천진한 눈빛 앞에 하릴없이 미소 지었다. 들뜬 리에프가 가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꺼낸다. 시트에 깊숙이 기대어 커튼 색깔이나 냄비 개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우리가 진짜 결혼을 하긴 했구나. 깍지 낀 손에 나란히 자리한 반지 한 쌍도 슬쩍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진한 녹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운전에 집중하라고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주의를 주었더니 리에프는 얼른 고개를 돌리면서 희희낙락한다.




“자요, 다 오면 깨울게.”




16시간 비행에 지쳐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손을 내젓는다. 이사만을 위한 짧은 일정이 부담스러울 게 뻔해 안 와도 된대도 야쿠는 당연한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저야 좋지만. 반쯤 감긴 눈을 억지로 뜨려고 깜빡이는 게 귀엽다. 자꾸 저를 힐끔거리는 리에프에게 야쿠가 물었다. 보고 싶었어? 천연덕스럽게 묻는 게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젠 혼자 있기 싫더라고요, 프로포즈 받았을 때 바로 데리고 올 걸.”


“그 얘기 좀 그만 해, 창피하니까.”


“왜요? 진짜 감동 받았는데, 모리가 울면서 청혼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프로포즈였다. 갑작스럽고 충동적이었지만 그만큼 열렬했다. 당시의 우울을 지금은 리에프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일사천리로 치른 혼인 서약식에서는 그가 울었다. 반지를 끼워주는 손이 덜덜 떨려서 올려다봤더니 어느새 눈물범벅인 얼굴이 가관이었다. 야쿠의 얇고 흰 장갑 위에 끼워진 반지에 코를 박고 엉엉 울었다. 통곡 수준이라 당황스러웠다. 뚝! 등허리를 쓰다듬는 야쿠에게 리에프는 울먹울먹 속삭였다.




‘너무, 너무 행복해서요.’




울음 참느라 입을 꾹 다문 리에프에게 팔짱을 낀 채 목젖 다 보이게 웃는 제 사진이 거실에 걸릴 큰 액자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같이 살게 될 집으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새삼 부끄러워진 야쿠는 발그레한 면면 위로 옷을 끌어당겼다.




“너 아니면 안 되니까 매달려야지, 별 수 있나.”




네가 너무 좋아. 좋아 죽겠어.




“아, 잠깐, 차 좀 세워도 돼요? 뽀뽀 안 하면 죽을 것 같은데!”


“안 돼. 빨리 집 가서 정리하고 밥 먹자, 배고파.”


“그럼 ‘사랑해’해요.”


“사랑해.”


“한 번 더.”


“죽는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 시간을 함께 걷는다. 때로는 상처 입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 또한 오늘이 되기 위한 길이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사랑이었다고 이야기하며 늘 서로의 곁으로 돌아올 거다.



















사계절을 함께한 계간리에야쿠의 마지막입니다!

이번 주제는 프로포즈, 결혼, 육아 등의 주제로,

저는 프로포즈 에피소드를 엮어 둘의 끝없는 사랑을 담아보았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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