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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 악식惡食 中

백현X민석













“흑……”




이부자리에 비죽 나온 뿔이 서럽게 떨린다. 어린 도깨비의 뭉툭한 뿔은 앓는 내내 거맸다. 병환이 짙거나 깊은 시름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색깔이다. 하루에도 수번 민석의 움막을 드나드는 이들의 걱정이 끊이지 않을 만도 하다.




“그만 울어.”




나무라듯 말한 세훈이 불룩한 이불을 발로 툭툭 건드린다. 열흘이다. 숲을 돌아보다 진창에 굴러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민석이 제 집에 틀어박혀 곡기를 끊고 울기만 한 지 그렇게나 오래다. 찰싹. 사연을 몰라 답답하여 그런 것인데 옆에서 민석의 뿔을 가만가만 문지르던 종대가 그의 손등을 쳐냈다.




“흘려버리게 놔둬.”


“그래, 눈물이라도 내어 다행이잖아. 속에 쌓이면 눈물도 병증이 된다더라.”




덤덤하게 덧붙인 목소리와 달리 경수 또한 걱정스러운 눈길을 텄다. 재수도 없지. 어르신들이 계셨다면 이리 오래 아프지도 않았을 게다. 아니, 운이 좋은 건가. 적어도 사탄에게 잡혀가진 않았으니 말이다. 서로의 팔을 밀며 다툼하는 종대와 세훈을 앞에 두고 경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속 편한 것들이라고 타박하려다가 잠자코 눈을 감았다. 흑 도깨비는 간밤에 알아낸 이야기를 털어놓기엔 적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친우가 아파 심란해하는 이들, 이름 모를 병에 걸린 민석에게도 염려만 더할 게 뻔한 소식이었다.

어둠 속에 숨어서 담론을 엿듣는 건 취미나 다름 없었다. 이리 하면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전되는 남의 허물이나 소문, 새로운 지식 등은 경수를 우세하도록 도왔다. 민석 같은 백 도깨비가 으레 품기 마련인 순수한 호기심이 아니라 경수는 어디까지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용했다. 지난밤도 마찬가지다. 초저녁부터 영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여겨 본 그는 도깨비들이 드나들 수밖에 없는 강다리 길목에 일찍이 터를 잡았다. 일렬로 선 비석의 그림자가 좁았지만 숨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기다림이 꼬박 이어졌다. 기울어지는 어둠을 따라 뒤채느라 신체가 천근만근이었다. 쿵쿵쿵쿵. 새벽녘이 되어서야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영감들이 한 곳에서 떼지어 몰려 나왔다. 감기던 눈꺼풀을 치켜 뜬 경수가 비석에 바짝 달라붙었다. 기어코 사단이 났군! 겁에 질린 영혼들의 비명이 들려. 희생당한 산신은 또 어찌 위로한단 말인가? 우리가 쫓겨날 수도 있어. 개천開天 이래 요물이 산을 넘은 적이 있나? 그들이 불안하게 일렁이는 걸 보며 두꺼운 눈썹이 의아스럽게 꿈틀거렸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나 중한 일임을 직감한 흑은 집요하게 귀를 기울였다.




‘빌어먹을! 서두르지 않으면 도망친 악마가 활개를 칠 거요!’




한탄스러운 곡소리에 절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가 가진 단서가 하나하나 맞물리며 완벽한 그림을 그려낸다. 그믐이 지나자마자 대문을 박차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방신, 올빼미 할아범의 빈 둥지…… 도깨비들의 바깥 출입이 금해진 이유.




 “으악!”




깜짝이야! 민석의 비명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이한 광경이 또렷해진 망막에 맺힌다.




“왜 그래? 지금 거미를 죽이려 한 거야?”




바닥을 내리치려던 민석의 손목을 잡아챈 세훈이 역정을 냈다. 이번에는 종대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못 했다. 도깨비는 미물을 해하지 않는다. 불문율 중 하나다. 마른 입술이 무언가 말하려 뻐끔거렸다. 민석의 커다란 망울에는 물이 그렁그렁하다. 콩만한 거미가 베개를 타넘어 문구멍으로 사라지는 꼴을 노려보는 새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을 적신다. 끝내 말없이 다물어진 입이 파들파들 떨렸다. 적막해진 방 안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머지가 번갈아 눈을 마주쳤다. 모두 백 도깨비의 낯선 모습에 놀란 양이다. 배를 곯아 제 정신이 아닌가 보다고 읊조리며 세훈이 슬쩍 손을 놓자마자 민석은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또 왔어.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아 등을 구부린 민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왔다고…….




“이따가 다시 올게, 주전부리라도 먹어.”




간다는데 대꾸도 않고 애꿎은 베개만 꼬집었다. 속으로만 애원했다. 가지마, 가지마. 종대를 잡아둔 적이 있다.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했더니 까르르 웃으며 겁보라고 놀리더라.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찾아오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 깊이 잠들 때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 뜻대로 된 줄 알았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 식은 방고래에서 오른 냉기가 등을 서늘케 한다. 뭐라고? 머리가 울렸다. 백현이를 화나게 하지 마. 콧등에 달라붙는 감촉이 모골을 얼어붙게 만들고 길게 갈라진 혀가 눈에 아른거렸다. 아아. 어슴푸레한 새벽에 몸집이 집채만한 구렁이와 마주한 후에야 깨달았다. 피할 수 없구나. 뭐에 홀린 것처럼 그 앞으로 나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탄의 손아귀에 벗을 던져준 셈이었다. 잠든 종대를 에워싼 뱀을 향해 납작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




부서질 듯 메마른 음성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니 뱀의 노란 눈동자는 저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사탄이 자비를 베푸는 족속이던가? 너는 특별해. 백현이는 외로워. 같이 가자. 널 헤치고 싶지 않아. 매일 찾아와 현혹하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도 같았다. 그 다음날에는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주먹질을 하는데도 끈질기게 등을 끌어안더니 섭섭했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갈비뼈에 얹어진 어린 아이의 손가락은 핏기 없이 새하얬다. 마음을 약해지게 하려고 보여주는 환상인 줄 알면서도 슬그머니 작은 손을 쥐어보았다. 먹으려고? 화들짝 놀라 도망하는 손을 콱 붙잡혔다. 안 먹어!




‘슬슬 참기 힘들 걸.’




보드라운 손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져 민석의 손을 움켰다. 그의 말이 맞다. 점점 인내에 힘이 부친다. 악식이 그립다. 허기진 속에 채우고 싶은 건 단 하나뿐이다. 아무것도 입에 댈 수가 없어졌다. 곡식이나 과일은 모래알 같고 살코기는 역하고 질겨 맛이 없다. 이대로 굶어 죽는 건가. 그렇담 지옥으로 떨어지려나? 손장난 하며 등허리를 간질이는 이에게 저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래선 안 되었다. 답을 듣는 순간 정말 그가 원하는 대로 될 거라고 민석은 확신했다.




“잘 자, 민석아.”




머뭇거리던 종대가 잇따라 방을 나섰다. 제발 가지마. 너희들이 가면…… 나타날 거야.

홀로여야 마땅하다. 달그락달그락.




“오늘은 무화과를 가져왔네.”




허나 어느새 방에는 둘이다. 민석은 뒤에서 들려오는 흥얼거림을 애써 모른 체하며 아까 뭉개버렸으면 죽어졌을까? 골몰히 생각하였다. 바닥을 기어가던 거미가 풍기던 달짝지근한 냄새를 모를 리 없다. 혀 끝에 녹아지는 그의 살 내음을.

제게 어깻죽지를 먹힌 남자는 밤낮 가리지 않고 홀연히 나타나곤 했다.




‘안녕.’




처음엔 질겁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구석에 처박혀 옷가지를 휘둘렀더니 그는 조롱하듯 크게 웃었다.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딸꾹질이 나온다. 느릿느릿 걸어온 그가 허리를 숙였다. 코에 훅 끼치는 단내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난 백현이야. 일그러진 얼굴을 검질기게 쓰다듬었다. 나를 먹어. 그 밤에 만난 악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해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입가의 화禍를. 순수한 민석은 그의 애정 어린 눈빛에 속아 자만했고 그 대가로 화를 입었다.




‘가, 가버려! 오지 말라고!’




벌을 받을까 두려워 도움을 청하지 못 하고 양심에 찔려 악을 취하지도 못 한다. 백현은 매번 애달픈 눈씨로 저를 훑으면서도 물건을 집어 던지고 소리치는 도깨비를 사랑옵게 여겼다. 허나 오래지 않는다.




‘나랑 가는 게 그렇게 싫어? 왜? 내가 필요하잖아.’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하면 민석은 순식간에 벼랑으로 내몰렸다. 여러 갈래로 조각난 요마의 신체가 박쥐 떼가 되어 달려 들고 연한 살에다 사정없이 이빨을 박았다. 어느 날은 민석의 몸을 타고 올라 맨손으로 무참히 살갗을 헤치기도 했다. 고통스럽게 울부짖어도 그는 무표정으로 아프냐고 물을 뿐이었다. 잔혹한 환상에 자아를 잃을까 두렵다.

찰박. 과육을 헤집는 소리가 난다. 이맛살을 찌푸린 민석이 귀를 틀어막았다.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당겨서 어느 하나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입안에 가득 고이는 침을 연신 달게 삼켰다. 코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




 “쯧.”




저, 저 고집불통. 혀를 차면서도 푸르게 번뜩이는 눈엔 웃음기가 선명하다. 은쟁반 옆에 앉은 백현은 검붉은 과일을 홀랑 먹어 치운다. 딱히 먹고 싶지 않지만 굶주린 도깨비를 약 올리기 좋은 수다. 시선은 이불 더미에 고정한 채 팔을 타고 흐르는 즙을 길게 핥아 올렸다.




“쟤네, 네가 성가시다고 하더라.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대.”


“…….”


“나는 알아, 앞에선 친한 척 하지만 진심으로 널 아끼는 마음이 없는 걸.”


“거짓말 하지마!”




벌떡 일어나 길길이 성을 내는 면면에는 원망이 가득하다. 민석은 방울 지는 눈물을 팔로 훔쳐냈다. 아랑곳 않고 퍼붓는 악담이 진실일까 무섭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 너무 아파. 백현은 저를 흘기느라 충혈된 눈가를 손가락으로 슥 문질렀다. 도깨비는 눈물이 많네. 성스러운 존재는 모두 이 애처럼 부드러운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애쓰며 백현이 중얼거렸다. 궁금하지 않아?




“여기, 신성한 영역에 내가 나타날 수 있는 이유, 말해줄까?”




악마의 손을 매몰차게 쳐낸다. 들으나마나 사악한 술수를 부린 거 아니냐고 민석이 퉁명스레 답했다.




“네가 원하니까.”


“뭐?”


“도깨비 요새에 나 같은 게 함부로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잖아. 날 불러들인 건 너야.”


“닥쳐,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그ᅳ래?”




찰나다. 백현은 억센 힘으로 민석의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난폭한 손길과는 별개로, 그는 마치 다른 이인 양 다감한 말투로 도깨비를 희롱했다.




“그럼 이건 뭔데? 네가 원치 않으면 난 이렇게 할 수 없어, 앞에 나타날 수도 없고 말을 걸 수도 없지. 그런데……”




잡아당기는 대로 마음껏 휘둘리는 몸뚱어리가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새된 신음을 마음껏 비웃으며 백현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민석의 머리채를 끌었다. 안 돼! 그의 손이 억지로 입술을 비집자 도깨비의 눈이 크게 떠진다. 속절없이 벌어진 데로 황홀한 식미가 흘러 든다. 기다렸다는 듯이 육을 씹어 삼켰다.




“마음대로 되잖아.”




제 손을 먹어 치우는 민석을 내려다보며 우미하게 말을 잇는다. 주린 만큼 게걸스럽다. 참혹한 처지다. 악마에게 마구 다루어지는 게 견딜 수 없이 비참해진 민석은 죽을 힘을 내어 팔을 휘저었다. 삶은 팥이 담긴 놋그릇에서 찰긴 소리가 난다.




“너랑 가느니 지옥에 떨어지는 게 나아!”




악귀를 쫓는다는 소용도 없이 늘 방에 놓여있던 것이었다. 힘껏 백현의 목 언저리를 비튼 손바닥 아래서 팥이 뭉개져 사방으로 튀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질기게 매달려 가슴께까지 할퀴었다.




“아……”




팥? 저도 모르게 탄식한 백현이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뜨겁다. 더디게 타 들어가는 피부를 그저 바라보았다. 머리칼을 쥔 한 손에서 힘이 빠지는 걸 알아챈 민석이 급히 벗어났다. 헉, 헉…… 가쁜 숨 탓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덜덜 떨리는 몸을 벽에 기대어 눌렀다. 당장이라도 길길이 날뛸 줄 알았던 무자비한 자가 가만하니 더 겁이 난다. 민석에게 먹힌 손이 도로 자랄 때까지다. 한참을 못 박힌 듯 서 있던 그는 검게 그을린 상처를 털듯 쓸어내었다. 민석아. 이름하며 미소를 짓는다. 넘치는 눈물을 막지 못하는 민석이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민석아, 어떡하니?




“후회하게 될 거야.”


















혀니 화나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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